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68자)

파견자 명단

결재선에 없는 사람 · 윤재하

감사 시즌에는 28층 불이 안 꺼진다.

정확히는 두 시에 한 번 꺼진다. 공조기가 자동으로 멈추는 시간이다. 그때 층 전체가 조용해지는데, 조용해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동안 무슨 소리가 나고 있었는지 안다.

서지환은 그 시간을 좋아했다.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냥 두 시에 자리에 남아 있었고, 오 년 동안 그랬고,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매니저님.”

돌아보니 수습이 서 있었다.

“오채린입니다. 이번 시즌에 조서 보조로 붙었습니다.”

“네.”

“…….”

“앉으세요.”

채린은 앉지 않았다. 파일 한 뭉치를 들고 서 있었다.

“어디에 앉습니까?”

지환이 옆자리를 가리켰다. 시즌에는 파견자와 보조가 그 줄을 쓴다.

“거기 두 자리 다 비어 있습니다.”

“…….”

“하나는 부산에서 오는 분 자리입니다.”

채린이 파일을 내려놓았다. 내려놓고 나서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매니저님.”

“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지환이 화면에서 눈을 뗐다.

“말씀하세요.”

“조서 검토자 칸은 누가 정합니까?”

“…….”

“시스템이 자동으로 넣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제 올린 거는 비어서 왔습니다.”

지환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파트너가 정합니다.”

“그럼 자동이 아니네요.”

“…….”

“기본값은 자동입니다. 손으로 바꿀 수 있게 돼 있고요.”

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자기 자리로 갔다.

지환은 화면을 다시 봤다. 손이 키보드 위에 있었는데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명단은 아침에 왔다.

감사본부 전체 메일이었다. 이번 시즌 담당 배정. 표가 하나 붙어 있고 회사 이름이 열두 개 있다.

맨 위에 그 이름이 있었다.

지환은 그 줄을 오래 봤다. 오래 봤다는 것을 자기가 알아챌 만큼 오래.

「담당 매니저: 서지환」

다섯 해 만이었다.

메신저가 울렸다. 차미숙 파트너였다.

**차미숙**: 서 매니저, 잠깐

파트너실은 통유리다. 안에서 밖은 보이는데 밖에서 안은 잘 안 보인다. 그 유리를 넣은 게 삼 년 전이고, 넣을 때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앉아.”

지환이 앉았다.

미숙은 서류를 보고 있었다. 한참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부산에서 하나 온다.”

“…….”

“남건우.”

지환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네.”

“괜찮나.”

“무엇이 말입니까?”

미숙이 펜을 놓았다.

“서 매니저.”

“…….”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내가 물어볼 게 없어져.”

“괜찮습니다.”

“…….”

“일하는 데 지장 없습니다.”

미숙이 서류를 덮었다.

“그 회사 말이야.”

“네.”

“이번에는 조용히 가자.”

지환은 그 말을 들었다. 듣고 나서 삼 초쯤 아무 말도 안 했다.

“조용히라는 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서 매니저.”

“네.”

“오 년이면 사람이 좀 편해지지 않나.”

지환이 일어섰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앉아.”

지환이 앉았다.

미숙이 의자를 돌렸다. 유리 너머로 한강이 보였다. 여의도에서 보는 한강은 늘 같은 각도다.

“나는 자네를 자른 적이 없어.”

“압니다.”

“지금도 매니저야. 급여도 그대로고.”

“압니다.”

“…….”

“그런데 왜 그 얼굴을 하나.”

지환이 미숙을 봤다.

“파트너님.”

“어.”

“작년에 제가 쓴 조서가 몇 건입니까?”

미숙이 대답하지 않았다.

“백열두 건입니다. 본부에서 제일 많습니다.”

“…….”

“그중에 제 이름이 검토자 칸에 들어간 게 몇 건인지 아십니까?”

“…….”

“영 건입니다.”

파트너실이 조용해졌다.

