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30자)

사장실

라면 스프의 비밀 · 은해록

토요일 아침⁠, 연안부두 어시장 입구에서 바다 냄새가 얼굴을 철썩 때렸다⁠. 비린내와 소금기와 젓갈 통의 쿰쿰한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숨을 한 번 참았다⁠. 갈매기가 지붕 위에서 울었고⁠, 장화를 신은 상인들이 물 호스로 바닥을 쓸었다⁠. 물이 내 운동화 코까지 밀려왔다⁠.

기남은 어시장에 오자고 한 사람이 저라도 되는 것처럼 앞장서서 걸었다⁠. 뒤에 남순희가 따라왔다⁠. 기남이 a를 붙여 다시 쓴 편지를 사흘 내리 창문 아래 빨랫줄에 꽂아 두었고⁠, 순희는 사흘째 저녁에 창문을 열고 한 줄로 대답했다고 했다⁠. 생선 시장이라면 가겠다고⁠. 너희랑 가는 게 아니라 시장에 가는 거라고⁠.

“⁠목포 사람이 인천 어시장 와서 뭐 볼 게 있어⁠?⁠”

“⁠목포 사람이 와야 볼 게 보이지요⁠.⁠”

순희는 생선 좌판을 지날 때마다 걸음을 늦추고 아가미를 들춰 보았다⁠. 상인 아주머니가 눈을 흘기자 순희는 목포 말로 한마디를 던졌고⁠, 아주머니는 금세 웃으며 순희에게 귤을 하나 쥐여 주었다⁠. 기남은 순희 손의 귤을 오래 쳐다보았다⁠.

나는 숨긴 가루 두 포대가 다음 주 화요일이면 바닥난다는 것만 생각했다⁠. 공장에서 옛 가루를 다시 들이려면 수원 원료상과 계약을 되살려야 했고⁠, 계약은 공장장의 도장이 있어야 했다⁠. 내 손에는 도장이 하나 있었지만 내 도장으로는 통 꼬리표밖에 찍을 수 없었다⁠.

어시장 안쪽 깐새우 가게 앞에 플라스틱 다라이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새우 껍질을 벗겨 살만 바구니에 던졌고⁠, 떼어 낸 머리와 껍질은 다라이에 수북이 쌓였다⁠. 나는 다라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주머니⁠, 이 머리들은 어디로 가요⁠?⁠”

“⁠닭 모이로 가지⁠. 한 다라이에 몇백 원이야⁠. 왜⁠, 총각네 닭 키워⁠?⁠”

“⁠라면 공장 다닙니다⁠.⁠”

“⁠라면에 새우 머리를 넣게⁠? 닭이 먹는 걸⁠?⁠”

옆 아주머니들이 깔깔 웃었다⁠. 나는 새우 머리 하나를 집어 껍데기를 깨물었다⁠. 비렸다⁠. 비린내 뒤에서 아주 얇은 단맛이 올라왔다⁠. 소금물에 오래 담긴 단맛이었다⁠. 순희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새우 머리를 하나 집더니 손가락으로 비볐다⁠.

“⁠그냥 먹으면 비려요⁠. 볶아야 돼요⁠. 기름 없이 마른 솥에 볶으면 비린내 날아가고 고소한 냄새가 나요⁠.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해서 국물 냈어요⁠. 목포에서는 고기가 비싸니까⁠.⁠”

“⁠얼마나 볶아요⁠?⁠”

“⁠냄새가 바뀔 때까지요⁠. 코로 알아요⁠.⁠”

어시장 끝 건어물 골목에서는 멸치 부스러기를 자루째 팔았다⁠. 손톱만 한 멸치들이 마르면서 부서져 가루처럼 된 것이었다⁠. 사료 공장에 넘기는 것이라 값이 쌌다⁠. 한 줌 쥐어 혀에 올렸다⁠. 짰고⁠, 짠맛 뒤에서 국물의 단맛이 밀려왔다⁠. 강화 장터의 어머니 국물이 바로 이 맛이었다⁠.

