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48자)

야간 2조

라면 스프의 비밀 · 은해록

월요일 저녁 일곱 시⁠, 여자 기숙사 뒷마당에는 빨랫줄이 세 줄 늘어져 있었다⁠. 하늘색 작업복과 흰 위생모가 줄마다 빼곡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소매들이 한꺼번에 손을 흔들었다⁠. 여자 기숙사는 사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사감 선생은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다녔고⁠, 담 밑에서 얼쩡거리는 사내를 보면 호루라기부터 불었다⁠. 지난여름에는 튀김반 총각 하나가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 담에서 떨어져 발목을 접질렸다⁠.

기남이 손바닥에 콩알만 한 자갈을 올려 놓고 나를 보았다⁠.

“⁠2층 맨 끝 방이여⁠. 형이 던져⁠. 나는 팔이 짧어⁠.⁠”

“⁠네가 창문 위치를 어떻게 알아⁠?⁠”

“⁠그냥 알어⁠.⁠”

나는 자갈을 던졌다⁠. 유리창이 톡 소리를 냈다⁠. 한참 뒤 창문이 반쯤 열리고 남순희가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고 누런 털 카디건을 어깨에 걸쳤다⁠. 얼굴이 하얗게 떠서 눈만 컸다⁠. 순희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기남을 알아보고 미간을 좁혔다⁠.

“⁠기남 씨⁠, 또 편지예요⁠?⁠”

“⁠아녀⁠, 오늘은 형이 볼일이 있댜⁠.⁠”

순희의 눈이 나에게 왔다⁠. 배합실 배철순⁠, 하고 내가 먼저 말했다⁠. 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장반 사람들은 꼬리표의 도장으로 배합실 사람들을 알았다⁠.

“⁠배 씨 도장⁠. 맨날 반듯하던 도장이 지난주 화요일에만 비뚤어졌더라고요⁠. 포장반 언니들이 배 씨 아저씨 연애하나 봐 그랬는데⁠.⁠”

“⁠몸은 괜찮아요⁠?⁠”

“⁠사흘 누웠어요⁠. 오늘 겨우 죽 먹었어요⁠.⁠” 순희가 창틀에 팔을 괴었다⁠. “⁠동문 할머니네서 다섯 봉지 샀어요⁠. 방 언니들이랑 둘씩 나눠 먹었는데 언니들은 조금 탈 나고 말았고⁠, 나는 국물까지 다 마셨어요⁠. 국물이 아까워서요⁠. 그러니까 내가 제일 많이 아팠지⁠.⁠”

“⁠국물에서 냄새 났어요⁠?⁠”

“⁠났어요⁠. 1층 튀김 솥 기름 안 갈았을 때 냄새⁠. 근데 국물이 진해서 그냥 마셨어요⁠. 목포에서는 국물 남기면 할머니한테 혼이 나거든요⁠.⁠” 순희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그거 뭐예요⁠? 배합실에서 뭐 바꿨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순희가 먹은 다섯 봉지는 비뚤어진 내 도장이 찍힌 통에서 나왔다⁠. 순희가 창틀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나 하루도 못 쉬어요⁠. 목포에 동생이 고등학교 다녀요⁠. 등록금이 석 달에 한 번 나와요⁠. 사흘 쉬었으니까 사흘 치 일당이 날아갔어요⁠.⁠”

나는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들었다⁠. 순희가 창문을 조금 더 닫았다⁠.

