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47자)

PC방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여향PC방은 일산 상가 이층⁠, 치과와 부동산 사이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유리문에 「⁠컵라면 물 셀프⁠」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문을 열면 컵라면 국물 냄새와 키보드 소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열 해 동안 같은 냄새였다⁠. 계산대 뒤 벽에는 열 해 전 결승 포스터가 아직 붙어 있었다⁠. 포스터 속 스물아홉 살의 내가 햇빛에 바래 하늘색이 되어 있었다⁠. 포스터 밑 선반에는 결승 우승컵이 놓여 있었다⁠. 손바닥 두 개를 포갠 만 한 은빛 컵이었고⁠, 어머니가 날마다 마른걸레로 닦아서 손님 얼굴이 비쳤다⁠. 십이월 마지막 날 오후 세 시⁠, 자리의 반이 차 있었다⁠. 대부분 서른 넘은 직장인들이었다⁠. 연말 휴가에 집에서 쫓겨난 얼굴들이었다⁠.

어머니는 계산대 안에서 라면 물을 올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국자를 내려놓지도 않고 말했다⁠.

“⁠왔나⁠. 살 빠졌네⁠.⁠”

“⁠빠졌어요⁠?⁠”

“⁠아니⁠. 그대로다⁠. 인사로 한 말이다⁠.⁠”

맨 구석 자리의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사십 대 중반⁠,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연말 회식을 마치고 바로 온 것이 분명했다⁠.

“⁠어⁠, 철벽이다⁠. 사장님 아들 진짜 철벽이었어⁠?⁠”

“⁠제 아들입니다⁠. 배 보면 알지예⁠.⁠”

남자가 크게 웃었다⁠. 어머니는 라면 물에 수프를 털어 넣으며 나를 구석 자리로 보냈다⁠. 은퇴하고 처음 방송을 켰던 자리였다⁠. 모니터 테두리에 내가 붙여 둔 스티커가 반쯤 벗겨진 채 남아 있었다⁠.

명곤은 비행 정지를 내리고 사흘 뒤 나를 휴가 보냈다⁠. 정리하고 오라고 했다⁠. 휴가 나흘째였다⁠. 무엇을 정리하라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노트북 가방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꺼내 PC방 모니터에 연결했다⁠. 와글TV 방송 시작 단추 위에서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 사십 초를 안 넘기려고 바로 눌렀다⁠.

*

「⁠형 살아 있었네 2⁠」 「⁠PC방이다⁠」 「⁠사장님 아들 방송⁠」 「⁠탁진엄마⁠: 라면드실분⁠」

“⁠어머니⁠, 계산대에서 채팅 치지 마세요⁠. 손님들 보세요⁠.⁠”

계산대에서 어머니가 고개도 안 들고 대답했다⁠. “⁠손님들도 다 니 방송 본다⁠.⁠”

PC방 안 여기저기서 웃음이 났다⁠. 넥타이 남자가 자기 모니터를 가리켰다⁠. 내 방송이 켜져 있었다⁠. 화면 속 화면 속에 내가 있었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아홉 성채를 했다⁠. 시청자 대전을 받았다⁠. 막았다⁠. 기다렸다가 끝냈다⁠. 손목이 저렸고⁠, 저린 손목을 주무르면서 채팅을 읽었다⁠. 채팅창 중간중간에 같은 말이 올라왔다⁠.

「⁠형 벙커 일기 언제 함⁠?⁠」 「⁠기체 대 기체 2탄⁠」 「⁠나 지원서 냄 형 덕에⁠」

마지막 줄을 친 아이디를 보았다⁠. 처음 보는 아이디였다⁠. 나이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디였다⁠. 나는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지원서 낸 분⁠. 그리고 혹시 저 때문에 낸 분들⁠.⁠” 채팅창이 잠깐 느려졌다⁠. “⁠제가 지난번 방송에서 기체 대 기체라고 했잖아요⁠. 그 말을⁠…⁠”

휴대전화가 떨렸다⁠. 계산대 옆에 엎어 둔 전화가 진동으로 책상 위를 미끄러졌다⁠. 화면에 「⁠모혜운 소령⁠」이 떴다⁠. 나는 마이크를 손으로 덮고 받았다⁠.

