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03자)

면회

라면 스프의 비밀 · 은해록

부평경찰서 유치장은 지하에 있었다⁠. 쇠창살 안에 나무 마루가 깔려 있었고⁠, 벽에 기댄 사내 셋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나는 술 냄새를 풍기며 코를 골았고⁠, 하나는 군용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나머지 하나는 스물셋쯤 된 마른 청년이었다⁠. 청년은 손가락이 길었고⁠, 긴 손가락으로 마루의 나뭇결을 쉬지 않고 쓸었다⁠.

“⁠형씨는 뭐 했어요⁠?⁠”

“⁠라면을 바꿨어요⁠.⁠”

“⁠라면을 훔쳤어요⁠?⁠”

“⁠바꿨어요⁠. 맛을⁠.⁠”

청년이 한참 나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부평역에서 지갑 세 개 했어요⁠. 형씨보다는 내가 알아듣기 쉽네⁠.⁠” 청년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맛을 바꿨는데 왜 잡혀 와요⁠? 맛있게 바꿨어요⁠, 맛없게 바꿨어요⁠?⁠”

“⁠맛있게요⁠.⁠”

“⁠그럼 상을 줘야지⁠.⁠” 청년은 담요 뒤집어쓴 사내의 발을 툭 찼다⁠. “⁠아저씨⁠, 들었어요⁠? 여기 라면 맛있게 만들었다고 잡혀 온 사람 있어요⁠.⁠”

담요 속에서 욕이 한마디 나오고 다시 조용해졌다⁠.

*

밤 열한 시⁠, 쇠창살 너머 당직실에서 석유곤로 켜는 소리가 났다⁠. 물 끓는 소리⁠, 봉지 뜯는 소리⁠. 냄새가 복도를 타고 유치장으로 흘러왔다⁠. 나는 마루에 누운 채 눈을 감았다⁠. 볶은 새우 머리의 고소한 단내가 먼저 왔다⁠. 하룻밤 재워 빻은 가루의 단내였다⁠. 쩐내는 없었다⁠.

“⁠11월 셋째 주 야간 2조⁠.⁠”

내 입에서 저절로 말이 나왔다⁠. 청년이 마루에서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요⁠?⁠”

당직 경찰이 냄비를 들고 복도로 나왔다⁠. 쉰 줄의 배가 나온 경찰이었다⁠. 쇠창살 앞 의자에 앉아 젓가락을 들다가 나를 보았다⁠.

“⁠뭘 쳐다봐⁠? 배고파⁠?⁠”

“⁠그 라면⁠, 상자 옆구리에 「⁠11월 17일 야간 2조⁠」 찍혀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16일⁠.⁠”

경찰이 젓가락을 멈췄다⁠. 당직실로 들어가 주황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옆구리를 손전등으로 비춰 읽었다⁠.

“⁠17일 야간 2조⁠. 이거 어떻게 알아⁠?⁠”

“⁠제가 섞었습니다⁠.⁠”

경찰이 상자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청년이 쇠창살을 붙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형씨⁠, 귀신이네⁠. 냄새로 날짜를 맞혀⁠?⁠”

“⁠시장 할머니가 반값에 넘기더라고⁠. 신문 나고 나서 아무도 안 사 간다고⁠.⁠” 경찰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맛을 다셨다⁠. “⁠근데 이거 맛있는데⁠. 맛있는 걸 왜 문을 닫아⁠?⁠”

“⁠맛없는 것도 섞였습니다⁠.⁠”

“⁠그럼 맛있는 것만 만들면 되잖아⁠.⁠”

경찰은 냄비를 다 비우고 하품을 했다⁠. 청년이 쇠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국물 한 숟갈만요⁠. 귀신이 만든 거면 나도 먹어 봐야지⁠.⁠”

경찰은 혀를 차면서도 숟가락에 국물을 떠서 청년에게 건넸다⁠. 청년이 국물을 받아 마시고 나를 보았다⁠.

