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65자)
아기 띠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아침 일곱 시, 휴대전화가 혼자 뜨거워졌다. 알림이 쉬지 않고 떨어서 화면 위로 손을 대면 미지근한 진동이 손바닥까지 올라왔다.
「고결희 님이 권창해 님을 초대했습니다.」
「물빛놀이터 엄마들」 단톡방이었다. 들어가자마자 화면이 위로 미끄러졌다.
「헐 예봄이 아빠 진짜 S급이에요?」
「사인 받을 수 있나요ㅠㅠ 우리 애 헌터 카드 모아요」
「저희 단지 대피해야 돼요?」
「놀이터 모래 갈아 달라고 관리사무소에 말 좀 해 주세요 S급이 말하면 들을 듯」
「예봄이 아빠 휴직하신 거 너무 멋있어요 우리 남편은 육아휴직 얘기만 하면 회사에 자리 없어진대요」
마지막 줄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다. 보낸 엄마의 남편 회사가 어딘지는 더 몰랐다. 다만 자리 없어진다는 말이 협회 안에서도 똑같이 돈다는 건 알았다.
결희가 공지를 올렸다. 「다들 아시죠. S급이어도 예봄이 아빠는 휴직 중이십니다. 사인 요청 금지. 모래는 제가 말합니다.」 일 분 뒤 공지가 하나 더 올라왔다. 「예봄이 아빠를 부방장으로 임명합니다.」 또 일 분 뒤. 「검은 양복 아저씨 단지에 다시 나타나면 방장에게 바로 알려 주세요. 사진 첨부 필수.」 공지 아래로 엄지 모양 이모티콘이 스무 개 넘게 줄줄이 달렸다. 주완은 모르는 사이에 물빛마을 3단지 수배자가 되어 있었다.
“나 부방장 됐어.”
출근 준비를 하던 혜결이 스타킹을 신다 말고 웃었다. 어젯밤 쿠션을 던진 사람이 맞나 싶게 크게 웃었다.
“서열 7위가 부방장이면 승진이야, 강등이야?”
“결희 씨한테는 승진이래.”
결희의 개인 메시지가 따로 왔다. 공지문 말투가 빠진 글이었다. 「솔직히 물어볼게요. 우리 애들 괜찮아요?」
한참 들여다보다가 답을 보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일주일 뒤는 모르겠습니다.」 읽음 표시가 바로 떴고, 답은 오지 않았다.
*
예봄이를 아기 띠에 넣고 택시를 불렀다. 카시트를 들고 탔더니 기사님이 뒷좌석에 카시트 끼우는 법을 나보다 잘 알았다. 손주가 셋이라고 했다. 서교동 경찰 통제선 앞에서 내리자 기사님이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 균열 났다던데. 애 데리고 거길 왜 가요?”
“출근입니다.”
“애 데리고?”
“애 데리고요.”
기사님은 나를 오래 쳐다보다가 사탕 두 개를 예봄이 손에 쥐여 주었다. 이가 나는 아기한테 사탕은 안 된다고 했더니 두 개를 다 도로 가져가서 하나는 제 입에 넣고 하나는 내 손에 쥐여 준 뒤 창문을 올렸다.
홍대 앞 공영주차장은 하룻밤 사이에 협회 전진기지가 되어 있었다. 흰 천막이 줄지어 쳐졌고, 발전기 소리가 아스팔트를 울렸다. 주차장 끝, 원래 정산소가 있던 자리에 검은 막이 일렁였다. 균열의 문이었다. 사람 키 두 배쯤 되는 높이에서 공기가 물결처럼 흔들렸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주차장의 종이컵과 비닐봉지가 문으로 끌려 들어갔다. 일곱까지 세면 멈추고, 열하나까지 세면 미지근한 바람이 밀려 나왔다. 날숨에서는 젖은 쇠 냄새가 났다.
통제선을 넘자 헌터들이 고개를 돌렸다. 아는 얼굴이 몇 있었다. 상암에서 같이 굴렀던 B급 둘이 반사적으로 경례를 했다. 예봄이가 경례하는 손을 보더니 제 손바닥을 이마에 철썩 갖다 붙였다. 아기 띠 안에서 받은 경례였다. B급 둘이 서로 얼굴을 보다가 경례를 풀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선배님, 애기가……”
“답례한 거야. 내려.”
“네.”
