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11자)

꽃샘바람

까마귀는 잊지 않는다 · 강여울

검댕은 아침부터 바람의 냄새가 아니라 바람의 무게를 몸으로 받았다⁠. 깃이 자꾸 뒤집혔다⁠. 크레인 꼭대기에 앉아 있으면 발가락 사이로 쇠가 떠는 것이 그대로 올라왔다⁠. 짝은 평형추 틀 안에서 알 넷을 품은 지 열흘째였다⁠. 짝은 바람이 불어도 둥지를 떠나지 않았다⁠.

정문 밖 길에 커다란 통을 등에 진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통이 천천히 돌았다⁠. 노란 머리들은 저 트럭을 레미콘이라고 불렀다⁠. 통 안에서 콘크리트가 굳지 않게 돌아가는 차였다⁠. 오늘은 스물아홉 층을 치는 날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많이⁠. 레미콘이 정문 밖 길을 따라 아파트 숲 앞까지 늘어서 있었다⁠.

흰 깃 수컷이 맨 앞 레미콘의 도는 통 위에 내려앉았다⁠. 통이 돌자 흰 깃 수컷의 발이 뒤로 밀렸다⁠. 흰 깃 수컷은 앞으로 걸었다⁠. 통이 계속 돌았다⁠. 흰 깃 수컷은 계속 걸었다⁠. 제자리에서 열심히 걷는 흰 깃 수컷을 보고 레미콘 기사가 운전석에서 고개를 내밀고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운동하냐⁠? 그러다 통 속으로 들어가면 너도 벽 된다⁠!⁠”

흰 깃 수컷은 끝내 통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날아오르면서 레미콘 기사의 보온병 뚜껑을 노렸지만 바람이 몸을 옆으로 밀어 버렸다⁠. 흰 깃 수컷은 바람에 밀려 펜스 너머까지 날아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다⁠.

파란 안전모의 검은 차가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파란 안전모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을 반쯤 내려 마당을 보았다⁠. 무리가 지나갈 때마다 창을 올렸다⁠. 기만은 마당 가운데서 손나발을 쥐고 있었다⁠. 크레인 기사는 해가 뜨기 전에 이미 운전석에 올라가 있었다⁠.

*

바람이 한 번 크게 몰아쳤다⁠. 검댕은 크레인 꼭대기에서 몸이 들리는 것을 느꼈다⁠. 발톱을 박았다⁠. 크레인이 기울었다⁠. 숨 하나⁠, 숨 둘⁠, 숨 셋⁠, 숨 넷⁠, 숨 다섯⁠. 돌아오지 않았다⁠. 기운 채로 크레인 몸통 깊은 데서 쇠가 길게 비명을 질렀다⁠.

스물한 층 벽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쇠팔이 박힌 벽 둘레의 금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회색 덩이들이 벽에서 떨어져 나와 아래로 쏟아졌다⁠. 사람 머리만 한 덩이가 함바 지붕을 때렸다⁠. 함바 지붕이 우그러지며 환기구가 떨어져 나갔다⁠. 다른 덩이가 마당 한가운데 박혀 흙이 튀었다⁠.

“⁠피해⁠! 피해⁠!⁠”

노란 머리들이 사방으로 뛰었다⁠. 함바 문이 열리고 함바 아주머니가 국자를 든 채 뛰쳐나왔다⁠. 크레인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숨 여섯을 지나서였다⁠.

기만이 손나발을 들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작업 중지⁠! 전원 대피⁠! 크레인 반경에서 다 나가요⁠! 레미콘 들어오지 마⁠!⁠”

검은 차 문이 열렸다⁠. 파란 안전모가 내려 기만에게 달려왔다⁠. 검댕은 철근 더미로 내려앉았다⁠. 두 얼굴이 정면으로 마주 보였다⁠.

