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36자)

한 시간 오십 분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7월 16일 오후 한 시⁠, 서교동 전진기지 보급 천막에서 생수병 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스박스 뚜껑이 열릴 때마다 얼음이 서로 부딪쳤고⁠, 균열에서 막 나온 헌터들이 물을 머리에 들이붓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나는 허락을 받지 않고 보급 천막에 들어와 있었다⁠. 보급반장은 예순이 넘은 C급 할아버지 헌터였는데⁠, 아기 띠를 보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생수 상자를 가리켰다⁠. 손주 키우는 사람끼리는 말이 필요 없었다⁠.

생수를 나눠 주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생수병 하나를 건넬 때마다 헌터들이 걸음을 멈췄다⁠. 방패를 든 B급이 예봄이에게 혀를 내밀었고⁠, 화염 계열 C급은 손가락 끝에 작은 불꽃을 피워 보였다가 보급반장에게 등짝을 맞았다⁠. 예봄이는 손님이 올 때마다 떡뻥을 하나씩 건넸다⁠. 침에 젖은 떡뻥을 받은 헌터들은 버리지도 먹지도 못하고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오후 한 시 반이 되자 전진기지 헌터 절반의 조끼 주머니에 떡뻥이 들어 있었다⁠.

“⁠선배님⁠, 애기 이름이 뭐예요⁠?⁠”

“⁠예봄이⁠.⁠”

“⁠봄에 태어났어요⁠?⁠”

“⁠유월에 태어났어⁠.⁠”

“⁠그런데 왜 예봄이에요⁠?⁠”

“⁠아내가 봄을 좋아해서⁠.⁠”

B급이 납득 못 한 얼굴로 떡뻥을 받아 갔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혜결이었다⁠. 「⁠세 시 면담⁠. 떨려⁠. 본부장 앞에서 말 더듬으면 어떡해⁠?⁠」 나는 생수 상자를 한 손으로 받치고 엄지로 답을 썼다⁠. 「⁠안 더듬어⁠. 당신은 나랑 싸울 때 한 번도 안 더듬었어⁠.⁠」 답이 바로 왔다⁠. 「⁠그건 당신이 틀려서 그런 거고⁠.⁠」 이어서 주먹을 쥔 토끼 이모티콘이 하나 왔다⁠. 예봄이가 화면 속 토끼를 손가락으로 눌렀고⁠, 토끼 이모티콘이 혜결에게 하나 더 날아갔다⁠. 혜결이 보낸 답은 「⁠?⁠」 하나였다⁠.

한 시 사십 분⁠, 숨이 바뀌었다⁠.

들이쉬는 소리가 칠 초를 넘어 계속 이어졌다⁠. 팔 초⁠, 구 초⁠, 십 초⁠. 주차장의 종이컵이 줄지어 문으로 끌려 들어갔고⁠, 천막 자락이 일제히 문을 향해 부풀었다⁠. 십삼 초⁠. 멈춤⁠. 다른 헌터들은 바람이 세다고만 했다⁠. 나는 생수병을 내려놓았다⁠. 들숨이 길어지면 균열 안의 길이 접힌다⁠. 아까 걸어 들어간 길이 뒤에서 닫힌다⁠.

재련의 대체 팀은 열두 시에 들어갔다⁠.

*

작전 천막의 무전기가 지지직거리다 끊어졌다 다시 붙었다⁠.

「⁠여기 대체 일 팀⁠. 들어온 통로가 닫혔다⁠. 위치 확인 안 됨⁠. 팀장 부상⁠. 반복한다⁠, 팀장⁠…⁠…⁠」

무전이 다시 끊겼다⁠. 주완은 지도 위에 두 손을 짚고 있었다⁠. 구조 팀 둘이 이미 문 앞에서 장비를 메고 있었다⁠. 내가 천막에 들어서자 주완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아기 띠보다 내 얼굴을 먼저 보았다⁠.

