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61자)

새우 머리

라면 스프의 비밀 · 은해록

금요일 낮 열두 시⁠, 정문 공중전화 부스 안은 담배 냄새로 절어 있었다⁠. 나는 동전을 넣고 수첩 뒷장의 번호를 돌렸다⁠. 신호가 한 번 가자마자 주 기자가 받았다⁠.

“⁠결과 나왔어요⁠. 연구소 아는 사람이 밤을 새워 줬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주 기자가 천천히 읽었다⁠.

“⁠가루에 곰팡이가 피었다가 말라붙은 흔적이 있대요⁠. 기름은 상해서 쉰내가 날 정도고요⁠. 사람이 먹으면 배앓이를 하고⁠, 오래 먹으면 간이 상할 수 있대요⁠. 연구소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이런 걸 국물로 끓여 먹었으면 냄새로 먼저 알았을 텐데⁠, 하고⁠.⁠”

“⁠매운 걸 더 넣었어요⁠. 냄새를 덮으려고⁠.⁠”

주 기자가 잠깐 말을 멈췄다⁠.

“⁠부장이 내일 들어오래요⁠. 같이 와요⁠. 당신 얘기를 직접 듣고 싶대요⁠.⁠”

*

토요일 낮⁠, 해안일보 편집국은 평일보다 조용했다⁠. 기자들 절반이 비었고 타자기 두 대만 소리를 냈다⁠. 창가 큰 책상의 대머리 부장이 나를 보자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사환이 보리차 세 잔을 내려놓으며 내 손을 힐끗 보았다⁠. 오늘은 보온병이 없었다⁠.

“⁠배합실 배철순 씨⁠. 주 기자한테 다 들었소⁠.⁠” 부장이 연구소 종이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건 기사가 되오⁠. 미군 부대 폐기물이 라면 국물로⁠. 제목은 내가 벌써 지어 놨소⁠.⁠”

“⁠기사는 언제 나갑니까⁠?⁠”

“⁠순서가 있소⁠. 월요일 아침에 태성에 전화해서 회사 말을 듣고⁠, 시청 위생과에도 묻고⁠. 그다음이오⁠.⁠” 부장이 의자에 깊이 기대 앉았다⁠. “⁠하나 말해 두리다⁠. 어제 태성 사장이 나한테 또 전화를 했소⁠. 내년부터 우리 신문에 광고를 넣겠다더군⁠. 한 면 통으로⁠.⁠”

주 기자가 부장을 보았다⁠. 부장은 주 기자를 보지 않았다⁠.

“⁠나는 광고를 안 받겠다고 했소⁠. 받으면 기사를 못 쓰니까⁠. 근데 이 기사를 쓰면 다른 식품 회사들도 광고를 안 줄 거요⁠. 우리 신문은 기자 열한 명이오⁠.⁠” 부장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그러니까 배 씨⁠, 당신 이름이 있어야 하오⁠. 공장 사람 이름 하나 없이 미군 부대 폐기물이라고 썼다가 틀리면⁠, 우리는 그날로 문 닫소⁠.⁠”

나는 보리차 잔을 들었다⁠. 잔이 미지근했다⁠.

“⁠일주일만 기다려 주세요⁠. 11월 19일까지 서울로 나가는 오천 상자가 있습니다⁠. 그 상자는 제가 깨끗한 가루로만 채우겠습니다⁠. 드럼은 그다음에⁠…⁠.⁠”

“⁠그동안 시장에 나가는 상자는요⁠?⁠” 주 기자가 끼어들었다⁠. 볼펜 꽁무니를 깨물지 않았다⁠. “⁠낮 조 상자⁠, 3조 상자⁠. 부평시장 할머니네 들어가는 상자는요⁠?⁠”

“⁠포장반이 냄새로 뒤로 돌립니다⁠.⁠”

“⁠뒤로 돌리면 안 팔려요⁠? 뒤에 있다가 결국 나가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부장이 담배를 새로 꺼내 물었다⁠.