“⁠소장님⁠, 레미콘 열두 대가 와 있어요⁠. 지금 멈추면 통 안에서 다 굳어서 버려요⁠. 그거 다 돈이에요⁠.⁠”

“⁠크레인 넘어가면 돈이고 날짜고 없습니다⁠.⁠”

“⁠안 넘어가요⁠. 바람이에요⁠. 꽃샘바람⁠. 오늘만 지나면 됩니다⁠.⁠”

“⁠부장님 눈으로 보셨잖습니까⁠. 벽에서 덩이가 떨어졌어요⁠.⁠”

“⁠소장님⁠, 멈추면 소장님 회사 계약 해지예요⁠. 계약서에 공정 지연 조항 있는 거 아시죠⁠. 해지되면 이백 명 나머지 반은 누가 줘요⁠?⁠”

기만이 대답하기 전에 노란 머리들 사이에서 목수 반장이 걸어 나왔다⁠. 하얗게 센 머리에 흙이 묻어 있었다⁠.

“⁠소장님 말 들으쇼⁠. 나머지 반 못 받아도 사람 깔려 죽는 건 못 보요⁠.⁠”

“⁠반장님은 빠지세요⁠. 이건 원청하고 하청 일이에요⁠.⁠”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덩어리는 원청 거요 하청 거요⁠?⁠”

파란 안전모의 얼굴이 굳었다⁠. 웃음은 없었다⁠. 파란 안전모는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두드렸다⁠.

“⁠멈추는 건 소장님 결정이에요⁠. 그렇게 보고 올립니다⁠.⁠”

“⁠올리세요⁠.⁠”

기만이 손나발을 다시 들었다⁠.

“⁠레미콘 다 돌려보내요⁠! 전원 대피⁠!⁠”

흰 깃 수컷은 우그러진 함바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환기구가 있던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겨울 내내 배를 대고 앉던 따뜻한 자리였다⁠. 구멍 아래 함바 안에서 국솥이 엎어져 김치찌개가 바닥에 번지고 있었다⁠. 함바 아주머니가 국자로 바닥을 가리키며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이건 누가 물어 줘⁠! 원청이 물어 줘⁠, 하청이 물어 줘⁠! 석 달 밥값도 못 받았는데 지붕까지⁠!⁠”

흰 깃 수컷은 구멍 가장자리에 떨어진 쇠 조각 하나를 보았다⁠. 환기구 날개였다⁠. 은빛이었고 반쯤 휘어 있었다⁠. 흰 깃 수컷은 쇠 조각을 물었다가 놓았다⁠. 오늘은 물고 가도 숨길 데가 마땅치 않았다⁠. 평형추 틀이 흔들리고 있었다⁠.

펜스 밖에서는 둥근 안경의 여자가 판을 들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떨렸다⁠. 판 안에서 회색 덩이가 함바 지붕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작게 되풀이되었다⁠. 여자가 판에 대고 빠르게 말했다⁠.

“⁠지금 벽에서 덩어리가 떨어졌어요⁠. 크레인 붙어 있는 벽이요⁠. 다들 보세요⁠. 우리 동이에요⁠. 열여덟 층 바로 위예요⁠.⁠”

여자 뒤의 사람들이 펜스에 이마를 붙이고 마당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천을 흔들지 않았다⁠.

*

검댕은 기만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기만은 흰 안전모를 고쳐 쓰고 비상계단을 올랐다⁠. 크레인 기사가 아직 꼭대기에 있었다⁠. 무전기에서는 바람 소리만 났다⁠.

검댕은 기만의 얼굴을 쫓았다⁠. 쫓으려고 쫓은 것이 아니었다⁠. 끊긴 눈썹을 보면 몸이 먼저 날았다⁠. 다섯 해 우두머리로 살며 몸에 붙은 버릇이었다⁠. 검댕은 짓다 만 벽의 구멍으로 날아 들어가 비상계단 위를 낮게 날았다⁠. 계단은 어둡고 좁았다⁠. 기만이 숨을 몰아쉬며 한 층씩 올랐다⁠. 검댕이 머리 위를 스칠 때마다 기만은 팔을 휘저었다⁠.