“⁠그 돈 뭐예요⁠? 아저씨가 왜 줘요⁠?⁠”

“⁠그냥⁠…⁠.⁠”

“⁠그냥 받는 돈은 목포 우리 엄마가 받지 말랬어요⁠.⁠”

기남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접은 편지지를 꺼내 창문을 향해 던졌다⁠. 편지는 창문 아래 빨랫줄에 얹혀 위생모 사이에서 흔들렸다⁠. 겉봉에 연필로 크게 쓴 영어가 보였다⁠. 「⁠To Bin-rye⁠. You are flower⁠. Get well soon⁠.⁠」

순희가 빨랫줄의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flower 앞에는 a 붙여야 돼요⁠.⁠”

곧바로 기숙사 현관에서 호루라기가 날카롭게 울렸다⁠. 나와 기남은 담 밑을 따라 뛰었다⁠. 뒤에서 사감 선생이 고함을 질렀고⁠, 기남은 뛰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a 붙여서 다시 쓸게유⁠!⁠”

*

화요일 낮 두 시⁠, 나는 공장장실 문을 두드렸다⁠. 공장장실은 본관 2층 복도 끝이었다⁠. 책상 위에는 서류철이 높았고⁠, 창가에는 석유곤로 하나와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있었다⁠. 공장장은 밤늦게까지 남는 날이면 곤로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나는 신문지 꾸러미를 풀어 주황 봉지 하나를 책상에 올렸다⁠. 부평시장 할머니네서 사 온 봉지였다⁠.

“⁠10월 11일 야간 2조입니다⁠. 첫 통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드셔 보세요⁠.⁠”

공장장은 봉지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넥타이를 풀지 않은 채 곤로에 불을 붙이고 냄비에 물을 부었다⁠. 물이 끓자 면을 넣고 은박 봉지를 이로 뜯어 털어 넣었다⁠. 냄새가 공장장실에 퍼졌다⁠. 국물이 끓을수록 쩐내는 매운 냄새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공장장은 냄비째 책상으로 가져와 젓가락을 들었다⁠.

공장장은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면을 남기지 않았고 국물을 냄비째 들어 바닥까지 마셨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먹는 도중에 책상 서랍에서 소금 통을 꺼내 국물에 소금을 한 번 더 쳤다⁠. 나는 소금 치는 손을 보았다⁠. 국물은 이미 짰다⁠.

“⁠봐라⁠. 멀쩡하다⁠.⁠”

“⁠순희가 사흘 누웠습니다⁠. 포장반 여공입니다⁠.⁠”

“⁠공단 아가씨들 반은 위장병이야⁠. 하루 열 시간 서서 일하고 밥을 십 분 만에 먹는데 위가 남아나겠냐⁠.⁠” 공장장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일당 깎인 거면 내가 채워 주마⁠. 포장반 반장한테 말해 둘게⁠.⁠”

공장장은 책상 위 서류철 하나를 펼쳐 내 앞으로 밀었다⁠. 모눈종이에 빨간 볼펜으로 그은 줄이 있었다⁠. 줄은 봄부터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 공장 라면이 한 달에 나가는 양이다⁠. 서울 회사들이 덤을 얹기 시작한 뒤로 이렇게 됐다⁠. 다음 달에도 이 줄이 내려가면 사장님은 공장을 판다⁠. 누가 사는지 알아⁠? 서울 회사가 산다⁠. 사서 문 닫는다⁠. 그 회사들은 공장이 필요 없어⁠. 우리가 물건 넣는 가게 자리만 필요해⁠.⁠”

“⁠그럼 직원들은요⁠?⁠”

“⁠일부는 데려가겠지⁠. 몇 명이나 데려가겠냐⁠. 사택은 헐고 창고 짓는다⁠.⁠” 공장장이 빈 냄비를 곤로 위에 도로 올렸다⁠. “⁠철순아⁠, 네 첫 숟갈이 맞을 수도 있어⁠. 근데 이 공장 첫 숟갈은 내 거야⁠. 이백 명 숟가락이 다 여기 꽂혀 있다⁠.⁠”

나는 서류철을 덮었다⁠. 공장장실을 나오며 문고리를 잡았을 때⁠, 공장장이 등 뒤에서 한마디를 보탰다⁠.

“⁠그 봉지⁠, 남은 거 있으면 버려라⁠. 시장에서 사 오지 말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요일 밤에도 나는 숨긴 포대를 열었다⁠.

