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45자)

꼭대기

까마귀는 잊지 않는다 · 강여울

검댕은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크레인은 멈춰 있었다⁠. 크레인 팔은 바람 부는 쪽으로 돌아가도록 풀어 둔 채였고⁠,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마당에서도 쇠 소리가 나지 않았다⁠. 노란 머리들은 컨테이너 그늘에 모여 앉아 컵라면을 먹거나⁠, 먹지 않고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았다⁠.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일당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노란 머리들 사이를 오갔다⁠.

짝은 찢어진 둥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배 밑이 비어 있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검댕은 둥지 곁 난간에 앉아 아래를 보았고⁠, 짝을 보았고⁠, 다시 아래를 보았다⁠.

흰 깃 수컷이 소시지 한 토막을 물고 올라왔다⁠. 소시지를 검댕 앞에 내려놓고⁠, 다시 내려가더니 병뚜껑 하나를 물고 올라와 소시지 옆에 나란히 놓았다⁠. 흰 깃 수컷이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 둘이었다⁠. 검댕은 소시지를 먹었다⁠. 병뚜껑은 먹지 않았다⁠. 흰 깃 수컷은 병뚜껑을 다시 물어 갈까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다가⁠, 그대로 두고 갔다⁠.

*

늙은 암까마귀는 스물한 층 비계 위에서 사람 넷을 보았다⁠. 줄무늬 안전모의 감리원이 처음 보는 사람 둘과 함께 왔다⁠. 두 사람은 바퀴 달린 작은 기계를 벽에 대고 천천히 밀었다⁠. 기계에서 삐 소리가 났다가 멎었다가 다시 났다⁠. 감리원이 기계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손에 든 종이와 견주었다⁠. 벽 속 쇠막대가 어디 있는지 소리로 알려 주는 기계였다⁠.

파란 안전모와 흰 안전모가 뒤에 서 있었다⁠.

“⁠이음부 벽 철근이 도면의 반이에요⁠. 반도 안 되는 데도 있고요⁠.⁠”

감리원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화난 목소리였다⁠.

“⁠그날 순간 풍속이 기준을 넘었어요⁠. 기상청 자료 있어요⁠. 천재지변입니다⁠.⁠”

파란 안전모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천재지변이면 옆 동 크레인은 왜 멀쩡해요⁠? 같은 바람 맞았어요⁠.⁠”

“⁠철근은 하청 시공 문제고요⁠. 원청은 하청에서 올린 자료대로 받았어요⁠.⁠”

파란 안전모는 기만을 보지 않고 말했다⁠. 늙은 암까마귀는 기만의 얼굴을 보았다⁠. 흰 안전모 아래 끊긴 왼쪽 눈썹이 꿈틀했다가 멈췄다⁠. 기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리원이 기만을 돌아보았다⁠.

“⁠소장님⁠, 하실 말씀 없으세요⁠?⁠”

“⁠…없습니다⁠.⁠”

“⁠보강 끝날 때까지 크레인 사용 정지예요⁠. 위층 골조도 정지고요⁠. 제가 이거 다 올립니다⁠.⁠”

“⁠감리님⁠, 골조 3월 말 못 맞추면 입주가 넉 달 밀려요⁠. 천 세대예요⁠. 그 사람들 전세 기한⁠, 대출 이자⁠, 감리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벽 반쪽짜리 집에 천 세대 들이는 건 누가 책임지는데요⁠?⁠”

파란 안전모가 입을 다물었다⁠. 웃음 없는 얼굴이었다⁠. 늙은 암까마귀는 비계 위에서 낮고 길게 울었다⁠. 고개를 파란 안전모의 얼굴로 향한 채였다⁠. 파란 안전모가 비계를 올려다보았다⁠. 위에서 까마귀 하나가 저를 보고 있었다⁠. 파란 안전모가 먼저 눈을 돌렸다⁠.

