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70자)

문답 중에 책상 밑에서 손을 잡았다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3월 4일 목요일 아침 여덟 시⁠, 나는 헤드폰을 끼고 염명숙 고객의 주문 녹취를 처음부터 들었다⁠. 대륙증권 영업점 전화는 모두 녹음된다⁠. 석 달 치 녹취가 이백십 개였고⁠, 하나에 평균 칠 분이었다⁠. 육 차장이 내 모니터 옆에 귤 하나를 올려놓고 갔다⁠. 귤은 비타민이 아니라 각오라고 했다⁠.

첫 녹취는 1월 4일이었다⁠. 준서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고객님⁠, 방준서입니다⁠. 아침 드셨어요⁠?⁠”

“⁠방 선생⁠, 나 오늘 누룽지 끓였어⁠. 방 선생은⁠?⁠”

“⁠저는 커피요⁠.⁠”

“⁠커피는 밥이 아니야⁠. 내가 사십 년 동안 애들한테 그 말을 했어⁠.⁠”

염명숙 고객은 중학교 음악 교사로 사십 년을 일했다⁠. 녹취 대부분은 주식보다 밥 이야기가 길었다⁠. 준서가 넥타이 색을 말하면 고객은 넥타이 색에 맞는 가곡을 한 소절 불렀다⁠. 빨간 넥타이를 맨 날은 「⁠그리운 금강산⁠」이었다⁠. 왜 빨강에 금강산인지는 녹취 이백십 개를 다 들어도 나오지 않았다⁠.

열한 번째 녹취에서 나는 재생 막대를 멈췄다⁠. 되감았다⁠. 다시 들었다⁠.

“⁠방 선생⁠, 나는 뭐가 뭔지 몰라⁠. 방 선생이 알아서 해 줘⁠. 사든 팔든⁠.⁠”

“⁠네⁠, 고객님⁠. 제가 잘 보고 하겠습니다⁠.⁠”

노란 형광펜을 쥔 손이 화면 앞에서 멈췄다⁠. 일임매매⁠. 고객이 무엇을 살지⁠, 팔지까지 통째로 맡기고 영업직원이 알아서 사고파는 것이다⁠. 증권사 영업직원은 투자일임업 등록 없이 이런 매매를 할 수 없다⁠. 고객이 종목과 사고팔 방향을 정해 주면 수량과 가격과 때만 맡을 수 있다⁠. 「⁠알아서 해 줘⁠. 사든 팔든⁠」은 이 선을 넘은 말이었고⁠, 「⁠제가 잘 보고 하겠습니다⁠」는 받겠다는 대답이었다⁠.

리테일지원팀 사 년 동안 나는 이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때는 고객이 영업직원을 믿는 말로 들었다⁠. 19층에서 들으니 위반의 첫 줄로 들렸다⁠. 같은 귀로 들었는데 층이 바뀌니 다르게 들렸다⁠.

메신저 창이 깜박였다⁠. 대륙톡⁠, 회사 메신저다⁠.

「⁠IT헬프데스크⁠: 오늘 장 마감 후 동시호가 가능⁠?⁠」

장 마감 뒤 동시호가는 우리 둘 사이에서 퇴근 뒤 저녁을 뜻했다⁠. 감사팀은 회사 메신저 기록을 볼 수 있다⁠. 물론 정해진 절차를 밟고 대상자에게 알린 범위에서만이다⁠. 그래서 우리는 삼 년 동안 증권 용어로만 연애했다⁠. 손잡기는 체결⁠, 싸움은 서킷브레이커⁠, 화해는 반등⁠.

「⁠채가온⁠: 시스템 점검 중⁠. 체결 불가⁠.⁠」

「⁠IT헬프데스크⁠: 점검 언제 끝나요⁠?⁠」

「⁠채가온⁠: 오후 두 시 소회의실에서 고객님 계정을 점검합니다⁠. 본인 확인 서류 지참⁠.⁠」

답이 한참 없었다⁠. 그러다 한 줄이 왔다⁠.

