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2자)

편대장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1월 2일 아침⁠, 조끼 왼쪽 어깨에 패치가 하나 늘었다⁠. 「⁠철벽⁠」 옆에 「⁠편대⁠」 찍찍이 두 장이 나란히 붙자 조끼가 조금 더 군복 같아졌다⁠. 지퍼는 배에서 멈추지 않고 한 번에 올라갔다⁠. 휴가 동안 어머니 김치에 맨밥만 먹은 덕이었다⁠. 주임원사가 조종동 정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경례를 했다⁠. 처음이었다⁠.

“⁠편대장님⁠, 오셨습니까⁠?⁠”

“⁠주임원사님⁠, 그러지 마세요⁠. 이상해요⁠.⁠”

“⁠군대는 원래 이상하다⁠. 아니⁠, 이상합니다⁠.⁠” 주임원사가 경례한 손을 내리다 말고 멈칫했다⁠. 반말과 존댓말 사이에서 손이 길을 잃었다⁠. “⁠편대장님이 계급이 없으셔서 제가 헷갈립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하던 대로 하면 팔굽혀펴기 시킵니다⁠.⁠”

“⁠그건 빼고요⁠.⁠”

주임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덧붙였다⁠. “⁠허리는 괜찮으시냐⁠.⁠” 반말이었다⁠. 나는 반말이 고마웠다⁠.

*

작전 설명실은 조종실 옆 작은 강의실이었다⁠. 책상 스무 개에 편대원 스무 명이 앉아 있었다⁠. 신병이 열넷⁠, 초청전 때부터 있던 조종사가 여섯이었다⁠. 샛별은 창가 맨 앞자리⁠, 감자칩은 맨 뒷자리였다⁠. 감자칩은 앞에 과자 봉지를 놓지 않았다⁠. 금발은 가운데에서 파란 보호대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칠판 앞에 가서 편대원들을 보았다⁠. 칠판 앞에 서 있으니 주임원사 같았다⁠. 의자를 돌려 거꾸로 앉고 등받이에 팔을 얹었다⁠. 방송할 때 버릇이었다⁠.

“⁠다들 조종석 밑 회색 상자 아는 사람⁠?⁠”

여섯이 손을 들었다⁠. 신병 열넷은 서로를 보았다⁠.

“⁠보조 사격 장치예요⁠. 표적을 오래 들여다보면 우리 대신 끝내요⁠. 우리가 망설이는 걸 알아채요⁠. 그 상자가 배운 손이 제 손이에요⁠. 열 해 전에 제가 팔았어요⁠. 다들 들어 둬요⁠. 다시는 안 말할 거예요⁠. 두 번 말하면 제가 감옥 가요⁠.⁠”

신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스무 살이라고 했다⁠. 볼에 여드름 자국이 있었다⁠.

“⁠그럼 지금 말씀하신 건 첫 번째예요⁠?⁠”

“⁠두 번째야⁠. 지난번에 조종실에서 한 번 했어⁠.⁠”

“⁠그럼 감옥이에요⁠?⁠”

“⁠아직은 사령관님이 문제 삼지 않으신대⁠.⁠” 나는 등받이에 턱을 괴었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정해요⁠. 보조 켤지 끌지⁠. 끄면 늦어요⁠. 켜면 내가 안 누른 게 터져요⁠. 뭐가 나은지는 저도 몰라요⁠. 각자 정해요⁠.⁠”

신병 하나가 또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안경 쓴 여자였다⁠.

“⁠보조 끄면 성과급 깎여요⁠?⁠”

“⁠깎여⁠. 늦으니까 격추가 줄어⁠.⁠”

“⁠얼마나요⁠?⁠”

“⁠나는 샛별이 반의반 받아⁠.⁠”

여자가 잠깐 계산하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반만 끄는 건 안 돼요⁠?⁠”

설명실에 웃음이 퍼졌다⁠. 샛별까지 웃었다⁠. 웃음이 가라앉고 나서 나는 대답했다⁠. “⁠안 돼⁠. 켜든지 끄든지 둘 중 하나야⁠.⁠”

종이를 한 장씩 돌렸다⁠. 종이마다 「⁠켠다⁠」「⁠끈다⁠」 두 낱말이 인쇄되어 있었다⁠. 고른 낱말에 동그라미를 치면 됐다⁠. 혜운이 만들어 준 종이였다⁠. 설명실에 볼펜 소리만 났다⁠.