“⁠봉 조종사⁠. 방송 보고 있습니다⁠.⁠”

“⁠소령님도 제 방송 보세요⁠?⁠”

“⁠기록합니다⁠.⁠” 혜운의 목소리 뒤로 기록실 팬 소리가 났다⁠. 한 해 마지막 날에도 혜운은 기록실에 있었다⁠. “⁠서약 세 번째 조항입니다⁠. 작전 방식과 장비에 관한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기체 대 기체라는 말을 거두면⁠, 무엇으로 바꾸는지를 시청자가 묻습니다⁠.⁠”

“⁠그럼 거두지도 말라고요⁠?⁠”

“⁠거두는 것까지는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그다음은 기록합니다⁠.⁠”

혜운이 전화를 끊었다⁠. 화면에 통화 시간이 떴다⁠. 사십일 초였다⁠. 나는 마이크에서 손을 뗐다⁠. 채팅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을⁠?⁠」 「⁠형 끊김⁠?⁠」 「⁠뭔데뭔데⁠」

“⁠그 말은⁠… 제 몫만 맞는 말이었어요⁠. 다른 건 지금 말 못 해요⁠. 지원서는⁠,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세요⁠.⁠”

채팅창이 멈췄다가 다시 흘렀다⁠. 물음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넥타이 남자가 구석 자리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웃지 않았다⁠.

*

유리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들어왔다⁠. 회색 패딩을 입은 남자가 계산대 앞에서 멈췄다⁠. 짧게 친 머리⁠, 귀 위의 흰머리⁠. 군복을 벗으니 동네 약국 아저씨 같았다⁠.

“⁠두 시간이요⁠.⁠”

어머니가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귤을 쥐여 주던 손님을 알아보았다⁠.

“⁠장군님은 오천 원입니다⁠.⁠”

“⁠일반 요금이 얼마입니까⁠?⁠”

“⁠이천오백 원요⁠. 장군은 두 배⁠.⁠”

명곤은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내 냈다⁠. 어머니는 거스름돈 없이 이용권 카드를 내밀었다⁠. 명곤이 카드를 받아 들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내 방송 화면에 회색 패딩의 옆얼굴이 들어갔다⁠.

「⁠누구야⁠」 「⁠장군님이다⁠」 「⁠사복 장군님 ㄷㄷ⁠」 「⁠하이 하실 차례⁠」

명곤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이⁠.⁠”

「⁠제대로 하셨다 ㅋㅋㅋ⁠」 「⁠성장하셨네⁠」

명곤은 아홉 성채를 켰다⁠. 계정 이름이 화면에 떴다⁠. 「⁠철벽마흔번⁠」 나는 잠깐 말을 잊었다⁠. 채팅창은 잊지 않았다⁠.

「⁠아이디 실화냐⁠」 「⁠찐팬 인증⁠」 「⁠철벽마흔번 ㅋㅋㅋㅋ⁠」

“⁠한 판 하시겠습니까⁠?⁠”

“⁠방송 중이에요⁠.⁠”

“⁠압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여기서는 기밀 얘기를 안 하겠습니다⁠.⁠”

*

게임이 시작됐다⁠. 명곤은 시작하자마자 밀고 들어왔다⁠. 성채를 하나 짓고 남은 걸 전부 병력으로 바꿔서⁠, 내 왼쪽 끝 성채로 곧장 왔다⁠. 쉰넷의 손이 생각보다 빨랐다⁠. 키보드 소리가 일정했다⁠. 당직 서면서 마흔 번을 본 사람의 손이었다⁠.

“⁠빨리 끝내려고 하시네요⁠.⁠”

“⁠빨리 끝내야 덜 다칩니다⁠.⁠” 명곤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겨울 작전⁠, 편대장이 필요합니다⁠. 편대원 스무 명⁠. 신병이 대부분입니다⁠.⁠”

“⁠기밀 얘기 안 하신다면서요⁠.⁠”

“⁠게임 얘기입니다⁠. 아홉 성채 편대전⁠.⁠” 명곤이 내 성벽을 두드렸다⁠. 성벽이 버텼다⁠. “⁠편대장은 편대원마다 보조를 켤지 끌지 정할 수 있습니다⁠. 스무 명 손을 봉탁진 씨가 지키십시오⁠.⁠”

