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15자)

주주총회

잘리기 전날 회장님 몸에 빙의 · 남이랑

구동학은 11월 5일 금요일 아침 아홉 시 반⁠, 동학빌딩 2층 강당 맨 앞줄에 앉아 무릎을 문지르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고⁠, 일어날 때 무릎이 먼저 소리를 냈고⁠, 틀니는 물컵 안에서 동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 주 만의 제 몸이었다⁠. 아침으로 죽 반 그릇을 먹었는데 벌써 배가 불렀다⁠. 계단 두 칸씩은 다시 남의 일이 되었다⁠.

강당에 주주 이백여 명이 앉아 있었다⁠. 셋째 줄에 우리사주 조합장이 위생복 대신 점퍼 차림으로 앉았고⁠, 뒷줄에는 등산복 남자와 학자금 대출로 주식을 샀다는 대학생이 나란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맨 끝 통로 옆자리의 백발 할머니가 무릎 위에 노란 봉지 하나를 올려 두고 있었다⁠. 하버라인 대표는 강당 옆문 가까이 서서 탄산수 병 뚜껑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단상 옆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졌다⁠. 「⁠동학제과 임시 주주총회 온라인 중계⁠」⁠. 허기성이 동학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회장님⁠, 그건⁠…⁠… 중계는 주주 아니어도 다 볼 수 있습니다⁠. 만세슈퍼 사장님이 아침에 링크 달라고 전화하셨어요⁠.⁠”

“⁠줬냐⁠.⁠”

“⁠드렸습니다⁠. 사장님이 단톡방에 뿌리셨대요⁠.⁠”

열 시 정각⁠, 의장석에 성준이 앉았다⁠. 은테 안경을 쓰고 회색 넥타이를 목울대까지 조였다⁠. 어제 회장실에서 벗었던 안경이었다⁠.

“⁠제1호 안건⁠, 안성 공장 영업양도 승인의 건을 상정합니다⁠.⁠”

성준은 숫자를 처음부터 다시 띄웠다⁠. 빨간 막대 다섯 개⁠, 「⁠2030년 현금 0원⁠」⁠, 일본 공장⁠, 로봇 팔 두 대⁠. 대회의실 설명회와 같은 화면이었고 같은 목소리였다⁠. 하나도 줄이지 않았고 하나도 부풀리지 않았다⁠. 마지막 장에 성준은 한 줄을 덧붙였다⁠. 「⁠대표이사 개인 연대보증 · 은행 대출 설비 한도⁠」⁠.

강당이 웅성거렸다⁠. 성준은 마지막 줄에 설명을 보태지 않았다⁠.

“⁠이상입니다⁠. 주주님들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동학은 손을 들었다⁠. 허기성이 마이크를 가져왔다⁠. 동학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동학이 다 일어날 때까지 강당의 이백 명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기다렸다⁠.

“⁠구동학입니다⁠. 주주로 말하겠소⁠.⁠”

동학은 마이크를 입에서 조금 뗐다⁠. 틀니가 마이크에 부딪히는 소리가 날까 봐서였다⁠.

“⁠부회장⁠, 아니 대표 숫자가 맞습니다⁠. 내가 오십육 년 동안 본 숫자도 같아요⁠. 그래서 나도 지난달에 팔자고 했어요⁠. 위임장도 써 줬고⁠, 희망퇴직 명단에도 도장을 찍었습니다⁠. 명단 한 사람 이름 옆에는 동그라미도 쳤고⁠.⁠”

강당 셋째 줄에서 조합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 얼굴을 보러 회식 자리에 갔다가 과자 한 봉지로 십구 년을 퉁치느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맞는 소리였어요⁠.⁠” 동학이 숨을 골랐다⁠. 여든한 살 몸은 긴 문장 하나에 숨이 찼다⁠. “⁠공장은 안 팔겠습니다⁠. 반대표를 던지겠습니다⁠. 대신 이 건물을 팝니다⁠.⁠”

강당이 술렁였다⁠. 하버라인 대표의 손가락이 탄산수 뚜껑 위에서 멈췄다⁠.