기남이 멸치 자루에 손을 넣었다가 한 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우물거리다 얼굴이 환해졌다⁠.

“⁠형⁠, 이거 술안주로 팔면 돈 되겄어⁠.⁠”

*

어시장 앞 공중전화는 부스가 하나뿐이었다⁠. 나는 동전을 넣고 강화 읍내 국숫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받자마자 물었다⁠.

“⁠무슨 일이냐⁠? 토요일 낮에 전화를 다 하고⁠. 장가가냐⁠?⁠”

“⁠어머니⁠, 국물에 새우 넣으면 어때요⁠?⁠”

“⁠새우⁠? 새우젓 국물 말이냐⁠?⁠”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가 국자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강화 사람한테 그걸 묻냐⁠. 새우젓 국물 한 숟갈이 고기 한 근이다⁠. 고기 비쌀 때 우리 국수가 왜 맛있었는데⁠. 근데 그건 왜 묻냐⁠? 공장에서 새우 넣는대⁠?⁠”

“⁠제가 넣어 보려고요⁠.⁠”

“⁠네가 뭘 넣어⁠. 너는 숟가락 대는 사람이잖아⁠.⁠” 어머니가 잠깐 말을 멈췄다⁠. “⁠옆에 여자 목소리 들린다⁠. 누구냐⁠?⁠”

순희가 부스 밖에서 기남에게 무어라 핀잔을 주고 있었다⁠. 나는 동전이 떨어지기 전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돌아오는 버스는 사람으로 꽉 찼다⁠. 기남은 회수권을 꺼내지 않고 얌전히 동전을 냈다⁠. 안내양이 기남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순희와 나는 뒷문 손잡이를 같이 잡고 흔들렸다⁠. 버스가 굽잇길을 돌 때마다 순희의 어깨가 내 팔에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순희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포장반 언니들이 다 알아요⁠. 밤에 나온 게 맛있다는 거⁠. 시장 할머니들이 상자 옆구리를 본다는 거⁠.⁠”

“⁠네⁠.⁠”

“⁠근데 나 아프게 한 라면도 상자에 「⁠야간 2조⁠」라고 찍혀 있었어요⁠. 동문 할머니네 상자⁠.⁠” 순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밤에 만든 거 맞지요⁠? 배 씨 아저씨가 만든 거⁠.⁠”

버스가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손잡이를 더 세게 쥐었다⁠.

“⁠첫 통이었어요⁠. 내가 섞었어요⁠.⁠”

순희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부평 공단의 굴뚝들이 지나갔다⁠. 굴뚝마다 흰 연기가 한쪽으로 누웠다⁠.

“⁠그럼 두 번째 통부터는요⁠?⁠”

“⁠두 번째 통부터는 안 섞었어요⁠.⁠”

“⁠왜 첫 통은 섞었어요⁠?⁠”

“⁠공장장님이 보고 있었어요⁠.⁠”

순희가 피식 웃었다⁠. 웃음 끝이 쓰게 떨어졌다⁠.

“⁠공장장님 보는 데서는 섞고⁠, 안 보는 데서는 안 섞고⁠. 우리 포장반 언니들도 그래요⁠. 반장 보는 데서는 빨리 싸고⁠, 안 보는 데서는 숨 쉬고⁠.⁠” 순희가 손잡이에서 한 손을 떼어 카디건 앞섶을 여몄다⁠. “⁠나는 이제 두 번째 통부터 먹을게요⁠.⁠”

*

일요일 밤⁠, 남자 기숙사 3호실에 석유곤로를 들여놓았다⁠. 공장장실 곤로와 같은 모양의 것을 기숙사 관리인 아저씨한테서 빌렸다⁠. 마른 프라이팬에 새우 머리를 한 줌 올리자 처음에는 비린내가 방을 채웠다⁠. 기남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형⁠, 이거 우리 방에서 바다가 썩는 냄새여⁠.⁠”