“⁠제가 안 가면요⁠?⁠”

“⁠스무 명 전원 보조를 켭니다⁠. 신병은 망설이니까요⁠. 망설이면 보조가 끝냅니다⁠. 감자칩 조종사처럼⁠.⁠”

넥타이 남자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뒤로 왔다⁠. 머리에 두른 넥타이를 고쳐 매고 팔짱을 꼈다⁠. 다른 자리의 손님 둘이 따라왔다⁠. 금세 다섯이 우리 의자 뒤에 모였다⁠. 열 해 전 경기장 객석 맨 앞줄 같았다⁠. 한 사람이 컵라면을 들고 와서 먹으면서 보았다⁠.

“⁠철벽⁠! 막아⁠! 막아⁠!⁠”

“⁠아저씨⁠, 조용히 좀 해 주세요⁠. 손님들 계세요⁠.⁠”

“⁠나도 손님이야⁠!⁠”

어머니가 계산대에서 소리쳤다⁠. “⁠거 서서 보는 사람은 백 원씩 내소⁠.⁠”

다섯이 동시에 주머니를 뒤졌다⁠. 명곤의 입꼬리가 한 번 올라갔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내 성채 하나가 무너졌다⁠. 채팅창이 흔들렸다⁠. 「⁠형 밀린다⁠」「⁠철벽 무너짐⁠?⁠」 나는 기다렸다⁠. 명곤의 병력이 두 번째 성채로 몰렸다⁠. 몰리는 동안 명곤의 본진이 비었다⁠.

“⁠게임에서는 그렇게 비우면 지세요⁠.⁠”

“⁠게임에서는 지면 다시 하면 됩니다⁠.⁠”

명곤의 병력이 두 번째 성채 앞에서 한 줄로 모였다⁠. 나는 한 줄이 되는 순간에 눌렀다⁠. 명곤의 병력이 성벽 앞에서 녹았다⁠. 남은 내 병력이 빈 본진으로 갔다⁠. 사십 분짜리 결승의 축소판이었다⁠. 십이 분 만에 명곤의 본진이 무너졌다⁠.

화면에 「⁠패배⁠」가 떴다⁠. 명곤이 마우스를 놓고 손목을 주물렀다⁠. 주무르면서 화면을 오래 보았다⁠.

“⁠역시⁠. 마흔한 번째입니다⁠.⁠”

“⁠안 갑니다⁠.⁠”

“⁠알겠습니다⁠.⁠” 명곤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용권은 한 시간 사십 분 남아 있었다⁠. “⁠남은 시간은 그냥 앉아 있겠습니다⁠. 오천 원 냈으니까요⁠.⁠”

어머니가 계산대에서 컵라면 두 개를 들고 왔다⁠. 하나는 내 앞⁠, 하나는 명곤 앞에 놓았다⁠. 명곤이 지갑을 꺼내자 어머니가 손을 저었다⁠.

“⁠장군님 라면은 공짜입니더⁠. 대신 우리 아들 손은 놔두이소⁠.⁠”

명곤이 지갑을 넣었다⁠. 컵라면 뚜껑을 열고 김을 한 번 맡았다⁠.

“⁠어머님⁠. 저도 어머님 아들 손을 놔두고 싶습니다⁠. 그런데 강화 초소에 스물한 살 손이 열넷 있습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계산대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어머니의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명곤은 라면을 몇 젓가락 먹다가 젓가락을 컵 위에 걸쳐 놓았다⁠. 방송은 아직 켜져 있었고⁠, 명곤은 마이크가 닿지 않게 목소리를 낮췄다⁠.

“⁠재작년 겨울⁠, 원격전투단이 생기기 전입니다⁠. 강화 해안 초소에서 둘이 죽었습니다⁠. 둘 다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하나는 입대 전에 이런 PC방에서 야간 알바를 했습니다⁠. 생활관 사물함에 아홉 성채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봉탁진 씨 얼굴이 있는 포스터였습니다⁠.⁠”

나는 젓가락을 쥔 채 명곤을 보았다⁠.

