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48자)

경차 안에서 싸우다 대리운전 기사가 됐다

사내 연애 적발 감사팀 · 모세담

3월 5일 금요일 밤 아홉 시⁠, 대륙증권 지하 4층 주차장은 형광등 절반이 꺼져 있었다⁠. 기둥 번호 D-17 옆에 흰 경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영업본부 약정 1등의 차였다⁠. 준서는 삼 년 동안 이 차를 바꾸지 않았다⁠. 차를 바꿀 돈은 통장에 따로 모았고⁠, 통장 이름은 「⁠우리 집⁠」이었다⁠. 나는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문이 너무 가벼워서 닫는 소리가 장난감 같았다⁠.

준서는 운전대에 두 손을 올리고 앞 기둥만 보았다⁠.

“⁠녹취 붙였어⁠?⁠”

“⁠응⁠.⁠”

“⁠알아⁠. 여덟 시에 본부장님이 전화했어⁠. 감사팀이 녹취 붙였다고⁠.⁠”

나는 안전띠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췄다⁠. 보고서는 여섯 시 사십 분에 팀장실로 갔다⁠. 두 시간 만에 3층이 알았다⁠. 이번에는 어제 저녁이 아니라 같은 날 저녁이었다⁠. 구멍이 점점 빨라졌다⁠.

“⁠고객님이 알아서 하라고 했어⁠. 너도 들었잖아⁠. 내가 고객님 돈을 빼돌렸어⁠? 한 푼도 안 가져갔어⁠.⁠”

“⁠수수료 삼천팔백⁠.⁠”

“⁠그건 회사 수익이야⁠.⁠”

“⁠네 약정이기도 하지⁠. 약정 1등⁠.⁠” 나는 준서의 옆얼굴을 보았다⁠. “⁠일임은 알겠어⁠. 들었으니까⁠. 녹취 없는 세 건은 뭐야⁠? 서진정밀⁠, 가람바이오⁠, 대해전선⁠. 세 번 다 사십 분 뒤에 올랐어⁠. 너 그렇게 잘 맞히는 사람 아니잖아⁠. 작년에 네 개인 계좌 수익률 마이너스 십이였어⁠.⁠”

“⁠그건 어떻게 알아⁠?⁠”

“⁠네가 분기마다 회사에 내는 매매 명세⁠, 리테일지원팀이 받아⁠.⁠”

준서가 이마를 운전대에 댔다⁠. 경적이 짧게 빽 울렸다⁠. 둘 다 놀라 몸을 세웠다⁠.

“⁠본부장님이 찍어 줬어⁠.⁠” 준서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침에 단톡방 말고 따로 전화가 와⁠. 오전에 큰 거 들어온다⁠, 고객님 것 좀 담아라⁠. 그래서 담았어⁠.⁠”

“⁠큰 거가 뭔데⁠?⁠”

“⁠몰라⁠. 안 물어봤어⁠.⁠”

“⁠왜⁠?⁠”

“⁠물어보면 알게 되니까⁠.⁠”

나는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선행매매⁠. 다른 고객의 큰 주문이 들어온다는 걸 미리 알고 먼저 사 두는 일이다⁠. 큰 주문이 들어오면 주가가 오르고⁠, 먼저 산 사람은 오른 만큼 앉아서 번다⁠. 자본시장법이 증권사에 하지 말라고 가장 먼저 적어 둔 불건전 영업행위였다⁠. 준서는 선행매매라는 말을 몰라서 안 물은 게 아니었다⁠. 알아서 안 물었다⁠.

“⁠그럼 휴대전화로 주문받았다는 거짓말은 왜 했어⁠?⁠”

“⁠본부장님이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 휴대전화 위반은 경고로 끝난대⁠.⁠” 준서가 운전대를 쥐었다⁠. 손등에 힘줄이 불거졌다⁠. “⁠가온아⁠. 약정 못 채우면 나 하반기에 지방 지점이야⁠. 본부장님이 1월에 그랬어⁠. 여의도에 남으려면 숫자를 만들어 오라고⁠. 너 여의도에 있잖아⁠. 「⁠우리 집⁠」 통장 삼천 모았어⁠. 계약금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있으면 그게 더 나빴다⁠. 내 화가 반은 준서에게⁠, 반은 「⁠우리 집⁠」이라는 통장 이름에게 갔다⁠. 나는 문을 세게 닫으며 내렸다⁠. 가벼운 문이 생각보다 큰 소리를 냈고⁠, 동시에 경차 경보기가 울렸다⁠. 삐요 삐요 삐요⁠. 지하 4층 전체가 울렸다⁠.

손전등 불빛이 기둥 사이로 다가왔다⁠. 보안 요원이었다⁠.

“⁠거기 뭐 하세요⁠?⁠”

준서가 운전석에서 튀어나와 두 손을 들었다⁠. “⁠대리운전입니다⁠. 손님이 술을 좀 드셔서⁠.⁠”

보안 요원의 손전등이 나에게 왔다⁠. 나는 사원증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손님⁠, 댁이 어디세요⁠?⁠”

“⁠…⁠…망원동이요⁠.⁠”

“⁠기사님⁠, 망원동이면 이 시간에 이만 원이에요⁠. 손님한테 바가지 씌우지 마세요⁠.⁠” 보안 요원은 손전등을 거두고 갔다⁠.

준서가 경보기를 끄고 나를 보았다⁠. 나는 조수석에 다시 탔다⁠. 둘 다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물었다⁠. 웃음이 먼저 새어 나온 사람은 준서였다⁠. 나는 웃음 끝에 눈물이 따라 나오려 해서 창밖 기둥 번호만 읽었다⁠. D-17⁠.

