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16자)

사흘

육아휴직 S급 헌터 · 문채겸

고백부터 하겠다⁠. 나는 놀이터에서 엄마들이 하는 말을 다 듣는다⁠. 일부러 엿듣는 게 아니다⁠. 귀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 삼십 미터 떨어진 미끄럼틀 밑에서 누가 사탕 껍질을 까도 들리고⁠, 등나무 벤치 반대편 끝에서 휴대전화 자판 두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 모래밭 가에 모여 앉은 엄마 셋이 나를 두고 하는 말도 토씨 하나 안 빠지고 들어왔다⁠.

“⁠저 아빠 또 왔다⁠. 넉 달째야⁠.⁠”

“⁠회사 잘렸대⁠?⁠”

“⁠주식 하는 거 아냐⁠? 아까부터 휴대전화만 보던데⁠.⁠”

내가 보고 있던 건 기저귀 최저가였다⁠.

2027년 7월 13일 오후 세 시⁠, 망원동 물빛마을 3단지 놀이터였다⁠. 해가 코끼리 미끄럼틀 정수리를 달궜고⁠, 매미가 단지 둘레 느티나무마다 붙어 울었다⁠. 나는 등나무 그늘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짧게 친 검은 머리에서 땀이 흘러내려 왼쪽 눈썹을 가로지르는 가는 흉터를 따끔하게 적셨다⁠. 회색 반팔 티셔츠는 어깨가 넓어서 늘 겨드랑이부터 젖었고⁠, 카키색 카고 바지 주머니마다 물티슈와 떡뻥과 손수건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가슴에는 남색 아기 띠를 멨다⁠. 띠 안에서 돌 지난 딸 예봄이가 분홍 모자를 쓰고 내 쇄골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괴수 이빨이 눈썹을 긋고 지나간 날에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열여섯 해 동안 균열을 드나든 귀가 오후 세 시의 놀이터에서는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몰라⁠, 넉 달째 등나무 맨 끝자리만 지켰다⁠.

모래밭에서 쌍둥이 유모차가 방향을 틀어 나에게 굴러왔다⁠. 단톡방 「⁠물빛놀이터 엄마들⁠」의 방장 고결희였다⁠. 결희는 단지 아이들의 낮잠 시간과 그네 순번을 다 꿰고 있었고⁠, 말을 공지문처럼 했다⁠.

“⁠다들 아시죠⁠. 세 시부터 미끄럼틀 역주행 금지예요⁠. 예봄이 아빠도 아셨죠⁠?⁠”

“⁠예봄이는 아직 못 걷습니다⁠.⁠”

“⁠그러니까 미리 아셔야죠⁠.⁠” 결희가 유모차 손잡이를 쥔 채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런데 회사는 오늘도 쉬세요⁠?⁠”

“⁠육아휴직입니다⁠.⁠”

“⁠아빠가요⁠? 일 년을요⁠? 회사 좋네⁠. 어디 다니세요⁠?⁠”

“⁠공공기관 비슷한 데요⁠.⁠”

“⁠공기업⁠? 어디요⁠?⁠”

“⁠현장직입니다⁠.⁠”

“⁠현장 어디요⁠?⁠”

“⁠주로 지하요⁠.⁠”

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철 기관사쯤으로 정리한 얼굴이었다⁠. 유모차가 모래밭으로 돌아가고 삼 초 뒤⁠, 단톡방 알림이 결희 손에서 울렸다⁠. 나는 단톡방에 없었지만 자판 소리는 들렸다⁠. 톡⁠, 톡톡⁠, 지⁠, 하⁠, 철⁠.

*

매미가 한꺼번에 울음을 그쳤다⁠.

동쪽⁠, 홍대 앞에서 숨소리가 왔다⁠. 도시 하나가 입을 벌리고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였다⁠. 다른 사람 귀에는 멀리서 버스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쯤으로 들렸을 것이다⁠. 내 귀에는 바닥이 없는 동굴의 들숨으로 들렸다⁠. 예봄이가 내 셔츠를 빨던 입을 멈추고 동쪽을 보았다⁠. 아기들은 가끔 어른보다 먼저 안다⁠.

들이쉬는 데 칠 초⁠. 멈춤⁠. 내쉬는 데 십일 초⁠.

