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5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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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오전 열한 시⁠, 감자칩이 첫 타격 출격에 나갔다⁠. 나는 감자칩 뒤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주임원사가 나를 보았지만 이번에도 말리지 않았다⁠. 감자칩은 출격 전에 식당에서 쓴 종이를 조종석 화면 아래 테이프로 붙였다⁠. 「⁠끄고 본다⁠. 보고 누른다⁠. 안 누를 수도 있다⁠.⁠」 별표 셋이 화면 불빛에 떠 있었다⁠.

감자칩이 설정에 들어가 아이콘을 껐다⁠. 화면이 회색 맨얼굴로 바뀌었다⁠. 감자칩이 침을 삼켰다⁠.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표적은 강 건너 둑길 끝의 작은 창고였다⁠. 지붕을 갈대로 덮은 창고였고⁠, 앞에 드론 상자가 쌓여 있었다⁠. 창고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안쪽에 하얀 덩어리 둘이 앉아 있었다⁠. 열 화상으로 바꾸자 둘이 또렷해졌다⁠. 하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았고⁠, 하나는 벽에 기대 누워 있었다⁠. 누운 하나의 가슴께가 천천히 오르내렸다⁠.

“⁠형⁠, 사람 있어요⁠.⁠”

“⁠응⁠.⁠”

“⁠자요⁠. 저 사람 자요⁠.⁠”

감자칩의 엄지가 붉은 단추 위에서 멈췄다⁠. 멈춘 채 떨렸다⁠. 나는 감자칩의 화면 귀퉁이 시계를 보았다⁠. 이십 초⁠, 삼십 초⁠. 내가 일어나 감자칩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화면이 하얗게 번쩍였다⁠.

창고 지붕의 갈대가 하늘로 흩어졌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창고는 반쯤 남아 있었다⁠. 문 안쪽의 하얀 덩어리 둘은 움직이지 않았다⁠.

감자칩이 조종기를 놓았다⁠. 조종기가 무릎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감자칩은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았다⁠.

“⁠형⁠. 저 안 눌렀어요⁠. 진짜 안 눌렀어요⁠. 엄지 여기 있었어요⁠.⁠” 감자칩이 단추 위 허공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있었는데⁠, 안 눌렀는데⁠.⁠”

조종실 뒤쪽 벽의 순위판이 바뀌었다⁠. 감자칩의 아이디 옆 타격 칸에 숫자 하나가 올라갔다⁠. 「⁠1⁠」

“⁠기록에 올라갔어요⁠. 제가 쏜 걸로⁠.⁠” 감자칩이 순위판을 보다가 나를 보았다⁠. “⁠저 눌렀어요⁠? 저도 모르게 눌렀어요⁠? 형⁠, 저 눌렀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순위판에 올라간 숫자는 혜운이 따로 모으는 줄에 들어가지 않았다⁠. 감자칩의 엄지가 단추 위에서 사십 초 가까이 망설였고⁠, 보조는 망설임 다음을 알고 있었다⁠. 보조가 끝낸 일이 감자칩의 이름으로 올라갔다⁠. 배정받은 표적이었다⁠. 배정받은 표적을 보조가 끝내면 조종사 이름이 붙었고⁠, 배정 밖의 표적을 끝내면 이름 없는 줄로 갔다⁠. 어느 줄로 가든 아는 것은 하나였다⁠. 감자칩은 오늘 밤 잠을 못 잔다⁠.

*

점심시간⁠, 조종실이 비었다⁠. 나는 내 조종석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허리가 뚝 소리를 냈다⁠. 바닥에서 올려다보니 조종석 받침 밑에 회색 상자가 하나 붙어 있었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상자였다⁠. 옆면에 작게 「⁠보조⁠」라고 찍혀 있었고⁠, 상자에서 굵은 전원 줄 하나가 바닥 아래로 들어갔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홉 성채 대회 때 컴퓨터 뒤를 수없이 들여다본 손이었다⁠. 나는 전원 줄 끝을 잡고 당겼다⁠. 뽑히지 않았다⁠. 다시 잡고 비틀어 당겼다⁠. 딸깍 소리와 함께 줄이 빠졌다⁠. 회색 상자 옆면의 작은 초록 불이 꺼졌다⁠.