“⁠형씨⁠, 나가면 이거 팔아요⁠. 내가 사 먹을게⁠. 지갑은 내 거로⁠.⁠”

*

이튿날 낮⁠, 형사가 나를 조사실로 불렀다⁠. 책상 위에 비닐봉지에 든 내 도장과 고무줄로 묶은 꼬리표 뭉치가 놓여 있었다⁠. 형사는 담배를 피우며 하나씩 물었다⁠. 반품 포대 여섯을 어디에 숨겼는지⁠, 왜 숨겼는지⁠, 보온병의 가루를 어디서 떴는지⁠. 나는 다 대답했다⁠. 쪽창으로 기어 들어가 단추를 잃어버린 것까지 말했다⁠. 형사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회사는 당신이 회사 원료를 빼돌렸다고 하오⁠. 반품할 물건을 숨기고 회사 창고에서 가루를 훔쳐 갔다고⁠.⁠”

“⁠네⁠. 그렇게 했습니다⁠.⁠”

“⁠다 인정하면 내가 할 일이 없잖소⁠.⁠” 형사가 담배를 비벼 껐다⁠. “⁠근데 하나 모르겠소⁠. 원료를 바꾸라고 시킨 사람이 있소⁠, 없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사가 꼬리표 뭉치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도장은 당신 거고⁠. 시킨 사람 이름은 어디에도 없고⁠.⁠”

*

11월 27일 일요일⁠, 면회실은 쇠창살 대신 촘촘한 철망으로 나뉘어 있었다⁠. 철망 너머 의자에 공장장이 앉아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회색 양복 윗도리를 입었다⁠. 공장 밖에서 양복을 입은 공장장은 처음이었다⁠. 공장장은 철망 앞 선반에 박하사탕 봉지를 올려놓았다⁠. 면회실 경찰이 봉지를 집어 들여다보고 도로 내려놓았다⁠.

“⁠밥은 나오냐⁠?⁠”

“⁠콩밥이 나옵니다⁠.⁠”

“⁠콩밥 짜지⁠?⁠”

“⁠덜 짭니다⁠.⁠”

공장장이 웃으려다 그만두었다⁠. 철망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사장님이 고소를 거둔다⁠. 조건이 있다⁠.⁠” 공장장의 목소리가 낮았다⁠. “⁠네가 원료를 혼자 바꿨다고 해라⁠. 드럼은 추덕배가 너한테 직접 댔다고⁠. 공장장은 몰랐다고⁠. 그럼 시청이 공장 책임을 덜 묻는다⁠. 봉인이 빨리 풀리고 공장 다시 연다⁠. 이백 명 월급 나온다⁠.⁠”

“⁠저는요⁠?⁠”

“⁠벌금 내고 나온다⁠. 벌금은 내가 낸다⁠. 사택 한 칸도 그대로 준다⁠.⁠” 공장장이 철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철순아⁠, 사장님은 다음 주 목요일에 공장을 판다⁠. 봉인이 그 전에 안 풀리면⁠. 서울 회사가 산다⁠. 상표랑 가게 자리만 사고 공장은 닫는다⁠. 그러면 이백 명이 아니라 영이다⁠.⁠”

“⁠공장장님은 왜 안 하십니까⁠? 공장장님이 시켰다고 하시면 저보다 빨리 풀립니다⁠.⁠”

“⁠나는 혀 없는 공장장이다⁠. 내가 다 했다고 하면 사장님은 공장을 더 빨리 판다⁠. 혀 없는 놈이 굴린 공장을 누가 다시 열겠냐⁠.⁠” 공장장이 넥타이 매듭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번에는 매듭을 눌렀다⁠. “⁠네가 하면 공장은 혀가 있는 공장이 된다⁠. 나쁜 반원 하나가 있었던 공장⁠. 반원은 바꾸면 돼⁠.⁠”

나는 철망 너머 공장장의 넥타이를 보았다⁠. 밤색 넥타이 끝이 실밥이 일어나 있었다⁠.