「⁠IT헬프데스크⁠: 넥타이는 빨강으로 할게요⁠.⁠」

*

오후 두 시⁠, 3층 영업본부 소회의실⁠. 벽 하나가 통유리였고⁠, 유리 너머로 영업팀 책상 마흔 개가 보였다⁠. 전화기 마흔 대가 쉬지 않고 울렸다⁠. 육 차장이 탁자 가운데에 녹음기를 놓고 내게 노트북을 밀었다⁠.

“⁠채가온 씨가 문답서 적어⁠. 내가 묻고 방 대리가 답하면⁠,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끝나면 방 대리가 읽고 장마다 서명해⁠.⁠”

문답서는 묻고 답한 말을 그대로 옮겨 적고 대상자의 서명을 받는 서류다⁠. 나중에 말이 바뀌면 이 종이가 처음 말을 붙잡는다⁠.

준서가 들어왔다⁠. 정말로 빨간 넥타이였다⁠. 「⁠그리운 금강산⁠」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준서는 육 차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듯 고개를 숙였다⁠.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탁자는 좁았고⁠, 탁자 밑에서 준서의 구두 앞코가 내 구두 앞코에 닿았다⁠. 나는 발을 뒤로 뺐다⁠.

통유리 너머로 빨간 정장이 지나가다 멈췄다⁠. 옥경 팀장이 영업팀 책상 사이 통로에 서서 팔짱을 끼고 이쪽을 보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눈만 들어왔다⁠.

“⁠방준서 대리⁠, 염명숙 고객님 계좌 관리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육 차장이 물었다⁠.

“⁠이 년 반입니다⁠.⁠”

나는 쳤다⁠. 「⁠이 년 반입니다⁠.⁠」

“⁠최근 석 달 매매가 칠십억이 넘습니다⁠. 고객님이 종목을 직접 정하셨습니까⁠?⁠”

“⁠네⁠. 고객님이 전화로 종목과 수량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반 박자 늦었다⁠. 나는 쳤다⁠. 「⁠네⁠. 고객님이 전화로 종목과 수량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토씨 하나 바꾸지 않았다⁠. 바꾸고 싶은 토씨가 문장 전체였다⁠.

육 차장이 주문표 사본을 꺼냈다⁠. 글씨가 깨알 같았다⁠. “⁠채가온 씨⁠, 돋보기 가져왔지⁠? 1월 11일 주문 시각 좀 읽어 줘⁠.⁠”

나는 오른손으로 놋쇠 돋보기를 들어 주문표에 댔다⁠. 왼손은 무릎 위에 있었다⁠. 탁자 밑에서 따뜻한 손이 올라와 왼손 등을 덮었다⁠. 준서의 손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손가락이 들어와 깍지를 끼었다⁠. 통유리 너머의 옥경 팀장은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탁자 상판이 우리 손과 옥경 팀장의 눈 사이를 막고 있었다⁠.

보고서 말투로 적으면 이렇다⁠. 문답 진행 중 피감자가 탁자 하부에서 감사인의 왼손을 잡음⁠. 지속 시간 사십 초⁠. 감사인은 손을 빼지 않음⁠. 사유는 오른손에 돋보기를 들고 있어 동작이 크면 들킬 우려가 있었음⁠. 이것은 핑계임⁠.

“⁠오전 열 시 이 분입니다⁠.⁠”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반듯하게 나왔다⁠. “⁠서진정밀 매수⁠, 만이천 주⁠.⁠”

“⁠그 주문 녹취 있어요⁠?⁠” 육 차장이 물었다⁠.

나는 왼손을 뺐다⁠. 준서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끝을 한 번 붙잡았다가 놓았다⁠. 노트북 화면으로 녹취 목록을 띄웠다⁠.

“⁠없습니다⁠. 1월 11일 오전에는 녹취가 하나도 없어요⁠. 2월 3일 가람바이오⁠, 2월 17일 대해전선도 같습니다⁠. 세 건 다 주문 직전 녹취가 없고⁠, 세 건 다 사십 분 뒤에 주가가 뛰었습니다⁠.⁠”

준서가 나를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방 대리님⁠.⁠” 나는 화면을 준서 앞으로 돌렸다⁠. “⁠고객님이 종목을 말씀하셨다면⁠, 어디로 말씀하셨어요⁠?⁠”

“⁠제 휴대전화로요⁠.⁠”

육 차장이 볼펜 끝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영업직원이 녹음되지 않는 개인 휴대전화로 주문을 받는 것 자체가 내부통제 기준 위반이다⁠. 준서는 그것을 알았고⁠, 알면서도 말했다⁠. 거짓말을 덮으려고 꺼낸 말이 다른 위반이었다⁠.