“⁠기다려 봐⁠.⁠”

주걱으로 새우 머리를 뒤집고 또 뒤집었다⁠. 순희 말대로 코가 먼저 알았다⁠. 비린내가 날아가고 볶은 깨 같은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불을 껐다⁠. 다 식은 새우 머리를 멸치 부스러기와 함께 약절구에 빻았다⁠. 절굿공이 소리가 쿵쿵 울리자 옆방에서 벽을 두드렸고⁠, 잠시 뒤 3호실 문이 열렸다⁠. 관리인 아저씨였다⁠.

“⁠무슨 냄새야⁠? 불났어⁠?⁠”

“⁠라면 국물 만들어요⁠.⁠”

“⁠밤 열한 시에⁠?⁠”

관리인 아저씨 뒤로 복도에 사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냄새를 따라온 것이었다⁠. 튀김반 친구가 컵라면 그릇 같은 양재기를 내밀었다⁠. 나는 냄비에 물을 끓이고 공장에서 가져온 맨 면 하나를 넣었다⁠. 소금을 조금 넣고⁠,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빻은 가루를 한 숟갈 넣었다⁠. 국물이 끓자 냄비를 들어 돌렸다⁠. 한 숟갈씩이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국물을 마시고 입맛을 다셨다⁠.

“⁠이거 우리 공장 라면이야⁠?⁠”

“⁠아직 아닙니다⁠.⁠”

“⁠아직이 뭐야⁠. 이거면 내가 사 먹지⁠.⁠”

나는 숟가락을 헹궈 내 몫을 떴다⁠. 혀 가운데로 단맛이 퍼졌다⁠. 옛 육수 가루의 단맛과는 달랐다⁠. 쇠고기 냄새가 없는 대신 바다의 소금기가 혀끝에 맴돌았다⁠. 목 뒤는 조용했다⁠. 아직 옛 맛에는 못 미쳤다⁠. 빻은 가루를 손바닥만 한 은박지에 조금 싸서 접었다⁠. 시험 봉지 하나가 되었다⁠. 나는 봉지를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

월요일 아침 열 시⁠, 본관 2층 사장실 문 앞에서 공장장이 내 위생모를 벗겨 손에 쥐여 주었다⁠.

“⁠모자는 벗고 들어가⁠. 사장님 방이다⁠.⁠”

사장실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검은 가죽 소파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고⁠, 벽에는 「⁠근면 성실⁠」이라고 쓴 큰 액자가 있었다⁠. 창가 어항에서 금붕어 두 마리가 느리게 돌았다⁠. 석유난로가 웅웅거려 방 안이 더웠다⁠. 사장 곽만수는 소파 가운데에 앉아 금테 안경을 닦았고⁠, 맞은편에 서울 도매상 대표가 앉았다⁠. 대표는 배가 나와 조끼 단추가 팽팽했다⁠. 영업 과장이 병풍 뒤에서 냄비를 셋 끓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제가 지난주 골프장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장이 손짓하자 영업 과장이 그릇 셋을 탁자에 올렸다⁠. 그릇 밑에 종이를 깔고 매직으로 갑⁠, 을⁠, 병이라고 적었다⁠. 갑은 주간 1조 상자에서⁠, 을은 야간 2조 상자에서⁠, 병은 서울 회사 상자에서 꺼낸 라면이었다⁠. 그릇 차례는 영업 과장에게서 미리 들었다⁠. 을 그릇은 지난주 목요일 밤 내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 포대로 섞은 통에서 나왔다⁠.

도매상 대표가 갑 그릇부터 들었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큰 기침을 했다⁠. 목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칼칼하네⁠. 목이 따끔해⁠.⁠”

을 그릇을 들었다⁠. 한 모금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지 않았다⁠. 두 모금⁠, 세 모금 마시고 면을 한 젓가락 건져 먹고 나서야 그릇을 내려놓았다⁠.

