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기 전날 회장님 몸에 빙의
희망퇴직 서명 마감 날 아침, 과장은 회장실 소파에서 깼다
남이랑@namirang작품 소개
2027년 10월, 서울 을지로의 중견 제과 회사 동학제과. 희망퇴직 통보서를 받은 마흔두 살 영업과장 육현배는 노가리 골목 송별 회식에서 여든한 살 창업주 구동학 회장과 마주 앉는다. 회장이 손수 들고 온 과자는 1998년에 단종된 「보리별」. 과자 한 봉지로 십구 년을 퉁치려 하느냐고 대들던 현배와 회장이 같은 순간 보리별을 깨문다. 같은 순간 골목 변압기가 터지고, 두 사람이 한꺼번에 쓰러진다. 이튿날 새벽, 현배는 회장실 소파에서 눈을 뜬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틀니가 물컵에 들어 있고, 창유리에 비친 얼굴은 백발 노인이다. 같은 날 아침 회장은 면목동 빌라에서 현배의 아내 고순정에게 등짝을 맞으며 일어난다. 아홉 시 이사회를 앞두고 회장의 아들 구성준 부회장이 매각 의향서를 들고 들어온다. 안성 공장을 외국 사모펀드에 넘기고 직원 삼백을 내보내는 서류다. 성준의 숫자는 틀린 데가 없다. 공장을 팔지 않으면 삼 년 안에 회사 전체가 문을 닫는다. 현배는 회장의 몸으로 도장을 쥐고 버티고, 회장은 과장의 몸으로 동네 슈퍼 영업을 뛰며 제가 만든 과자가 맨 아래 칸에서 먼지를 쓰고 있는 것을 본다. 순정은 남편이 아침마다 신문을 펴고 자기를 ‘새댁’이라 부르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면서도, 남편이 들고 온 옛날 과자 맛에 마음이 흔들린다. 다툼은 회장실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매각을 정하는 주주총회로 번진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몸이 돌아가는 날이 하필 주총 전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9세 이상 · 완결
작가의 창작 노트
- 장르
- 판타지 · 3040
회사에서 잘리는 날은 누구에게나 있는 날이 아닙니다. 다만 잘리는 사람도 자르는 사람도 저녁이면 집에 가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같습니다. 자르라는 숫자를 만든 사람과 잘리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몸을 바꿔 입으면 어떻게 될까, 거기서 시작했습니다. 웃음은 여든한 살 회장의 몸으로 부장 회의에 들어가 제 상사들에게 현장 영업을 시키는 과장, 마흔두 살 몸으로 밥을 세 그릇 먹고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오르며 감격하는 여든한 살, 남편이 갑자기 한자 섞어 말한다고 신경과 예약을 잡는 아내, 이름을 바꿔 가며 들썩이는 영업팀 단톡방에 맡겼습니다. 아픈 자리는 회장이 처음 해고 통지를 받는 날, 그것도 남의 몸으로 받는 날에 두었습니다. 부회장 구성준의 숫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로 두었습니다. 공장을 지키자는 사람만 옳은 이야기가 아니라, 삼 년 뒤를 보는 사람도 옳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동학제과, 하버라인 캐피털, 보리별, 모든 인물과 사건은 지어낸 것입니다.
이 작품은 원작의 인물·설정·문장을 사용하지 않은 독립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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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목록
총 10화 · 평균 5,392자
댓글 4
느린독자2026.11.06· 9화
성준 부회장이 숫자로 끝까지 버티다가 보리별을 다시 만들게 한 사람이 자기라고 털어놓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어요. 해 지면서 몸이 돌아가고 현배가 보안요원한테 끌려 나가는 건 너무하잖아요?
남이랑작가2026.11.06
성준의 숫자는 처음부터 틀린 적이 없어요. 다만 그 숫자를 누가 들고 있었는지가 달랐죠. 현배가 건물 밖에서 무엇을 보는지는 마지막 화에 있어요.
귤까는중2026.11.06· 2화
여든한 살 회장님이 과장 몸으로 깨자마자 아내한테 등짝 맞고 출근하는 데서 빵 터졌어요. 그런데 희망퇴직을 거두니까 위로금이 사라졌다고 통장을 내미는 순정 씨, 이거 누구 편 들어야 하죠?
남이랑작가2026.11.06
순정 씨는 언제나 통장 편이에요. 보리별 첫 솥 이야기는 회장님이 순정 씨 앞에서 처음으로 말이 막히는 대목이라 아껴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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