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70자)

죽은 혀

라면 스프의 비밀 · 은해록

월요일 밤부터 공장에 야간 3조가 생겼다⁠. 제면반과 포장반에서 사람을 빼고 새로 뽑은 총각 셋을 붙인 조였다⁠. 야간 3조 배합은 공장장이 직접 정했다⁠. 드럼 가루 셋에 내 가루 하나⁠. 낮 조도 같았다⁠. 반반은 야간 2조만의 약속이었다⁠. 내 가루는 하룻밤에 식당 가마솥 하나를 넘지 못했다⁠. 새우 머리를 볶고 식히고 빻으면 새벽이 왔고⁠, 그만큼으로는 우리 조의 통만 채울 수 있었다⁠.

화요일 저녁⁠, 기숙사 휴게실의 흑백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가 끝나고 연속극이 시작되었다⁠. 기남은 주간 조로 옮긴 뒤 저녁마다 휴게실 구석 탁자에서 편지를 썼다⁠. 순희가 첫 편지를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빨간 볼펜으로 고쳐서⁠. flower 앞에 a⁠, Get 앞에 마침표⁠, beautiful의 철자⁠. 맨 아래에는 빨간 글씨로 「⁠다시 써 오세요⁠. 숙제⁠」라고 적혀 있었다⁠.

“⁠형⁠, 이거 연애여⁠, 야학이여⁠?⁠”

“⁠숙제라잖아⁠.⁠”

“⁠숙제 내 주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겠지⁠?⁠” 기남은 연필에 침을 묻혀 또박또박 썼다⁠. 「⁠Dear Bin-rye⁠. Today I am day⁠. Not night⁠.⁠」 기남이 고개를 들었다⁠. “⁠낮 근무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튀김반 친구가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기남은 편지를 팔로 가리고 끝까지 썼다⁠. 나는 웃다가 그만두었다⁠. 기남이 낮에 간 뒤로 배합실 포대 위가 비어 있었다⁠. 면 부스러기 씹는 소리가 없는 새벽은 길었다⁠.

*

수요일 아침⁠, 짐 싣는 자리에 서울 도매상의 트럭이 들어왔다⁠. 실어 가러 온 트럭이 아니었다⁠. 상자를 싣고 돌아온 트럭이었다⁠. 짐꾼들이 우리 주황 상자 열 개를 도로 내렸다⁠. 맨 위 상자에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목이 따끔하다는 손님 항의 다수⁠. 을 맛 아님⁠. 이런 상자 또 나오면 계약 해지⁠.⁠」

나는 상자 옆구리의 도장을 읽었다⁠. 「⁠11월 7일 야간 3조⁠」⁠. 영업 과장이 종이를 뜯어 들고 본관으로 뛰어갔다⁠. 한 시간 뒤 공장장실 창문으로 공장장이 수화기를 들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서울 사장실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밤 열한 시⁠, 공장장이 배합실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팔짱을 끼지 않았다⁠. 문을 밀고 들어와 종이를 배합 통 뚜껑에 내리쳤다⁠.

“⁠야간 조가 맛을 흐렸다⁠. 사장님이 그러신다⁠. 낮 거는 멀쩡한데 밤 거만 칼칼하다고⁠.⁠”

“⁠야간 3조입니다⁠. 야간 2조가 아니라요⁠.⁠”

“⁠야간은 야간이야⁠.⁠” 공장장이 넥타이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한 번 누르고 또 눌렀다⁠. “⁠너 반반 지키고 있는 거 맞아⁠? 혹시 네 가루를 아낀다고 드럼을 더 넣었냐⁠?⁠”

“⁠공장장님이 맛을 보세요⁠. 야간 2조 통이랑 3조 통이랑⁠.⁠”

“⁠봤다⁠. 다 같다⁠.⁠”

“⁠그럼 왜 3조 상자만 돌아왔습니까⁠?⁠”

공장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공장장의 입술을 보았다⁠. 사장실에서 갑 그릇과 을 그릇 사이를 네 번 오가던 숟가락이 떠올랐다⁠. 국물에 소금을 한 번 더 치던 손⁠, 시험 봉지를 찍어 맛보고 짜다고만 하던 혀⁠. 기남의 말도 떠올랐다⁠. 숙모 김치에 소금을 쳐 먹는 삼촌⁠.

