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잊지 않는다
철근 트럭 앞의 얼굴을, 무리는 한 마리도 빠짐없이 외웠다
강여울@gangyeoul작품 소개
2027년 12월 첫 주, 경기 남부 신도시. 천 세대가 들어설 아파트 공사장에서 가장 높은 동 옆 타워크레인 꼭대기에 까마귀 둥지가 있다. 철근을 묶는 가는 철사와 마른 가지로 엮은 둥지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 둥지가 기운다. 무리의 우두머리 검댕이 내려다보니 불 끈 트럭 한 대가 야적장에 들어와 철근 다발을 싣고 있다. 담뱃불에 비친 얼굴, 왼쪽 눈썹 끝이 끊긴 사내다. 아침이 되자 같은 얼굴이 크레인 발치에서 크레인 기사와 다툰다. 현장소장 도기만이다. 크레인 기사는 지난밤 운전석이 혼자 흔들렸다고 하고, 기만은 바람 탓이라고 잘라 말한 뒤 아무 데도 말하지 말라고 한다. 검댕은 쉰 울음을 길게 끈다. 늙은 암까마귀가 따라 울고, 무리가 따라 운다. 까마귀는 함께 울며 본 얼굴을 잊지 않는다. 이튿날부터 무리는 공사장 사람 이백 명 가운데 기만 한 사람에게만 내려앉는다. 기만은 둥지를 뜯고 매를 부르라고 한다. 기만에게도 이유가 있다. 원청 건설사는 철근 단가가 올랐다며 공사비를 두 번 깎았고, 하청 일꾼 이백 명의 임금은 두 달째 밀려 있다. 검댕에게 도시락 밥을 던져 주던 크레인 기사는 기만의 고향 친구이고, 무엇을 보았는지 알면서도 다음 현장에 불려 가려고 입을 다문다. 길 건너 아파트 숲으로 무리를 옮기자는 외눈 수컷은 우두머리 자리를 노린다. 철근이 빠질 때마다 크레인은 조금씩 더 흔들리고, 둥지에는 곧 알이 생긴다. 검댕은 둥지를 옮길 것인가, 흔들리는 크레인을 무리째 지킬 것인가. 무대는 크레인 꼭대기에서 공사장으로, 공사장에서 입주를 기다리는 천 세대로 넓어진다. 19세 이상 · 완결
작가의 창작 노트
- 장르
- 스릴러·공포·추리 · 동물
까마귀가 사람 얼굴을 기억하고, 자기가 직접 보지 못한 얼굴까지 무리에게 배워 몇 해씩 따라다니며 운다는 연구를 읽었습니다. 얼굴의 주인은 자기가 무엇 때문에 미움받는지 모른다는 대목이 오래 남았습니다. 공사장 꼭대기에서 밤마다 같은 얼굴을 내려다보는 까마귀 무리를 세웠습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까마귀들의 눈으로만 갑니다. 우두머리, 짝, 늙은 선생, 대드는 젊은 수컷, 반짝이에 눈먼 젊은 수컷이 장면마다 번갈아 봅니다. 까마귀는 사람 말을 몇 마디밖에 모르고, 넷까지만 셉니다. 나머지는 얼굴빛과 손과 트럭이 내려앉는 깊이로 읽습니다. 웃음은 까마귀 버릇에서 냈습니다. 라이터와 병뚜껑과 손목시계에 정신을 놓는 수컷, 얼어붙은 크레인 팔에서 서열을 다투다 같이 미끄러지는 두 수컷, 눈 덮인 컨테이너 지붕을 뚜껑 하나로 미끄럼 타는 젊은 것들이 나옵니다. 아픈 자리는 둥지와 봉투에 두었습니다. 까마귀가 둥지를 지으려고 야적장의 철사를 훔치는 일과 사람이 밤마다 철근을 빼내는 일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무리가 늦게 알아 가게 했습니다. 공사장, 원청과 하청 회사, 감리단, 고물상과 모든 인물은 지어낸 것입니다. 철근을 빼돌리는 일은 이야기에 필요한 만큼만, 트럭에 다발이 실려 나가는 모습으로만 썼습니다.
이 작품은 원작의 인물·설정·문장을 사용하지 않은 독립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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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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