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75자)

매

까마귀는 잊지 않는다 · 강여울

짝은 갈고리가 둥지 가장자리를 물어뜯는 소리를 몸으로 들었다⁠. 철사 가닥이 하나씩 끊어질 때마다 바닥이 기울었다⁠. 검댕이 운전석 창으로 날아들었다⁠. 크레인 기사가 팔로 얼굴을 막았고⁠, 검댕의 발톱이 작업복 소매를 긁고 지나갔다⁠. 크레인 기사는 장대를 놓지 않았다⁠.

짝은 둥지를 떠나지 않았다⁠. 둥지 바닥에 발톱을 박고 버텼다⁠. 바닥의 철사 한 가닥 한 가닥을 짝은 다 안다⁠. 지난봄 야적장 철근 더미 밑에서 짝이 직접 물어 온 것들이었다⁠. 짧은 것은 둘레에 감았고 긴 것은 바닥에 엇갈려 깔았다⁠. 엇갈린 자리마다 마른 가지를 끼워 넣었고⁠, 가지 위에는 펜스 밖 길가에서 주운 비닐 끈을 깔았다⁠. 둥지 하나에 봄 한 철이 들어 있었다⁠. 갈고리가 한 번 더 당겨지자 둥지 전체가 크레인 팔 난간에서 들렸다⁠. 짝은 들린 둥지와 함께 허공으로 기울다가 마지막 순간에 날개를 폈다⁠.

둥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크레인 기사는 장대를 천천히 운전석 안으로 끌어들였고⁠, 둥지를 두 손으로 받아 무릎 위에 놓았다⁠. 짝은 운전석 지붕에 내려앉아 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크레인 기사는 발밑에서 누런 마대 자루를 꺼내 둥지를 넣었다⁠. 던지듯 넣지 않았다⁠. 구겨지지 않게 둥지 밑을 받쳐 자루 바닥에 눕혔다⁠.

크레인 기사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짝은 사람 눈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물은 대개 바람 부는 날 나왔다⁠. 오늘은 바람이 없었다⁠.

“⁠니 서방한테 말해라⁠. 느그 집 내가 안 버린다고⁠.⁠”

짝은 운전석 지붕을 부리로 두 번 쪼았다⁠. 크레인 기사가 고개를 들어 지붕을 보았고⁠, 이가 하나 빠진 입으로 웃으려다 말았다⁠. 짝은 이 얼굴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밥을 던지던 얼굴이 둥지를 뜯었다⁠. 늙은 암까마귀는 한 얼굴에 한 울음만 붙였다⁠. 밥이 오는 얼굴과 위험한 얼굴을 한꺼번에 붙이는 법은 늙은 암까마귀도 가르친 적이 없었다⁠.

*

검댕은 아래에서 방울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야적장 한가운데서 매잡이가 왼팔을 높이 들었다⁠. 매가 장갑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갈색 날개가 공중에서 한 번 접혔다 펴지자 매는 조명탑 높이까지 단숨에 올라왔다⁠.

무리가 흩어졌다⁠. 짧고 날카로운 깍깍깍이 사방에서 터졌다⁠. 매는 흩어지는 까마귀들 가운데 가장 느린 하나를 골랐다⁠. 흰 깃 수컷이었다⁠. 흰 깃 수컷은 하필 오늘 아침 새로 주운 은빛 병뚜껑을 물고 있었다⁠. 병뚜껑을 버리면 빨리 날 수 있었다⁠. 흰 깃 수컷은 병뚜껑을 버리지 않았다⁠.

검댕이 옆에서 매에게 부딪쳤다⁠. 깃과 깃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매가 몸을 틀어 발톱을 뻗었고⁠, 검댕은 날개 하나를 접고 떨어지듯 피했다⁠. 매가 다시 흰 깃 수컷을 쫓기 시작한 순간 위에서 외눈 수컷이 내리꽂혔다⁠.