“⁠제 스프 한 봉지로 공장 다시 엽시다⁠.⁠”

“⁠뭐⁠?⁠”

“⁠식당 봉덕 아주머니 찬장에 새우 머리 세 자루⁠, 멸치 부스러기 두 자루가 있습니다⁠. 하룻밤 재운 겁니다⁠. 그걸로 만든 스프로 서울 도매상한테 다시 맛을 보입시다⁠. 감시원한테도요⁠.⁠”

“⁠네 혀만으로 공장이 안 돌아가⁠. 숫자로 돌아간다⁠.⁠” 공장장이 철망에서 몸을 뗐다⁠. “⁠새우 머리 값이 드럼 값보다 싸냐⁠?⁠”

“⁠쌉니다⁠. 닭 모이 값입니다⁠. 대신 손이 많이 듭니다⁠. 볶고⁠, 재우고⁠, 빻아야 합니다⁠.⁠”

“⁠손이 많이 들면 사람이 더 든다⁠. 사람이 더 들면 월급이 더 나간다⁠.⁠”

“⁠사택에 손이 있습니다⁠. 봉투 붙이는 손이요⁠. 왕 반장님 댁처럼⁠.⁠”

공장장이 오래 말이 없었다⁠. 박하사탕 봉지를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면회실 경찰이 시계를 보았다⁠.

“⁠생각해 봐라⁠. 이틀이다⁠.⁠”

공장장이 일어났다⁠. 면회실 문을 나가기 전에 박하사탕 봉지를 선반에 두고 갔다⁠. 경찰이 봉지를 철망 아래 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나는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박하가 혀를 얼얼하게 했다⁠. 맛을 모르는 혀로 삼 년 동안 굴린 사탕이었다⁠.

*

11월 28일 월요일 아침⁠, 면회실 철망 너머에 주 기자가 앉았다⁠. 회색 바바리코트를 무릎에 접어 올렸고⁠, 볼펜 꽁무니는 더 울퉁불퉁해져 있었다⁠. 주 기자는 앉자마자 신문 한 부를 철망에 대고 펼쳐 보였다⁠.

“⁠사흘째 다 팔렸어요⁠. 부평역 가판대에서 오후 두 시면 없대요⁠. 해안일보 생기고 처음이래요⁠.⁠”

“⁠잘됐네요⁠.⁠”

“⁠잘된 게 하나 더 있어요⁠. 아니⁠, 잘된 건 아니고⁠.⁠” 주 기자가 신문을 접었다⁠. “⁠편집국에 전화가 계속 와요⁠. 주안에 있는 작은 과자 공장⁠, 송림동 국숫집 납품 공장⁠. 거기도 붉은 띠 드럼이 들어왔대요⁠. 상표 긁은 거⁠. 추덕배가 이 공장 저 공장 돌면서 팔았나 봐요⁠.⁠”

나는 철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철사가 차가웠다⁠. 굴포천 창고에서 사라진 서른 개가 떠올랐다⁠. 서른 개가 어느 공장의 어느 통으로 들어가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감시원한테 알렸어요⁠?⁠”

“⁠알렸어요⁠. 감시원이 하루에 공장 두 곳씩 돌아요⁠. 깍두기 먹을 시간도 없대요⁠.⁠” 주 기자가 잠깐 웃었다가 웃음을 거뒀다⁠. “⁠배철순 씨⁠, 미안해요⁠. 이름 쓰게 해서⁠.⁠”

“⁠제가 쓰라고 했어요⁠.⁠”

“⁠알아요⁠. 그래도요⁠.⁠” 주 기자가 바바리코트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철망 아래 틈으로 밀어 넣었다⁠. “⁠기남 씨가 전해 달래요⁠. 공중전화로 우리 편집국에 하루에 세 번씩 전화해요⁠. 동전이 아깝지도 않은지⁠.⁠”

쪽지를 펼쳤다⁠. 연필 글씨였다⁠. 「⁠형 아랫칸 비워 둠⁠. 고깃국은 외상⁠. I am waiting⁠. 순희 씨가 철자 봐 줬음⁠.⁠」

*

11월 28일 월요일 낮⁠, 형사가 다시 나를 조사실로 불렀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클립보드 집게 자국이 윗부분에 두 줄 남아 있었다⁠. 첫날 밤 배합실 벽에 꽂혀 있던 새 배합표 원본이었다⁠. 육수 가루 칸의 줄⁠, 새 글씨⁠, 그리고 맨 아래 공장장 변도순의 붉은 도장⁠.

