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54자)

알

까마귀는 잊지 않는다 · 강여울

짝은 첫 알을 새벽에 낳았다⁠. 몸이 가벼워지는 순간 배 밑에서 둥근 것이 굴렀다⁠. 짝은 일어나 알을 내려다보았다⁠. 푸르스름한 바탕에 갈색 얼룩이 흩어진 알이었다⁠. 짝은 알을 부리 끝으로 살짝 굴려 둥지 한가운데에 놓고 다시 앉았다⁠. 알 하나는 열쇠보다 가벼웠다⁠. 그래도 둥지에 생긴 무게 가운데 가장 무거웠다⁠.

이레 사이에 알이 넷이 되었다⁠. 넷은 짝이 셀 수 있는 끝이었다⁠. 짝은 넷을 배 밑에 모으고 날개를 둥글게 내렸다⁠. 바깥은 아직 차가웠지만 크레인 쇠에 맺히던 서리는 이제 해가 뜨면 금세 물이 되었다⁠. 아래 건물은 스물여덟 마디까지 자랐고⁠, 크레인 몸통을 붙드는 쇠팔도 하나 더 늘었다⁠.

크레인이 기울었다⁠. 평형추 틀 안의 둥지도 기울었다⁠. 알 넷이 한꺼번에 둥지 가장자리로 굴렀다⁠. 짝이 몸을 틀어 날개로 막았다⁠. 알 하나가 날개 밑을 빠져나가 가장자리까지 갔다가⁠, 철사 사이에 끼워진 은빛 물고기에 부딪혀 멈췄다⁠. 흰 깃 수컷이 숨겨 둔 지게차 열쇠였다⁠. 짝은 부리로 알을 끌어와 배 밑에 넣었다⁠. 짝은 처음으로 물고기를 가장자리에서 밀어내지 않았다⁠.

검댕이 함바 쓰레기통에서 물어 온 빵 껍질을 짝 앞에 내려놓았다⁠. 짝은 먹지 않고 크레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흰 깃 수컷이 틀 입구에 나타났다⁠. 부리에 은박지 한 조각을 물고 있었다⁠. 함바 쓰레기통에서 주운 김밥 은박지였다⁠. 흰 깃 수컷은 고개를 숙여 은박지를 둥지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알 넷 옆에 놓으면 알이 더 예뻐 보일 거라는 몸짓이었다⁠. 짝이 은박지를 부리로 집어 틀 밖으로 던졌다⁠. 은박지는 바람을 타고 반짝이며 아래로 떨어졌다⁠. 흰 깃 수컷은 떨어지는 은박지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쫓아 내려갔다⁠. 반짝이는 것이 떨어지면 흰 깃 수컷은 쫓아간다⁠. 짝은 흰 깃 수컷이 다시 올라오지 않기를 바랐고⁠, 흰 깃 수컷은 해 질 녘 병뚜껑 하나를 물고 다시 올라왔다⁠. 이번에는 둥지에 내려놓지 않고 틀 입구에 놓고 갔다⁠. 짝은 병뚜껑을 그대로 두었다⁠. 돌아오기까지 숨 셋이 지나갔다⁠. 지난달에는 둘이었다⁠.

*

외눈 수컷은 젊은 까마귀 다섯을 데리고 길을 건넜다⁠. 크레인이 기울어 알이 구른 날 아침이었다⁠. 외눈 수컷은 검댕에게 절하지 않고 떠났다⁠. 떠나기 전에 평형추 틀 위를 한 바퀴 돌며 짧게 한 번 깍 했다⁠. 여기 있었다는 소리였고⁠, 이제 없다는 소리였다⁠.

아파트 숲은 조용했다⁠. 회색 건물들 사이로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고⁠, 나무 밑으로 사람들이 개를 끌고 천천히 걸었다⁠. 쇠가 우는 소리도 손전등도 불 끈 트럭도 없었다⁠. 외눈 수컷은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내려앉았다⁠. 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무는 바람이 불 때만 흔들렸다⁠. 외눈 수컷은 흐리지 않은 눈으로 길 건너 크레인을 보았다⁠. 크레인 끝이 바람 없이 움찔거렸다⁠.