*

검댕은 하청 사무실 창틀에 내려앉았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 파란 안전모와 기만이 마주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파란 안전모가 종이를 손가락으로 기만에게 밀었다⁠.

“⁠확인서예요⁠. 철근 부족은 하청 현장소장이 원청에 알리지 않고 혼자 한 일이다⁠. 원청은 몰랐다⁠. 그 내용이에요⁠.⁠”

“⁠…⁠”

“⁠여기 서명하시면 원청이 이백 명 밀린 임금 직접 줍니다⁠. 법에도 원청이 하청 임금을 같이 책임지게 돼 있고요⁠. 보강도 원청 돈으로 조용히 합니다⁠. 입주 날짜도 최대한 지키고요⁠.⁠”

“⁠안 하면요⁠.⁠”

“⁠안 하시면 하청 회사 부도예요⁠. 원청은 계약 해지하고 소송 들어가요⁠. 그러면 이백 명은 소송 끝날 때까지 한 푼도 못 받아요⁠. 몇 년이 걸릴지 몰라요⁠.⁠”

기만이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종이 위의 글자는 검댕에게 검은 개미 떼였다⁠.

“⁠부장님이 밤에 정문 옆에 서 계셨잖습니까⁠. 트럭 옆에⁠.⁠”

“⁠누가 봤는데요⁠?⁠”

“⁠…⁠”

“⁠까마귀가요⁠?⁠”

파란 안전모가 웃었다⁠. 처음으로 눈까지 웃었다⁠. 검댕은 창틀 위에서 파란 안전모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매끈한 턱⁠. 흰 볼⁠. 왼손 손목의 시계⁠. 검댕은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파란 안전모가 창을 돌아보았다⁠. 창틀에 까마귀가 있었다⁠. 웃음이 얼굴에서 천천히 빠져나갔다⁠.

“⁠소장님⁠, 이거 소장님한테 제일 좋은 길이에요⁠. 소장님 혼자 안고 가면 이백 명이 살고 천 세대가 살아요⁠. 소장님은 그 사람들 먹이려고 한 거잖아요⁠. 끝까지 먹이세요⁠.⁠”

파란 안전모가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나가며 창틀의 검댕을 한 번 더 보았다⁠. 손으로 창을 탁 쳤다⁠. 검댕은 날지 않았다⁠.

기만은 종이를 들고 오래 앉아 있었다⁠. 펜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하루만 주십쇼⁠.⁠”

닫힌 문에 대고 한 말이었다⁠.

*

검댕은 해 질 녘 크레인 발치로 내려갔다⁠. 크레인 기사가 사다리 앞에 서 있었다⁠. 작업복이 아니라 점퍼 차림이었고⁠, 손에 도시락 가방과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비닐봉지 안에 운전석에 두었던 방석과 작은 상자가 들어 있었다⁠. 사람 목소리가 나오던 상자였다⁠.

크레인 기사가 도시락을 열었다⁠. 밥을 한 숟갈 떠서 위로 던지려다 멈췄다⁠. 크레인 꼭대기는 숟가락으로 닿지 않는 높이였다⁠. 크레인 기사는 밥을 사다리 첫 칸 쇠판 위에 내려놓았다⁠.

“⁠검댕아⁠, 밥⁠. 인자 니가 내려와서 묵어라⁠.⁠”

검댕은 철근 더미에서 사다리 첫 칸으로 내려앉았다⁠. 크레인 기사의 얼굴이 가까웠다⁠. 이가 하나 빠진 입이 웃었다⁠. 검댕은 밥덩이를 쪼았다⁠. 멸치가 두 마리 박혀 있었다⁠. 처음 밥이 날아오던 날과 같았다⁠.

기만이 하청 사무실에서 나와 크레인 발치로 왔다⁠. 크레인 기사는 기만을 보고도 도시락 뚜껑을 닫지 않았다⁠.