감자칩이 제일 먼저 냈다⁠. 「⁠끈다⁠」에 동그라미가 두 번 그려져 있었다⁠. 금발이 냈다⁠. 「⁠끈다⁠」 신병들이 하나씩 냈다⁠. 「⁠끈다⁠」가 많았다가 「⁠켠다⁠」가 이어졌다⁠. 샛별이 마지막으로 냈다⁠. 「⁠켠다⁠」에 동그라미가 하나⁠, 반듯하게 그려져 있었다⁠.

열하나가 껐다⁠. 아홉이 켰다⁠. 나는 종이 스무 장을 가지런히 모아 책상에 놓았다⁠.

“⁠샛별아⁠.⁠”

“⁠지솔이 병원에 있어요⁠. 초소는 다른 애가 지솔이 자리 서요⁠. 그 애도 스물한 살이에요⁠.⁠” 샛별은 나를 보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창밖 들판에 눈이 얇게 깔려 있었다⁠. “⁠빠른 손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돼요⁠.⁠”

*

점심때 샛별의 휴대전화로 영상 통화가 왔다⁠. 지솔이었다⁠. 군 병원 침대에 누워 왼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깁스에 매직으로 글씨가 빼곡했다⁠. 「⁠쾌유 — 분대장⁠」「⁠빨리 와라 — 동기 일동⁠」「⁠깁스 간지 — 2생활관⁠」

“⁠누나⁠, 깁스에 사인 남은 자리 있어⁠. 누나 자리 비워 놨어⁠.⁠”

“⁠내가 가서 해 줄게⁠.⁠”

“⁠철벽 아저씨도 해 줘요⁠. 아저씨 사인 받았다고 하면 분대장님이 저 부러워해요⁠.⁠”

샛별이 휴대전화를 나에게 돌렸다⁠. 지솔이 깁스 찬 팔을 화면 가까이 들이밀었다⁠. 매직 글씨 사이 하얀 자리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 남아 있었다⁠. 나는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하얀 자리를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지솔이 간지럽다며 웃었다⁠.

“⁠아저씨⁠, 저 이거 다 나으면 후방 간대요⁠. 사령관님이 병원에 오셨어요⁠. 직접 오셨어요⁠. 명령서 날짜 다시 찍어 주셨어요⁠.⁠”

“⁠사령관님이⁠?⁠”

“⁠네⁠. 저한테 귤 주고 가셨어요⁠.⁠”

지솔이 웃었다⁠. 앞니 하나가 겹쳤다⁠. 나는 웃는 얼굴을 보면서 명곤의 귤을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받은 귤을 책상 귀퉁이에서 쪼그라들게 둔 사람이⁠, 병원에는 귤을 들고 갔다⁠.

*

저녁에 혜운이 숙소로 왔다⁠. 이번에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금발이 이층 침대 위에서 눈치를 보더니 샤워하러 간다며 나갔다⁠. 혜운은 문을 닫고 주머니에서 은색 막대를 꺼냈다⁠. 기록실 모니터에 꽂혀 있던 막대였다⁠.

“⁠사본입니다⁠.⁠”

“⁠주시는 거예요⁠?⁠”

“⁠드리는 겁니다⁠. 기록은 읽혀야 기록입니다⁠. 제 서랍에서는 아무도 안 읽습니다⁠.⁠” 혜운이 막대를 내 손바닥에 올렸다⁠. 손바닥 굳은살 위에서 막대가 차가웠다⁠. “⁠지난해 가을부터 어제까지⁠, 조종사 입력 없는 보조 사격 전부입니다⁠. 시각⁠, 표적⁠, 화면 사진⁠. 사진에 사람이 찍힌 줄은 따로 표시했습니다⁠.⁠”

“⁠몇 줄이요⁠?⁠”

혜운이 숫자를 말했다⁠. 나는 숫자를 듣고 막대를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길이만 한 막대였다⁠. 숫자는 막대보다 무거웠다⁠.

