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20자)

월급날

라면 스프의 비밀 · 은해록

금요일 낮⁠, 감시원과 경찰은 사택 공장장 집 연탄 창고에서 붉은 띠 드럼 열 개를 끌어냈다⁠. 사택 사람들이 대문 밖에 나와 모였다⁠. 드럼이 하나씩 마당을 굴러 나와 트럭 짐칸에 실릴 때마다 연탄 가루가 바람에 날렸다⁠. 공장장 아내는 툇마루에 앉아 행주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공장장은 마당 한가운데에서 감시원이 내미는 종이에 도장을 찍었다⁠. 공장장의 도장이었다⁠.

굴포천 하류 추덕배의 창고는 비어 있었다⁠. 경찰이 자물쇠를 끊고 들어갔을 때 시멘트 바닥에 드럼 자국 서른 개가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고 했다⁠. 구석에는 은박 껌 종이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고⁠, 경찰 하나가 껌 종이를 발로 헤집다가 금시계 줄 고리 하나를 주웠다고 했다⁠. 추덕배의 초록 트럭도⁠, 금시계도⁠, 껌 씹는 소리도 어디에도 없었다⁠. 감시원이 정문 앞에서 나에게 말했다⁠.

“⁠서른 개가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찾고 있습니다⁠.⁠”

“⁠다른 공장으로 갔을 겁니다⁠. 팔기 전에는 버리지 않을 사람이에요⁠.⁠”

감시원은 수첩에 적었다⁠.

토요일에 서울 도매상의 트럭이 왔다⁠. 실어 가는 트럭이 아니었다⁠. 우리 주황 상자 수백 개를 싣고 돌아온 트럭이었다⁠. 내 가루로만 섞은 야간 2조 상자도⁠, 3조 상자도 한데 섞여 있었다⁠. 도매상 대표는 직접 오지 않았다⁠. 운전기사가 계약 해지 통지서 한 장을 경비 아저씨에게 건넸다⁠. 신문을 본 서울 구멍가게들이 태성 상자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월요일에는 은행 사람이 왔다⁠. 굴포천 둑길에 검은 승용차를 세우고⁠, 구두에 흙이 묻을까 봐 발끝으로 걸어 들어왔다⁠. 검은 양복에 검은 가방을 들고 본관에 두 시간을 있다가 갔다⁠. 공장 사람들은 은행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다⁠. 은행 사람이 간 뒤에 본관 사무실 여직원 둘이 울면서 나왔다는 것만 알았다⁠.

*

봉인 종이가 붙은 공장은 조용했다⁠. 1층 제면기도 튀김 솥도 2층 배합실도 멈췄다⁠. 굴포천 둑길 포장마차들만 저녁마다 불을 켰다⁠. 기숙사 사람들은 할 일 없이 휴게실 흑백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가 흩어졌다⁠. 정문 공중전화 앞 줄은 아침부터 밤까지 줄지 않았다⁠.

화요일 밤⁠, 기숙사 3호실에 들어가자 내 이부자리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베개와 이불과 보온병이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방 안에서 사내들이 화투를 치다가 나를 보고 손을 멈췄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튀김반 친구가 화투짝을 내려다보며 한마디만 했다⁠.

“⁠배 씨는 복도가 편하겠지⁠. 신문에 이름도 났는데⁠.⁠”

나는 이부자리를 안고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복도 끝 2호실 문이 열리고 기남이 나왔다⁠. 기남은 내 이부자리를 보고⁠, 3호실 문을 보고⁠, 아무 말 없이 내 이불을 빼앗아 안았다⁠. 2호실로 걸어가 제 침대 아랫칸에 내 이불을 깔았다⁠. 저는 윗칸으로 올라갔다⁠.

“⁠형⁠, 아랫칸 줄게⁠. 고깃국 약속은 그대로고⁠.⁠”

“⁠너 윗칸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며⁠.⁠”

“⁠그러니께 형이 밑에서 받아⁠.⁠”

2호실 사내들이 고개를 돌렸다⁠. 기남은 윗칸에서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면 부스러기를 씹었다⁠. 공장이 멈춘 뒤로 제면기가 끊어 내는 부스러기가 없어서⁠, 기남의 주머니에는 지난주 부스러기가 몇 조각 남아 있을 뿐이었다⁠. 기남은 한 조각을 반으로 쪼개 반을 나에게 내밀었다⁠.

*

11월 25일 새벽 여섯 시⁠, 공장 식당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공장이 멈춘 지 여드레째였다⁠. 기숙사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 문을 기웃거렸다⁠.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 고기 삶는 냄새가 났다⁠. 봉덕 아주머니가 가마솥 앞에서 국자로 기름을 걷고 있었다⁠.