“⁠그만둔다고 회사에 말했다⁠.⁠”

“⁠들었다⁠.⁠”

“⁠니는⁠. 서명할 거냐⁠.⁠”

“⁠모르겄다⁠.⁠”

“⁠니 서명하믄 나 사진 낸 거 헛것 된다⁠. 니 혼자 한 걸로 되고⁠, 부장은 깨끗해지고⁠.⁠”

“⁠이백 명은 받는다⁠.⁠”

“⁠그 돈 받고 이백 명이 저 벽 반쪽짜리 집 짓는 데 또 불려 가겄지⁠. 부장 다음 현장에⁠.⁠”

기만이 대답하지 않았다⁠. 크레인 기사가 도시락 뚜껑을 닫고 가방에 넣었다⁠. 비닐봉지를 들고 정문으로 걸어가다가 한 번 돌아보았다⁠. 사다리 첫 칸의 검댕을 보았고⁠, 기만을 보았다⁠.

“⁠니 얼굴 보고 우는 거⁠, 내가 저것들한테 가르친 거 아니다⁠. 지들이 본 거여⁠.⁠”

*

외눈 수컷은 아파트 숲 나무에 은빛 끈이 매달리는 것을 보았다⁠. 관리사무소 옷을 입은 사람이 사다리를 대고 가지마다 반짝이는 끈을 묶었다⁠. 끈은 바람에 번쩍번쩍 뒤집혔다⁠. 새를 쫓는 끈이었다⁠. 까치들은 끈을 보고 다른 나무로 옮겨 갔다⁠. 함께 온 젊은 까마귀 넷 가운데 둘이 끈을 보고 몸을 웅크렸다⁠.

외눈 수컷은 흐리지 않은 눈으로 길 건너 크레인을 보았다⁠. 크레인은 이틀째 멈춰 있었다⁠. 크레인 꼭대기 평형추 틀에 까마귀 몇이 앉아 있었다⁠. 무리가 줄어 있었다⁠. 젊은 까마귀 하나가 외눈 수컷 곁으로 와서 길 건너를 보며 짧게 깍 했다⁠. 돌아가자는 소리였다⁠.

외눈 수컷은 대답하지 않았다⁠. 반짝이는 끈이 외눈 수컷의 머리 위에서 뒤집혔다⁠. 흰 깃 수컷이 여기 있었다면 정신을 놓았을 끈이었다⁠. 외눈 수컷은 끈을 보지 않고 크레인만 보았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에서 사흘을 잤다⁠. 사흘 동안 외눈 수컷은 크레인의 흔들림을 날마다 길 건너에서 세었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 위에서 흔들리는 크레인을 세는 일은 크레인 위에서 흔들리는 것보다 더 잠을 쫓았다⁠.

*

검댕은 한밤에 사다리를 오르는 발소리를 들었다⁠. 크레인 기사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크레인 기사는 한 칸씩 고르게 올랐다⁠. 이 발소리는 한 칸 오르고 멈췄고⁠, 두 칸 오르고 오래 멈췄다⁠.

검댕은 크레인 몸통을 따라 내려갔다⁠. 손전등 불빛이 사다리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흰 안전모였다⁠. 기만은 사다리에 몸을 바짝 붙이고⁠, 아래를 보지 않으려고 이마를 쇠에 댄 채 손만 위로 뻗었다⁠. 허리춤에 갈고리 장대가 묶여 있었다⁠. 아침에 원청 안전 점검이 크레인을 보러 온다는 말을 검댕은 낮에 들었다⁠. 둥지가 나오면 안 된다는 말도 들었다⁠. 크레인 기사는 둥지를 뜯지 않겠다며 그만두었다⁠.

검댕은 기만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발톱이 흰 안전모를 긁었다⁠. 기만이 사다리를 움켜쥔 채 몸을 웅크렸다⁠. 검댕은 다시 날아올라 다시 내리꽂혔다⁠. 이번에는 발톱이 기만의 볼을 스쳤다⁠. 볼에 붉은 줄이 났다⁠.