“⁠소령님⁠, 이거 저한테 주면 소령님이 다쳐요⁠.⁠”

“⁠압니다⁠.⁠” 혜운은 문고리를 잡았다⁠. “⁠사령관님은 이 전쟁이 버티게 하려고 기록을 덮으십니다⁠. 저는 사령관님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초소에 사람이 없는 것도 기록이니까요⁠.⁠” 혜운이 문을 반쯤 열었다⁠. “⁠다만 저는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덮는 사람이 아닙니다⁠. 둘 다 할 수는 없었습니다⁠.⁠”

혜운이 나갔다⁠. 복도에서 혜운의 발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멀어졌다⁠. 커피 잔 네 개를 끝까지 못 마시던 사람의 발소리였다⁠.

나는 막대를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고추장 묻은 상금 증서가 아직 거기 있었다⁠. 샛별에게 돌려주지 못한 증서였다⁠. 막대와 증서가 안주머니에서 겹쳤다⁠.

*

이튿날 아침 정찰을 자청했다⁠. 편대장이 되니 막는 사람이 없었다⁠.

빨간 목도리의 진지는 그대로였다⁠. 옆 흙벽이 무너진 자리에 작은 흙더미가 하나 솟아 있었다⁠. 사람 키만큼 길쭉한 흙더미였다⁠. 흙더미 머리에 나뭇가지 하나가 꽂혀 있었다⁠. 빨간 목도리가 흙더미 앞에 쪼그려 앉아 은박지를 펴고 있었다⁠. 주먹밥이었다⁠. 주먹밥을 흙더미 머리맡에 놓았다⁠. 누런 개가 다가와 코를 대자 빨간 목도리가 개의 머리를 손으로 밀어냈다⁠. 개는 물러나 앉았다⁠.

빨간 목도리는 오래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일어나 태블릿을 들었다⁠. 탁자 위의 기체가 떠올랐다⁠. 강을 향해 날다가⁠, 강 위에서 왼쪽으로 한 번 꺾었다⁠.

나는 엄지를 조종기 옆면에 붙이고 돌아왔다⁠. 내 회색 상자는 꺼져 있었다⁠. 꺼진 상자 위에서도 엄지를 떼어 두는 버릇이 손에 남았다⁠.

조종석에서 일어나자 샛별이 옆에 와 있었다⁠. 내 화면 녹화를 끝까지 본 얼굴이었다⁠.

“⁠흙더미요⁠. 그 사람이 묻은 거예요⁠?⁠”

“⁠응⁠. 주먹밥 놓고 왔어⁠.⁠”

샛별이 꺼진 내 화면을 보았다⁠. 검은 화면에 샛별의 얼굴이 비쳤다⁠.

“⁠스승님⁠, 저 사람이 지솔이 팔 다치게 한 기체 띄운 사람이에요⁠. 열두 대 가운데 맨 앞에서 왼쪽으로 꺾던 거⁠, 저도 봤어요⁠.⁠”

“⁠알아⁠.⁠”

“⁠스승님한테는 주먹밥 놓는 사람이고⁠, 저한테는 지솔이 팔에 파편 박은 사람이에요⁠. 둘 다 맞아요⁠.⁠” 샛별이 조끼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화가 나면 하는 버릇이었다⁠. “⁠저 사람도 저 흙더미 때문에 우리 초소를 미워하겠죠⁠. 그럼 내일도 열두 대 띄우겠죠⁠.⁠”

샛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조종석으로 갔다⁠. 나는 샛별의 등과 꺼진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둘 다 맞았다⁠. 둘 다 맞아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점심때 금발이 휴대전화를 들고 와서 보여 주었다⁠. 와글TV 첫 화면 맨 위에 커다란 배너가 붙어 있었다⁠. 「⁠국군 초청전 결승 — 1월 4일 오전 9시 생중계⁠」 예고편 조회수가 이백만을 넘었다⁠. 예고편 맨 끝에 내 얼굴이 삼 초 나왔다⁠. 계란말이를 들고 웃는 얼굴이었다⁠.