작전 천막 안은 에어컨 바람과 무전기 잡음으로 꽉 차 있었다. 가운데 탁자에 마포 지도가 펼쳐졌고, 균열을 중심으로 붉은 동그라미가 세 겹 그려져 있었다. 맨 바깥 동그라미가 벌써 합정역을 물고 있었다. 천막 구석의 텔레비전에서는 다른 균열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오사카 4등급 균열 엿새째. 일본 협회, 한국에 S급 추가 파견 요청.」
주완은 지도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내 얼굴보다 아기 띠를 먼저 보았다.
“복귀하러 오신 겁니까, 견학 오신 겁니까?”
“제안하러 왔습니다.”
“아이를 업고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까 업고 왔습니다. 그게 제안입니다.”
나는 지도 위에 손을 짚었다. 예봄이가 따라 손을 짚었다. 작은 손바닥이 합정역 위에 찍혔다.
“낮에는 보급을 맡겠습니다. 아이를 업고 균열 바깥에서 물이랑 붕대랑 들고 다니겠습니다. 밤에는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는 여덟 시 반부터 열 시 반까지, 두 시간만 들어가겠습니다.”
“두 시간.”
“핵을 찾는 데 하루 종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균열은 숨을 쉽니다. 들이쉬는 칠 초 동안은 경계선을 막고, 내쉬는 십일 초에 핵이 얕게 뜹니다. 그 박자를 듣는 사람은 저 하나라고 부장님이 어제 그러셨죠. 그 귀를 두 시간씩 쓰겠다는 겁니다.”
천막 안이 조용해졌다. 무전기만 지지직거렸다. 주완은 지도 위의 예봄이 손자국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균열이 퇴근 시간을 봐 줍니까?”
“안 봐 줍니다.”
“핵이 열 시 반에 눈앞에 떠 있으면요? 그때도 시계 보고 나오십니까?”
“나옵니다.”
“그게 헌터입니까?”
“그게 아빠입니다.”
주완이 서랍을 열고 서류 뭉치를 꺼내 지도 위에 내려놓았다. 두꺼웠다. 맨 위 장에 「육아휴직 신청서」라고 찍혀 있었다.
“마흔 장입니다. 당신이 휴직을 낸 뒤 넉 달 동안 들어왔습니다. B급, C급, A급이 둘. 지금까지는 S급도 끝까지 못 쓴 휴직이라며 돌려보냈습니다. 당신이 반일을 하면 내일 이 마흔 장이 반일 신청서로 바뀝니다. 마흔 명이 여덟 시 반에 들어와서 열 시 반에 나가는 균열을, 저는 어떻게 막습니까?”
“마흔 명이 하루 두 시간씩이면 여든 시간입니다.”
“계산하지 마십시오. 균열은 시간을 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치는 건 한 번에 다칩니다.”
주완의 목소리는 끝까지 공손했다. 화가 날수록 공손해지는 사람이었다. 예전 같이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괴수가 방패를 물어뜯는 순간에도 주완은 “권 헌터, 왼쪽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오늘 오후에 대체 팀이 또 들어갑니다.” 주완이 무전기를 집었다. “팀장은 유재련. A급. 상암에서 갈비뼈 두 대에 금 간 사람입니다. 의사는 석 주 쉬라고 했고, 본인은 사흘 만에 나왔습니다. 당신이 놀이터에 있는 동안 저 사람은 금 간 갈비뼈로 들어갑니다.”
예봄이가 무전기 줄을 잡아당겼다. 주완의 손에서 무전기가 미끄러져 탁자에 떨어졌다. 천막 안의 헌터들이 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주완은 무전기를 다시 집었다. 이번에는 줄을 손목에 감았다.
“반일은 없습니다. 징계위원회 서류는 어제 올렸습니다. 사흘째 다섯 시까지 복귀하지 않으시면 펼칩니다.”
“펼치십시오.”
“아이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아버지가 왜 서열을 잃었는지 물으면 뭐라고 하실 겁니까?”
“기저귀 갈다가 잃었다고 하겠습니다.”
주완이 처음으로 웃음 비슷한 것을 입가에 올렸다가 지웠다.
*
작전 천막을 나와 의무 천막 앞을 지날 때 테이프 뜯는 소리가 들렸다. 넓은 의료용 테이프를 길게 잡아 빼는 소리, 이로 끊는 소리, 맨살에 붙이는 소리. 천막 자락이 반쯤 걷힌 안에서 젊은 여자가 웃옷을 걷어 올린 채 제 옆구리에 테이프를 감고 있었다. 오른쪽 갈비뼈 위로 멍이 누렇게 번져 있었다.
