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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사원증 줄이 엉켰다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2027년 3월 2일 화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여의도 대륙증권 본사 1층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히기 직전에 사람을 하나 더 받았다⁠. 나는 맨 안쪽 거울에 등을 붙이고 있었고⁠, 바로 앞에 방준서가 있었다⁠. 두 사람의 파란 목줄이 사람들 어깨에 밀려 한데 감겼다⁠. 목줄 끝 집게가 서로를 물었다⁠.

거울 속의 나는 오늘 아침 사십 분을 들여 만든 모습이었다⁠. 보통 키에 큰 눈⁠, 긴 갈색 곱슬 웨이브 머리를 반만 묶어 흰 리본으로 고정했고⁠, 흰 블라우스 위에 베이지 바지 정장⁠, 귀에는 엄마가 대학 졸업 선물로 준 진주 귀걸이⁠. 감사팀 첫 출근에 맞는 얼굴을 고르느라 립스틱을 세 번 바꿨다⁠. 준서는 넘긴 검은 머리에 남색 정장⁠, 빨간 넥타이였다⁠. 키가 커서 엘리베이터 천장 조명이 준서 머리 위에서 하얗게 번졌다⁠.

“⁠움직이지 마⁠.⁠” 준서가 앞을 본 채 입술만 움직였다⁠.

“⁠안 움직였어⁠. 네 집게가 먼저 물었어⁠.⁠”

“⁠집게는 주인을 닮아⁠.⁠”

나는 준서의 등에 대고 웃음을 삼켰다⁠. 삼 년째 이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다⁠. 영업본부 3층에서 내리는 남자와 리테일지원팀 7층에서 내리던 여자⁠. 오늘부터 나는 19층에서 내린다⁠.

닫히던 문 사이로 빨간 소매가 들어왔다⁠. 문이 다시 열렸다⁠. 짧은 검은 웨이브 머리⁠, 빨간 정장⁠,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건 여자가 들어와 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엘리베이터 안 공기가 한 칸 내려앉았다⁠. 여자가 팔짱을 끼었다⁠. 심옥경 감사팀장이었다⁠. 사내 게시판 인사 공지에서 사진으로만 본 얼굴이 실물로는 사진보다 덜 웃었다⁠.

준서의 손이 목줄 쪽으로 슬그머니 갔다⁠. 집게를 떼려는 손이었다⁠. 나도 손을 뻗었다⁠. 두 손이 동시에 집게를 잡아당겼고⁠, 집게 둘이 딸깍 하고 풀리면서 사원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준서와 내가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준서가 하나⁠, 내가 하나를 집었다⁠.

3층에서 문이 열렸다⁠. 준서가 내리면서 고개만 살짝 돌려 옥경 팀장에게 인사했다⁠. 옥경 팀장은 인사를 받지 않고 준서의 뒤통수를 끝까지 보았다⁠.

19층 출입 게이트 앞에서 나는 사원증을 댔다⁠. 삑⁠, 하고 빨간 불이 들어왔다⁠. 다시 댔다⁠. 빨간 불⁠. 뒤에서 구두 소리가 멈췄다⁠.

“⁠채가온 씨⁠.⁠” 옥경 팀장이었다⁠. “⁠영업팀에서 감사팀으로 출근하나⁠?⁠”

내 목에 걸린 카드에는 내 얼굴 대신 준서의 웃는 얼굴이 있었고⁠, 사진 아래에 「⁠영업팀 방준서⁠」라고 찍혀 있었다⁠.

“⁠…⁠…환승입니다⁠.⁠”

옥경 팀장은 웃지 않았다⁠. 자기 카드로 게이트를 열어 주고 먼저 들어갔다⁠.

*

보고서 말투로 적으면 이렇다⁠. 감사팀 첫 출근 적발 사항 한 건⁠. 감사인 본인이 피감 부서 직원의 사원증을 패용하고 출근함⁠. 원인은 엘리베이터 내 목줄 엉킴⁠. 재발 방지 대책은 앞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남자친구의 반경 일 미터 안에 서지 않는 것⁠. 이행 가능성 낮음⁠.