“⁠월요일이오⁠. 월요일 아침에 태성에 전화 넣소⁠. 그게 순서요⁠. 이름은 그때까지 생각해 보시오⁠.⁠”

편집국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데 주 기자가 따라 나왔다⁠. 계단 중간에서 주 기자가 걸음을 멈췄다⁠.

“⁠일주일은 못 줘요⁠. 미안해요⁠.⁠”

“⁠압니다⁠.⁠”

“⁠근데 하나만 물어볼게요⁠. 왜 서울 상자만이에요⁠? 시장 할머니네 상자는요⁠?⁠”

“⁠제 가루가 모자라요⁠.⁠”

주 기자는 한참 나를 보다가 볼펜 꽁무니를 다시 깨물었다⁠.

*

토요일 저녁⁠, 나는 공장장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열었다⁠. 공장장은 책상 앞에 앉아 모눈종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박하사탕 봉지가 책상 위에 펼쳐져 있었다⁠.

“⁠서울로 가는 상자는 제 가루로만 하겠습니다⁠. 드럼은 한 숟갈도 안 넣습니다⁠.⁠”

공장장이 고개를 들었다⁠. 시험실 일이 있고 이틀이 지났다⁠. 공장장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매듭이 반듯했다⁠.

“⁠네 가루는 하룻밤에 가마솥 하나다⁠. 서울 상자를 다 채우려면 가마솥 셋은 돌아야 해⁠.⁠”

“⁠셋 돌리겠습니다⁠.⁠”

“⁠누가⁠?⁠”

“⁠제가요⁠.⁠”

공장장은 박하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사탕이 이에 부딪혀 딸그락거렸다⁠.

“⁠드럼을 안 쓰면 원가가 안 맞는다⁠. 원가가 안 맞으면 어음을 못 막는다⁠.⁠”

“⁠서울 상자에서 갑 맛이 나오면 계약이 끝납니다⁠. 어음은 그때도 못 막습니다⁠.⁠”

공장장이 사탕을 오래 굴렸다⁠. 혀가 맛을 모르는 사탕을 삼 년째 굴리고 있었다⁠. 공장장은 모눈종이를 접었다⁠.

“⁠서울 상자만이다⁠. 시장 거랑 3조 거는 내가 정한 대로 간다⁠.⁠”

*

야간 근무가 쉬는 토요일 밤 아홉 시⁠, 공장 식당 가마솥 셋에 불이 들어갔다⁠. 봉덕 아주머니는 국자를 허리춤에 차고 아궁이 앞을 오갔다⁠.

“⁠내 솥 셋을 한꺼번에 빌려 가는 놈은 처음이다⁠. 셋이면 장가는 영영 틀렸어⁠.⁠”

“⁠아줌니⁠, 저는 솥 안 빌렸어유⁠.⁠” 기남이 낮 근무를 마치고 와서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저는 장가가도 되쥬⁠?⁠”

“⁠너는 솥을 안 빌려도 못 가⁠.⁠”

설거지하던 아주머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순희가 가마솥 사이를 돌며 코를 댔다⁠. 첫 솥에서 비린내가 고소한 냄새로 바뀌는 자리가 오자 순희가 손을 들었고⁠, 나는 불을 뺐다⁠. 순희의 코는 내 혀보다 빨랐다⁠. 두 번째 솥에서도⁠, 세 번째 솥에서도 순희가 손을 들었다⁠.

기남은 볶은 새우 머리를 한 줌씩 집어 먹었다⁠. 바삭바삭 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형⁠, 이거 진짜 술안주여⁠. 공장 망하면 우리 포장마차 하자⁠.⁠”

“⁠공장 안 망해⁠.⁠”

“⁠그럼 공장 하면서 포장마차도 하자⁠.⁠”

순희가 기남의 손등을 탁 쳤다⁠. 기남은 맞은 손등을 내려다보고 히죽 웃었다⁠. 순희가 기남의 영어 편지에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친 이야기를 나는 가마솥 앞에서 처음 들었다⁠. Today I am day 에 동그라미 하나⁠. 동그라미 옆에 「⁠틀렸는데 웃겼음⁠」이라고 썼다고 했다⁠.