“⁠이 동학빌딩은 내 개인 건물입니다⁠. 1971년에 연탄 화덕 하나 놓고 강정 튀기던 골목 자리예요⁠. 회사는 오십 년 동안 나한테 월세를 냈습니다⁠.⁠” 앞줄의 누군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동학도 웃었다⁠. “⁠월세 받아서 한 일이 없어요⁠. 이 건물 판 돈을 회사에 넣겠습니다⁠. 대표 보증 선 은행 빚부터 갚고⁠, 나머지로 공장 기계를 바꾸라고⁠.⁠”

동학은 마이크를 내리고 의장석을 보았다⁠.

성준이 일어났다⁠. 안경을 벗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 돈이면 공장이 삼 년 버팁니다⁠.⁠” 성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정확히 삼 년이요⁠. 기계 절반을 바꾸고⁠, 동네 슈퍼 백스무 곳 주문을 받고⁠, 일본 공장이 들어오는 걸 막아 보는 삼 년입니다⁠. 그런데 주주님들 앞에서 하나는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삼 년 뒤에도 숫자가 안 되면⁠, 그때는 제가 팝니다⁠. 그때는 회장님 표 없이요⁠.⁠”

“⁠그때는 네가 정해라⁠.⁠” 동학이 앉은 채 말했다⁠. 마이크가 없었는데 강당 끝까지 들렸다⁠.

표결이 시작됐다⁠. 우리사주 조합장이 표결지 두 장을 반으로 나눠 냈다⁠. 등산복 남자는 찬성에⁠, 대학생도 찬성에 표를 넣었다⁠. 맨 끝 할머니는 노란 봉지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반대에 표를 넣었다⁠. 동학은 제 손으로 표결지를 접었다⁠. 오십 년 동안 도장을 쥔 손이 표결지를 쥐었다⁠. 손이 떨렸지만 글씨는 반듯했다⁠.

“⁠제1호 안건⁠, 출석 주식 삼분의 이에 이르지 못해 부결되었습니다⁠.⁠”

하버라인 대표가 탄산수를 한 모금 마시고 옆문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동학의 귀에 일본어 인사말이 짧게 들렸다⁠.

주주들이 하나둘 강당을 빠져나가는 동안 성준이 의장석에서 내려와 맨 앞줄로 왔다⁠. 아버지 옆자리에 앉지 않고 한 칸 띄어 앉았다⁠. 동학은 비어 있는 한 칸을 보다가 엉덩이를 끌어 아들 옆으로 당겨 앉았다⁠. 무릎이 소리를 냈고⁠, 성준이 무릎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회장실 소파는 네가 가져가라⁠.⁠” 동학이 말했다⁠. “⁠낮잠 자기 좋다⁠.⁠”

“⁠건물 파시면 회장실이 없어지는데요⁠.⁠”

“⁠그럼 안성 공장 휴게실에 갖다 놔⁠. 세 시 넘으면 내가 거기서 잔다⁠.⁠” 동학이 틀니를 혀로 밀었다⁠. “⁠자판기 커피는 설탕 두 개다⁠.⁠”

성준이 아버지를 보았다⁠. 한참 보다가⁠,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무언가를 적었다⁠. 동학은 화면을 넘겨다보지 않았다⁠. 아들이 무엇을 적는지는 아들 일이었다⁠.

*

육현배는 같은 시각 만세슈퍼 앞 평상에서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양옆에 순정과 방옥란 사장이 붙어 앉았고⁠, 평상 뒤로 골목 슈퍼 사장 열댓 명이 목을 빼고 모여 있었다⁠. 대박슈퍼 사장은 아예 제 휴대전화로 화면을 한 번 더 찍어 단톡방에 올리고 있었다⁠.

「⁠부결되었습니다⁠」가 화면 아래로 지나가자 평상이 들썩였다⁠.