나무 아래쪽 가지에서 꽁지가 긴 흑백 새들이 일어났다⁠. 까치였다⁠. 까치 여럿이 깍깍거리며 한꺼번에 외눈 수컷을 덮쳤다⁠. 까치는 까마귀보다 작았지만 이 숲이 제 숲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렸다⁠. 외눈 수컷은 부리를 휘둘렀고⁠, 반밖에 자라지 않은 꽁지로 균형을 잡느라 두 번 미끄러졌다⁠. 젊은 까마귀 하나가 까치에게 등을 쪼여 소리를 지르며 아래 가지로 떨어졌다⁠.

나무 밑에서 개를 끌던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고⁠, 까치랑 까마귀랑 싸운다⁠! 저 까마귀 꼬리 빠진 거 봐⁠.⁠”

외눈 수컷은 물러나지 않았다⁠. 해가 질 때까지 까치들과 가지 하나를 놓고 싸웠고⁠, 해가 지자 까치들이 먼저 둥지로 돌아갔다⁠. 외눈 수컷은 빼앗은 가지 위에 앉았다⁠. 젊은 까마귀 다섯 가운데 넷이 남았다⁠. 하나는 해 질 녘 길을 건너 크레인으로 돌아갔다⁠. 외눈 수컷은 돌아가는 하나를 보내 주었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에서 잠드는 첫 밤이었다⁠. 외눈 수컷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

검댕은 크레인 발치에서 세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게 불었다⁠. 크레인 기사가 사다리 앞에 서서 올라가지 않았다⁠.

“⁠오늘은 못 올라간다⁠. 바람이 세⁠. 이음이 놀아서 운전석이 혼자 춤을 춰⁠.⁠”

“⁠기준 풍속 안 넘었어요⁠. 제가 아침에 봤어요⁠.⁠”

파란 안전모가 휴대전화 화면을 크레인 기사 앞에 들이밀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기사님⁠, 다음 현장 우리 회사 거 세 군데예요⁠. 기사님 이름 제가 다 올려놨어요⁠. 오늘 타설만 하시면 돼요⁠.⁠”

“⁠부장님⁠, 기준은 멀쩡한 크레인 기준이고요⁠. 이건 멀쩡한 크레인이 아니어라⁠.⁠”

파란 안전모의 얼굴이 굳었다⁠.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 검댕은 이 얼굴을 안다⁠. 웃을 때도 움직이지 않는 눈이었다⁠. 파란 안전모가 기만을 돌아보았다⁠. 기만이 크레인 기사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니가 안 올라가면 오늘 타설 못 하고⁠, 타설 못 하면 이백 명 일당 날아가⁠. 설 지나고 준다던 나머지 반도 날아가고⁠.⁠”

“⁠니가 시키는 거냐⁠, 부장이 시키는 거냐⁠.⁠”

“⁠내가 부탁하는 거다⁠.⁠”

크레인 기사가 기만의 얼굴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기만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끊긴 왼쪽 눈썹 밑의 눈이 붉게 젖어 있었다⁠. 크레인 기사가 장갑을 끼고 사다리를 잡았다⁠.

“⁠니 부탁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검댕은 쉰 울음을 끌었다⁠. 철근 더미에서 무리가 일어났다⁠. 무리가 덮친 것은 이번에는 기만 하나가 아니었다⁠. 까마귀 여럿이 파란 안전모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파란 안전모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손목시계가 번쩍였다⁠. 흰 깃 수컷이 번쩍이는 자리를 노리고 내리꽂혔다가 늙은 암까마귀에게 꽁지를 물려 끌려 나왔다⁠.