내 조종석 화면 구석에 노란 글씨가 떴다⁠. 「⁠보조 연결 끊김⁠」 글씨는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떠 있었다⁠. 열 해 만에 손이 내 것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기분뿐이었다⁠. 상자 안의 손은 다른 조종석 열아홉 개 밑에 그대로 있었다⁠.

“⁠뭐 하는 거냐⁠.⁠”

주임원사가 조종석 옆에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몰랐다⁠. 손에 식판을 들고 있었다⁠. 식판 위에서 제육볶음이 식어 갔다⁠.

“⁠제 손으로 날려고요⁠.⁠”

“⁠그거 장비 훼손이다⁠.⁠”

“⁠뽑기만 했어요⁠. 다시 꽂으면 돼요⁠.⁠”

주임원사가 식판을 내려놓았다⁠. 무릎을 굽혀 조종석 밑을 들여다보았다⁠. 회색 상자와 늘어진 전원 줄과 바닥에 누운 나를 차례로 보았다⁠. 오래 보았다⁠.

“⁠봉탁진 조종사⁠. 내가 군대 이십육 년 했다⁠. 장비 밑에 기어 들어간 사람은 둘 중 하나다⁠. 고치는 사람이거나 망가뜨리는 사람이거나⁠.⁠”

“⁠저는 뭐 같으세요⁠?⁠”

“⁠둘 다 같다⁠.⁠” 주임원사가 일어나 무전기를 들었다⁠. “⁠사령관님께 보고한다⁠. 거기서 나와⁠. 허리 다친다⁠.⁠”

*

명곤은 오후 한 시에 조종실로 왔다⁠. 조종석 스무 개가 다 찼고⁠, 자리를 못 얻은 신병 셋이 뒤쪽 벽에 기대 있었다⁠. 첫 신병 열 명이 들어온 뒤로 조종실은 늘 꽉 찼다⁠. 명곤은 조종실 앞쪽 단에 오르지 않고 내 조종석 앞으로 곧장 왔다⁠. 혜운이 뒤를 따랐다⁠.

“⁠봉탁진 조종사⁠. 장비 훼손으로 오늘부터 비행을 정지합니다⁠.⁠”

“⁠얼마 동안이요⁠?⁠”

“⁠제가 다시 정할 때까지입니다⁠.⁠”

조종실이 웅성거렸다⁠. 금발이 의자를 돌려 앉았다⁠. 샛별은 자기 조종석에서 고개만 돌렸다⁠. 감자칩은 화면 아래 붙인 종이를 떼어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일어났다⁠. 조끼 지퍼가 배에서 한 번 멈췄다가 올라갔다⁠. 나는 조종실의 스물세 명을 보았다⁠. 스물한 살⁠, 스물넷⁠, 스물일곱⁠. 다들 어디선가 내 방송을 본 얼굴들이었다⁠. 내 방송에서 기체 대 기체라는 말을 들은 얼굴들이었다⁠.

“⁠다들 조종석 밑에 회색 상자 하나씩 있어요⁠. 보조 사격 장치예요⁠.⁠”

명곤이 나를 보았다⁠. 막지 않았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 상자가 대신 쏴요⁠. 우리가 안 눌러도 쏴요⁠. 감자칩 아까 그거⁠, 감자칩이 안 눌렀어요⁠. 저 상자가 눌렀어요⁠.⁠”

조종실이 조용해졌다⁠. 감자칩이 손에 쥔 종이를 펼쳤다가 다시 접었다⁠.