“⁠내일 낮 두 시에 시험실로 와 주세요⁠.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네가 나를 불러⁠?⁠”

“⁠맛을 보셔야 계약을 지킵니다⁠.⁠”

공장장은 한참 나를 보다가 종이를 집어 들고 나갔다⁠. 복도에서 공장장의 발소리가 계단 아래로 멀어졌다⁠.

새벽 두 시⁠, 통을 싣고 1층 포장실로 내려가자 포장반 야간 반장 아주머니가 손전등을 들고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아주머니 뒤에 순희가 서 있었다⁠. 순희는 이번 주 야간 포장으로 옮겨 와 있었다⁠. 사흘 앓은 일당을 채우려고 밤일을 자청했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손전등으로 꼬리표를 비추고⁠, 순희가 통 뚜껑을 조금 열어 코를 댔다⁠. 순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주머니가 통을 받았다⁠.

“⁠이게 뭡니까⁠?⁠”

“⁠포장반 규칙이 하나 늘었어⁠.⁠” 아주머니가 깔때기 쪽으로 통을 밀며 말했다⁠. “⁠순희가 냄새를 맡아⁠. 튀김 솥 냄새가 세게 나는 통은 맨 뒤로 돌려⁠. 서울로 가는 상자에는 안 넣고⁠.⁠”

“⁠그럼 그 통은 어디로 갑니까⁠?⁠”

“⁠어디로 가긴⁠. 공장장님이 정한 데로 가지⁠. 우리는 순서만 바꿔⁠.⁠” 아주머니가 나를 흘겨보았다⁠. “⁠배 씨⁠, 반반이 뭐야⁠? 낮 조 아가씨들이 다 반반 반반 그래⁠. 짜장 반 짬뽕 반이야⁠?⁠”

순희가 대답 대신 나를 보았다⁠. 포장실 창 너머로 야간 3조의 통이 손수레에 실려 오고 있었다⁠. 순희가 3조 통 뚜껑에 코를 대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주머니가 손전등으로 맨 뒤 자리를 가리켰다⁠. 통 하나가 뒤로 밀려났다⁠. 포장반 사람들 손에서 소문이 먼저 돌고 있었다⁠. 짜장 반 짬뽕 반이라는 말과 함께⁠.

*

목요일 아침⁠,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로 가는데 사택 골목 입구에서 공장장 아내가 나를 불렀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양손에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배합실 총각이죠⁠? 기남이랑 같은 방 쓰던⁠. 이거 김장 미리 조금 한 거예요⁠. 기남이 갖다주고⁠, 총각도 먹어요⁠.⁠”

보자기 안에서 김칫국물이 배어 나와 손바닥이 축축했다⁠. 공장장 아내가 꾸러미를 내 손에 쥐여 주고도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 양반 요새 잠을 못 자요⁠. 새벽에 들어와서 냉수만 들이켜고⁠. 공장 일 잘돼요⁠?⁠”

“⁠주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다행이네⁠.⁠” 공장장 아내가 보자기 매듭을 한 번 더 고쳐 묶어 주었다⁠. “⁠총각⁠, 이 김치 맛 좀 보고 기남이한테 어떤지 말해 줘요⁠. 우리 양반은 삼 년째 내 김치에 소금만 쳐요⁠. 맛있다는 소리를 들은 지가 오래돼서⁠.⁠”

나는 기숙사 3호실에서 보자기를 풀었다⁠. 배추 한 가닥을 손으로 찢어 입에 넣었다⁠. 젓갈이 깊게 삭아 단맛이 혀 가운데에 오래 머물렀고⁠, 고춧가루는 맵기 전에 달았다⁠. 소금을 더 칠 데가 없는 김치였다⁠. 나는 김치를 다 씹고 나서 한참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

목요일 낮⁠, 품질 시험실은 1층 맨 끝에 있었다⁠. 창이 북향이라 낮에도 형광등을 켰다⁠. 벽 선반에 저울과 비커와 유리병들이 늘어서 있었고⁠, 가운데 탁자에 석유곤로 두 개가 있었다⁠. 시험실 주임은 점심을 먹으러 나가고 없었다⁠.

