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92자)

위임장

잘리기 전날 회장님 몸에 빙의 · 남이랑

육현배는 10월 27일 수요일 점심⁠, 안성 공장 식당 맨 안쪽 탁자에 우리사주 조합 대의원 열네 명과 둘러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제육볶음 쟁반이 일곱 개 놓였다⁠. 현배가 공장 식당에 미리 전화해 시킨 것이었다⁠.

“⁠제육은 제가⁠, 아니 내가 사는 거야⁠. 드시면서 들어⁠.⁠”

“⁠회장님⁠, 제육 먹으면 표 달라는 거죠⁠?⁠” 조합장이 젓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포장 라인에서 팔을 벌려 주던 쉰 줄의 남자 반장이었다⁠. “⁠표는 표고 제육은 제육이에요⁠.⁠”

“⁠그럼 제육부터⁠.⁠”

대의원들이 웃었다⁠. 웃고 나서 다들 제육을 먹었다⁠. 현배는 회장의 이로 고기를 씹느라 대답할 틈이 없었다⁠.

“⁠우리사주가 6%예요⁠. 조합원은 사백열두 명이고요⁠.⁠” 조합장이 물로 입을 헹궜다⁠. “⁠어제 조합원들한테 물어봤어요⁠. 반은 남고 싶대요⁠. 나머지 반은 나가고 싶대요⁠. 위로금 받고요⁠. 그래서 반은 찬성⁠, 반은 반대로 나눠서 던질 거예요⁠. 그게 공평하잖아요⁠.⁠”

“⁠반반이면 반대가 안 되잖아⁠.⁠”

“⁠회장님 표가 있잖아요⁠. 삼분의 일 넘는 거⁠.⁠” 조합장이 제육 접시를 현배 앞으로 밀었다⁠. “⁠회장님이 반대하시면 안 팔리는 거고⁠, 찬성하시면 팔리는 거예요⁠. 결국 회장님이 정하시는 거라고요⁠. 저희한테 오실 일이 아닌데 오셨으니까 제육은 잘 먹을게요⁠.⁠”

현배는 고기 한 점을 오래 씹었다⁠. 회장의 혀가 기름 맛을 반겼다⁠. 결국 회장이 정한다⁠. 회장 몸에 든 현배가 정한다⁠. 그런데 회장 몸의 진짜 주인은 다음 주 목요일 해 질 녘에 돌아온다⁠.

*

육현배는 같은 날 저녁 여덟 시⁠, 을지로 골목 호프집 이층에서 소액주주 모임 회원 열한 명 앞에 앉아 있었다⁠. 인터넷 카페 「⁠동학제과 주주 모임⁠」 공지에 창업주가 직접 온다고 떴고⁠, 열한 명은 공지를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

“⁠회장님⁠, 진짜 오셨네⁠.⁠”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저 동학 주식만 십오 년 들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주총에서 반대표를⁠…⁠…⁠.⁠”

“⁠반대요⁠?⁠” 남자의 손이 멈췄다⁠. “⁠매각 기사 나고 주가가 이틀 만에 이십 퍼센트 올랐어요⁠. 반대하시면 다시 떨어지잖아요⁠.⁠”

“⁠맞아요⁠.⁠” 맞은편 대학생이 휴대전화 화면을 들이밀었다⁠. 빨간 그래프가 위로 솟아 있었다⁠. “⁠저 이거 학자금 대출로 샀어요⁠. 회장님⁠, 팔아 주세요⁠.⁠”

“⁠팔아 주세요⁠!⁠” 몇이 맥주잔을 들었다⁠.

현배는 맥주를 마시지 못했다⁠. 회장의 몸은 맥주 반 잔에 얼굴이 붉어졌다⁠. 등산복 남자가 현배의 붉은 얼굴을 보고 말했다⁠.

“⁠회장님⁠, 맥주 한 잔에 이러시는데 공장을 어떻게 지키세요⁠?⁠”

맨 끝자리에 앉은 백발 할머니 하나만 손을 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가방에서 노란 봉지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보리별이었다⁠. 지난주 만세슈퍼에서 산 봉지였다⁠.