“⁠야⁠,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열다섯 층⁠, 열여덟 층⁠. 기만이 계단참에서 멈췄다⁠. 위에서 발소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크레인 기사였다⁠. 크레인 몸통 사다리를 타고 스물한 층 쇠팔 발판까지 내려와 건물 안으로 건너온 참이었다⁠. 작업복 소매가 찢어져 있었고 손바닥에서 피가 났다⁠. 사다리를 움켜쥐다가 쇠에 쓸린 손이었다⁠.

두 사람이 계단참에서 마주 보았다⁠. 검댕은 계단 난간에 내려앉았다⁠. 숨을 고르는 두 사람의 입김이 어두운 계단에 하얗게 번졌다⁠.

“⁠이제 말할란다⁠.⁠”

크레인 기사가 먼저 말했다⁠. 피 나는 손으로 앞주머니를 짚었다⁠.

“⁠감리한테 사진 다 준다⁠. 니 트럭⁠, 니 지게차⁠, 날짜까지 다 찍혀 있어⁠.⁠”

“⁠그러면 니 다음 현장 없다⁠. 부장이 니 이름 지울 거여⁠.⁠”

“⁠다음 현장이 문제냐⁠. 니 머리 위로 크레인 넘어가게 생겼는디⁠. 저 위에서 내가 뭘 봤는지 아냐⁠? 벽이 숨을 쉬어야⁠. 들이쉬고 내쉬고⁠.⁠”

기만이 계단에 주저앉았다⁠. 흰 안전모를 벗어 무릎 위에 놓았다⁠. 하얗게 센 정수리가 어둠 속에서 보였다⁠.

“⁠딸 결혼식은⁠.⁠”

“⁠식은 올린다⁠. 축의금 덜 들어오믄 덜 들어오는 대로⁠.⁠”

기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흰 안전모만 내려다보았다⁠. 크레인 기사가 기만의 어깨를 피 묻은 손으로 한 번 짚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발소리가 한 층마다 조금씩 멀어졌다⁠.

검댕은 난간 위에서 기만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쉰 울음이 목까지 올라왔다⁠. 건물 전체를 타고 크레인 몸통이 우는 소리가 들어온 것은 울음이 부리 끝까지 왔을 때였다⁠. 검댕은 울음을 삼켰다⁠. 둥지⁠. 검댕은 계단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

짝은 혼자였다⁠. 검댕이 철근 더미로⁠, 계단으로 날아간 뒤로 둥지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평형추 틀 안까지 들이쳤다⁠. 짝은 알 넷을 배 밑에 모으고 날개를 둥글게 내렸다⁠.

크레인이 기울었다⁠. 숨 하나⁠, 둘⁠, 셋⁠. 평형추 덩이들이 쇠틀 안에서 서로 부딪혀 둔하게 울었다⁠. 둥지가 틀 바닥을 따라 미끄러졌다⁠. 짝은 발톱으로 철사를 움켜쥐었다⁠. 둥지와 짝이 함께 미끄러졌다⁠.

알 하나가 날개 밑을 빠져나갔다⁠. 둥지 가장자리의 은빛 물고기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물고기를 넘어 둥지 밖으로 굴러 나가 틀 바닥의 틈으로 사라졌다⁠. 짝은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래는 까마득했다⁠.

짝은 짧게 깍 했다⁠. 여기 있다는 소리였다⁠. 검댕은 대답하지 않았다⁠. 짝은 한 번 더 깍 했다⁠. 틀 입구에 흰 깃 수컷이 내려앉았다⁠. 흰 깃 수컷은 틀 바닥의 틈을 보았고⁠, 짝을 보았고⁠, 아무것도 물지 않은 부리로 틈 위에 몸을 엎드렸다⁠. 작은 몸으로 틈 하나를 덮었다⁠. 덮을 수 있는 틈은 하나뿐이었다⁠.