“⁠그리고 그 상자가 배운 손이 제 손이에요⁠. 열 해 전에 제가 팔았어요⁠.⁠”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금발이 파란 보호대를 찬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쌌다⁠. 보호대에는 내가 쓴 「⁠철벽⁠」 두 글자가 있었다⁠.

명곤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조종실 끝까지 닿을 만큼 컸고⁠, 화난 소리는 아니었다⁠.

“⁠봉탁진 조종사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 조종석에는 보조가 있습니다⁠. 보조는 여러분이 망설일 때 대신 끝냅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강화 해안 초소에서 죽은 병사는 없습니다⁠. 보조 덕입니다⁠.⁠” 명곤이 조종실 창밖을 가리켰다⁠. 창밖으로 들판이 하얗게 펼쳐져 있었다⁠. “⁠보조를 끄고 싶은 사람은 오늘 신청하십시오⁠. 끄겠습니다⁠. 다만 그 사람 몫의 초소는 그 사람 손만큼 늦습니다⁠. 그걸 알고 신청하십시오⁠.⁠”

명곤은 거기서 멈췄다⁠. 조종사들이 서로를 보았다⁠.

감자칩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끌게요⁠.⁠”

금발이 따라 들었다⁠. 이어서 두 사람이 더 들었다⁠. 나머지는 손을 들지 않았다⁠. 손을 내리고 화면을 보거나⁠, 바닥을 보았다⁠.

샛별은 손을 들지 않았다⁠.

“⁠나샛별 조종사는⁠?⁠” 명곤이 물었다⁠.

“⁠켜 둘게요⁠.⁠”

샛별이 의자를 돌려 나를 보았다⁠. 눈이 빨갰지만 목소리는 빨랐다⁠.

“⁠스승님⁠, 보조가 저보다 빨라요⁠. 0⁠.2초보다 빨라요⁠. 지솔이 초소엔 빠른 게 필요해요⁠. 전출까지 이레 남았어요⁠. 이레 동안은 빠른 손이 지켜야 돼요⁠.⁠” 샛별이 조종기를 쥐었다⁠. “⁠보조가 누른 건 제가 짊어질게요⁠. 제 기록에 일곱 줄 있다면서요⁠. 모 소령님한테 들었어요⁠. 일곱 줄 다 제 거로 할게요⁠.⁠”

“⁠샛별아⁠, 네가 안 누른 거야⁠.⁠”

“⁠제가 오래 봤잖아요⁠. 오래 본 것도 손이에요⁠. 스승님이 그랬잖아요⁠. 기다리는 것도 손이라고⁠.⁠”

일곱 해 전 방송에서 내가 한 말이었다⁠. 막는 법을 가르치면서 한 말이었다⁠.

*

저녁 식사 시간⁠, 감자칩은 식당에 오지 않았다⁠. 숙소 건물 계단참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감자칩 봉지를 올려놓았는데⁠, 뜯지 않은 봉지였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문자 창이 열려 있었다⁠. 받는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 나 오늘 첫 출격 잘함 ㅋㅋ 점수 올라감⁠」

보낸 시각은 오전 열한 시 십이 분이었다⁠. 창고가 무너지고 이 분 뒤였다⁠. 답장이 와 있었다⁠. 「⁠우리 아들 장하다 밥은 먹었나⁠」

“⁠형⁠, 저 이거 보내 놓고 화장실 가서 손 씻었어요⁠. 세 번 씻었어요⁠. 손에 아무것도 안 묻었는데요⁠.⁠” 감자칩이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엄마한테 뭐라고 답장해요⁠?⁠”

“⁠밥 먹었다고 해⁠.⁠”

“⁠안 먹었는데요⁠.⁠”

나는 감자칩 옆에 앉아 봉지를 뜯었다⁠. 한 조각을 꺼내 감자칩 손에 쥐여 주었다⁠. 감자칩이 한 입 깨물었다⁠. 바삭 소리가 계단참에 크게 울렸다⁠.

