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15자)

다방

라면 스프의 비밀 · 은해록

정문 앞에서 나는 기자를 지나쳐 걸었다⁠. 경비 아저씨가 보는 앞에서 서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등 뒤에서 구두 소리가 따라왔다⁠. 정류장 표지판 앞에서 걸음을 늦추자 기자가 내 옆에 와서 나란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굴었다⁠.

“⁠여기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디서요⁠?⁠”

“⁠오후 세 시⁠. 부평역 앞 목련다방⁠.⁠”

기자가 수첩에 무엇을 적는 소리가 났다⁠. 버스가 와서 나는 올라탔다⁠. 기자는 타지 않았다⁠. 창밖에서 기자가 볼펜 꽁무니를 깨물며 버스 번호를 보고 있었다⁠.

*

목련다방은 부평역 앞 양품점 2층에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커피 냄새와 담배 연기가 한꺼번에 내려왔다⁠. 붉은 비닐 소파가 칸막이마다 마주 보았고⁠, 구석의 전축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카운터 옆 어항에서 비단잉어 한 마리가 입을 뻐끔거렸다⁠. 짧은 치마를 입은 다방 아가씨가 쟁반을 들고 칸막이 사이를 오갔다⁠.

기남이 나보다 먼저 와서 맨 안쪽 칸막이에 앉아 있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기남은 아침에 내 신발을 신고 먼저 나가 버렸다⁠.

“⁠형 혼자 보내면 삼촌이 나를 혼내지⁠. 형이랑 같이 있었으면 덜 혼나고⁠.⁠”

“⁠같이 있으면 더 혼나⁠.⁠”

“⁠그럼 반반이네⁠.⁠”

기남은 다방 아가씨를 불러 커피를 시키며 프림을 세 숟갈 넣어 달라고 했다⁠. 설탕도 세 숟갈⁠. 다방 아가씨는 눈을 굴리며 돌아갔다⁠. 기남은 탁자 위 성냥갑을 하나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방 성냥은 공짜라고 했다⁠.

세 시 정각⁠, 기자가 계단을 올라왔다⁠. 회색 바바리코트를 벗어 소파 등받이에 걸지 않고 무릎에 접어 올렸다⁠. 다방 아가씨가 오자 쌍화차를 시켰다⁠. 다방 아가씨가 기남의 커피와 기자의 쌍화차를 같이 내려놓았다⁠. 쌍화차 위에 달걀노른자 하나가 동그랗게 떠 있었다⁠. 기남이 노른자를 오래 쳐다보았다⁠.

“⁠아가씨⁠, 나도 노른자 하나만 띄워 주면 안 되유⁠?⁠”

“⁠노른자는 쌍화차에만 들어가요⁠.⁠”

“⁠커피에 띄우면 커피가 쌍화차 되는 거 아녀⁠?⁠”

다방 아가씨가 대답 없이 쟁반을 들고 가 버렸다⁠. 기자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다가 수첩을 펼쳤다⁠.

“⁠해안일보 사회부 주미숙이에요⁠. 이분은요⁠?⁠”

“⁠같은 조 동생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써 주셔도 돼유⁠.⁠”

주 기자는 수첩 사이에서 엽서 한 장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연필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부평시장 동문 할머니의 엽서였다⁠.

「⁠태성 라면 국물에서 기름 썩은 냄새가 납니다⁠. 우리 가게서 산 아가씨가 앓았습니다⁠. 신문에서 좀 알아봐 주시오⁠.⁠」

“⁠이 엽서가 지난주에 왔어요⁠. 할머니한테 가 봤더니 라면 공장 총각이 와서 남은 봉지를 다 사 갔다고 하시더라고요⁠. 눈썹이 짙고 손끝이 붉은 총각⁠.⁠” 주 기자가 쌍화차 노른자를 숟가락으로 깨뜨렸다⁠. “⁠그리고 어젯밤 전화⁠. 태성식품⁠, 붉은 띠 드럼 바닥을 보세요⁠. 목소리가 지금 이 목소리랑 같아요⁠.⁠”

나는 커피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기남이 나를 보고⁠, 주 기자를 보고⁠, 다시 성냥갑을 주머니에서 꺼내 만지작거렸다⁠.

“⁠드럼 바닥에 뭐가 있어요⁠?⁠”

“⁠영어 글자요⁠. 미군 부대에서 버리라고 찍은 글자요⁠.⁠”

“⁠가루 한 숟갈이면 돼요⁠. 보건 연구소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성분을 보면 사람이 먹어도 되는지 나와요⁠. 그리고 이름⁠.⁠”

“⁠이름은 안 됩니다⁠.⁠”

“⁠이름 없는 제보로는 데스크가 기사를 안 받아요⁠. 공장 하나를 신문에 내는 일이에요⁠.⁠”

“⁠기사가 나가면 공장 문 닫아요⁠. 직원이 이백 명입니다⁠. 공장 뒤에 사택이 스무 채고요⁠.⁠”

주 기자가 볼펜 꽁무니를 이로 깨물었다⁠. 플라스틱이 이빨 자국으로 울퉁불퉁했다⁠.