새벽 네 시⁠, 볶은 새우 머리 세 자루와 빻은 멸치 부스러기 두 자루가 식당 바닥에 줄지어 놓였다⁠. 나는 한 줌을 혀에 올렸다⁠. 단맛이 혀 가운데로 퍼졌다⁠. 목 뒤는 조용했다⁠. 서울 상자 오천 개 가운데 남은 상자를 채우려면 이런 밤이 엿새는 더 있어야 했다⁠.

*

일요일 낮⁠, 나는 버스를 타고 부평시장 동문 할머니네에 갔다⁠. 할머니는 평상에서 마늘을 까고 있었다⁠. 가게 앞에 서울 회사 빨간 상자 탑이 지난번보다 낮아져 있었고⁠, 우리 주황 상자가 빨간 상자 탑 옆에 따로 쌓여 있었다⁠. 상자마다 옆구리가 바깥을 보게 돌려져 있었다⁠.

“⁠할머니⁠, 상자를 왜 이렇게 돌려 놓으셨어요⁠?⁠”

“⁠손님들이 옆구리부터 보니까⁠.⁠” 할머니가 마늘 껍질을 후 불었다⁠. “⁠「⁠야간 2조⁠」면 가져가고⁠, 낮이나 3조면 내려놔⁠. 이제 할머니들만 보는 게 아니야⁠. 공단 아가씨들도⁠, 학생들도 다 봐⁠. 글자 보고 라면 고르는 동네는 우리 동네밖에 없을 거야⁠.⁠”

나는 낮 조 상자 하나를 보았다⁠. 「⁠11월 10일 주간 1조⁠」⁠. 상자가 뜯겨 봉지가 반쯤 비어 있었다⁠.

“⁠이건 누가 사 가요⁠?⁠”

“⁠글자 못 읽는 노인네들⁠. 싸게 달라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더 많아⁠.⁠” 할머니가 마늘을 바구니에 던졌다⁠. “⁠총각⁠, 신문사에 내가 엽서 보낸 거 알지⁠? 답장이 왔어⁠. 알아보는 중이라고⁠. 알아보는 동안 우리는 뭘 먹어⁠?⁠”

나는 낮 조 상자에 남은 봉지를 전부 샀다⁠. 열한 봉지였다⁠. 할머니는 이번에는 신문지에 싸 주지 않았다⁠.

“⁠총각이 다 사 가면 내일 또 들어와⁠. 총각 월급으로 공장 라면 다 살 거야⁠?⁠”

*

저녁에 기숙사 앞 공중전화로 강화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장사를 접고 저녁상을 치우는 참이었다⁠. 나는 새우 머리를 볶아 국물을 낸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웃지 않았다⁠.

“⁠볶은 걸 바로 빻았냐⁠?⁠”

“⁠네⁠.⁠”

“⁠그러니까 끝맛이 비리지⁠. 볶은 새우는 하룻밤 재워야 해⁠. 김을 빼고 재워야 단내가 속에서 올라와⁠. 고기는 바로 써도 새우는 기다려야 돼⁠.⁠” 어머니가 그릇 포개는 소리를 냈다⁠. “⁠철순아⁠, 공장에 무슨 일 있냐⁠? 목소리가 국수 불은 소리다⁠.⁠”

“⁠일 없어요⁠.⁠”

“⁠일 없는 놈이 일요일마다 전화를 하냐⁠.⁠”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공장 그만두면 와⁠. 국숫집은 안 망해⁠. 멸치 똥 딸 사람은 늘 모자라⁠.⁠”

나는 수화기를 오래 들고 있었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신호음이 길게 울렸다⁠. 나는 어젯밤 볶아 둔 새우 머리 세 자루를 빻지 않고 식당 구석에 펼쳐 재워 두었다⁠.

*

일요일 밤 열한 시⁠, 근무에 들어가기 전에 굴포천 둑길 포장마차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추덕배였다⁠. 카바이드 불빛 아래에서 꼼장어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혼자 앉아 있었다⁠.