“⁠구조 팀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주완이 말했다⁠. “⁠통로가 접히면 지도가 소용없습니다⁠.⁠”

“⁠제가 들으면 찾습니다⁠.⁠”

“⁠복귀하시는 겁니까⁠?⁠”

“⁠구하러 들어가는 겁니다⁠.⁠”

“⁠그게 복귀입니다⁠.⁠”

“⁠복귀는 내일 다섯 시 문제고⁠, 이건 지금 문제입니다⁠.⁠”

주완이 말을 멈추고 예봄이를 보았다⁠. “⁠아이는요⁠?⁠”

혜결은 오후 세 시에 본부장과 승진 심사 사전 면담이 있었다⁠. 지금 여의도에서 지하철을 타도 한 시간이었다⁠. 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희는 두 번 울리기 전에 받았다⁠.

“⁠예봄이 아빠⁠, 무슨 일이에요⁠?⁠”

“⁠한 시간 반만 예봄이를 맡아 주실 분 계십니까⁠? 서교동 전진기지입니다⁠.⁠”

“⁠쌍둥이 낮잠 시간이에요⁠. 깨우면 지옥이에요⁠. 잠깐만요⁠.⁠” 결희가 전화를 든 채 단톡방에 뭔가를 올렸다⁠. 삼십 초 뒤 결희가 말했다⁠. “⁠운비 엄마가 간대요⁠. 택시 탔대요⁠.⁠”

하솜이었다⁠.

이십 분 뒤 하솜이 운비 손을 잡고 통제선을 넘어왔다⁠. 경찰이 팔을 벌려 막았다가 하솜이 내민 옛 협회 신분증을 보고 길을 텄다⁠. 신분증 사진 속의 하솜은 지금보다 앳됐고⁠, 이름 옆에 「⁠A급 힐러⁠」라고 찍혀 있었다⁠.

나는 아기 띠 버클을 풀려고 등 뒤로 손을 뻗었다⁠. 버클이 안 잡혔다⁠. 서두를수록 손가락이 버클 옆을 헛짚었다⁠. 넉 달 동안 하루에 열 번씩 풀던 버클인데⁠, 균열 소리가 귀에 들어오자 손이 엉뚱한 데를 더듬었다⁠.

“⁠가만히 계십시오⁠.⁠”

주완이 내 등 뒤로 와서 버클을 풀었다⁠. 딸깍⁠. 주완의 손가락은 망설이지 않았다⁠. 아기 띠 버클을 아는 손이었다⁠. 나는 돌아보았고⁠, 주완은 내 시선을 피했다⁠.

예봄이를 꺼내 하솜에게 안겼다⁠. 하솜이 예봄이를 받아 들며 낮게 말했다⁠.

“⁠제가 누구 전화를 받는지 들으셨잖아요⁠.⁠”

“⁠들었습니다⁠.⁠”

“⁠그런데 맡기세요⁠?⁠”

“⁠운비 엄마 손은 땀띠를 지우는 손입니다⁠. 아이를 해치는 손은 아닙니다⁠.⁠”

하솜이 입술을 깨물고 예봄이 등을 토닥였다⁠. 예봄이는 울지 않았다⁠. 하솜의 손바닥이 등에 닿자 숨이 느려졌다⁠. 나는 빈 아기 띠를 가슴에 단 채 다용도실에서 들고 나온 은빛 장검을 등에 멨다⁠. 아기 띠를 벗을 시간이 없었다⁠.

*

균열 안은 홍대 앞을 뒤집어 놓은 거리였다⁠. 간판들이 녹아내려 바닥에 고였고⁠, 하늘은 검붉게 젖어 있었다⁠.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눈으로는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사방에서 왔다⁠. 십삼 초 들숨⁠, 십일 초 날숨⁠. 날숨 끝에 핵이 한 번 뛰었다⁠. 아주 깊은 데서⁠. 핵은 오늘 찾을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핵의 박동을 귀에서 밀어내고 다른 소리를 찾았다⁠.

곡조가 맞지 않는 콧노래가 있었다⁠. 소절마다 끝이 잘리는 콧노래⁠. 숨을 깊이 못 쉬는 사람이 아픈 것을 덮으려고 부르는 노래였다⁠. 왼쪽으로 사백 미터⁠, 접힌 골목 두 개 너머⁠.