“⁠나는 이거 다시 나와서 주식 샀어⁠.⁠” 할머니가 말했다⁠. “⁠백 주⁠. 그러니까 나는 반대야⁠. 팔면 이거 또 없어질 거잖아⁠.⁠”

현배는 할머니의 백 주를 메모장에 적었다⁠. 백 주는 등산복 남자 한 사람 주식의 십분의 일이었다⁠.

*

구동학은 10월 28일 목요일 아침 여덟 시 반⁠, 6층 영업부 자리에 앉자마자 길영춘 본부장에게 불려 갔다⁠. 본부장 책상 위에 주문서 묶음이 놓여 있었다⁠. 맨 위 장에 「⁠보리별 · 대박슈퍼 · 3상자 추가⁠」가 적혀 있었다⁠.

“⁠육 과장⁠, 내가 뭐 하라고 했어⁠?⁠”

“⁠철수 통보요⁠.⁠”

“⁠그런데 이게 뭐야⁠? 철수하라는 데 가서 주문을 받아 와⁠? 스물일곱 곳⁠?⁠” 본부장이 묶음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공장에 보리별 남은 게 스무 상자였다며⁠. 벌써 동났어⁠. 시험 생산실 반장이 나한테 전화했어⁠. 영업부에서 또 달라는데 이걸 더 쪄도 되냐고⁠.⁠”

“⁠더 쪄 달라고 하시오⁠.⁠”

“⁠하시오⁠?⁠” 본부장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육 과장 요즘 말투가 왜 그래⁠? 회장님 흉내 내⁠?⁠”

동학은 입을 다물었다⁠. 원래 이렇게 말하던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잘 들어⁠. 회장님이 너 뒤 봐주는 거 위에서 다 알아⁠. 대표님도 아셔⁠.⁠” 본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대표님이 너 요즘 뭐 하고 다니는지 나한테 물어보셨어⁠. 나는 있는 대로 말씀드렸고⁠. 철수 통보 대신 주문 받아 오고⁠, 회장님이랑 공장 주차장에서 한 시간 동안 차에 앉아 있었고⁠.⁠”

“⁠그게 무슨 죄요⁠?⁠”

“⁠죄는 아니지⁠. 근데 회사에서는 죄보다 무서운 게 있어⁠. 눈 밖에 나는 거⁠.⁠”

자리로 돌아오자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영업2팀 단톡방이었다⁠.

「⁠막내⁠: 과장님 대박슈퍼 사장님이 보리별 사진 올렸는데 좋아요 삼천 개예요⁠」

「⁠막내⁠: 댓글에 이거 어디서 사요가 제일 많아요⁠」

「⁠막내님이 채팅방 이름을 영업2팀(⁠보리별 팀⁠)으로 바꿨습니다⁠」

동학은 단톡방 이름을 한참 보았다⁠. 반만 남았다던 팀이 이제 과자 이름을 달고 있었다⁠. 메모장을 열어 열한 줄 아래로 이어 적은 스물일곱 줄을 엄지로 쓸어 올렸다⁠. 맨 위 줄은 여전히 「⁠만세슈퍼 · 보리별 · 1⁠」이었다⁠.

*

육현배는 10월 28일 목요일 오후 세 시⁠, 면목동 시장 반찬가게 「⁠엄마손반찬⁠」 유리문을 밀었다⁠. 세 시면 졸음이 쏟아지는 몸이라 오는 버스에서 이미 한 번 졸았다⁠. 계산대 뒤에서 순정이 깍두기를 통에 담다가 고개를 들었다⁠. 반듯하게 빗어 넘긴 백발의 노인을 보더니 앞치마에 손을 닦고 손님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뭐 찾으세요⁠, 어르신⁠?⁠”

“⁠깍두기 한 통⁠.⁠” 현배는 계산대 앞으로 갔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순정아⁠.⁠”

순정이 국자를 든 채 멈췄다⁠. “⁠…⁠…저 아세요⁠?⁠”

“⁠김치냉장고 맨 아래 칸 깍두기 통 밑에 비닐로 싼 봉투 있지⁠? 오만 원짜리 여섯 장⁠. 내가 모르는 줄 알지⁠.⁠”

순정의 얼굴이 하얘졌다⁠.