외눈 수컷과 검댕은 어제 크레인 팔에서 서열을 다퉜다⁠. 오늘은 서로 보지 않고도 번갈아 들어갔다⁠. 외눈 수컷이 위에서 누르면 검댕이 옆을 쳤고⁠, 검댕이 물러나면 외눈 수컷이 매의 꽁지를 물었다⁠. 매가 크게 한 바퀴 돌며 외눈 수컷을 발로 차냈다⁠. 검은 꽁지깃 몇 개가 허공에 흩어졌다⁠. 외눈 수컷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펜스 위에 겨우 내려앉았다⁠.

매가 높이를 잃었다⁠. 다른 까마귀들이 하나둘 돌아와 매의 등 위를 덮었다⁠. 매는 결국 날개를 접고 매잡이의 장갑으로 돌아갔다⁠. 장갑 위에서 매가 깃을 부풀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늙은 암까마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크레인 꼭대기 가장 높은 난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늙은 암까마귀의 고개는 매가 아니라 야적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흰 안전모로 향해 있었다⁠.

마당에서 노란 머리들이 손뼉을 쳤다⁠.

“⁠까마귀가 이겼다⁠!⁠”

“⁠소장님⁠, 매 불렀는데 까마귀가 이겼어요⁠! 돈 돌려받아야겠는데요⁠?⁠”

펜스 위에서 외눈 수컷이 꽁지를 펴 보려고 했다⁠. 꽁지는 반밖에 펴지지 않았다⁠. 흰 깃 수컷이 외눈 수컷 옆에 내려앉아 은빛 병뚜껑을 자랑하듯 내려놓았다⁠. 외눈 수컷이 병뚜껑을 부리로 쳐서 펜스 밖으로 떨어뜨렸다⁠. 흰 깃 수컷은 병뚜껑을 쫓아 펜스 밖으로 날아갔다⁠.

*

흰 깃 수컷은 병뚜껑이 떨어진 자리를 금방 찾았다⁠. 펜스 밖 보도블록 위⁠, 여자의 운동화 앞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자리에서 손바닥만 한 판을 들어 건물을 찍는 여자였다⁠. 여자는 오늘도 판을 들고 있었고⁠, 판 안에서 조금 전의 매와 까마귀들이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가 허리를 숙여 병뚜껑을 주웠다⁠. 흰 깃 수컷은 펜스 기둥 위에 앉아 고개를 이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였다⁠. 저것은 흰 깃 수컷의 것이었다⁠. 여자가 병뚜껑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흰 깃 수컷을 보았다⁠.

“⁠이거 네 거야⁠?⁠”

흰 깃 수컷은 짧게 깍 했다⁠. 여자가 웃었다⁠. 여자는 병뚜껑을 펜스 기둥 아래 시멘트 턱에 내려놓고 두 걸음 물러났다⁠. 흰 깃 수컷은 여자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둥근 안경을 썼고⁠, 입가에 웃음이 남아 있었고⁠, 눈은 다시 건물로 가 있었다⁠. 흰 깃 수컷은 내려가 병뚜껑을 물었다⁠.

여자가 귀에 휴대전화를 댔다⁠.

“⁠응⁠, 나 또 현장 왔어⁠. 오늘 골조 스물한 층까지 올라갔더라⁠. 우리 집은 열여덟 층이니까 벌써 지붕 생긴 거야⁠. 근데 여기 까마귀들이 매를 이겼어⁠. 진짜야⁠. … 아니⁠, 크레인 꼭대기가 좀 흔들리는 거 같아서 찍어 뒀어⁠. 바람도 없는데⁠.⁠”

흰 깃 수컷은 우리 집이라는 소리를 몰랐다⁠. 여자가 이 소리를 할 때 손가락이 회색 나무의 중간쯤을 가리켰다는 것만 보았다⁠. 흰 깃 수컷은 병뚜껑을 물고 평형추 틀로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여자의 얼굴을 반짝이 옆에 넣어 두었다⁠. 밥을 주지도 않았고 위험하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넣어 두는 자리는 따로 없었다⁠.

