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워진 남자와 돌아온 남자
윤재하·BL·GL
새벽 두 시에 공조기가 꺼지면, 그때부터는 둘뿐이다.
여의도 회계법인 이십팔 층. 감사팀 매니저 서지환은 오 년 전 세운정밀의 장부에서 이상한 것을 보고했다. 회사는 그를 자르지 않았다. 결재선에서 이름만 뺐다. 일은 그대로 하는데 그의 칸은 검토자도 승인자도 아닌 열람자이고, 열람 기록은 삼십 일이면 지워진다. 감사 시즌이 시작되고 부산에서 회계사 하나가 파견을 온다. 오 년 전 같은 보고서에 이름을 올리기로 했다가 대답하지 않고, 그해 여름 말없이 내려간 막내 남건우. 감사 대상 세운정밀의 대표는 그의 이복형이다. 삼 년을 준비해 들어온 수습 오채린이 오 년 전 지환이 본 것을 그대로 찾아낸다. 거래처 열아홉 곳의 주소가 네 개. 조용히 가자는 파트너, 반송하면서 이름을 안 쓰는 품질관리실, 남의 이름을 도장처럼 쓰는 대표. 첫 주에는 서류만 오가고, 둘째 주 새벽 두 시에 공조기가 꺼지면 그때부터는 둘뿐이다. 열람자에서 작성자로, 검토자로, 그리고 비어 있는 승인자 칸까지. 한 칸 올라갈 때마다 누군가 무엇을 내준다.
끼어들지 못한 채 지켜보기만 하는 시선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감사팀이 그런 자리입니다. 남의 회사 장부를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일인데, 정작 자기 조직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안 봅니다. 결재선을 소재로 삼은 것은, 조직이 사람을 밀어낼 때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르면 기록이 남고 말이 나옵니다. 이름만 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당하는 사람도 어디에 항의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인물들이 서로에게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앞 작품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썼는데, 이번에는 말하기로 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쓰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은 원작의 인물·설정·문장을 사용하지 않은 독립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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