“⁠2016년 겨울에 시장 떡볶이집에서 반지를 순대 사이에 끼워서 줬다가⁠, 당신이 순대째 씹어서 이가 나갈 뻔했잖아⁠. 그 집 사장님이 지금도 우리만 보면 순대 조심하라고 하고⁠.⁠” 현배가 숨을 몰아쉬었다⁠. 회장의 몸은 긴 문장 하나에 숨이 찼다⁠. “⁠나 현배야⁠. 지금 당신 집에 있는 사람이 구동학 회장님이고⁠.⁠”

순정이 국자를 내려놓았다⁠. 반찬가게 사장이 안쪽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들어갔다⁠. 순정은 계산대를 돌아 나와 백발 노인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철썩 쳤다⁠. 치고 나서 얼어붙었다⁠.

“⁠어머⁠, 어떡해⁠. 회장님 몸이잖아⁠.⁠”

“⁠괜찮아⁠. 그 몸 무릎만 안 치면 돼⁠.⁠”

“⁠그럼 우리 집에 있는 사람이 회장님이야⁠?⁠” 순정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 회장님한테 등짝을 몇 번 쳤는지 알아⁠? 아침마다 쳤어⁠. 어제는 빨래 개라고 시켰어⁠. 회장님이 다솔이 양말을 짝짝이로 개 놨어⁠.⁠”

“⁠그분 양말 처음 개 보셨을 거야⁠.⁠”

순정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한참 깍두기 통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붉어졌는데 이번에는 울 것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잠깐⁠. 그럼 위로금 차 버린 게 회장님이 아니라 당신이네⁠?⁠”

현배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전 안내 받았을 때도 보름 숨겼지⁠. 이번엔 몸까지 숨기고⁠.⁠” 순정이 일어났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주총에서 반대하면 당신 자리 남아⁠? 삼 년⁠? 부회장이 삼 년이라며⁠. 삼 년 뒤에 다솔이 열두 살이야⁠. 그때 잘리면 위로금도 없어⁠.⁠”

“⁠공장 사람 이백삼십구 명이 있어⁠.⁠”

“⁠그 사람들한테도 다 애가 있겠지⁠.⁠” 순정이 깍두기 통 뚜껑을 탁 닫았다⁠. “⁠당신은 그 사람들 다 구하고 우리는 누가 구해⁠?⁠”

깍두기 통이 계산대 위에서 현배 쪽으로 밀려왔다⁠. 「⁠8⁠,000원⁠」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계산은 하고 가세요⁠, 회장님⁠.⁠”

*

구동학은 10월 28일 밤 아홉 시⁠, 빌라 식탁 앞에서 젓가락을 들다가 멈췄다⁠. 순정이 밥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내려놓고 있었다⁠. 고개까지 조금 숙였다⁠.

“⁠드시죠⁠.⁠”

동학은 순정을 보았다⁠. 순정은 동학을 보지 않았다⁠. 국을 놓을 때도 두 손이었다⁠. 어제까지 밥그릇을 식탁에 탁 소리 나게 놓던 손이었다⁠.

“⁠들었구먼⁠.⁠”

“⁠네⁠. 회장님⁠.⁠” 순정이 맞은편에 앉았다⁠. 등을 꼿꼿이 폈다⁠. “⁠하나만 여쭤볼게요⁠. 공장 파실 거예요⁠?⁠”

동학은 국을 한 숟가락 떴다⁠. 국이 짰다⁠. 과장의 혀는 짠맛을 좋아했다⁠.