“⁠아줌니⁠, 오늘 밥 나와유⁠?⁠”

“⁠월급날이잖어⁠. 월급날엔 고깃국이야⁠.⁠”

“⁠회사가 고기를 샀어유⁠?⁠”

“⁠회사가 어딨어⁠. 내 돈으로 샀다⁠. 그러니까 고기는 적어⁠.⁠” 봉덕 아주머니가 국자로 솥 가장자리를 땡땡 두드렸다⁠. “⁠한 사람 두 점씩이다⁠. 세 점 건지는 놈은 다음 달에 한 점이야⁠.⁠”

사람들이 줄을 지었다⁠. 줄은 금세 식당 밖까지 이어졌다⁠. 나는 줄 맨 끝에 붙었다⁠. 앞사람들이 나를 돌아보고 한 발씩 떨어졌다⁠. 내 앞뒤로 빈자리가 생겼다⁠. 봉덕 아주머니는 내 차례가 오자 국자를 솥 바닥까지 넣어 고기를 건졌다⁠. 내 그릇에 두 점이 떨어졌다⁠.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큰 두 점이었다⁠.

빈 탁자에 앉았다⁠. 아무도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 기남이 식판을 들고 와서 앉았고⁠, 봉덕 아주머니가 국자를 허리에 찬 채 와서 기남 옆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밥을 먹지 않고 우리를 보았다⁠. 나는 고기 두 점을 기남의 그릇으로 옮겼다⁠. 기남은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받았다⁠. 받아서 한 점을 다시 내 그릇에 넣었다⁠.

“⁠반반이여⁠.⁠”

봉덕 아주머니가 기남의 뒤통수를 국자로 톡 쳤다⁠. 아프지 않게 쳤다⁠.

“⁠그 말은 이제 하지 마라⁠. 반반 소리만 들어도 내가 체한다⁠.⁠”

나는 국물을 한 숟갈 떴다⁠. 소뼈를 오래 고은 국물이었다⁠. 단맛이 혀 가운데에 오래 머물렀다⁠. 목 뒤가 조용했다⁠. 첫 숟갈이었다⁠.

*

11월 25일 아침⁠, 공장 마당에 이백 명이 모였다⁠. 월급날이었다⁠. 확성기에서 국민체조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줄을 맞추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마당에 흩어져 담배를 피우거나 팔짱을 끼고 본관 현관을 보았다⁠. 경리과 창구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열 시에 검은 승용차가 들어왔다⁠. 사장 곽만수가 내렸다⁠. 금테 안경을 썼고⁠, 오늘은 골프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았다⁠. 단상에 오르기 전에 공장장을 불러 무엇을 길게 말했고⁠, 공장장은 고개를 숙이고 들었다⁠. 사장이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톡톡 두드렸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이번 달 월급은 못 드립니다⁠.⁠”

마당 뒤에서 누가 욕을 했다⁠. 앞줄 포장반 여공 하나가 주저앉았다⁠. 사장은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은행이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서울 도매상이 계약을 끊었습니다⁠. 왜 끊었는지는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신문에 이름이 난 사람이 우리 공장 안에 있습니다⁠.⁠” 사장이 안경을 고쳐 썼다⁠. “⁠월급은 그 사람한테 받아 가세요⁠. 저도 받을 게 많습니다⁠.⁠”

이백 명의 눈이 마당을 훑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로 눈이 하나씩 모였다⁠. 왕 반장이 나를 보았다⁠. 경자가 아기를 업은 채 나를 보았다⁠. 포장반 야간 반장 아주머니가 손전등도 없이 나를 보았다⁠.

사장이 마이크를 공장장에게 넘겼다⁠. 공장장이 단상에 올랐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공장장은 작업복 주머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고무줄로 묶은 꼬리표들이었다⁠. 고무줄을 풀어 맨 위의 꼬리표를 들어 보였다⁠.

“⁠10월 11일 야간 2조 1통⁠. 새 원료를 처음 섞은 통입니다⁠. 도장은 배합 반원 배철순⁠.⁠” 공장장이 다음 꼬리표를 들었다⁠. “⁠10월 31일 야간 2조 1통⁠. 배철순⁠. 11월 1일⁠, 2일⁠, 3일⁠…⁠.⁠”

공장장은 꼬리표를 하나씩 넘겼다⁠. 넘길 때마다 「⁠배⁠」 한 글자가 아침 햇빛 아래 붉게 보였다⁠. 첫날 밤의 비뚤어진 도장 하나⁠, 이어서 반듯한 도장들⁠.

“⁠원료를 잘못 고른 책임은 공장장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책임은 지겠습니다⁠.⁠” 공장장이 꼬리표 뭉치를 단상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 원료를 섞고 도장을 찍은 손은 배합실에 있었습니다⁠. 그 손이 신문사에 원료를 들고 갔습니다⁠. 우리 이백 명의 월급을 들고 갔습니다⁠.⁠”

마당이 술렁였다⁠. 내 앞의 사람들이 한 발씩 물러났다⁠. 내 주위에 둥근 빈자리가 생겼다⁠. 기남이 사람들을 헤치고 내 옆으로 왔다⁠. 순희는 포장반 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목도리를 코까지 끌어올린 채 단상만 보고 있었다⁠.