“⁠그것도 적어⁠.⁠” 육 차장이 말했다⁠.

나는 쳤다⁠. 「⁠제 휴대전화로요⁠.⁠」 일곱 글자를 치는 동안 자판이 돌처럼 무거웠다⁠.

문답이 끝났다⁠. 준서는 문답서 여섯 장을 한 장씩 읽고 장마다 서명했다⁠. 서명하는 손이 내 손을 잡았던 손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볼펜이 한 번 미끄러져 서명 끝이 길게 그어졌다⁠. 준서가 나가면서 문을 닫았고⁠, 닫힌 문 너머에서 영업팀 전화기 마흔 대가 다시 울렸다⁠.

노트북을 덮고 복도로 나오자 노강철 본부장이 엘리베이터 앞에 기대 서 있었다⁠. 금색 넥타이핀이 형광등 아래서 반짝였다⁠. 육 차장은 화장실에 들렀고⁠, 복도에는 노 본부장과 나 둘뿐이었다⁠.

“⁠채가온 씨⁠. 휴대전화 얘기는 문답서에서 빼 주지⁠.⁠”

“⁠문답서는 들은 대로 적습니다⁠.⁠”

“⁠그건 내가 쓰라고 한 거야⁠. 어르신 고객들은 회사 번호로 걸면 안 받아⁠. 스팸인 줄 알고⁠. 영업하는 사람이 고객 전화를 안 받으면 고객이 떠나⁠. 고객이 떠나면 감사팀 월급도 줄어⁠.⁠” 노 본부장이 웃었다⁠. 웃음은 입에서 끝나고 눈까지 가지 않았다⁠. “⁠우리 본부가 회사 수익 사십 퍼센트야⁠. 감사팀은 몇 퍼센트지⁠?⁠”

“⁠감사팀은 수익을 안 냅니다⁠. 새는 걸 막아요⁠.⁠”

“⁠새는 데가 있어야 막지⁠.⁠” 노 본부장이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우리 준서 착한 애야⁠. 착한 애 하나 잡자고 본부 마흔 명 영업을 흔들지 마⁠.⁠”

노 본부장이 탄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갔다⁠. 24층⁠, 대표이사실이 있는 층에서 숫자가 멈췄다⁠. 나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휴대전화 이야기를 빼 달라는 사람은 준서가 아니라 준서의 본부장이었다⁠.

*

19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옥경 팀장과 둘이 되었다⁠. 옥경 팀장이 거울을 보며 말했다⁠.

“⁠문답 중에 탁자 밑에서 무슨 소리가 났지⁠?⁠”

“⁠의자 바퀴 소리요⁠.⁠”

“⁠바퀴가 사십 초 동안 났어⁠.⁠”

나는 숫자 앞에서 숨을 멈췄다⁠. 옥경 팀장은 유리 너머에 있었고⁠,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의 길이를 아는 사람이었다⁠.

“⁠사진 속 여자는 찾았나⁠?⁠”

“⁠아직입니다⁠.⁠”

“⁠금요일까지다⁠.⁠”

19층에서 문이 열렸다⁠. 옥경 팀장이 먼저 내렸고⁠, 나는 닫힘 단추를 누르고 싶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

3월 5일 금요일 오전 열 시⁠, 나는 감사팀 녹음 전화로 염명숙 고객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다⁠. 감사팀이 고객에게 직접 묻는 일은 드물다⁠. 육 차장은 고객 확인은 짧고 공손하게⁠, 영업직원 욕은 고객이 먼저 해도 따라 하지 않는다고 일러 주었다⁠.

“⁠대륙증권 감사팀 채가온입니다⁠. 고객님 계좌 거래를 확인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감사팀⁠? 방 선생한테 무슨 일 있어⁠?⁠”

“⁠방준서 대리님이 고객님 대신 종목을 골라 매매하셨는지 여쭤보려고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피아노 뚜껑을 닫는 소리가 났다⁠.