“⁠형⁠, 예고편 주인공이에요⁠.⁠”

“⁠내리라고 해⁠.⁠”

“⁠형 말고 다 좋아해요⁠. 댓글 봐요⁠.⁠”

「⁠철벽 해설 나오나⁠?⁠」「⁠사제 대결 2탄 가즈아⁠」「⁠깨끗한 전쟁 응원합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금발에게 돌려주었다⁠.

*

오후 세 시⁠, 명곤이 작전 설명실에 왔다⁠. 혜운이 커다란 화면에 지도를 띄웠다⁠. 강 하구⁠, 갈대밭⁠, 진지 열두 곳⁠. 진지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다⁠. 1번부터 12번까지⁠, 강화로 기체를 띄우는 진지들이었다⁠.

“⁠겨울 작전은 내일 아침 아홉 시입니다⁠. 와글TV 국군 초청전 결승으로 이십 분 늦게 나갑니다⁠. 시청자 화면에는 아이콘이 씌워집니다⁠. 여러분 화면에는 안 씌웁니다⁠. 봉 편대장 요청입니다⁠.⁠”

명곤이 지도의 1번 진지를 가리켰다⁠. 갈대밭 한가운데⁠, 흙벽을 두른 작은 진지였다⁠. 혜운이 화면을 확대했다⁠. 정찰 사진이었다⁠. 흙벽⁠, 천막⁠, 접이식 탁자⁠, 탁자 밑의 누런 개⁠. 사진 귀퉁이에 길쭉한 흙더미가 작게 찍혀 있었다⁠.

“⁠1번은 강화 해안 초소로 가장 많은 기체를 보낸 진지입니다⁠. 올겨울 초소 부상자 여섯 가운데 다섯이 이 진지에서 온 기체에 다쳤습니다⁠. 나지솔 상병도 이 진지입니다⁠.⁠” 명곤이 나를 보았다⁠. “⁠1번은 봉 편대장 기체가 맡습니다⁠. 작전의 첫 타격입니다⁠.⁠”

설명실이 조용했다⁠. 샛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감자칩이 맨 뒷자리에서 숨을 들이켰다⁠.

“⁠제 계약서 열한 번째 장에 지상 타격은 안 붙인다고 적혀 있어요⁠.⁠”

“⁠편대장 계약은 새로 썼습니다⁠. PC방에서 패치를 받으신 날 밤 서명하셨습니다⁠.⁠” 혜운이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였다⁠. 내 서명이 있었다⁠. 패치를 받고 PC방을 나서기 전⁠, 명곤이 컵라면 옆에 내민 종이였다⁠. 첫 장만 읽고 서명한 종이였다⁠.

나는 종이를 보았다⁠. 또 첫 장이었다⁠. 열 해 동안 첫 장만 읽던 손이 또 첫 장만 읽었다⁠.

“⁠안 누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명곤은 목소리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면 내일 작전에 한해 편대 기체 스무 대 전부 보조를 켭니다⁠. 끈 열한 명도 켭니다⁠. 편대장이 1번을 안 끝내면⁠, 1번 위를 지나가는 편대원 기체의 보조가 끝냅니다⁠. 감자칩 조종사 기체일 수도 있고⁠, 나샛별 조종사 기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반칙이잖아요⁠.⁠”

“⁠전쟁에는 반칙이 없습니다⁠. 패배만 있습니다⁠.⁠” 명곤이 지도를 끄라고 혜운에게 손짓했다⁠. 화면이 꺼지기 직전⁠, 흙더미 머리맡의 하얀 점 하나가 보였다⁠. 은박지에 싼 주먹밥이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입니다⁠. 1번은 편대장이 끝내든⁠, 보조가 끝내든 끝납니다⁠. 누가 끝낼지만 정하십시오⁠.⁠”

명곤이 나갔다⁠. 설명실 문이 천천히 닫혔다⁠. 감자칩이 맨 뒷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들고만 있었다⁠. 무엇을 물을지 몰라서 손만 들고 있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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