나는 단상을 보았다⁠. 공장장의 넥타이 매듭을 보았다⁠. 공장장은 매듭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손을 대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탁자 모서리를 쥐고 있었다⁠.

말할 수 있었다⁠. 공장장의 혀가 삼 년 전에 죽었다고⁠. 배합표를 숫자로 짰다고⁠. 소금물 한 그릇을 다 마시고 을 맛이라고 했다고⁠. 말 한마디면 이백 명의 눈이 단상으로 돌아갔다⁠. 공장장은 쉰셋에 혀 없는 공장장이 되고⁠, 사택에서 나가고⁠, 공장장 아내는 소금 치지 않은 김치를 혼자 먹는다⁠.

“⁠제가 섞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마당에 퍼졌다⁠. 확성기도 없이 퍼졌다⁠.

“⁠첫 통은 제가 섞었습니다⁠. 냄새를 알고 섞었습니다⁠. 맛을 보고 섞었습니다⁠. 반반도 제가 섞었습니다⁠. 감시원한테 드럼을 본 적이 없다고 한 것도 저입니다⁠.⁠” 나는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다음에 신문사에 간 것도 저입니다⁠.⁠”

누가 주황 봉지 하나를 던졌다⁠. 봉지가 내 가슴에 맞고 발밑에 떨어졌다⁠. 검은 솥 그림이 위를 보았다⁠. 또 하나가 날아왔다⁠. 왕 반장이 던지려던 젊은 친구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해⁠. 그만⁠.⁠”

왕 반장이 나를 보았다⁠. 노모가 장염으로 누웠다 일어난 집의 아들이었다⁠. 왕 반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만 붙잡고 있었다⁠.

단상 위에서 공장장의 손이 탁자 모서리에서 미끄러졌다⁠. 넥타이 매듭으로 손이 올라가다가⁠, 매듭에 닿기 전에 멈췄다⁠. 공장장은 손을 내렸다⁠.

*

사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회사 원료를 몰래 바꾸고 회사 물건을 밖으로 빼돌린 일로⁠, 오늘 아침 배철순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정문 밖에 순찰차 한 대가 와서 멈췄다⁠. 사복 형사 둘이 내렸다⁠. 사람들이 길을 텄다⁠. 형사 하나가 내 앞에 와서 신분증을 보였다⁠.

“⁠배철순 씨⁠? 같이 좀 갑시다⁠.⁠”

“⁠네⁠.⁠”

“⁠주머니에 있는 거 다 꺼내요⁠.⁠”

나는 작업복 주머니를 뒤집었다⁠. 동전 몇 개⁠, 해안일보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 뒷장⁠, 추덕배가 돌려준 하늘색 단추⁠, 그리고 나무 도장⁠. 형사가 도장을 집어 들었다⁠. 인주가 묻은 바닥을 들여다보고 비닐봉지에 넣었다⁠.

“⁠이게 그 꼬리표 도장이오⁠?⁠”

“⁠네⁠.⁠”

형사가 비닐봉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여섯 해 동안 통마다 찍던 도장이 형사의 점퍼 주머니로 들어갔다⁠. 형사가 내 팔을 잡았다⁠. 수갑은 채우지 않았다⁠. 형사의 손바닥에서 담배 냄새가 났고⁠, 손톱 밑이 기름때로 까맸다⁠. 팔을 잡힌 내 손의 손톱 밑은 붉었다⁠.

기남이 형사 앞을 막았다⁠.

“⁠형이 뭘 빼돌렸는디유⁠? 형은 숟가락밖에 안 들었어유⁠.⁠”

“⁠비키세요⁠.⁠”

“⁠삼촌⁠!⁠” 기남이 단상을 향해 소리쳤다⁠. “⁠삼촌⁠, 말 좀 혀 봐⁠! 삼촌이 섞으라고 했잖어⁠!⁠”

공장장은 단상에 서 있었다⁠. 꼬리표 뭉치가 탁자 위에 흩어져 있었다⁠. 공장장은 팔짱을 끼지 않았다⁠. 넥타이를 만지지도 않았다⁠. 두 손을 옆구리에 붙이고 나를 보았다⁠. 첫날 밤 배합실 유리창 너머에서 나를 보던 얼굴이었다⁠. 유리창이 없을 뿐이었다⁠.

형사가 나를 순찰차 뒷자리에 앉혔다⁠. 문이 닫히기 전에 포장반 줄에서 순희가 걸어 나왔다⁠. 순희는 순찰차 앞까지 와서 발밑의 주황 봉지 하나를 주웠다⁠. 봉지를 뒤집어 상자 도장 대신 봉지에 찍힌 날짜를 읽었다⁠.

“⁠이건 낮 거네요⁠.⁠”

순희가 봉지를 내 무릎에 놓았다⁠. 순찰차 문이 닫혔다⁠. 차가 정문을 빠져나가는 동안 뒷유리 너머로 기남이 둑길을 따라 뛰어왔다⁠. 기남은 정문 공중전화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냈다⁠. 공중전화 줄은 여전히 길었다⁠. 기남은 줄 맨 앞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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