미숙이 다시 의자를 돌렸다.

“나가 봐.”

남건우는 오후 세 시에 왔다.

캐리어를 끌고 왔다. 부산에서 KTX를 타고 바로 온 모양이었다. 셔츠가 구겨져 있었다.

층에 들어서면서 그는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오 년 전에 이 층에서 이 년을 일했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환의 자리 앞에서 멈췄다.

“오랜만입니다.”

지환이 고개를 들었다.

“네.”

“…….”

“자리 저기입니다.”

건우가 웃었다.

“그게 답니까?”

“…….”

“오 년 만인데.”

지환은 화면을 봤다.

“짐 푸시고 명단 확인하십시오. 킥오프 다섯 시입니다.”

건우가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

“서 매니저님.”

“네.”

“저 부산에서 뭐 하고 살았는지 안 궁금하십니까?”

지환이 키보드를 쳤다.

“안 궁금합니다.”

킥오프는 회의실에서 했다.

미숙이 앞에 서고 일곱 명이 앉았다. 채린은 맨 끝에 앉아서 노트를 폈다.

“이번 시즌 열두 건. 순서는 화면에 있는 대로.”

미숙이 화면을 넘겼다.

맨 위 회사가 떴다.

“이건 서 매니저가 봅니다. 남 회계사가 붙고, 오 수습이 조서 보조.”

건우가 고개를 들었다.

“파트너님.”

“어.”

“제가 이 건에 붙습니까?”

미숙이 건우를 봤다.

“왜, 못 하겠나.”

“…….”

“남 회계사.”

“아닙니다.”

“그러면 됐어.”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갔다.

지환이 마지막으로 나가려는데 채린이 옆에 붙었다.

“매니저님.”

“네.”

“이 회사 저희가 오 년 전에도 봤네요.”

지환이 멈췄다.

“…….”

“어떻게 아셨습니까?”

채린이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과거 조서 이력 봤습니다. 신입 교육 때 배웠습니다, 전기 조서 먼저 보라고.”

“…….”

“근데 이상한 게 있어서요.”

“무엇이 말입니까?”

채린이 화면을 넘겼다.

“오 년 전 조서에 특기사항이 하나 붙어 있는데, 그 특기사항에 연결된 문서가 없습니다.”

지환은 그 화면을 봤다.

「특기사항: 매출채권 회수기간 관련 — 별도 보고」

별도 보고. 그 아래에 아무것도 없다.

“매니저님.”

“…….”

“별도 보고면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지환이 태블릿에서 눈을 뗐다.

“없으면 없는 겁니다.”

“없을 수가 있습니까?”

“…….”

“오 수습.”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십시오.”

채린이 태블릿을 내렸다. 내리면서 지환을 봤다. 그 눈이 물러서지 않는 눈이었다.

지환은 그 눈을 알고 있었다.

오 년 전에 거울에서 봤다.

두 시에 공조기가 꺼졌다.

층이 조용해졌다. 남아 있는 사람은 셋이었다. 지환, 건우, 그리고 채린.

채린이 먼저 일어섰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네.”

“…….”

“조심히 가십시오.”

채린이 나가고 둘이 남았다.

건우가 의자를 돌렸다.

“서 매니저님.”

지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 년 전에요.”

“…….”

“그 보고서, 아직 갖고 계십니까?”

지환이 화면을 껐다.

꺼진 화면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왜 물으십니까?”

건우가 잠깐 말이 없었다.

“그 회사요.”

“…….”

“대표가 바뀌었습니다.”

“압니다. 명단에 있었습니다.”

“…….”

“그 사람요.”

건우가 자기 손을 봤다.

“제 형입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건우가 계속 말했다.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이복형입니다. 아버지가 재혼하기 전에 낳은 사람이고, 저는 스무 살 때 처음 봤습니다.”

“…….”

“오 년 전에 대표였던 사람이 아버지고요.”

지환이 의자를 돌렸다.

“남 회계사.”