“⁠그 이백 명 식구들도 그 라면 먹어요⁠. 사택에도 회사가 라면을 상자로 나눠 준다면서요⁠. 왕 씨 노모도⁠, 지난달에 애 낳은 집도⁠.⁠”

나는 주 기자를 보았다⁠. 주 기자는 사택 골목을 걸어 본 사람처럼 말했다⁠. 정문 경비 아저씨에게서 들었는지⁠, 시장 할머니에게서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자님은 왜 이 일을 해요⁠? 작은 신문이잖아요⁠.⁠”

“⁠작으니까요⁠.⁠” 주 기자가 쌍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해안일보는 기자가 열한 명이에요⁠. 내년까지 버틸지 몰라요⁠. 작은 신문은 큰 기사 하나로 살아요⁠. 나한테도 이백 명은 아니어도 열한 명이 걸려 있어요⁠.⁠”

전축의 트로트가 끝나고 다른 노래가 시작될 때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기남이 커피를 바닥까지 마시고 잔 밑에 녹은 설탕을 숟가락으로 긁었다⁠. 긁는 소리가 칸막이 안을 채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기자는 붙잡지 않았다⁠. 수첩 맨 뒷장을 찢어 해안일보 사회부 전화번호와 신포동 주소를 적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전화로 한 문장 하고 끊는 것보다는 한 숟갈이 나아요⁠.⁠”

*

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창고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서 쇠붙이 긁는 소리가 났다⁠. 쇠솔로 쇠를 박박 긁는 소리였다⁠. 창고 안에 붉은 띠 드럼 스무 개가 전부 옆으로 눕혀져 있었고⁠, 추덕배가 데려온 사내 둘이 드럼 바닥마다 쪼그려 앉아 쇠솔질을 했다⁠. 바닥의 검은 페인트 글자가 쇠솔 아래에서 은빛 쇠로 바뀌어 갔다⁠.

추덕배는 드럼 하나에 걸터앉아 껌을 씹고 있었다⁠. 공장장은 창고 한가운데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배합실 배철순이 왔네⁠.⁠” 추덕배가 금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세 시에 다방 갔다며⁠? 쌍화차 맛있었어⁠? 노른자 띄워 줬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장장이 팔짱을 풀었다⁠.

“⁠아침에 기자가 정문에 왔다고 경비가 그러더라⁠. 너한테 말을 걸었다고⁠.⁠”

“⁠다방에서 쌍화차 마셨습니다⁠.⁠”

“⁠쌍화차 마시면서 무슨 얘기를 했냐⁠?⁠”

“⁠라면 얘기요⁠.⁠”

공장장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넥타이 매듭을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았다⁠. 매듭이 반듯했다⁠.

“⁠드럼 바닥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누가 기자한테 말했을까⁠.⁠”

“⁠기자가 먼저 알고 왔습니다⁠. 시장 할머니가 신문사에 엽서를 보냈답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 말하지도 않았다⁠. 공장장은 오래 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쇠솔질하는 사내들에게 말했다⁠.

“⁠한 개도 빼지 말고 다 긁어⁠.⁠”

추덕배가 드럼에서 내려와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껌 냄새가 훅 끼쳤다⁠. 박하 껌이었다⁠.

“⁠혀 좋은 친구는 입도 가벼운가⁠? 혀가 바쁘면 입이 심심해지거든⁠. 하하⁠.⁠” 추덕배가 내 어깨를 꽉 쥐었다⁠. “⁠내가 미군 부대 물건 십 년을 댔어⁠. 그동안 입 가벼운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 다들 고향 갔나 봐⁠.⁠”

공장장이 추덕배의 팔을 내 어깨에서 걷어 냈다⁠.

“⁠추 사장⁠, 내 공장 사람이야⁠.⁠”

“⁠공장장님 사람이니까 내가 조심하라는 거죠⁠.⁠”

공장장은 추덕배를 보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드럼은 이제부터 이 창고에 둔다⁠. 열쇠는 내가 갖고⁠. 쓸 만큼만 내가 내준다⁠. 그리고 기남이는 다음 주부터 주간 조다⁠.⁠”

창고 문 뒤에서 기남이 고개를 내밀었다가 쏙 들어갔다⁠.

저녁 여섯 시⁠, 기숙사 3호실에서 기남은 내 아랫칸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주간 조로 가면 아랫칸을 돌려줘야 했다⁠. 주간 조 방은 2호실이었다⁠.

“⁠형⁠, 나 낙하산 소리 또 듣게 생겼어⁠. 삼촌 조카라서 밤 근무 빼 줬다고⁠.⁠”

“⁠밤 근무 빼 주는 게 낙하산이면⁠, 낮 근무는 뭐냐⁠?⁠”

“⁠낮 근무는 그냥 사람이지⁠.⁠” 기남이 베개에서 얼굴을 들었다⁠. “⁠근데 형⁠, 나 낮에 가도 부스러기는 챙겨 올게⁠. 제면기는 낮에도 끊어지니께⁠.⁠”

기남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한참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다가 말했다⁠.