감사팀은 19층 북쪽 끝⁠, 창밖으로 한강이 보이는 방이었다⁠. 책상 여섯 개에 사람은 셋⁠, 벽 하나가 통째로 회색 문서함이었다⁠. 옥경 팀장이 내 책상 위에 상자를 하나 올렸다⁠. 열어 보니 손바닥보다 큰 놋쇠 돋보기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에 「⁠대륙증권 감사팀⁠」이 새겨져 있었다⁠.

“⁠새로 오는 사람한테 하나씩 준다⁠. 화면 글씨 키우라고 주는 거 아니다⁠. 크게 보고⁠,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고 주는 거다⁠.⁠”

“⁠감사합니다⁠.⁠” 돋보기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걸로 뭘 크게 보면 될까요⁠?⁠”

“⁠사람⁠.⁠”

옆자리 육창식 차장이 의자를 끌고 와서 내 서랍을 열어 보였다⁠. 서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장은 자기 서랍을 열었다⁠. 초코과자⁠, 견과류 봉지⁠, 형광펜이 색깔별로 열두 자루⁠.

“⁠감사팀 십오 년 하면서 배운 게 두 개야⁠.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해⁠, 사람이 하지⁠. 그리고 오후 세 시엔 당이 떨어져⁠. 필요하면 가져가⁠. 대신 형광펜은 빌려 가면 꼭 뚜껑 닫아⁠.⁠”

“⁠형광펜은 왜요⁠?⁠”

“⁠빨강은 위반⁠, 노랑은 의심⁠, 초록은 해명⁠. 섞이면 보고서가 망가져⁠.⁠”

옥경 팀장이 자기 자리에서 말했다⁠. “⁠채가온 씨 리테일지원팀 사 년이지⁠. 고객 계좌 원장 읽는 거 몇 시간이면 해⁠?⁠”

“⁠계좌 하나면 한 시간이요⁠.⁠”

“⁠여기서는 십오 분⁠.⁠”

내 책상의 앞 주인은 감사팀 막내였던 사람으로⁠, 지난달 준법감시팀으로 옮겨 가면서 모니터에 포스트잇 한 장을 남겨 두었다⁠. 「⁠팀장님 팔짱 풀면 칭찬⁠. 끼면 보통⁠. 다리까지 꼬면 짐 싸기⁠」⁠. 육 차장이 포스트잇을 떼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버리라는 건지 간직하라는 건지 차장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포스트잇을 서랍 맨 안쪽에 붙였다⁠.

*

열 시⁠, 회의 탁자에 셋이 앉았다⁠.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경제 뉴스가 소리 없이 자막을 흘렸다⁠. 「⁠금융감독원⁠, 올해 검사 계획 발표⁠… 증권사 임직원 자기매매·불건전 영업행위 집중 점검⁠」⁠. 육 차장이 화면을 가리키며 초코과자를 깠다⁠.

“⁠올해는 금감원이 우리 밥그릇을 뺏으러 오시겠네⁠.⁠”

옥경 팀장이 종이 한 장씩을 나눠 주었다⁠. 맨 위에 「⁠1분기 감사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내 교제 관리 규정 점검⁠, 임직원 자기매매 점검⁠, 이상 거래 감시⁠. 나는 첫 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륙증권 임직원 사내 교제 관리 규정⁠. 2017년 6월 제정⁠. 감사·준법 부서와 피감 부서 직원 사이⁠, 같은 본부 안 결재선 사이의 교제를 금지하고⁠, 나머지 교제는 인사팀에 신고한다⁠. 신고하지 않으면 징계한다⁠. 입사 첫날 교육에서 한 번 듣고 다들 웃어넘기는 규정이었다⁠. 옥경 팀장은 이 규정을 만든 사람이었고⁠, 지난 십 년 동안 이 규정으로 열한 명을 다른 부서로 보냈다⁠.