“네.”

“그때 왜 말 안 했습니까?”

건우가 웃었다. 웃는데 얼굴이 안 웃었다.

“말했으면요.”

“…….”

“말했으면 매니저님이 그 보고서 안 올리셨을 겁니까?”

“…….”

“올리셨을 겁니다.”

지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 했습니다.”

건우가 자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할 게 없는데 정리했다.

“그러면 이름은 왜 안 올렸습니까?”

건우의 손이 멈췄다.

“…….”

“보고서 말입니다. 검토자 칸에 남 회계사 이름을 넣기로 했었습니다. 그 전날 밤에 정했습니다.”

“…….”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없었습니다.”

건우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매니저님.”

“네.”

“제가 그날 아침에 어디 있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

“병원이었습니다.”

지환이 건우를 봤다.

“아버지가 그날 새벽에 쓰러졌습니다.”

“…….”

“회사 얘기 들으시고요.”

층이 조용했다. 공조기가 꺼진 뒤의 조용함은 다른 종류다. 소리가 없는 게 아니라 소리를 만들던 것이 멈춘 거다.

“그래서요.”

지환이 물었다.

“그래서 이름을 뺐습니까?”

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뺀 게 아닙니다.”

“…….”

“그날 아침에 파트너님이 저한테 전화하셨습니다.”

지환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차 파트너님이요.”

“네.”

“…….”

“뭐라고 하셨습니까?”

건우가 지환을 봤다.

“「네 이름 빼 줄까」.”

“…….”

“그 말만 하셨습니다.”

“그래서요.”

“…….”

“남 회계사.”

건우가 눈을 내렸다.

“대답 안 했습니다.”

“…….”

“대답 안 하면 뺀다는 뜻이라는 걸, 저는 그때 몰랐습니다.”

지환은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압니까?”

“압니다.”

“…….”

“그래서 부산에서 오 년 있었습니다.”

지환이 일어섰다. 가방을 들었다.

“남 회계사.”

“네.”

“내일부터 조서는 제가 씁니다.”

“…….”

“검토는 남 회계사가 하십시오.”

건우가 고개를 들었다.

“…….”

“그거 파트너님이 정하는 거 아닙니까?”

지환이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쓰는 사람이 적어 넣는 겁니다.”

“…….”

“지우는 건 그다음 문제고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채린이 서 있었다.

“안 가셨습니까?”

“…….”

“가려다가요.”

채린이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매니저님.”

“네.”

“아까 그 별도 보고요.”

지환이 층 표시를 봤다. 28에서 숫자가 안 움직였다.

“오 수습.”

“네.”

“그거 찾지 마십시오.”

채린이 지환을 봤다.

“왜요.”

“…….”

“매니저님.”

엘리베이터가 왔다. 문이 열렸다.

지환이 탔다. 채린이 따라 탔다.

“오 수습.”

“네.”

“전환 심사가 언제입니까?”

채린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

“석 달 뒤입니다.”

“…….”

“그래서요.”

지환이 층 버튼을 봤다.

“그때까지는 찾지 마십시오.”

“찾고 나서 말 안 하면 됩니까?”

“…….”

“오 수습.”

“매니저님.”

채린이 태블릿을 가슴에 안았다.

“저 삼 년 준비했습니다.”

지환이 그를 봤다.

“…….”

“두 번 떨어졌고요. 이번이 세 번째였습니다.”

“…….”

“그래서 여기 오래 있고 싶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숫자가 하나씩 줄었다.

“근데요.”

채린이 말했다.

“오래 있으려고 못 본 척하면, 오래 있어서 뭐 합니까?”

문이 열렸다. 로비였다.

지환은 내리지 않았다. 채린이 먼저 내려서 돌아봤다.

“매니저님?”

“…….”

“먼저 가십시오.”

문이 닫혔다.

지환은 빈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었다. 거울에 자기가 비쳤다. 스물여섯 살은 아니었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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