여자가 테이프를 감다 말고 콧노래를 불렀다. 곡조가 맞지 않는 콧노래였다. 숨을 깊이 못 쉬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라 소절마다 끝이 잘렸다. 의무 천막의 힐러가 그만 감으라고 했지만 여자는 한 바퀴를 더 감았다.
“유재련 팀장님이세요?”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스물예닐곱쯤, 머리를 뒤로 바짝 묶었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내 얼굴을 보고 아기 띠를 보고 다시 얼굴을 보았다.
“놀이터 S급님이시구나.” 재련이 웃옷을 내렸다. “단톡방 캡처 돌아요. 협회 단톡방에도. 「7위 지하철설」이라고.”
“갈비뼈 금 갔다면서 오늘 들어갑니까?”
“누가 대신 들어가 주실 것도 아니잖아요.” 재련이 검을 집어 등에 멨다. 멜빵이 옆구리를 스칠 때 숨이 한 번 끊겼다. 재련은 끊긴 숨을 콧노래로 덮었다. “상암에서도 그랬어요. 원래 S급 들어갈 자리였는데. 아, 원망하는 거 아니에요. 휴직은 권리죠. 권리.”
권리라는 말을 두 번 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믿지 않는다.
“오늘은 깊이 들어가지 마세요. 숨이 모레 낮에 한 번 크게 바뀝니다.”
“그것도 들려요? 좋겠다.” 재련이 내 옆을 지나가며 예봄이 볼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손가락은 다정했고 목소리는 아니었다. “애기야, 너희 아빠 귀 진짜 좋대. 근데 귀로는 균열 못 닫는다더라.”
*
오후 다섯 시, 놀이터로 돌아왔다. 아기 띠를 하루 종일 멘 날은 예봄이 목덜미에 땀띠가 올랐다. 붉은 좁쌀이 목 뒤에서 귀밑까지 번져 있었고, 예봄이는 가려운 목을 내 셔츠에 비비며 칭얼거렸다.
모래밭 가장자리에서 운비 엄마가 운비와 두꺼비집을 짓고 있었다. 넉 달 동안 말을 섞은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늘 모래밭 구석에서 세 살 운비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고, 엄마들이 모여 떠들 때도 웃기만 했다. 이름이 하솜이라는 것도 단톡방 대화명을 보고 알았다.
하솜이 두꺼비집에서 손을 털고 다가왔다. 예봄이 목덜미를 보았다.
“땀띠가 심하네요.”
“아기 띠를 오래 멨더니요.”
“잠깐만요.”
하솜이 모래를 바지에 문지르고 손바닥을 예봄이 목 뒤에 댔다. 말이 짧아졌다. “가만.”
손바닥 밑에서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 들리는 소리였다. 하솜의 숨이 느려지고, 심장이 한 박자씩 늦게 뛰었다. 손바닥에서 미지근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다. 예봄이가 칭얼거림을 멈추고 하솜을 올려다보았다. 하솜이 손을 뗐다. 목덜미의 붉은 좁쌀이 엷어져 있었다. 귀밑에 있던 것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조금 했어요.” 하솜이 손을 바지에 닦았다. “아주 조금.”
조금 한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이런 손을 균열 안에서 딱 몇 번 보았다. 찢어진 허벅지를 한 번 쓸어서 닫던 손. A급 힐러의 손이었다.
“운비 엄마, 혹시 협회에……”
하솜의 휴대전화가 울었다. 화면을 보고 하솜의 얼굴이 굳었다. 하솜은 운비에게 모래를 퍼 주고 미끄럼틀 뒤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이십 미터. 하솜은 목소리를 낮췄다. 낮춰도 소용없었다.
“네, 부장님.”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오전에 작전 천막에서 들은 목소리였다. 공손하고 또박또박했다.
“변 선생. 생각해 보셨습니까. 복귀 자리는 비워 두겠습니다. 수석 힐러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권창해 헌터가 같은 단지에 산다고 들었습니다. 옆에 계시니 잘됐습니다.”
하솜이 미끄럼틀 기둥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하솜의 숨이 짧아졌다. 짧아진 숨이 이십 미터를 건너 내 귀까지 왔다.
“조금만 더 생각할게요.”
하솜은 전화를 끊고 몸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운비가 두꺼비집을 부수고 깔깔 웃었다. 하솜은 모래밭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끄럼틀 옆에 서서 나를 보았다.
“들으셨죠.”
묻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예봄이 목덜미를 손으로 덮었다. 땀띠가 가라앉은 자리가 아직 미지근했다.
“다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