*

목요일부터 짐 싣는 자리가 시끄러워졌다⁠. 영업 과장이 전화통을 붙들고 소리를 질렀고⁠, 운전기사들은 담배를 물고 고개를 갸웃했다⁠. 첫 번째 트럭 운전기사가 장갑을 벗으며 나를 불러 세웠다⁠.

“⁠배 씨⁠, 이상한 일이 있어⁠. 시장 할머니들이 상자 옆구리부터 봐⁠. 「⁠야간 2조⁠」 아니면 안 받겠대⁠.⁠”

“⁠왜요⁠?⁠”

“⁠옛날 맛이 돌아왔대⁠. 손님들이 그거 달라고 한대⁠. 주안에서도⁠, 공단 앞에서도 그래⁠. 주간 거는 목이 칼칼하다고 덜 나가고⁠.⁠” 운전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라면 만드는데 낮에 만든 거랑 밤에 만든 거랑 맛이 다르냐⁠?⁠”

나는 대답 대신 장갑을 다시 꼈다⁠. 영업 과장이 전화통을 내려놓고 공장장실로 뛰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저녁에 공장장이 배합실에 내려왔다⁠. 유리창 너머에서 팔짱을 끼고 한참 서 있다가 문을 열었다⁠. 얼굴이 밝았다⁠.

“⁠주간 반장이 고춧가루를 덜 넣는다더라⁠. 내일부터는 낮에도 너처럼 한 되씩 더 넣으라고 했다⁠. 새 배합이 맞았어⁠.⁠”

나는 주걱을 젓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통 안에서 옛 가루가 고춧가루와 섞여 돌았다⁠. 공장장은 통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공장장은 만족한 얼굴로 클립보드의 배합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나갔다⁠.

이튿날 아침 여섯 시⁠, 근무를 넘기는데 주간 반장이 위생모를 쓰다 말고 나를 벽으로 몰았다⁠. 주간 반장은 마흔 줄의 깡마른 사내였고⁠, 공장에서 나보다 일곱 해를 더 저었다⁠. 눈 밑이 거뭇했다⁠.

“⁠야⁠, 배철순⁠. 너 밤에 뭘 어떻게 하길래 내가 공장장한테 욕을 먹냐⁠?⁠”

“⁠배합표대로 합니다⁠.⁠”

“⁠나도 배합표대로 해⁠. 고춧가루 한 되도 너보다 먼저 넣었어⁠. 근데 낮 거는 칼칼하고 밤 거는 맛있대⁠. 이게 말이 되냐⁠?⁠” 주간 반장이 내 위생모 챙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너 혹시 밤에 주걱을 반대로 젓냐⁠? 왼손잡이냐⁠?⁠”

“⁠오른손입니다⁠.⁠”

“⁠그럼 뭐야⁠. 밤공기가 맛있냐⁠?⁠”

주간 반장은 투덜거리며 숟가락을 뜨거운 물에 헹궜다⁠. 드럼 가루를 떠서 혀에 올리고 얼굴을 찡그렸다가⁠, 아무 말 없이 삼켰다⁠. 물을 한 컵 마시고 목을 두어 번 쓸었다⁠. 나는 주간 반장의 손이 목에서 떨어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주간 반장도 첫 숟갈을 알았다⁠. 알고도 저었다⁠. 내가 첫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

10월 25일 아침⁠, 공장 마당에 이백 명이 줄을 맞췄다⁠. 월급날 조회였다⁠. 확성기에서 국민체조 음악이 끝나자 본관 현관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사장 곽만수가 금테 안경을 쓰고 내렸다⁠. 서울에 사는 사장은 석 달에 한 번 공장에 왔다⁠.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두 번 톡톡 두드렸다⁠.