나는 냄비 둘에 물을 끓였다⁠. 한 냄비에는 면을 넣고 붉은 띠 드럼 가루만 넣었다⁠. 새우 머리도 멸치도 넣지 않았다⁠. 다른 냄비에는 면을 넣고 소금과 고춧가루만 넣었다⁠. 육수 가루는 한 톨도 넣지 않았다⁠. 소금물에 고춧가루를 푼 국물이었다⁠. 두 그릇에 나눠 담고 그릇마다 흰 행주를 덮었다⁠. 왼쪽 그릇 밑에 「⁠일⁠」⁠, 오른쪽 그릇 밑에 「⁠이⁠」라고 쓴 종이를 깔았다⁠.

두 시 정각에 시험실 문이 열렸다⁠. 공장장은 넥타이를 반듯하게 매고 들어왔다⁠. 행주 덮인 그릇 둘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냐⁠? 사장실 흉내야⁠?⁠”

“⁠야간 2조 통에서 하나⁠, 야간 3조 통에서 하나 끓였습니다⁠. 어느 게 서울에서 돌아올 맛인지 봐 주세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공장장이 행주를 걷었다⁠. 두 그릇 다 붉었다⁠. 고춧가루가 국물 위에 똑같이 떠 있었다⁠. 공장장은 숟가락을 들어 「⁠일⁠」 그릇의 국물을 한 숟갈 떴다⁠. 입술이 오물거렸다⁠. 「⁠이⁠」 그릇에서 한 숟갈⁠. 다시 「⁠일⁠」⁠, 다시 「⁠이⁠」⁠. 공장장은 「⁠이⁠」 그릇을 들어 국물을 한 모금 크게 마셨다⁠. 이마에 땀이 났다⁠.

“⁠둘 다 을 맛이다⁠. 이쪽이 조금 맑고⁠, 저쪽이 조금 진하고⁠. 끓인 시간 차이야⁠. 뭐가 문제냐⁠?⁠”

공장장은 「⁠이⁠」 그릇을 내려놓지 않았다⁠. 한 모금 더 마셨다⁠. 소금물이었다⁠. 나는 탁자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일⁠」은 드럼 가루만 넣었습니다⁠. 새우도 멸치도 없이요⁠.⁠”

“⁠그래서 진했구나⁠.⁠”

“⁠「⁠이⁠」는 소금물입니다⁠. 소금이랑 고춧가루만 넣었어요⁠. 육수는 한 톨도 안 넣었습니다⁠.⁠”

시험실이 조용해졌다⁠. 곤로 심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만 났다⁠. 공장장의 손에서 그릇이 기울어 국물이 탁자에 몇 방울 떨어졌다⁠. 공장장은 그릇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숟가락도 내려놓았다⁠. 넥타이 매듭으로 손가락이 올라갔다가 멈췄다⁠.

공장장은 시험실 주임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넥타이를 풀었다⁠. 공장장이 공장 안에서 넥타이를 푸는 것을 나는 여섯 해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여섯 해 전 봄⁠, 배합실에 처음 들어간 날 배합 반장 변도순은 내 앞에 접시 둘을 놓았다⁠. 하얀 소금이 한 줌씩 담겨 있었다⁠. 하나는 서해 염전 소금이고 하나는 공장에서 끓여 만든 소금이라고 했다⁠. 어느 것이 어느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둘 다 혀에 올려 보고 염전 소금 접시를 가리켰다⁠. 쓴맛 뒤에 단맛이 따라온다고 말했다⁠. 반장은 웃으며 내 위생모를 눌러 썼다⁠. 이 공장에 혀가 하나 더 생겼다고⁠, 배합실 사람들에게 크게 말했다⁠. 소금 접시 둘을 놓아 주던 반장이 지금 소금물 한 그릇을 다 마셨다⁠.