*

검댕은 매잡이의 화물차 지붕에 내려앉았다⁠. 기만이 매잡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돈 받았으면 끝까지 해 주셔야죠⁠.⁠”

“⁠둥지는 뜯었잖아요⁠. 뜯은 자리에 다시 지을 거예요⁠. 까마귀는 저 크레인을 지 나무로 알아요⁠.⁠”

“⁠그러니까 아예 못 오게 해 달라는 겁니다⁠. 방법이 있을 거 아닙니까⁠. 돈은 더 드릴게요⁠.⁠”

매잡이가 장갑 위의 매를 상자에 넣었다⁠. 상자 문을 닫고 천을 덮은 다음에야 기만을 돌아보았다⁠.

“⁠독 놓으라는 거면 안 해요⁠. 법으로도 안 되고⁠, 나도 안 해요⁠.⁠”

“⁠독이라고는 안 했습니다⁠.⁠”

“⁠소장님 얼굴이 그렇게 말했어요⁠.⁠”

기만의 얼굴이 붉어졌다⁠. 매잡이는 가죽 장갑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 크레인 꼭대기를 한참 올려다보았다⁠. 늙은 매잡이의 눈가에 주름이 모였다⁠.

“⁠근데 소장님⁠, 매 띄울 때 보니까 크레인 꼭대기가 좀 놀던데⁠. 바람도 없는데 끝이 움찔움찔하더라고요⁠. 그거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기만이 대답하지 않았다⁠. 검댕은 기만의 얼굴을 보았다⁠. 붉던 얼굴이 하얘졌다⁠. 기만은 매잡이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매잡이는 봉투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화물차에 올랐다⁠. 화물차 지붕에서 검댕이 날아오르자 매잡이가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너는 저 사람 얼굴 잊지 마라⁠, 잉⁠! 나는 잊어 줄라니까⁠!⁠”

*

외눈 수컷은 꽁지가 반쯤 빈 채로 크레인 꼭대기에 돌아왔다⁠. 둥지가 있던 난간은 비어 있었다⁠. 끊어진 철사 몇 가닥이 바람에 흔들렸다⁠. 무리가 난간에 줄지어 앉아 빈자리를 보았다⁠.

외눈 수컷이 목깃을 부풀렸다⁠. 꽁지는 부채처럼 펴지지 않고 듬성듬성 펴졌다⁠. 젊은 까마귀 하나가 짧게 깍 하고 웃다가 늙은 암까마귀의 눈길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외눈 수컷은 고개를 숙여 절하는 대신 길 건너 아파트 숲 위로 날았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무리에 길을 보여 주는 몸짓이었다⁠. 저기 나무가 있다⁠, 저기는 안 흔들린다⁠. 젊은 까마귀 셋이 외눈 수컷을 따라 날았다가 돌아왔다⁠.

검댕은 따라 날지 않았다⁠. 검댕은 크레인 팔을 따라 반대편 끝으로 걸어갔다⁠. 크레인의 반대편 끝에는 회색 콘크리트 덩이들을 쇠틀에 쌓아 매단 평형추가 있었다⁠. 크레인이 무거운 것을 들 때 넘어지지 않게 반대편을 누르는 덩이들이었다⁠. 덩이와 덩이 사이에⁠, 쇠틀과 덩이 사이에 틈이 많았다⁠. 흰 깃 수컷의 반짝이가 숨겨진 틈도 여기 있었다⁠. 바람이 들이치지 않았고⁠, 위에서 매가 내려다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검댕은 가장 깊은 틈 앞에 앉아 고개를 짝에게 돌렸다⁠. 짝이 날아와 틈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부리로 틈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외눈 수컷이 아파트 숲 위를 한 바퀴 더 돌고 돌아와 검댕을 노려보았다⁠. 검댕은 외눈 수컷을 보지 않았다⁠. 무리는 둘로 갈라질 뻔했고⁠, 갈라지지 않았다⁠. 외눈 수컷을 따라 날았던 젊은 셋도 해 질 녘에는 평형추 틀 근처에 내려앉았다⁠. 외눈 수컷도 마지막에 내려앉았다⁠. 아직은⁠.