“⁠이게⁠, 이게 뭐예요⁠! 소장님⁠, 이거 왜 나한테까지⁠!⁠”

기만이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참다가 끝내 짧게 웃었다⁠. 웃음이 새어 나온 얼굴은 금세 다시 하얘졌다⁠. 크레인 기사는 사다리 중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혀를 찼다⁠.

“⁠부장님⁠, 까마귀는 얼굴 안 잊어부러요⁠. 조심하쇼⁠.⁠”

*

검댕은 크레인 기사가 운전석에 앉을 때까지 사다리 곁을 따라 날았다⁠. 바람이 크레인 몸통을 때릴 때마다 사다리가 떨었고⁠, 크레인 기사는 그때마다 멈춰서 두 팔로 사다리를 끌어안았다⁠. 운전석에 들어간 크레인 기사는 한참 숨을 몰아쉬었다⁠. 창이 덜컹거렸다⁠. 크레인 기사는 도시락을 열고 숟가락으로 밥을 크게 떠서 크레인 팔 끝으로 던졌다⁠. 바람이 밥덩이를 옆으로 밀어 허공으로 날렸다⁠. 검댕은 날아가는 밥덩이를 공중에서 받았다⁠.

“⁠잘 받네⁠. 니는 바람도 안 무섭냐⁠.⁠”

크레인 기사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을 두드려 창에 대고 검댕에게 보여 주었다⁠. 검댕은 운전석 창틀에 내려앉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 안에 작은 야적장이 있었다⁠. 어두웠고⁠, 조명탑 불빛 아래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짐칸에 철근 다발이 실려 있었다⁠. 다발 옆에 작은 흰 안전모 하나가 서 있었다⁠. 검댕은 작은 흰 안전모를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끊긴 눈썹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얼굴이었다⁠. 그래도 검댕은 알아보았다⁠.

“⁠니도 봤제⁠? 나도 봤다⁠. 새벽에 일찍 올라온 날마다 찍어 놨어⁠. 어따 내놓을지는 몰라도⁠.⁠”

크레인 기사는 화면을 끄고 휴대전화를 앞주머니에 넣었다⁠. 기만에게 받은 봉투가 든 주머니였다⁠. 크레인 기사가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두 번 눌렀다⁠. 크레인이 크게 기울었다⁠. 크레인 기사가 조종간을 놓고 운전석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검댕은 창틀에서 발톱을 박고 버텼다⁠.

“⁠딸내미 결혼식만 보고 그만둘란다⁠. 딱 한 달만 버텨라⁠, 이 쇳덩어리야⁠.⁠”

*

늙은 암까마귀는 펜스 위에서 바깥 길을 보았다⁠. 둥근 안경을 쓴 여자가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여자 뒤로 사람 여럿이 펜스를 따라 서 있었다⁠. 몇은 손바닥만 한 판을 들었고⁠, 몇은 기다란 천을 함께 들었다⁠. 천에는 검은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다⁠. 늙은 암까마귀는 글씨를 읽지 못했다⁠. 사람들이 천을 흔들며 한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만 들었다⁠.

“⁠안전 진단 공개하라⁠! 공개하라⁠!⁠”

여자가 판을 들어 크레인을 찍었다⁠. 크레인 끝이 바람에 흔들렸고⁠, 흔들림이 멎을 때 한 번 더 움찔했다⁠. 여자는 판을 펜스 너머로 내밀어 마당을 찍었다⁠. 까마귀 무리가 파란 안전모를 쫓아 차로 밀어 넣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과 수군거림이 함께 일었다⁠.

“⁠저 까마귀들이 저 사람만 쫓아⁠. 지난번엔 흰 안전모만 쫓더니⁠.⁠”

“⁠흰 안전모가 소장이고⁠, 파란 거는 원청이래⁠.⁠”

기만이 펜스로 걸어왔다⁠.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여자가 판을 내리고 기만의 얼굴을 보았다⁠.