“⁠이제 먹었네⁠.⁠”

감자칩이 웃었다⁠. 웃다가 봉지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몇 번 들썩였다⁠. 나는 봉지에서 한 조각을 더 꺼내 먹었다⁠. 짰다⁠. 지난번보다 더 짰다⁠.

계단 위에서 혜운이 내려왔다⁠. 손에 서류 몇 장이 들려 있었다⁠. 혜운은 우리를 보고 걸음을 늦췄다⁠.

“⁠보조 끄기 신청서 넉 장 받았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끄겠습니다⁠.⁠” 혜운이 감자칩을 보았다⁠. “⁠감자칩 조종사 것이 첫 장입니다⁠.⁠”

혜운은 우리를 지나쳐 내려갔다⁠. 감자칩이 봉지에서 얼굴을 들고 코를 훌쩍였다⁠.

“⁠형⁠, 소령님이 지금 저 위로한 거예요⁠?⁠”

“⁠기록한 거야⁠.⁠”

*

비행 정지가 내려진 첫날 저녁⁠, 나는 조종실 뒤편 해설 부스에 불려 갔다⁠. 초청전 때 와글TV 해설진이 쓰던 방이었다⁠. 작은 유리창으로 조종실이 내려다보였고⁠, 탁자 위에서 마이크 두 대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명곤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명곤 앞 탁자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특집을 했다⁠. 「⁠원격 전쟁 한 해 — 우리 병사 사망 0명⁠」 화면에 강화 해안 초소가 나왔고⁠, 초소 병사들이 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맨 끝에 앞니 하나가 겹친 얼굴이 있었다⁠. 지솔이었다⁠. 이어서 외신 화면이 나왔다⁠. 외국 방송 앵커가 화면 앞에서 말했다⁠. 우리말 자막이 붙었다⁠. 「⁠한반도 서쪽 끝에서⁠, 사람이 다치지 않는 전쟁이 첫 겨울을 넘긴다⁠」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고요⁠.⁠”

“⁠우리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명곤이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봉탁진 씨가 오늘 조종실에서 한 말은 기밀입니다⁠. 다만 그 방에 있던 사람은 전부 같은 서약을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문제 삼으세요⁠.⁠”

“⁠그러면 봉탁진 씨가 원하는 일이 됩니다⁠. 재판정에서 다 말하시겠지요⁠. 저는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명곤이 탁자 위 서류철을 내 앞으로 밀었다⁠. 표지에 「⁠겨울 작전⁠」이라고 찍혀 있었다⁠.

“⁠새해 첫 주에 강 건너 진지들을 한꺼번에 칩니다⁠. 강화로 기체를 띄우는 진지 전부입니다⁠. 끝나면 강화 해안 초소에 한동안 기체가 오지 않습니다⁠.⁠”

“⁠빨간 목도리 진지도요⁠?⁠”

명곤은 대답하지 않고 서류철 표지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작전은 와글TV로 생중계합니다⁠. 국군 초청전 결승입니다⁠. 이십 분 늦게 나갑니다⁠. 아이콘을 씌웁니다⁠.⁠”

“⁠또요⁠?⁠”

“⁠이번에는 국민이 원합니다⁠. 지난 초청전 다시 보기가 천만 번을 넘었습니다⁠.⁠” 명곤이 서류철 맨 위에 종이 한 장을 더 얹었다⁠. “⁠비행 정지 중인 조종사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해설입니다⁠. 봉탁진 씨 목소리를 시청자들이 압니다⁠.⁠”

종이에는 해설 대본이 적혀 있었다⁠. 맨 윗줄이 굵은 글씨였다⁠.

「⁠철벽이 인정하는 한 방입니다⁠!⁠」

느낌표까지 찍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들었다⁠. 종이가 가벼웠다⁠. 명곤은 대본을 쓴 사람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 조종실에서 샛별이 조종석에 앉아 빈 화면을 보고 있었다⁠. 회색 상자의 초록 불이 샛별의 발밑에서 작게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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