“⁠부결이 뭐야⁠? 이긴 거야 진 거야⁠?⁠” 방옥란 사장이 현배의 팔을 흔들었다⁠.

“⁠안 판대요⁠. 공장⁠.⁠”

“⁠그럼 별과자는⁠?⁠”

“⁠계속 나와요⁠.⁠”

“⁠그럼 됐어⁠.⁠” 사장이 평상에서 일어나 가게로 들어갔다가⁠, 소주 한 병과 종이컵 세 개를 들고 나왔다⁠. “⁠우리 영감 생각난다⁠. 고씨상회 영감이랑 동학 영업 총각이 이렇게 앉아서 마셨다며⁠.⁠”

순정이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현배는 순정의 옆얼굴을 보았다⁠. 순정은 화면 속 노인을 보고 있었다⁠. 마이크 없이 “⁠그때는 네가 정해라⁠” 하던 노인이었다⁠.

현배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단톡방 「⁠면목 상봉 중화 슈퍼 사장님들⁠」에 새 알림이 줄줄이 떴다⁠.

「⁠강북슈퍼님이 들어왔습니다⁠」

「⁠도봉 쌍문 형제마트님이 들어왔습니다⁠」

「⁠형제마트⁠: 중계 보다 들어왔어요 별과자 우리도 받나요⁠」

현배는 알림을 하나씩 넘겼다⁠. 면목동 골목 밖에서 들어오는 이름들이었다⁠.

골목 입구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멈췄다⁠. 뒷문이 열리고 은테 안경의 남자가 내렸다⁠. 성준이었다⁠. 주총이 끝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넥타이를 조금 풀고 있었다⁠. 슈퍼 사장들이 하나둘 평상 뒤로 물러났다⁠. 방옥란 사장만 팔짱을 끼고 그대로 버텼다⁠.

“⁠육 과장님⁠.⁠” 성준이 평상 앞에 와서 고개를 숙였다⁠. 순정에게도 숙였다⁠. “⁠사모님⁠.⁠”

“⁠해고된 사람한테 무슨 볼일이세요⁠.⁠” 순정이 먼저 말했다⁠.

“⁠해고는 재심으로 거두겠습니다⁠. 징계위원회를 다시 엽니다⁠. 결과는 제가 압니다⁠.⁠” 성준이 현배를 보았다⁠. “⁠두 가지 중에 고르세요⁠. 위로금 원안대로 받고 나가시든지⁠, 남아서 백스무 곳을 맡으시든지⁠. 남으시면 동네 슈퍼 영업팀을 다시 만들겠습니다⁠. 삼 년이요⁠. 삼 년 안에 숫자를 못 맞추시면⁠, 그때는 위로금도 없습니다⁠. 저도 그때는 봐 드릴 숫자가 없어요⁠.⁠”

현배는 성준을 보았다⁠. 어제 회장실에서 안경을 벗었던 얼굴이 다시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어제 그거요⁠.⁠” 현배가 물었다⁠. “⁠믿으셨어요⁠?⁠”

“⁠모르겠습니다⁠.⁠” 성준이 대답했다⁠. “⁠아버지가 오늘 아침 주총장 들어오시면서 저한테 틀니가 헐겁다고 하셨어요⁠. 오 년 만에 처음 들은 아버지 사정이었어요⁠. 저는 그거면 됐습니다⁠.⁠”

현배는 순정을 보았다⁠. 사전 안내를 받고 보름 숨겼을 때⁠, 위로금을 날렸을 때⁠, 현배는 순정에게 묻지 않았다⁠. 이번에는 물었다⁠.