“⁠이번 분기 첫 조사 대상⁠.⁠” 옥경 팀장이 리모컨을 눌렀다⁠. 화면에 이상 거래 감시 시스템 경보 목록이 떴다⁠. 맨 위 줄이 빨갛게 칠해져 있었다⁠. 「⁠영업2팀 방준서 · 관리 고객 염명숙 · 최근 석 달 회전율 1⁠,200퍼센트⁠」⁠.

회전율은 계좌에 든 돈으로 몇 번을 사고팔았는지 보여 주는 숫자다⁠. 육억이 든 계좌가 석 달에 1⁠,200퍼센트면 칠십억 넘게 사고팔았다⁠. 일흔한 살 은퇴 음악 교사가 혼자 그렇게 매매했을 리 없었다⁠. 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손바닥이 종이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팀장님⁠, 질문 있습니다⁠.⁠”

“⁠해⁠.⁠”

“⁠회전율은 영업 문제잖아요⁠. 준법감시팀이 보는 일이고요⁠. 사내 연애 규정 보는 팀이 왜 이걸 먼저 봅니까⁠?⁠”

육 차장이 과자를 씹다 멈췄다⁠. 옥경 팀장이 팔짱을 끼었다⁠.

“⁠우리 팀은 연애를 보는 팀이 아니야⁠. 정보가 새는 구멍을 보는 팀이야⁠. 고객 돈이 한 사람 손에서 멋대로 돌면 그것도 구멍이고⁠.⁠”

“⁠그럼 사내 연애 규정은 왜 있어요⁠?⁠”

“⁠십 년 전엔 그 구멍이 연애였으니까⁠.⁠”

“⁠십 년 전이면 지금하고는⁠…⁠…⁠.⁠”

“⁠채가온 씨⁠.⁠” 옥경 팀장이 내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첫날부터 내 규정이 낡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좋아⁠. 그 입으로 이 건 맡아⁠. 염명숙 계좌 석 달 치 원장⁠, 녹취⁠, 접속 기록 전부⁠. 금요일까지⁠.⁠”

나는 대답 대신 돋보기 손잡이를 쥐었다⁠. 조사에서 빠지려면 이유를 대야 했고⁠,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조사 대상의 여자친구입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도 규정 위반자가 되고⁠, 준서는 나보다 훨씬 엄한 사람에게 조사를 받는다⁠.

“⁠네⁠. 금요일까지 하겠습니다⁠.⁠”

*

열한 시⁠, 3층 탕비실⁠. 커피 머신이 원두를 가는 소리 속에서 준서가 내 사원증을 내밀었다⁠. 나도 준서의 사원증을 내밀었다⁠. 휴대전화에는 이십 분 전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준서는 내 휴대전화에 「⁠IT헬프데스크⁠」로 저장되어 있다⁠.

「⁠IT헬프데스크⁠: 고객님⁠, 출입증 교환 서비스는 11시 3층 탕비실에서 진행됩니다⁠. 만족도 조사 부탁드립니다⁠.⁠」

“⁠만족도 빵점이야⁠.⁠” 나는 사원증을 낚아채 목에 걸었다⁠. “⁠너 조사 대상이야⁠. 내가 맡았어⁠.⁠”

“⁠알아⁠.⁠”

“⁠어떻게 알아⁠? 회의 끝난 지 삼십 분인데⁠.⁠”

“⁠본부장님이 어제 저녁에 그러더라⁠. 감사팀이 너 볼 거다⁠, 서류 잘 챙겨라⁠.⁠”

나는 컵을 내려놓았다⁠. 계획표는 오늘 아침 회의에서 처음 나왔다⁠. 어제 저녁에 회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영업본부에 있었다⁠. 준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얼굴로 우유를 찾았다⁠.

“⁠염명숙 고객님 계좌⁠, 석 달에 칠십억이야⁠. 네가 다 주문 넣었지⁠?⁠”

“⁠고객님이 전화로 주문하셨지⁠.⁠”

“⁠매일⁠?⁠”

“⁠매일⁠. 고객님이 나랑 통화하는 걸 좋아하셔⁠.⁠”

탕비실 문이 열렸다⁠. 영업팀 여직원 둘이 들어왔다⁠. 준서가 한 발 물러나 커피 머신을 가리켰다⁠.