놀이터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었다⁠. 재난문자의 날카로운 경보음이 모래밭과 그네와 벤치에서 한꺼번에 터졌고⁠, 아이 둘이 따라 울었다⁠.

「⁠[마포구청] 15⁠:07 홍대입구역 일대 5등급 균열 발생⁠. 서교동 주민은 실내로 대피하고 안내에 따르십시오⁠.⁠」

엄마들이 아이를 낚아채 유모차에 앉혔다⁠. 결희는 쌍둥이를 한 손씩 붙잡은 채 엄지로 공지를 올렸다⁠. 「⁠긴급⁠. 다들 집으로⁠. 망원동은 대피 구역 아님⁠. 그래도 집으로⁠.⁠」 공지를 올리는 엄지가 미끄러져 같은 공지가 세 번 올라갔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숨의 박자를 세고 있었다⁠. 들숨이 날숨보다 짧은 균열은 자라는 균열이다⁠. 5등급이면 문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경계선이 하루에 수십 미터씩 바깥으로 밀려 나온다⁠. 망원동까지 이 킬로미터 남짓⁠.

“⁠예봄이 아빠⁠! 안 들어가세요⁠?⁠” 결희가 놀이터 입구에서 소리쳤다⁠.

“⁠들어갑니다⁠.⁠”

들어가긴 했다⁠. 집으로⁠.

*

다섯 시 무렵 마포구청이 두 번째 문자를 보냈다⁠. 망원동은 실내 대피를 풀었다⁠. 아이들은 아파트 안에서 두 시간을 못 버텼고⁠, 엄마들은 다시 놀이터로 나왔다⁠. 나도 나왔다⁠. 집에 있으면 숨소리가 더 잘 들려서였다⁠.

다섯 시 십 분⁠, 단지 정문으로 검은 승용차가 들어왔다⁠. 협회 차는 문 닫는 소리부터 다르다⁠. 두꺼운 문이 묵직하게 닫혔고⁠, 왼쪽 무릎을 조금 끄는 발소리가 아스팔트를 지나 놀이터 모래로 넘어왔다⁠. 한여름에 검은 양복이었다⁠. 쉰둘⁠, 한국헌터협회 작전부장 석주완⁠. 예전에 A급 방패로 나와 같은 균열을 세 번 들어갔던 사람이고⁠, 무릎이 나간 뒤로 작전 천막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주완은 엄마들 사이를 똑바로 가로질러 등나무 벤치 앞에 멈췄다⁠. 손에 누런 봉투를 들고 있었다⁠. 봉투 겉에 「⁠복귀 명령서⁠」라고 찍혀 있었다⁠.

“⁠권창해 헌터⁠. 홍대 앞 5등급입니다⁠. 사흘 안에 복귀하십시오⁠.⁠”

모래밭이 조용해졌다⁠. 삽질하던 아이까지 손을 멈췄다⁠.

“⁠휴직 중입니다⁠.⁠”

“⁠압니다⁠. 휴직계는 넉 달째 제 서랍에 있습니다⁠.⁠” 주완은 봉투를 내밀었다⁠. “⁠넉 달 동안 당신 자리에 둘을 넣었습니다⁠. 상암 3등급에서 둘 다 다쳤습니다⁠. 한 사람은 갈비뼈 두 대에 금이 갔고⁠, 한 사람은 아직 병원에서 못 나왔습니다⁠.⁠”

봉투를 받지 않았다⁠. 예봄이가 받았다⁠. 작은 손이 봉투 귀퉁이를 움켜쥐더니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협회 직인이 젖습니다⁠.⁠”

“⁠이가 나는 중이라서요⁠.⁠”

주완은 봉투를 빼내려다 그만두었다⁠. 예봄이가 으르렁거렸다⁠. 아기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S급은 국내에 아홉입니다⁠. 둘은 오사카와 부산 균열에 나가 있고⁠, 하나는 지난주에 팔이 부러졌습니다⁠. 남은 여섯 가운데 균열의 숨을 듣는 사람은 당신 하나입니다⁠. 핵을 못 찾으면 경계선은 계속 밀려옵니다⁠. 여기까지⁠.⁠”

주완이 구두 끝으로 모래를 가리켰다⁠. 엄마 하나가 아이를 무릎으로 끌어당겼다⁠.