“⁠장례식장에서 그 포스터를 어머님께 돌려드렸습니다⁠. 그날 밤부터 결승을 다시 봤습니다⁠. 사람이 초소에 안 서고 화면이 서는 방법을 찾으려고 봤습니다⁠. 마흔 번째에 찾았습니다⁠. 기다리다가 한 번에 끝내는 손⁠.⁠”

명곤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라면이 불어 있었다⁠. 명곤은 불은 라면을 끝까지 먹었다⁠.

*

밤 아홉 시⁠, 방송을 끄고 장비를 챙기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샛별이었다⁠. 영상이 아니라 그냥 전화였다⁠.

“⁠스승님⁠.⁠”

목소리가 빨랐다⁠. 평소보다 더 빨랐다⁠. 빨라서 숨이 모자랐다⁠.

“⁠지솔이 초소 맞았어요⁠. 한 시간 전에요⁠. 열두 대가 한꺼번에 왔어요⁠. 보조 켜 놨는데⁠, 우리 편대 일곱 명이 다 막았는데⁠, 하나가 창으로 들어왔어요⁠.⁠”

“⁠지솔이는⁠?⁠”

“⁠팔이요⁠. 왼팔에 파편이요⁠. 지금 후송 중이에요⁠. 괜찮대요⁠. 지솔이가 괜찮다고 했어요⁠. 지솔이는 맨날 괜찮다고 해요⁠.⁠” 샛별이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내일이 전출이었어요⁠. 내일 1일자로 후방 가는 거였어요⁠. 하루 남았었어요⁠.⁠”

나는 컵라면 국물이 식어 가는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명곤 앞의 컵라면은 비어 있었다⁠. 명곤은 다 먹었다⁠. 국물까지 다 마셨다⁠.

“⁠스승님⁠, 와 주세요⁠. 편대에 스승님 있어야 돼요⁠. 저 혼자 빠르면 안 돼요⁠. 누가 기다려 줘야 돼요⁠.⁠”

전화가 끊겼다⁠. 옆자리에서 명곤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같은 소식을 받은 얼굴이었다⁠. 명곤은 휴대전화를 엎어 놓고 나를 보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밀지 않았다⁠.

어머니가 계산대에서 나왔다⁠. 손에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파스 두 통과 김치 한 통⁠, 그리고 선반 위의 우승컵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봉지를 내 무릎에 놓았다⁠.

“⁠컵은 왜요⁠?⁠”

“⁠니 자리에 놔라⁠. 니 손이 뭐 하던 손인지 보이게⁠.⁠”

“⁠가지 마라 캤제⁠.⁠”

“⁠네⁠.⁠”

“⁠가라⁠.⁠” 어머니가 내 손목 보호대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가서 니 손으로 해라⁠. 남의 손 말고⁠.⁠”

어머니는 계산대로 돌아가 라면 물을 다시 올렸다⁠. 넥타이 남자가 새해 카운트다운을 보겠다며 모니터를 방송 화면으로 돌렸다⁠. 화면 구석에 새해까지 남은 시간이 떠 있었다⁠.

나는 명곤을 보았다⁠.

“⁠편대장⁠, 하겠습니다⁠. 조건은 같아요⁠. 보조는 편대원이 정해요⁠. 제가 정하는 건 저 하나예요⁠.⁠”

명곤이 패딩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천 조각이었다⁠. 검은 바탕에 흰 실로 수놓은 두 글자⁠. 「⁠편대⁠」 찍찍이가 뒷면에 붙어 있었다⁠. 명곤은 패치를 내 키보드 옆⁠, 식은 컵라면 옆에 내려놓았다⁠.

패치 뒷면의 찍찍이가 PC방 조명 아래 하얗게 보였다⁠. 언제 만든 패치인지 묻지 않았다⁠. 손을 뻗어 패치를 집었다⁠. 찍찍이 갈고리가 손바닥 굳은살을 긁어 따끔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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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재하2026.11.01· 9화

    컵라면 국물 냄새가 열 해 동안 같았다는 PC방 장면에서 제 학창 시절이 다 떠올랐어요.

    • 여오령작가2026.11.01

      계산대 뒤 결승 포스터도 그대로예요. 탁진 씨가 그 포스터 앞에서 할 말을 고르는 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