“⁠주총 날 정한다⁠.⁠”

“⁠제 남편은 반대한대요⁠. 남의 집 애들까지 다 구한대요⁠.⁠” 순정이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회장님은 누구 편이세요⁠? 회장님 편이 저희 편이에요⁠?⁠”

동학은 대답하지 않고 밥을 먹었다⁠. 세 그릇째를 퍼 오려고 일어나는데 순정이 먼저 밥솥을 열었다⁠. 주걱을 든 순정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동학은 떨리는 손을 보면서도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보름도 더 전에 써 준 종이 한 장이 동학의 입을 막고 있었다⁠.

*

육현배는 10월 29일 금요일 오전 열 시⁠, 대회의실 긴 탁자 한가운데 성준과 마주 앉아 있었다⁠. 회의실에는 둘뿐이었다⁠. 성준이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우리사주 조합장님이 전화하셨습니다⁠. 회장님이 제육을 사셨다고요⁠. 주주 모임에서는 맥주 반 잔에 얼굴이 빨개지셨다고 하고요⁠.⁠” 성준이 서류철을 열었다⁠. “⁠회장님⁠, 반대표 모으러 다니실 필요 없습니다⁠.⁠”

“⁠내 지분이야⁠.⁠”

“⁠네⁠. 그래서 이걸 드리는 겁니다⁠.⁠”

성준이 종이 한 장을 탁자 위로 밀었다⁠. 맨 위에 굵은 글씨가 박혀 있었다⁠. 「⁠의결권 위임장⁠」⁠. 아래 칸마다 글씨가 채워져 있었다⁠. 「⁠위임인 구동학 · 수임인 구성준 · 2027년 11월 5일 임시 주주총회 제1호 안건 안성 공장 영업양도 승인의 건 · 찬성⁠」⁠. 맨 아래에 붉은 인주 자국과 날짜가 있었다⁠. 「⁠2027년 10월 11일⁠」⁠.

현배는 날짜를 오래 보았다⁠. 10월 11일 월요일⁠. 노가리 골목 회식 사흘 전이었다⁠.

“⁠회장님이 직접 써 주셨습니다⁠. 이 방에서요⁠. 자필 서명도 회장님 글씨고⁠, 도장도 회장님 도장입니다⁠.⁠”

“⁠내 글씨 아니야⁠.⁠”

현배는 탁자 위 메모지를 끌어당겨 볼펜으로 이름을 썼다⁠. 제 글씨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볼펜이 종이에 닿자 손이 저 혼자 움직였다⁠. 획이 길게 누웠다가 끝에서 위로 휙 올라갔다⁠. 메모지 위에 「⁠구동학⁠」 석 자가 위임장의 서명과 똑같은 모양으로 남았다⁠.

성준이 메모지와 위임장을 나란히 놓았다⁠. “⁠똑같은데요⁠.⁠”

현배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손은 몸의 것이었다⁠. 오십 년 동안 같은 이름을 쓴 손이었다⁠.

성준이 위임장 옆에 한 장을 더 놓았다⁠. 「⁠희망퇴직 대상자 명단 · 최종⁠」⁠. 맨 끝에 같은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명단도 회장님이 한 줄씩 보시고 찍으셨어요⁠. 영업2팀 육현배 과장 이름 옆에는 회장님이 연필로 동그라미도 치셨고요⁠. 면목동 담당⁠, 이라고 적으시면서⁠.⁠”

현배는 명단을 보지 못했다⁠. 눈앞이 흐렸다⁠. 돋보기를 안 가져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억 안 나세요⁠?⁠” 성준이 물었다⁠.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흔들렸다⁠. “⁠회장님이 먼저 팔자고 하셨어요⁠. 제가 아니라요⁠. 이제 그만 내려놓겠다고⁠, 남은 사람들은 네가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회장님은 그날 그 말을 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다니세요⁠.⁠”

현배는 위임장에 찍힌 도장 자국을 보았다⁠. 첫날 아침 현배의 손이 저절로 쥐었던 서랍 속 상아색 도장이 남긴 자국이었다⁠. 회장은 현배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고⁠, 사흘 뒤 노가리 골목에 와서 현배 앞에 과자 봉지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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