“⁠소장님이세요⁠? 크레인 흔들리는 영상 있어요⁠. 바람 없는 날 찍은 거예요⁠. 우리 집이 저 동 열여덟 층이에요⁠.⁠”

“⁠안전합니다⁠. 정기 점검 다 받고 있습니다⁠.⁠”

“⁠그럼 까마귀가 왜 소장님만 쫓아요⁠?⁠”

사람들이 웃었다⁠. 기만은 웃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늙은 암까마귀는 펜스 위에서 기만의 등과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여자는 웃지 않았다⁠. 여자는 판을 다시 들어 기만의 뒷모습을 찍었다⁠. 기만은 흰 안전모를 벗어 손에 들고 컨테이너로 걸어 들어갔다⁠. 안전모를 벗은 머리 정수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여자 옆의 늙은 사내가 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천 세대가 이 날짜 보고 다 전세 빼고 대출받았어요⁠. 입주 늦어져도 큰일이고⁠, 벽이 잘못돼도 큰일이고⁠.⁠”

“⁠둘 중에 뭐가 더 큰일이에요⁠?⁠”

여자가 물었고⁠, 늙은 사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

검댕은 한밤에 트럭 소리를 들었다⁠. 바람은 낮보다 더 세져 있었다⁠. 평형추 틀 안에서 짝이 알 넷을 배 밑에 모으고 있었다⁠. 검댕은 틀 끝으로 나가 아래를 보았다⁠.

불 끈 트럭이 야적장으로 들어왔다⁠. 지게차가 철근 다발을 떠 올렸다⁠. 하나⁠, 둘⁠, 셋⁠, 넷⁠, 많이⁠. 정문 옆 어둠 속에 차가 한 대 더 있었다⁠. 불을 끈 검은 차였다⁠. 차 옆에 사람 하나가 서서 지게차를 보고 있었다⁠.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손전등도 켜지 않았다⁠. 지게차 불빛이 한 번 서 있는 사람을 스치자 왼손 손목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검댕은 번쩍임을 안다⁠. 낮에 무리가 차로 밀어 넣은 얼굴의 손목이었다⁠.

지게차에서 기만이 내려 검은 차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보았다⁠. 바람이 소리를 크레인 꼭대기까지 끌어올렸다⁠. 끊겼다가 이어졌다⁠.

“⁠…진단 들어오기 전에 이번 거 마지막으로 빼요⁠. … 감리 쪽은 내가 얘기해 둘 테니까⁠.⁠”

“⁠부장님⁠, 스물여덟 층 이음도 이제 놉니다⁠.⁠”

“⁠골조 3월 말⁠. 그것만 생각하세요⁠. 우리 사이에⁠.⁠”

검댕은 쉰 울음을 끌었다⁠. 어둠 속이었고⁠, 무리는 잠들어 있었다⁠. 늙은 암까마귀가 먼저 눈을 떴다⁠. 늙은 암까마귀는 정문 옆 검은 차를 보았고⁠, 손목의 번쩍임을 보았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고개를 검은 차로 향하고 낮고 길게 울었다⁠. 잠에서 깬 까마귀들이 하나씩 따라 울었다⁠. 밤의 울음은 낮보다 멀리 갔다⁠.

파란 안전모가 고개를 들어 크레인 꼭대기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 까마귀는 보이지 않았다⁠. 울음만 들렸다⁠. 파란 안전모는 차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바람이 한 번 크게 불었다⁠. 크레인이 기울었다⁠. 숨 하나⁠, 숨 둘⁠, 숨 셋⁠, 숨 넷⁠. 크레인은 넷을 지나서야 돌아왔다⁠. 짝이 날개를 넓게 펴 알 넷을 덮었다⁠. 검댕은 짝 곁으로 돌아가 틀 입구를 몸으로 막았다⁠. 길 건너 아파트 숲에서 외눈 수컷의 짧은 깍 소리가 한 번 들려왔다⁠. 바람이 점점 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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