달렸다⁠. 골목이 접힐 때마다 들숨이 길어졌고⁠, 나는 들숨 동안 멈추고 날숨 동안 달렸다⁠. 골목 끝에서 괴수 셋이 접힌 담벼락을 긁고 있었다⁠. 개처럼 생겼지만 다리가 여섯이었다⁠. 담벼락 너머에서 콧노래가 끊겼다 이어졌다⁠.

첫 번째 괴수가 돌아보았을 때 칼이 이미 목을 지나갔다⁠. 두 번째는 들숨에 맞춰 뛰어올랐다⁠. 들숨에 뛰는 것은 바람을 등에 업는 일이라 빨랐다⁠. 나는 반 박자를 기다렸다가 날숨에 맞춰 칼을 올렸다⁠. 세 번째는 도망쳤다⁠. 쫓지 않았다⁠.

담벼락 너머에 대체 팀 넷이 있었다⁠. 셋은 검과 방패를 들고 둥글게 서 있었고⁠, 재련은 가운데 주저앉아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른쪽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다⁠. 테이프가 피에 젖어 있었다⁠.

“⁠늦었네요⁠.⁠” 재련이 콧노래를 멈췄다⁠. “⁠놀이터 S급님⁠.⁠”

“⁠오늘 낮이라고 했는데 한 시간 일렀습니다⁠. 미안합니다⁠.⁠”

“⁠사과는 무슨⁠. 휴직은 권리라니까요⁠.⁠”

나는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았다⁠. 재련이 내 등을 내려다보았다⁠.

“⁠뭐 하세요⁠?⁠”

“⁠업히세요⁠.⁠”

“⁠미쳤어요⁠? 창피하게⁠. 업는 건 애기나 하는 거지⁠.⁠”

“⁠오늘은 팀장님이 애기입니다⁠. 걷다가 갈비뼈 끝이 폐를 찌르면 애기보다 시끄러워집니다⁠.⁠”

재련이 콧노래를 짧게 한 소절 불렀다⁠. 그러고는 내 목에 팔을 둘렀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가슴 앞에서는 빈 아기 띠가 덜렁거렸다⁠. 등에는 A급 팀장⁠, 가슴에는 빈 아기 띠⁠. 대체 팀의 B급 하나가 우리 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가 재련의 눈길에 입을 다물었다⁠.

방패를 든 B급이 문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깊은 데서 낮은 박동이 올라오고 있었다⁠.

“⁠선배님⁠, 온 김에 핵도 찾아 주시면 안 돼요⁠? 이거 들리시는 거죠⁠?⁠”

“⁠들려⁠.⁠”

“⁠그럼 가요⁠. 저희 아직 걸을 수 있어요⁠.⁠”

“⁠오늘은 사람 데리러 온 거야⁠. 핵 찾으러 온 게 아니고⁠.⁠” 나는 재련을 고쳐 업었다⁠. “⁠핵은 도망 안 가⁠. 갈비뼈는 도망가⁠.⁠”

B급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재련이 내 등에서 코웃음을 쳤다⁠. 코웃음이 옆구리를 울렸는지 숨을 삼키는 소리가 이어졌다⁠.

돌아오는 길은 들숨 동안 멈추고 날숨 동안 걸었다⁠. 재련은 내 등에서 숨을 고르게 쉬려고 애썼다⁠. 나는 재련의 숨을 들으며 걸음을 맞췄다⁠. 예봄이를 재울 때와 같은 걸음이었다⁠.

*

문을 빠져나왔을 때 주차장에 박수 소리가 터졌다⁠. 통제선 너머에서 방송국 카메라 셋이 렌즈를 이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들것이 달려왔고⁠, 재련을 내려놓았다⁠. 재련이 들것 위에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기 띠⁠, 아직 메고 계신 거 알아요⁠?⁠”

알았다⁠. 화면에도 그렇게 나갔다⁠. 저녁 뉴스가 나가기 전에 영상이 먼저 돌았다⁠. 「⁠아기 띠 헌터⁠, 빈 아기 띠 메고 A급 팀장 업고 나와⁠」 하솜이 휴대전화를 보여 주었다⁠. 조회 수 숫자가 보는 동안에도 올라갔다⁠. 화면 위쪽 속보 띠에는 「⁠오사카 균열 아흐레째⁠, 핵 위치 못 찾아⁠」가 흘러가고 있었다⁠. 조회 수는 오사카 소식보다 빨리 올랐다⁠.