“⁠제 아내가 이번 분기 승진 심사입니다⁠. 제가 복귀하면 아내가 심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린이집은요⁠?⁠”

“⁠대기 번호 마흔한 번입니다⁠.⁠”

“⁠마흔한 번이면 이 아이 초등학교 들어갑니다⁠.⁠”

“⁠장모님은 대구에서 무릎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권 헌터 아버님은요⁠?⁠”

“⁠낚시 가셨습니다⁠. 이 년째⁠.⁠”

주완의 눈꺼풀이 한 번 내려왔다 올라갔다⁠. 부하가 보고서를 엉망으로 써 왔을 때 짓던 얼굴이었다⁠.

“⁠가정사는 협회가 해결해 드릴 수 없습니다⁠.⁠”

“⁠가정사를 해결하려고 휴직을 냈습니다⁠.⁠”

“⁠그사이 마포가 무너지면요⁠?⁠”

“⁠마포가 무너지는 동안 제 집이 무너지면요⁠?⁠”

모래밭 가의 엄마 셋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내 귀로 굴러왔다⁠.

“⁠헌터래⁠.⁠”

“⁠협회 작전부장이 직접 왔으면 최소 A급이야⁠.⁠”

“⁠S급이라잖아⁠. 아까 S급 아홉이라고⁠.⁠”

“⁠주식 아니었어⁠?⁠”

주완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들 귀에 들어가라고 하는 말이었다⁠.

“⁠헌터 서열 국내 7위가 놀이터에서 떡뻥을 쥐고 있으면 저는 위에 할 말이 없습니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떡뻥을 쥐고 있었다⁠. 예봄이가 봉투를 놓고 떡뻥으로 손을 뻗었다⁠.

“⁠사흘 뒤 이 시각에 다시 오겠습니다⁠.⁠” 주완은 침에 젖은 봉투를 벤치에 올려놓았다⁠. “⁠그때도 아기 띠를 메고 계시면 징계위원회로 갑니다⁠. 서열도 내려놓으셔야 할 겁니다⁠.⁠”

“⁠안 갑니다⁠.⁠”

“⁠사흘 동안 생각하십시오⁠. 생각은 휴직 중에도 할 수 있습니다⁠.⁠”

주완이 돌아서 걸어 나갔다⁠. 무릎을 끄는 발소리가 모래에서 아스팔트로 넘어가는 동안 놀이터의 시선이 전부 내 얼굴에 붙어 있었다⁠. 결희가 유모차를 밀고 다가왔다⁠. 아까의 공지문 얼굴은 어디 가고 입이 반쯤 열려 있었다⁠.

“⁠지하라면서요⁠.⁠”

“⁠균열이 주로 지하에 열립니다⁠.⁠”

*

혜결은 여덟 시 십 분에 들어왔다⁠. 현관문이 열리기 전부터 알았다⁠. 아내의 구두는 계단참에서 한 번 멈춘다⁠. 숨을 고르고 들어오는 사람이다⁠.

“⁠명령서 받았다며⁠.⁠”

“⁠누가 그래⁠?⁠”

“⁠결희 씨가 나한테 디엠 보냈어⁠. 우리 맞팔이야⁠.⁠” 혜결이 가방을 소파에 던졌다⁠. 화면에 결희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예봄 어머님 놀라지 마세요⁠. 남편분 지하철 아니래요⁠.⁠」

“⁠안 간다고 했어⁠.⁠”

“⁠안 간다고 했어⁠? 당신 혼자 정했어⁠?⁠”

“⁠당신 심사 있잖아⁠. 내가 애 볼 테니까 당신은 발표 준비해⁠. 도와줄게⁠.⁠”

“⁠도와준다는 말 쓰지 말랬지⁠.⁠” 혜결이 블라우스 단추를 풀다 멈췄다⁠. “⁠당신 딸이야⁠. 당신이 보는 거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러면 생각도 그런 거야⁠.⁠”

예봄이가 거실 매트 위에서 블록을 입에 넣었다가 뺐다⁠. 혜결은 이번 분기 차장 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8월 마지막 금요일에 본부장 앞에서 발표를 하고⁠, 떨어지면 다음 기회는 두 해 뒤였다⁠. 여섯 시에 칼같이 나와 지하철에서 발표 자료를 고치는 사람이었다⁠. 내가 휴직을 낸 날 혜결은 이력서도 하나 고쳐 두었다⁠. 승진에서 떨어지면 낼 이력서였다⁠. 나는 그것을 컴퓨터 바탕 화면에서 보았고⁠, 못 본 척했다⁠.