“⁠내가 그러라고 했어⁠. 알아서 하라고⁠. 나는 차트 보면 눈이 아파⁠. 방 선생 혼내면 안 돼⁠.⁠”

“⁠고객님⁠, 석 달 동안 수수료로 삼천팔백만 원이 나갔습니다⁠. 알고 계셨어요⁠?⁠”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오래였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았다⁠.

“⁠…⁠…방 선생이 매일 전화를 해⁠. 아침 아홉 시에⁠. 남편 가고 나서 아침 아홉 시에 전화하는 사람이 방 선생밖에 없어⁠.⁠” 고객의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이어졌다⁠. “⁠삼천팔백이면 레슨비로 치면 많이 비싸네⁠.⁠”

“⁠네⁠.⁠”

“⁠방 선생 밥은 먹고 다닌대⁠? 커피만 마시지⁠?⁠”

“⁠…⁠…네⁠. 커피만 마셔요⁠.⁠”

전화를 끊고 나는 한동안 귤껍질을 손톱으로 뜯었다⁠. 육 차장이 건너편에서 말했다⁠.

“⁠고객이 감싸면 위반이 없어지나⁠?⁠”

“⁠아니요⁠.⁠”

“⁠고객이 감싸면 위반자가 하나 더 생기는 거야⁠. 고객 본인한테도 손해고⁠.⁠”

*

금요일 저녁 여섯 시 사십 분⁠, 나는 보고서 초안을 열어 놓고 있었다⁠. 일임매매 의심⁠, 녹취 없는 주문 세 건⁠, 개인 휴대전화 주문 접수⁠. 마지막 칸 「⁠첨부⁠」 아래에 녹취 파일 하나가 아직 붙지 않은 채였다⁠. 1월 7일 오전 아홉 시 녹취⁠. 「⁠방 선생이 알아서 해 줘⁠. 사든 팔든⁠.⁠」

이 파일을 붙이면 준서는 일임매매로 징계위원회에 간다⁠. 붙이지 않으면 준서의 문답서 「⁠네⁠. 고객님이 전화로 종목과 수량을 다 말씀하셨습니다⁠」가 보고서 안에서 거짓이 아닌 말이 된다⁠. 내가 친 문장을 내가 거짓이 아니게 만드는 일이었다⁠.

창밖으로 여의도 빌딩들이 하나씩 불을 켰다⁠. 발밑으로 열여섯 층 아래 영업본부 창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서 준서도 모니터를 보고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IT헬프데스크⁠: 오늘 장 마감 후 동시호가 가능⁠?⁠」

나는 휴대전화를 엎었다⁠. 보고서 마지막 줄에는 「⁠송년회 사진 속 여성 — 특정 불가⁠」라고 적었다⁠. 이 줄을 적으며 볼이 뜨거웠다⁠. 거짓말 하나는 내가 들고 가기로 했다⁠. 다른 하나는 들고 갈 수 없었다⁠.

나는 녹취 파일을 끌어다 「⁠첨부⁠」 아래에 놓았다⁠. 파일 이름이 파랗게 바뀌었다⁠. 전송을 눌렀다⁠. 팀장실 유리문 너머에서 옥경 팀장의 모니터가 한 번 깜박였고⁠, 옥경 팀장이 의자를 돌려 나를 보았다⁠. 팔짱을 끼지 않은 채였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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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겸2026.11.06· 2화

    책상 밑에서 손잡고 문답하는 장면 미쳤어요 ㅋㅋㅋ 받아 적는 사람이 여자친구라니. 「송년회 사진 속 여성 — 특정 불가」 적으면서 볼 빨개지는 가온이 너무 귀여운데, 녹취 파일은 결국 보냈네요?

    • 모세담작가2026.11.06

      가온은 거짓말 하나만 들고 가기로 했어요. 옥경 팀장이 팔짱을 풀고 돌아본 까닭은 3화부터 하나씩 드러납니다.

문답 중에 책상 밑에서 손을 잡았다 ·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