작품 소개
1983년 10월, 인천 부평 굴포천 둑 옆의 작은 라면 공장 태성식품. 밤 열한 시, 스프 배합실의 배합 반원 배철순은 위에서 내려온 새 배합표 한 줄을 읽고 숟가락을 멈춘다. 육수 가루를 전부 새 드럼으로 바꾸라는 줄이다. 상표를 긁어낸 드럼 뚜껑을 열자 사흘 묵은 튀김 기름 같은 냄새가 올라오고, 한 숟갈 혀에 올리자 끝에 쇠맛이 돌고 목 뒤가 따끔하다. 유리창 너머 복도에서 넥타이를 맨 공장장 변도순이 팔짱을 끼고 서 있다. 공장장은 철순에게 혀를 가르친 사람이다. 서울의 큰 라면 회사들은 도매값을 내리며 가게마다 덤을 얹어 주고, 라면값은 정부가 묶어 놓아 올릴 수도 없다. 11월 말일에는 은행 어음이 돌아오고, 공장에는 직원 이백 명과 공장 뒤 사택 스무 집이 기대어 산다. 공장장은 말한다. “섞어. 이백 명 월급이 이 통 안에 있어.” 철순은 섞는다. 그리고 다음 통부터 몰래 배합을 되돌린다. 반품하기로 한 옛 육수 가루를 창고 구석에 숨겨 두고, 통마다 혀를 대고 제 도장을 찍는다. 철순이 배합을 되돌린 줄 아는 사람은 같은 조의 보조이자 공장장의 조카인 하기남 하나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야간 2조」가 찍힌 상자만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공장장은 새 배합이 공장을 살렸다고 믿는다. 숨긴 가루는 줄어들고, 서울 도매상은 오천 상자를 주문하고, 포장반 여공 순희는 첫날 밤의 라면을 먹고 사흘을 앓아눕는다. 다툼은 배합실에서 사장실로, 부평역 앞 다방과 작은 지역 신문사로, 시청 위생과의 단속으로 넓어진다. 공장을 지키면 맛이 무너지고, 맛을 지키면 공장이 닫힌다. 철순은 제 혀 하나로 둘 다 지킬 수 있을까? 19세 이상 · 완결
작가의 창작 노트
- 장르
- 역사 · 1020
라면 한 봉지가 백 원 남짓하던 때의 공장을 쓰고 싶었습니다. 통금이 풀리고 처음 맞는 밤들, 공중전화 앞의 줄, 버스 안내양과 학생 회수권, 기숙사 휴게실의 흑백 텔레비전. 사람들은 월급날 고깃국 한 그릇에 한 달을 버텼습니다. 공장을 지키려는 사람과 맛을 지키려는 사람이 같은 배합 통 앞에서 부딪치게 했습니다. 공장장 변도순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이백 명의 월급과 사택 스무 집의 연탄을 혼자 짊어진 사람이고, 남에게 말 못 할 사정까지 품고 있습니다. 웃음은 공장 식당과 기숙사와 월급날에 맡겼습니다. 늘 배가 고프고 스물다섯에 학생 회수권을 내미는 기남, 제 가마솥에 몰래 뭘 끓이면 장가를 못 간다고 겁을 주는 식당 봉덕 아주머니, 쌍화차에 띄운 달걀노른자를 두고 다투는 다방. 아픈 자리는 철순의 고백입니다. 철순은 처음부터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첫 통을 섞었고, 반을 섞었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고백을 하나씩 갚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태성식품과 한솥라면, 해안일보, 모든 인물과 사건은 지어낸 것입니다. 인천 부평과 굴포천, 연안부두, 강화는 실제 지명을 빌렸습니다. 원료의 배합과 비율은 일부러 적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원작의 인물·설정·문장을 사용하지 않은 독립 창작물입니다.
이 이야기에 남긴 반응
회차 목록
총 15화 · 평균 5,355자
1화(5,430자)
한 줄
2026.11.01
2화(5,491자)
반품 딱지
2026.11.01
3화(5,448자)
야간 2조
2026.11.01
4화(5,330자)
사장실
2026.11.01
5화(5,335자)
반반
2026.11.01
6화(5,315자)
다방
2026.11.01
7화(5,370자)
죽은 혀
2026.11.01
8화(5,361자)
새우 머리
2026.11.01
9화(5,335자)
감시원
2026.11.01
10화(5,343자)
연탄 창고
2026.11.01
11화(5,320자)
월급날
2026.11.01
12화(5,303자)
면회
2026.11.01
13화(5,309자)
사택 마당
2026.11.01
14화(5,301자)
굴포천
2026.11.01
15화(5,333자)
한 봉지
2026.11.01
댓글 4
역사 작품 더 보기
은해록 작가의 다른 작품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은해록·조회 1.4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