“⁠이 머신이 원두 회전율이 높네요⁠. 감사팀에서 점검 나오셨어요⁠?⁠”

“⁠네⁠. 원두가 너무 자주 갈려서요⁠. 과당 분쇄 의심입니다⁠.⁠”

여직원 둘이 서로 얼굴을 보다가 컵만 들고 나갔다⁠. 준서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회색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가 들어왔다⁠. 노강철 영업본부장⁠. 대륙증권 영업본부 약정 1위를 십 년째 지킨다는 사람이었고⁠, 넥타이핀이 금색이었다⁠.

“⁠감사팀 신입이구나⁠.⁠” 노 본부장이 내 사원증을 보았다⁠. “⁠우리 준서 잘 봐줘요⁠. 우리 본부 약정 1등이야⁠. 1등은 원래 숫자가 커⁠. 숫자 크다고 다 사고는 아니고⁠.⁠”

“⁠숫자가 크면 크게 봅니다⁠.⁠” 내 입에서 옥경 팀장 말투가 나왔다⁠. “⁠감사팀이 돋보기를 줬거든요⁠.⁠”

노 본부장이 소리 내어 웃고 커피를 뽑아 나갔다⁠. 웃음소리가 복도 끝까지 갔다⁠. 준서가 내 소매를 잡았다⁠.

“⁠본부장님한테 왜 그래⁠.⁠”

“⁠네 본부장님은 왜 어제 저녁에 우리 팀 계획을 알았어⁠?⁠”

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매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한 번 들어갔다가 풀렸다⁠.

*

오후 내내 나는 염명숙 고객의 원장을 읽었다⁠. 한 줄에 매수⁠, 다음 줄에 매도⁠, 또 다음 줄에 다시 매수⁠. 같은 종목을 아침에 사고 오후에 팔고⁠, 다음 날 아침에 또 샀다⁠. 수수료만 석 달에 삼천팔백만 원이었다⁠. 육 차장이 노란 형광펜을 하나 건넸다⁠.

“⁠처음엔 다 노랑이야⁠. 빨강은 사람 입에서 나와야 칠해⁠.⁠”

나는 노랑으로 줄을 그었다⁠. 그어 나가다 세 줄에서 손이 멈췄다⁠. 1월 11일⁠, 2월 3일⁠, 2월 17일⁠. 서진정밀⁠, 가람바이오⁠, 대해전선⁠. 세 번 다 오전 열 시 무렵에 염명숙 계좌가 한 종목을 크게 샀고⁠, 사십 분쯤 뒤 주가가 뛰었고⁠, 오후에 팔았다⁠. 감시 시스템은 회전율만 빨갛게 칠했고⁠, 이 세 줄에는 아무 색도 칠하지 않았다⁠.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감사팀 첫날 어땠어⁠? 준서는 언제 데려오니⁠. 반찬 해 놨다⁠.⁠」 엄마는 삼 년 전부터 알았다⁠. 회사만 모른다⁠.

일곱 시⁠, 옥경 팀장이 나를 팀장실로 불렀다⁠. 유리문을 닫고 책상 위에 사진 한 장을 내려놓았다⁠. 흐린 사진이었다⁠. 식당 탁자 밑⁠, 남색 소매를 입은 남자 손과 베이지 소매를 입은 여자 손이 깍지를 끼고 있었다⁠. 탁자 위로는 소주병과 접시만 찍혔다⁠.

“⁠지난 12월 영업본부 송년회⁠. 오늘 아침 익명 제보로 들어왔다⁠. 남자 손은 방준서⁠. 제보에 그렇게 적혀 있어⁠. 여자는 안 적혀 있고⁠.⁠”

옥경 팀장이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여자가 누군지 찾아⁠. 금요일까지⁠. 채가온 씨가⁠.⁠”

나는 사진 속 베이지 소매를 보았다⁠. 12월 송년회에 리테일지원팀 사람으로 끼어 앉았던 자리가 떠올랐다⁠. 내려다본 내 소매도 베이지였다⁠. 나는 돋보기를 사진 위에 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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