“⁠당신이 정해⁠.⁠”

“⁠같이 정해⁠.⁠” 순정이 종이컵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12월에 이사 가는 건 이미 정했어⁠. 집주인한테 보냈잖아⁠. 작은 집으로 가면 칠천 없어도 돼⁠.⁠” 순정이 성준을 보았다⁠. “⁠위로금 안 받아요⁠. 남을게요⁠. 대신 삼 년 동안 우리 남편 허리 나가면 회사가 파스 사 주세요⁠.⁠”

성준이 짧게 웃었다⁠. “⁠파스는 영업비로 처리하겠습니다⁠.⁠”

*

구동학은 오후 네 시 반⁠, 만세슈퍼 앞에서 허기성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무릎이 골목 보도블록 턱 하나에 시큰거렸다⁠. 삼 주 동안 두 칸씩 뛰던 계단 생각이 났다⁠. 동학은 계단 생각을 잠깐 붙잡았다가 놓았다⁠.

가게 유리문의 골판지가 바뀌어 있었다⁠. 「⁠보리별 들어왔음 · 1인 1봉지 · 둘이 같이 먹지 마시오⁠」⁠.

“⁠이건 누가 썼소⁠?⁠”

“⁠육 과장이 쓰래⁠.⁠” 방옥란 사장이 계산대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백발 노인을 위아래로 훑었다⁠. “⁠회장님이시죠⁠? 아침에 화면에서 봤어요⁠. 월세 받아서 한 일 없다고 하신 거⁠, 그거 우리 건물 주인도 좀 들었으면 좋겠던데⁠.⁠”

동학은 계산대 앞 작은 선반을 보았다⁠. 껌과 사탕 옆에 노란 봉지들이 서 있었다⁠. 동학은 봉지 하나를 집어 뒤집었다⁠. 파란 도장 글씨가 찍혀 있었다⁠. 「⁠2028⁠.05⁠.04까지⁠」⁠. 시험 생산실 반장이 날짜를 길게 찍어 보낸 새 솥이었다⁠.

“⁠얼마요⁠?⁠”

“⁠천오백 원⁠. 회장님이라고 깎아 드리는 거 없어요⁠.⁠”

동학은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과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냈다⁠. 오십육 년 만에 제 과자를 제 돈 주고 샀다⁠. 동전이 계산대 유리 위에서 한 바퀴 돌다가 누웠다⁠.

평상에 현배가 앉아 있었다⁠. 소매 걷은 흰 와이셔츠에 남색 넥타이를 느슨하게 맸고⁠,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사원증은 아직 효력이 없었지만 현배는 걸고 나왔다⁠. 동학은 무릎을 짚고 현배 옆에 앉았다⁠. 평상 나무판이 엉덩이뼈에 딱딱했다⁠.

동학이 봉지를 뜯었다⁠. 볶은 보리 냄새와 조청 단내가 골목 볕 속으로 번졌다⁠. 동학이 별 하나를 꺼내 현배에게 건넸고⁠, 자기도 하나를 집었다⁠.

두 사람이 별을 입 앞에 든 채 서로를 보았다⁠.

“⁠같은 솥이오⁠.⁠” 동학이 말했다⁠.

“⁠알아요⁠.⁠”

“⁠하나⁠, 둘⁠.⁠”

“⁠셋은 하지 마세요⁠.⁠”

동학이 먼저 깨물었다⁠. 바삭⁠. 현배는 숨을 한 번 쉬고 나서 깨물었다⁠. 바삭⁠. 두 소리 사이에 골목 끝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학의 무릎은 여전히 시큰거렸고⁠, 현배는 허리를 짚었다⁠.

“⁠불이 조금 세요⁠.⁠” 현배가 씹으며 말했다⁠.

“⁠반장한테 말해 놓으마⁠.⁠”

골목 저편에서 다솔이 책가방을 메고 뛰어왔다⁠. 순정이 가게 안에서 앞치마를 벗으며 나왔다⁠. 다솔이 평상 앞에서 멈춰 백발 노인과 제 아빠를 번갈아 보더니⁠, 손바닥을 내밀었다⁠. 동학이 봉지에서 별 하나를 꺼내 아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는 별을 오래 들여다보고 나서 반만 깨물었고⁠, 남은 반쪽을 볕에 비춰 보았다⁠. 조청이 굳은 자리가 노랗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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