주완이 문 앞으로 걸어왔다⁠. 무릎을 끄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

“⁠봤습니다⁠.⁠” 주완이 말했다⁠. “⁠당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일부터 정식으로 복귀하십시오⁠. 징계는 거두겠습니다⁠.⁠”

“⁠한 시간 오십 분 걸렸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들어가서 나오는 데 한 시간 오십 분⁠. 두 시간이면 됩니다⁠. 반일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운이었습니다⁠.⁠”

“⁠운이 아니라 귀입니다⁠. 귀는 두 시간만 써도 귀입니다⁠.⁠” 나는 아기 띠의 빈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반일이 안 된다면⁠, 지금 여기서 서열을 내려놓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숨이 바뀌는 날 누가 들어갑니까⁠?⁠”

주완의 휴대전화가 울었다⁠. 화면에 「⁠협회장⁠」이 떴다⁠. 주완이 등을 돌려 받았다⁠. 몇 걸음 떨어졌지만 소용없었다⁠.

“⁠영상 봤네⁠. 여론이 아주 난리야⁠. 아기 띠 헌터를 징계하면 협회가 욕을 다 먹어⁠. 일단 시범으로 해⁠. 시범⁠.⁠”

주완은 “⁠알겠습니다⁠”라고 두 번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돌아섰을 때 주완의 얼굴은 다시 공손했다⁠. 다만 턱 근육이 한 번 움찔했다⁠.

“⁠시범입니다⁠.⁠” 주완이 말했다⁠. “⁠낮에는 보급⁠, 밤에는 여덟 시 반부터 열 시 반까지⁠. 조건은 하나입니다⁠. 한 번이라도 열 시 반을 넘기면 끝입니다⁠. 그다음 날부터는 정식 복귀입니다⁠. 휴직은 거기서 끝납니다⁠.⁠”

“⁠늦으면 끝이고⁠, 안 늦으면요⁠?⁠”

“⁠안 늦는 헌터는 없습니다⁠.⁠” 주완이 들것으로 실려 가는 재련을 한 번 보았다⁠. 아주 짧게 보았다⁠. “⁠균열 안에서는 다들 늦습니다⁠.⁠”

*

하솜이 예봄이를 돌려주었다⁠. 예봄이는 하솜 어깨에서 잠들어 있었다⁠. 하솜은 예봄이를 넘기며 낮게 말했다⁠.

“⁠부장님한테 전화 왔었어요⁠. 들어가셨냐고⁠.⁠”

“⁠뭐라고 했습니까⁠?⁠”

“⁠들어가셨다고요⁠. 거짓말은 안 했어요⁠.⁠” 하솜이 운비 손을 잡았다⁠. “⁠앞으로도 안 할 거예요⁠. 그것만 알아 두세요⁠.⁠”

여덟 시 십 분⁠, 혜결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빈 아기 띠를 단 내가 화면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 회사에서 이거 보고 웃다가 울었어⁠. 화장실에서⁠.⁠”

“⁠면담은⁠?⁠”

“⁠본부장이 이 영상부터 틀더라⁠. 남편분 대단하시다고⁠. 그러고는 심사 얘기는 오 분 했어⁠.⁠” 혜결이 웃었다⁠. 웃는데 눈가가 빨갰다⁠. “⁠여덟 시 반이지⁠?⁠”

“⁠여덟 시 반⁠.⁠”

혜결이 블라우스 소매를 걷고 두 팔을 내밀었다⁠. 나는 아기 띠에서 예봄이를 꺼내 아내의 팔에 안겼다⁠. 예봄이가 엄마 냄새를 맡고 칭얼거림을 그쳤다⁠. 혜결이 턱으로 현관을 가리켰다⁠.

“⁠열 시 반에 와⁠. 일 분이라도 늦으면 나도 징계위원회 열 거야⁠.⁠”

나는 은빛 장검을 등에 메고 현관문을 열었다⁠. 여덟 시 이십구 분⁠.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등 뒤에서 아내가 딸에게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곡조가 맞지 않는 자장가였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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