“⁠이거네⁠. 시장에서 찾는다는 게 이거야⁠.⁠”

병 그릇은 한 모금만 마셨다⁠.

“⁠이건 내가 매일 파는 맛이고⁠.⁠”

사장이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고개를 공장장에게로 돌렸다⁠.

“⁠변 공장장⁠, 갑이랑 을은 뭐가 다른가⁠? 같은 공장⁠, 같은 배합 아닌가⁠?⁠”

공장장이 숟가락을 들었다⁠. 갑 그릇에서 한 숟갈⁠, 을 그릇에서 한 숟갈⁠. 다시 갑 그릇에서 한 숟갈⁠, 을 그릇에서 한 숟갈⁠. 숟가락이 두 그릇 사이를 네 번 오갔다⁠. 공장장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혀는 맨 처음 한 숟갈만 믿으라고 나에게 가르친 사람이었다⁠.

“⁠같은 배합입니다⁠. 끓인 시간 차이입니다⁠. 영업 과장이 갑을 덜 끓였네요⁠.⁠”

영업 과장이 병풍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공장장의 눈빛을 보고 도로 들어갔다⁠. 나는 공장장의 입술을 보았다⁠. 세 번째 숟갈부터 공장장의 입술은 맛을 보는 입술이 아니었다⁠. 무엇을 찾다가 못 찾은 사람의 입술이었다⁠.

사장이 나를 보았다⁠.

“⁠그래⁠, 자네가 그 혀 좋은 친구지⁠? 공장장이 자랑하던⁠. 자네도 한번 말해 보게⁠.⁠”

방 안이 조용해졌다⁠. 석유난로 웅웅거리는 소리와 어항 기포 소리만 남았다⁠. 공장장의 눈이 나에게 왔다⁠. 넥타이 매듭에 손가락이 올라가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갑 그릇의 첫 숟갈⁠. 혀끝에 녹슨 못의 맛이 돌고 목 뒤가 바늘에 찔렸다⁠. 을 그릇의 첫 숟갈⁠. 단맛이 혀 가운데에 머물고 목 뒤가 조용했다⁠.

“⁠갑은 목 뒤가 따끔합니다⁠. 을은 안 그렇습니다⁠.⁠”

“⁠왜 그런가⁠?⁠”

공장장의 손가락이 넥타이 매듭을 눌렀다⁠. 나는 공장장의 손가락을 보았다⁠. 이백 명⁠, 하고 공장장이 첫날 밤 배합 통을 가리키던 손가락이었다⁠.

“⁠끓인 시간 차이입니다⁠.⁠”

공장장의 손가락이 넥타이에서 떨어졌다⁠. 도매상 대표가 무릎을 쳤다⁠.

“⁠그럼 됐네⁠. 을로 줘⁠. 오천 상자⁠, 11월 19일까지⁠. 을 맛 그대로⁠. 한 상자라도 갑 맛이 나오면 계약은 그 자리에서 끝이야⁠. 시장 사람들 혀는 못 속여⁠.⁠”

사장이 일어나 도매상 대표와 악수를 했다⁠. 영업 과장이 계약서를 내밀었고⁠, 사장은 만년필로 서명했다⁠. 사장이 공장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변 공장장⁠, 들었지⁠? 을 맛대로 전 라인을 맞추게⁠. 낮이고 밤이고⁠.⁠”

“⁠예⁠, 사장님⁠.⁠”

*

사장실 문이 닫히고 복도 끝 소화기 앞까지 걸었을 때였다⁠. 공장장이 내 작업복 멱살을 쥐고 벽에 밀어붙였다⁠.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공장장의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넥타이가 흐트러져 있었다⁠. 공장장이 넥타이를 고쳐 매지 않고 나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끓인 시간 차이⁠?⁠”

공장장의 숨에서 박하사탕 냄새가 났다⁠. 가슴 주머니 안에서 은박지 시험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을 그릇에 뭘 넣었어⁠?⁠”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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