“⁠삼 년 전 겨울에 독감을 앓았다⁠.⁠” 공장장은 풀어 낸 넥타이를 무릎 위에서 접었다⁠. “⁠열흘 누웠다 일어났는데 집사람 김치가 맛이 없더라⁠.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아무 맛이 안 났어⁠. 짠 건 알겠고⁠, 매운 건 아프니까 알겠고⁠. 나머지는 다 물이야⁠.⁠”

“⁠병원에는⁠…⁠.⁠”

“⁠인천 병원 셋을 다녔다⁠. 서울도 한 번 갔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안 돌아오는 사람도 있대⁠. 나는 안 돌아오는 사람이야⁠.⁠” 공장장이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담배를 끊으면 돌아온다길래 끊었다⁠. 박하사탕만 삼 년 먹었어⁠. 안 돌아오더라⁠.⁠”

나는 공장장 앞에 서 있었다⁠. 무릎이 흔들려 탁자를 붙잡았다⁠.

“⁠배합표는요⁠?⁠”

“⁠원가로 짰다⁠. 숫자로⁠. 무엇이 얼마고 무엇을 얼마 넣으면 얼마가 남는지⁠. 맛은 네 도장이 봤다⁠. 주간 반장 도장이 봤고⁠.⁠” 공장장이 고개를 들었다⁠. “⁠네 도장이 내 혀였다⁠, 철순아⁠. 삼 년 동안⁠.⁠”

“⁠드럼은요⁠? 드럼도 맛보셨잖아요⁠. 첫날 밤에⁠.⁠”

“⁠진하다고 했지⁠. 짰으니까⁠.⁠” 공장장이 접은 넥타이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추덕배는 사장님이 붙여 줬다⁠. 서울 골프장에서 만난 사람이래⁠. 드럼 값이 옛 가루의 삼분의 일이었다⁠. 추덕배가 그러더라⁠. 끓이면 괜찮다고⁠. 미군 부대 물건은 원래 좋은 거라고⁠. 나는 맛을 볼 수가 없으니까⁠, 숫자를 봤다⁠. 숫자는 좋았어⁠.⁠”

“⁠그래서 저한테 섞으라고 하셨어요⁠? 제가 첫 숟갈이 싫다고 했는데도요⁠?⁠”

“⁠네 첫 숟갈이 맞을까 봐 무서웠다⁠.⁠” 공장장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맞으면 어음을 못 막아⁠. 틀리면 내 혀가 다시 살아난 거고⁠. 어느 것도 아니길 바랐다⁠.⁠”

곤로 불이 꺼졌다⁠. 석유가 다 탔다⁠. 시험실이 형광등 소리로만 채워졌다⁠. 공장장이 일어나 넥타이를 다시 맸다⁠. 손가락이 매듭을 두 번 놓쳤다⁠. 세 번째에 매듭이 맞았다⁠. 공장장은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러 고쳤다⁠.

“⁠이걸 사장님이 알면 나는 끝이다⁠. 쉰셋에 혀 없는 공장장⁠. 사택에서 나가야 해⁠. 이백 명은 혀 없는 놈이 굴린 공장에서 일한 사람들이 되고⁠. 신문 기자가 알면 더 좋겠지⁠. 기사 제목이 좋잖아⁠.⁠”

공장장이 시험실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지 않고 나를 돌아보았다⁠.

“⁠말할 거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그릇의 국물이 식어 가며 위에 고춧가루 막을 얇게 덮었다⁠. 공장장은 문고리를 놓지 않은 채 한참 서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이 공장 혀는 너 하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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