“⁠홍대 앞에 사람 있잖아⁠.⁠” 혜결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뉴스에서 대피하는 사람들 봤어⁠. 유모차 끌고 뛰더라⁠.⁠”

“⁠알아⁠.⁠”

“⁠내가 휴직할까⁠?⁠”

“⁠당신 심사는⁠?⁠”

“⁠당신 서열은⁠?⁠”

혜결의 휴대전화가 소파 위에서 짧게 떨었다⁠. 사내 메신저였다⁠. 「⁠본부장⁠: 한 과장⁠, 마포 괜찮아요⁠? 내일 아홉 시 회의는 그대로 갑니다^^⁠」 혜결이 화면을 엎었다⁠. 웃음 표시 둘이 엎어진 화면 밑에서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봤지⁠? 재난 나도 아홉 시 회의는 그대로야⁠.⁠”

“⁠우리 협회는 재난 나면 아홉 시가 없어⁠. 그냥 다 지금이야⁠.⁠”

“⁠그래서 자랑이야⁠?⁠”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또 말이 그렇대⁠.⁠”

혜결이 소파 쿠션을 내 쪽으로 던졌다⁠. 예봄이가 쿠션을 보고 손뼉을 쳤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줄도 모르고⁠, 날아다니는 쿠션이 마음에 든 얼굴이었다⁠.

같은 자리를 세 바퀴 돌았다⁠. 누가 이겨도 지는 싸움이었다⁠. 혜결은 씻으러 들어갔다⁠. 샤워기 물소리 아래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짧게 두 번 섞였다⁠. 다른 사람은 못 들었을 소리였다⁠. 내 귀는 그런 것까지 다 들었다⁠.

*

새벽 두 시⁠, 예봄이가 깼다⁠. 이가 올라오는 밤이면 두 시에 깨서 한 시간을 울었다⁠. 나는 아기 띠를 다시 메고 예봄이를 안았다⁠. 거실을 서른 바퀴 돌면 잠들었다⁠.

열한 바퀴째에 홍대 앞의 숨소리가 들렸다⁠. 낮보다 또렷했다⁠. 차 소리가 빠진 밤에는 숨이 그대로 왔다⁠. 들이쉬는 데 칠 초⁠, 멈춤⁠, 내쉬는 데 십일 초⁠. 날숨 끝에 아주 낮은 박동이 하나 섞여 있었다⁠. 균열을 붙들고 있는 심장⁠, 핵이 뛰는 소리였다⁠.

다용도실 문을 열었다⁠. 세탁기 옆에 은빛 장검이 칼집째 세워져 있었다⁠. 넉 달 동안 건조대 그림자에 가려 있던 칼이었다⁠. 칼자루를 오른손으로 쥐었다⁠. 손바닥에 익은 무게가 그대로였다⁠. 칼이 칼집에서 반 뼘 빠져나오는 소리에 예봄이가 눈을 반쯤 떴다가 다시 감았다⁠.

오른손에는 칼⁠, 가슴에는 딸⁠. 베란다 창으로 홍대 앞 하늘이 보였다⁠. 구름 밑이 검붉게 일렁였다⁠. 숨 한 번에 경계선이 몇 미터씩 밀려 나오는지⁠, 핵이 얼마나 깊이 숨어 있는지⁠, 나는 들으면 알 수 있었다⁠.

사흘 안에 복귀하지 않는다⁠. 주완의 시계에 맞춰 들어가지도 않는다⁠. 들어갈 시간은 내가 정한다⁠.

예봄이의 숨이 내 쇄골에 닿았다⁠. 들이쉬는 데 이 초⁠, 내쉬는 데 삼 초⁠. 나는 칼을 칼집에 밀어 넣고⁠, 딸의 박자에 맞춰 거실을 열두 바퀴째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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