“⁠형⁠, 이상한 거 하나 말해 줄까⁠. 삼촌 말여⁠. 집에서 숙모가 김치를 담그면 삼촌이 맨날 김치에 소금을 쳐 먹어⁠. 국에도 치고 나물에도 쳐⁠. 숙모가 그거 보고 부엌에서 울어⁠. 내가 작년 설에 사택 가서 봤어⁠.⁠”

“⁠입맛이 변하셨나 보지⁠.⁠”

“⁠삼 년 됐어⁠. 삼촌이 담배 끊은 것도 삼 년 됐고⁠. 박하사탕만 먹지⁠.⁠” 기남이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삼촌이 반장일 때는 숙모 김치를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대⁠. 숙모가 그 얘기를 백 번은 했어⁠.⁠”

나는 공장장실 곤로 앞에서 국물에 소금을 한 번 더 치던 손을 떠올렸다⁠. 사장실에서 갑 그릇과 을 그릇 사이를 네 번 오가던 숟가락도 떠올렸다⁠. 기남은 다시 베개에 엎드렸다⁠. 베갯잇에서 면 부스러기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

밤 열두 시⁠, 공장장이 내준 드럼 셋은 바닥이 은빛으로 긁혀 있었다⁠. 나는 배합실에서 반반을 섞으며 창고로 난 유리창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창고 맨 구석⁠, 반반 첫 통을 섞고 비운 드럼 하나가 아직 눕혀져 있었다⁠. 순희가 바닥 글자를 읽었던 드럼이었다⁠. 쇠솔질하던 사내들이 빈 드럼은 긁지 않고 지나갔다⁠.

새벽 세 시⁠, 창고 문은 잠겨 있었다⁠. 배합실과 창고 사이의 쪽창은 잠겨 있지 않았다⁠. 몸이 겨우 빠져나가는 크기였다⁠. 나는 위생모를 벗고 쪽창으로 기어 들어갔다⁠. 어깨가 창틀에 끼어 작업복 단추 하나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빈 드럼은 비어 있지 않았다⁠. 바닥에 가루가 두 주먹쯤 남아 있었다⁠. 손전등으로 바닥 글자를 비췄다⁠. 「⁠CONDEMNED · 1979⁠」⁠. 나는 기숙사에서 가져온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어머니가 강화에서 보내 준 보온병이었다⁠. 숟가락으로 가루를 떠서 보온병에 담았다⁠. 쩐내가 보온병 주둥이에서 올라왔다⁠. 다 담고 뚜껑을 돌려 잠갔다⁠.

쪽창으로 다시 나올 때 떨어진 단추를 찾지 못했다⁠.

*

목요일 낮⁠,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신포동에 갔다⁠. 해안일보는 낡은 3층 건물의 2층에 있었다⁠. 계단에 신문 뭉치가 쌓여 있었고⁠, 문을 열자 타자기 소리와 전화벨과 담배 연기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책상 여남은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창가 큰 책상에서 대머리 부장이 수화기를 귀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문 앞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사환이 나를 막았다⁠. 스무 살쯤 되어 보였다⁠. 사환이 내 손의 보온병을 보았다⁠.

“⁠짜장면은 안 시켰는데요⁠.⁠”

“⁠배달 온 거 아닙니다⁠.⁠”

“⁠그럼 그 통에 뭐 들었어요⁠? 국물이에요⁠?⁠”

주 기자가 책상 사이로 걸어와 사환의 어깨를 밀었다⁠. 사환은 투덜거리며 신문 뭉치를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주 기자는 나를 복도 끝 창가로 데려갔다⁠. 나는 보온병을 내밀었다⁠.

“⁠바닥 글자가 남은 드럼에서 떴습니다⁠. 오늘 아침에 남은 드럼은 다 긁었어요⁠.⁠”

주 기자가 보온병을 받아 무게를 가늠하듯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 뚜껑을 조금 돌려 코를 대고⁠, 얼굴을 찡그렸다가 도로 잠갔다⁠.

“⁠열흘 걸려요⁠. 연구소가 바빠요⁠.⁠”

“⁠열흘이면 오천 상자 가운데 반은 나갑니다⁠.⁠”

“⁠그 반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서울 도매상요⁠. 거기서 서울 시장 구멍가게로요⁠.⁠”

주 기자는 수첩에 받아 적었다⁠. 볼펜 꽁무니가 또 울퉁불퉁해졌다⁠. 나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세 칸쯤 내려갔을 때 주 기자가 계단 위에서 나를 불렀다⁠.

“⁠하나 더 말해 둘게요⁠.⁠”

나는 올려다보았다⁠. 주 기자는 보온병을 가슴에 안고 계단 난간을 잡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우리 부장한테 전화가 왔어요⁠. 태성식품 사장이요⁠. 둘이 같은 골프 모임이래요⁠.⁠”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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