「⁠육수 가루 — 붉은 띠 드럼으로 전량 바꿈⁠. 옛 가루는 금요일 반품⁠.⁠」

“⁠하기남이라는 사람이 오늘 아침에 가져왔소⁠. 공장장 조카라던데⁠.⁠” 형사가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연탄 창고 가던 날 밤에 배합실에 들러 클립보드에서 뜯어 왔다더군⁠. 봉인 붙기 전에⁠. 삼촌 도장이 찍힌 거라 버릴 수가 없었다고⁠.⁠”

나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공장장의 도장은 첫날 밤처럼 붉었다⁠.

“⁠그리고 남순희라는 아가씨도 왔소⁠. 포장반 여공⁠.⁠” 형사가 수첩을 펼쳤다⁠. “⁠반반이라는 배합을 공장장이 시킨 걸 안다고 했소⁠. 창고에서 드럼 바닥 글자를 처음 읽은 사람이 자기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더군⁠. 신문사는 안 갔는데 경찰서는 왔다고⁠. 경찰서는 일당이 안 깎인다고⁠.⁠”

형사가 수첩을 덮었다⁠.

“⁠회사 고소는 약하오⁠. 시킨 사람이 있고⁠, 시킨 종이가 있소⁠. 추덕배는 수배했소⁠. 당신은 오늘 나가시오⁠. 도장은 증거라 못 돌려주오⁠.⁠”

*

11월 29일 새벽⁠, 소매치기 청년이 나보다 먼저 불려 나갔다⁠. 검찰로 넘어간다고 했다⁠. 청년은 쇠창살 문 앞에서 돌아보며 긴 손가락을 흔들었다⁠.

“⁠형씨⁠, 아까 그 라면 이름이 뭐라고요⁠?⁠”

“⁠한솥라면⁠.⁠”

“⁠나오면 그거 한 상자 살게요⁠. 내 돈으로⁠. 진짜로⁠.⁠” 청년이 씩 웃었다⁠. “⁠남의 지갑으로 사면 맛이 없을 것 같아서⁠.⁠”

경찰이 청년의 등을 밀었다⁠. 청년의 운동화 뒤축이 꺾여 있어서 걸을 때마다 철벅철벅 소리가 났다⁠. 담요 속 사내가 일어나 앉아 청년이 나간 쇠창살 문을 오래 보았다⁠. 사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나도 하나 사 줄게⁠. 맛있게 만들면⁠.⁠”

*

11월 29일 아침⁠, 경찰서 정문을 나서자 찬 바람이 작업복 깃을 파고들었다⁠. 단추 하나가 빠진 자리로 바람이 들어왔다⁠. 정문 앞 플라타너스는 잎을 다 떨궜고⁠, 가지 아래 공장장이 서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기남도 순희도 보이지 않았다⁠.

공장장이 내 작업복의 빈 단추 구멍을 보았다⁠.

“⁠기남이가 그 종이를 가져갔다는 거⁠, 나는 어제 형사한테 들었다⁠.⁠”

“⁠저도 어제 들었습니다⁠.⁠”

“⁠집사람이 기남이 편을 들더라⁠. 종이 한 장 뜯어 간 게 무슨 대수냐고⁠.⁠” 공장장이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집사람이 나한테 대드는 건 삼십 년 만에 처음이다⁠.⁠”

공장장은 박하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넣지 않고 손에 쥐었다⁠.

“⁠이틀 생각해 봤다⁠. 네 거래는 안 받는다⁠.⁠” 공장장이 사탕 포장지를 손가락으로 구겼다⁠. “⁠그래도 알려 줄 건 알려 주마⁠. 사장님이 다음 주 목요일⁠, 12월 8일에 서울 회사랑 도장을 찍는다⁠. 공장 파는 도장이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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