기만은 손을 휘두르지 않았다⁠. 휘두르면 사다리를 놓아야 했다⁠. 기만은 한 손을 위로 뻗어 다음 칸을 잡았다⁠.

“⁠그래⁠, 쪼아라⁠. 쪼아도 올라간다⁠.⁠”

검댕은 쉰 울음을 끌었다⁠. 잠든 무리가 깨어 울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울음이 크레인 몸통을 감쌌다⁠. 기만은 울음 속에서 한 칸⁠, 또 한 칸 올라왔다⁠. 스물한 층 쇠팔이 박힌 벽 옆을 지날 때 기만이 멈췄다⁠. 손전등으로 벌어진 금을 비췄다⁠. 금은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기만이 금을 오래 보다가 다시 올랐다⁠. 검댕은 쪼기를 멈추고 기만의 머리 위를 따라 날았다⁠.

꼭대기에 닿았을 때 기만은 무릎을 꿇고 쇠 발판에 엎드렸다⁠. 숨이 거칠었다⁠. 다리가 떨렸다⁠. 아래로 신도시의 불빛이 다 보였다⁠. 불 켜진 아파트 숲⁠, 길게 이어진 가로등⁠, 가로등 너머 불빛이 끝나는 어둠⁠. 기만은 아래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었다⁠. 손전등 불빛이 평형추 틀 안을 비췄다⁠.

짝이 찢어진 둥지에서 일어났다⁠. 날개를 반쯤 펴고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기만이 손전등을 내렸다⁠. 불빛이 둥지 바닥을 비췄다⁠. 비어 있었다⁠. 틀 바닥 쇠 위에 푸르스름한 껍데기 조각들이 말라 붙어 있었다⁠. 둥지 가장자리 철사 사이에서 무언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기만이 손을 뻗었다⁠. 짝이 부리로 기만의 손등을 쪼았다⁠. 기만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철사 사이에서 은빛 물고기를 조심스럽게 빼냈다⁠. 쇠고리에 작은 열쇠 둘이 매달려 있었다⁠.

“⁠이거 내 거네⁠.⁠”

기만이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래 보았다⁠. 물고기 장식을 엄지로 문질렀다⁠.

“⁠목포 집 앞바다에서 잡히던 고기다⁠. 울 엄마가 장에서 사다 준 거여⁠.⁠”

검댕은 평형추 틀 위에 내려앉았다⁠. 기만의 얼굴이 손 두 뼘 거리에 있었다⁠. 끊긴 왼쪽 눈썹⁠. 턱 밑의 점⁠. 볼의 붉은 줄⁠. 검댕은 울지 않았다⁠. 고개를 기울여 기만의 얼굴을 보았다⁠. 기만이 검댕을 보았다⁠.

“⁠니 새끼들이었냐⁠.⁠”

기만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니들이 열쇠까지 물어 가서 막았는디⁠, 나는 이튿날 새 열쇠 받아서 또 뺐다⁠.⁠”

바람이 한 번 불었다⁠. 크레인이 기울었다⁠. 기만이 한 손으로 쇠 발판을 움켜쥐었다⁠. 다른 손에는 열쇠를 쥐고 있었다⁠. 크레인이 돌아오기까지 숨 다섯이 지나갔다⁠. 기만은 갈고리 장대를 허리에서 풀었다⁠. 풀어서 평형추 틀 옆 쇠 난간에 걸쳐 놓고 다시는 집지 않았다⁠.

기만은 열쇠를 쥔 채 사다리로 돌아갔다⁠. 내려가는 발소리는 오를 때보다 느렸다⁠. 검댕은 기만의 머리 위를 따라 내려갔다⁠. 쪼지 않았다⁠. 바닥에 닿은 기만은 하청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 불을 켰다⁠. 책상 위에 확인서가 놓여 있었다⁠. 기만이 은빛 물고기를 확인서 위에 내려놓았다⁠. 검댕은 창틀에서 보았다⁠. 기만은 펜을 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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