“⁠여러분⁠, 지난주에 제가 골프를 쳤는데요⁠.⁠”

뒷줄에서 누가 작게 웃었다⁠.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같이 친 서울 도매상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요새 부평에서 태성 라면이 다시 돈다고⁠. 변 공장장님이 새 배합을 짜신 덕입니다⁠. 박수 한번 쳐 주세요⁠.⁠”

박수가 마당을 채웠다⁠. 공장장은 단상 아래에서 넥타이 매듭을 고쳐 맸다⁠. 사장이 손을 들어 박수를 멈췄다⁠.

“⁠이번 달 월급 봉투에는 오천 원씩 더 넣었습니다⁠. 다음 주부터 야간 조를 하나 더 둡니다⁠. 원료는 추 사장님 드럼으로 트럭째 들입니다⁠. 우리 공장⁠, 살아납니다⁠.⁠”

이백 명이 함성을 질렀다⁠. 포장반 여공들이 서로 팔을 붙잡고 깡충거렸다⁠. 기남은 내 옆에서 주먹을 쥐고 흔들다가 내 얼굴을 보고 주먹을 내렸다⁠. 맨 앞줄 포장반 줄에 순희가 서 있었다⁠. 순희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점심 식당에는 고깃국이 나왔다⁠. 봉덕 아주머니는 기남에게 고기를 한 국자 듬뿍 떠 주었다⁠. 기남은 제 그릇과 내 그릇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내 그릇의 고기를 전부 기남의 그릇으로 옮겼다⁠. 기남은 고기를 한 점 집었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형⁠, 나 오늘은 고기가 잘 안 넘어가네⁠.⁠”

“⁠약속이잖아⁠.⁠”

“⁠약속이니께 먹긴 먹어⁠.⁠” 기남이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근데 형⁠, 박수는 삼촌이 받고 고기는 내가 먹고⁠, 형은 뭐 받어⁠?⁠”

월급 봉투는 얇았다⁠. 여섯 포대 값이 빠지고 오천 원이 들어와도 지난달보다 얇았다⁠. 나는 정문 공중전화 앞의 줄 끝에 붙었다⁠. 월급날이라 줄이 열 사람을 넘었다⁠. 내 차례가 오자 강화 읍내 국숫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받았다⁠. 국숫집 평상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같이 들어왔다⁠.

“⁠철순이냐⁠? 월급 탔냐⁠? 국수는 먹고 다니냐⁠?⁠”

“⁠라면 먹어요⁠.⁠”

“⁠라면 말고 국수⁠. 라면은 국물이 너무 진해⁠. 진한 국물은 뭘 감추는 국물이야⁠.⁠”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동전을 더 넣지 않았다⁠.

*

월급날 밤 창고 구석에서 숨긴 포대를 세었다⁠. 손바닥으로 눌러 보니 두 포대가 남아 있었다⁠. 다음 주부터 야간 조가 하나 더 생기면 두 포대는 이틀이면 바닥이었다⁠. 붉은 띠 드럼은 창고 문 앞에 스무 개로 늘어 있었다⁠.

기남이 포대 더미에 걸터앉아 면 부스러기를 씹다가 말했다⁠.

“⁠형⁠, 사람들이 찾는 건 형 맛이여⁠. 할머니들이 상자 옆구리 보고 찾는 거⁠, 그거 형 도장이잖어⁠.⁠”

“⁠알아⁠.⁠”

“⁠근데 형 가루는 두 포대여⁠.⁠”

배합실 문이 열렸다⁠. 공장장이었다⁠. 공장장은 유리창 너머에 오래 서 있지 않고 곧장 들어왔다⁠. 손에 하얀 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 열 시⁠, 사장실에서 서울 도매상이 맛을 본다⁠. 우리 거 하나⁠, 서울 회사 거 하나 놓고⁠. 붙으면 오천 상자다⁠.⁠” 공장장이 봉투를 내 가슴 주머니에 꽂았다⁠. “⁠사장님이 혀 좋은 놈을 데려오래⁠. 네가 들어와⁠.⁠”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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