“⁠배합실 배철순⁠. 한잔하고 들어가⁠.⁠”

“⁠근무가 있습니다⁠.⁠”

“⁠근무 전에 한 잔은 혀를 깨우는 거야⁠.⁠” 추덕배가 빈 잔을 내 앞에 밀었다⁠. 소주를 따랐다⁠. “⁠앉아⁠. 서 있으면 사람들이 우리가 싸우는 줄 알아⁠.⁠”

나는 앉았다⁠. 잔은 들지 않았다⁠. 추덕배가 꼼장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 껌 씹듯 씹었다⁠. 그러고는 잠바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 소주잔 옆에 내려놓았다⁠. 작업복 단추였다⁠. 하늘색 플라스틱 단추⁠. 실밥이 붙어 있었다⁠.

“⁠이거 네 거지⁠? 창고 쪽창 밑에 떨어져 있더라⁠. 우리 애들이 쇠솔질하다 주웠어⁠.⁠”

나는 단추를 보았다⁠. 집어 들지 않았다⁠.

“⁠한 드럼이 덜 긁혔다고 애들이 그러더라⁠. 바닥에 가루가 두 주먹 남았었는데 비어 있대⁠. 쥐가 먹었나⁠?⁠” 추덕배가 웃었다⁠. “⁠굴포천 쥐는 고양이만 하다며⁠. 네 동생이 그랬다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기자한테 준 거⁠, 도로 가져와⁠. 연구소 종이도⁠.⁠” 추덕배가 금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럼 이 단추는 내가 굴포천에 던져 줄게⁠. 아무도 쪽창 같은 거 몰라⁠.⁠”

“⁠못 가져옵니다⁠.⁠”

“⁠못 가져오면⁠.⁠” 추덕배가 소주잔을 비우고 탁자에 엎어 놓았다⁠. “⁠혀 좋은 놈 혀 뽑는 건 쉬워⁠. 하하⁠. 농담이야⁠, 농담⁠.⁠” 웃음이 금방 그쳤다⁠. “⁠근데 이건 농담 아니야⁠. 사장님이 공장 팔 생각하는 거 알지⁠? 팔기 전에 드럼 다 써야 내 돈이 들어와⁠. 남은 드럼이 내 굴포천 창고에 서른 개야⁠. 서른 개 값 받기 전에 공장 문 닫히면⁠, 나는 누구한테 받으러 가야 할까⁠.⁠”

추덕배가 일어나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포장마차 주인에게 건넸다⁠. 단추는 탁자 위에 그대로 두었다⁠.

“⁠그거 가져가⁠. 단추는 달아야지⁠. 작업복이 벌어지면 감기 들어⁠.⁠”

나는 단추를 집었다⁠. 손바닥 안에서 단추가 차가웠다⁠. 포장마차 비닐 휘장 너머로 추덕배의 초록 트럭이 둑길을 따라 굴포천 하류로 멀어졌다⁠. 미등 두 개가 오래 보였다⁠.

*

월요일 아침 여덟 시⁠, 근무를 마치고 정문으로 나가는데 경비실 앞에 짙은 녹색 지프 한 대가 멈췄다⁠. 앞 유리 아래에 「⁠시청 위생과⁠」라고 쓴 종이가 꽂혀 있었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회색 점퍼를 입은 마흔 줄의 사내가 내렸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썼고⁠, 손에 서류 가방을 들었다⁠. 경비 아저씨가 경비실에서 뛰어나왔다⁠.

“⁠어디서 오셨어요⁠?⁠”

“⁠시청 위생과 감시원 김정호입니다⁠. 신고가 들어와서 왔습니다⁠.⁠”

뒷좌석에서는 사진기를 목에 건 젊은 직원 하나가 내려 하품을 했다⁠. 감시원이 돌아보지도 않고 직원의 옆구리를 서류 가방 모서리로 찔렀고⁠, 직원은 하품을 반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감시원이 정문 안을 둘러보았다⁠. 본관⁠, 1층 면 라인⁠, 2층 유리창⁠. 감시원의 눈이 내 위생모에서 멈췄다⁠.

“⁠배합실이 어딥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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