해가 지자 무리는 야적장으로 내려갔다⁠. 철근 더미 옆에 결속선 뭉치가 쌓여 있었다⁠. 검댕이 철사 한 가닥을 물고 날면 짝이 다음 가닥을 물었다⁠. 젊은 까마귀 하나가 너무 긴 가닥을 물었다가 철사 끝이 발에 감겨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흰 깃 수컷은 철사 대신 쇠 와셔 하나를 물고 와 둥지 자리 한가운데 놓았다⁠. 짝이 와셔를 부리로 밀어 구석으로 치웠다⁠. 흰 깃 수컷이 다시 가운데로 밀었다⁠. 짝이 다시 치웠다⁠.

크레인 발치에는 누런 마대 자루 하나가 평형추로 오르는 사다리 첫 칸에 매달려 있었다⁠. 자루 입구가 벌어져 있었다⁠. 짝이 내려가 자루 안을 들여다보았다⁠. 지난봄 둘이 엮은 철사와 가지가 구겨지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짝은 낯익은 가지를 하나 물고 평형추 틀로 올라갔다⁠. 무리가 따라 내려가 자루를 하나씩 비웠다⁠.

*

검댕은 한밤에 크레인 몸통이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쇠가 길게 울었다⁠. 바람은 없었다⁠. 평형추 틀 안의 새 둥지는 크레인 팔 끝보다 덜 기울었다⁠. 그래도 기울었다⁠. 짝이 바닥에 몸을 붙였다⁠. 검댕은 쏠림을 발가락으로 받았다⁠. 크레인 팔 끝에서는 깃 두 올만큼 쏠렸고⁠, 평형추 틀 안에서는 깃 한 올만큼 쏠렸다⁠. 무거운 덩이들 사이라서 덜 흔들렸다⁠. 덜 흔들릴 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쏠림이 멈추는 데 걸리는 숨도 지난밤보다 하나 길었다⁠.

크레인 몸통을 따라 내려다보니 짓다 만 건물 안에 불빛 하나가 있었다⁠. 쇠팔이 건물 벽에 박힌 높이였다⁠. 노란 머리들은 쇠팔이 박힌 높이를 스물한 층이라고 불렀다⁠. 검댕은 평형추에서 날아 내려가 건물 바깥 비계⁠, 사람들이 벽을 타고 오르내리려고 쇠파이프로 엮어 둔 발판에 앉았다⁠.

기만이 혼자 서 있었다⁠. 손전등을 벽에 비추고 있었다⁠. 크레인을 붙든 쇠팔이 벽에 박힌 자리 둘레로 거미줄 같은 금이 나 있었다⁠. 기만이 손바닥을 금 위에 댔다⁠. 크레인 몸통이 다시 울었다⁠. 쇠팔이 미세하게 떨렸고⁠, 손바닥 밑에서 회색 가루가 부스스 떨어졌다⁠. 기만은 손을 떼지 않았다⁠. 떨리는 벽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다⁠.

기만이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부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스물한 층 크레인 이음 벽에 금이 갔습니다⁠. … 네⁠, 제 눈으로 봤습니다⁠. 보강하려면 크레인 세우고 공정 멈춰야 합니다⁠. … 네⁠. … 사흘도 안 됩니까⁠. … 알겠습니다⁠.⁠”

기만은 전화기를 내리고 한참 벽 앞에 서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바닥을 향했다⁠. 검댕은 비계 위에서 고개를 기울여 기만의 얼굴을 보았다⁠. 끊긴 왼쪽 눈썹이 떨렸다⁠. 겁이 날 때 사람 얼굴은 하얘진다⁠. 기만의 얼굴은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벽보다 하얬다⁠.

기만은 알고 있었다⁠.

멀리 정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불 끈 트럭 한 대가 야적장으로 굴러 들어왔다⁠. 기만은 손바닥에 묻은 회색 가루를 바지에 문질러 닦고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계단에 발소리가 울리는 동안 크레인 몸통이 한 번 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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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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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줄요약2026.10.31· 3화

    둥지 하나에 봄 한 철이 들어 있었다는 문장 너무 좋아요. 기만은 금 간 걸 알면서 트럭을 들인 거죠?

    • 강여울작가2026.10.31

      네, 알고 들였어요. 기만에게도 지켜야 할 사람이 이백 명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