크레인이 다시 기울었다⁠. 짝은 남은 셋을 배 밑으로 끌어당겼다⁠. 끌어당기는 사이에 둥지가 한 번 더 미끄러졌고⁠, 틀 바닥의 쇠가 둥지 한쪽 귀퉁이를 찢었다⁠. 짝이 몸을 일으켜 찢어진 자리를 막았다⁠. 막는 동안 배 밑이 비었다⁠.

바람은 해가 질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

늙은 암까마귀는 정문 기둥 위에서 크레인 기사를 보았다⁠. 크레인 기사는 피 묻은 손을 작업복에 문지르며 정문 옆 컨테이너로 걸어갔다⁠. 줄무늬 안전모를 쓴 젊은 감리원이 막 차에서 내려 달려오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온 얼굴이었다⁠. 하얗게 질려 있었다⁠.

크레인 기사가 감리원 앞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감리님⁠, 이거 보쇼⁠. 다 날짜 찍혀 있소⁠.⁠”

감리원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넘겼다⁠. 한 장⁠, 또 한 장⁠. 손가락이 점점 느려졌다⁠.

“⁠이거 몇 달 치예요⁠?⁠”

“⁠은행잎 떨어질 때부터요⁠.⁠”

“⁠기사님⁠, 지난번에 제가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그때는 괜찮다고 했소⁠. 내 밥줄이 괜찮았응께⁠.⁠”

감리원은 대답하지 않고 화면을 계속 넘겼다⁠. 마당 건너편 검은 차 안에서 파란 안전모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늙은 암까마귀는 검은 차를 향해 낮게 울었다⁠. 정문 기둥 옆 펜스에서 까마귀 둘이 따라 울었다⁠. 길 건너 아파트 숲에서 날아온 젊은 까마귀들이었다⁠. 외눈 수컷은 오지 않았다⁠.

*

바람은 새벽이 되어서야 그쳤다⁠. 검댕은 평형추 틀 입구에 앉아 있었다⁠. 계단에서 돌아온 뒤로 밤새 앉아 있었다⁠.

짝이 찢어진 둥지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몸 밑이 납작했다⁠. 짝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아도 검댕은 알았다⁠. 둥지 가장자리 철사 사이에 은빛 물고기가 그대로 끼어 있었다⁠. 틀 바닥 쇠 위에는 푸르스름한 껍데기 조각 몇 개가 바람에 말라 붙어 있었다⁠.

해가 아파트 숲 위로 올라왔다⁠. 햇빛이 크레인 꼭대기를 먼저 비추고⁠, 평형추 틀 안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검댕의 등을 지나갔다⁠. 검댕의 깃에 푸른 기가 돌았다⁠. 검댕은 짝 곁으로 걸어가 짝의 머리 깃을 골랐다⁠. 두 번 골랐다⁠. 짝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늙은 암까마귀가 평형추 틀 위에 내려앉았다⁠. 늙은 암까마귀는 둥지를 들여다보고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가르칠 얼굴이 있을 때와 같은 자세였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늙은 암까마귀 뒤로 흰 깃 수컷이 내려앉았고⁠, 정문에서 울던 젊은 까마귀 둘이 내려앉았다⁠. 길 건너 아파트 숲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외눈 수컷이 날아올랐다⁠. 외눈 수컷은 길을 건너와 크레인 꼭대기를 한 바퀴 돌았다⁠. 흐리지 않은 눈으로 평형추 틀 안을 내려다보았다⁠. 짧게 한 번 깍 하고⁠, 내려앉지 않고 다시 길을 건너갔다⁠.

아래 마당에서 크레인 기사가 사다리를 올려다보다가 오르지 않고 몸을 돌렸다⁠. 오늘 아침 크레인 팔 끝으로 날아오는 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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