“⁠이만 원 줄게⁠. 망원동까지 가⁠.⁠”

“⁠손님⁠, 안전띠요⁠.⁠”

보고서 말투로 적으면 이렇다⁠. 금요일 밤 피감자와 감사인이 주차장에서 고성으로 다툼⁠. 다툼 도중 경보기 작동⁠. 피감자가 대리운전 기사를 사칭함⁠. 감사인은 손님을 사칭함⁠. 사칭자 둘이 망원동까지 동행함⁠. 다툼은 종결되지 않음⁠.

*

3월 8일 월요일 아침 여덟 시 반⁠, 옥경 팀장이 나를 팀장실로 불렀다⁠. 유리문을 닫고 블라인드까지 내렸다⁠. 블라인드를 내리는 걸 처음 보았다⁠. 책상 위에 송년회 사진이 다시 놓여 있었다⁠.

“⁠사진 속 여자⁠. 채가온 씨지⁠.⁠”

나는 의자 끝에 앉은 채 사진을 보았다⁠. 모른다고 버틸 수도 있었다⁠. 베이지 소매를 입은 여자는 회사에 백 명도 넘었다⁠. 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언제부터 아셨어요⁠?⁠”

“⁠삼 년 전 4월⁠. 여의도 윤중로 벚꽃 아래서 둘이 셀카 찍더라⁠. 방 대리가 팔이 길어서 셀카봉이 필요 없던데⁠.⁠”

“⁠그럼 왜 저한테 이 건을 주셨어요⁠? 규정대로면 저를 빼야죠⁠.⁠”

“⁠규정대로면 둘 다 징계야⁠.⁠” 옥경 팀장이 팔짱을 끼었다⁠. “⁠나는 십 년 동안 하나만 믿었어⁠. 연애하는 사람은 정보를 흘린다⁠. 자기 사람 앞에서는 입이 열리고⁠, 눈이 감긴다⁠. 그래서 규정을 만들었고⁠, 열한 명을 다른 부서로 보냈어⁠. 채가온 씨한테 이 건을 준 건 확인하려고⁠. 내 말이 맞는지⁠.⁠”

“⁠사람으로 실험하신 거네요⁠.⁠”

“⁠그래⁠.⁠” 옥경 팀장은 부정하지 않았다⁠. “⁠금요일 여섯 시 사십 분에 녹취 파일이 붙어 왔어⁠.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틀렸나 했다⁠.⁠”

“⁠그 녹취 내용⁠, 두 시간 만에 3층이 알았습니다⁠.⁠”

옥경 팀장의 팔짱이 조금 느슨해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준서가 들은 전화⁠, 어제 저녁에 미리 샌 감사 계획⁠. 옥경 팀장이 모니터를 돌려 보였다⁠. 감사 계획과 보고서는 결재가 올라가면 감사위원회와 대표이사실에 사본이 간다⁠. 지난주부터 사본을 받은 사람은 셋이었다⁠. 감사위원장⁠, 대표이사⁠, 대표이사 비서실장⁠.

“⁠그리고 이거⁠.⁠” 옥경 팀장이 제보 메일을 띄웠다⁠. 「⁠영업2팀 방준서⁠, 사내 교제 미신고⁠. 사진 첨부⁠.⁠」 보낸 사람 칸은 익명 메일 주소였다⁠. 아래에 전산팀이 붙인 메모가 있었다⁠. 발신 접속 위치⁠, 본사 3층 영업본부 무선망⁠.

“⁠영업본부가 자기 본부 1등을 신고했어⁠. 연애로⁠.⁠” 옥경 팀장이 말했다⁠. “⁠감사팀이 회전율을 보는 동안 사내 연애 사진이 돌면⁠, 사람들은 회전율을 안 봐⁠. 연애를 보지⁠.⁠”

나는 사진을 다시 보았다⁠. 깍지 낀 손 두 개가 갑자기 미끼처럼 보였다⁠.

“⁠팀장님⁠,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교제 신고서를 낼까요⁠?⁠”

“⁠지금 내면 채가온 씨는 이 건에서 빠져⁠. 이 건은 준법감시팀으로 넘어가⁠. 준법감시팀장은 노강철 본부장 입사 동기고⁠.⁠” 옥경 팀장이 사진을 뒤집어 책상에 엎었다⁠. “⁠나는 보고서에 교제 사실을 안 적어⁠. 채가온 씨가 스스로 낼 때까지만⁠. 그동안 이 건은 끝까지 채가온 씨가 해⁠. 방 대리가 걸리면 걸리는 대로⁠.⁠”

“⁠팀장님 규정을 팀장님이 어기시는 거예요⁠.⁠”

“⁠알아⁠.⁠” 옥경 팀장이 블라인드를 걷었다⁠. 아침 햇빛이 책상 위로 쏟아졌다⁠. “⁠그러니까 빨리 끝내⁠.⁠”

*

열두 시⁠, 지하 1층 구내식당은 제육볶음 날이었다⁠. 줄이 계단까지 이어졌다⁠. 나는 식판을 들고 기둥 뒤 구석 자리에 앉았다⁠. 등 뒤 탁자에 영업본부 사람 넷이 앉았다⁠. 목소리가 식판 소리보다 컸다⁠.

“⁠사진 봤어⁠? 익명 게시판에 아침에 올라왔다가 십 분 만에 지워졌대⁠.⁠”

“⁠봤지⁠. 탁자 밑 깍지⁠. 남자는 방 대리 시계던데⁠. 그 은색 시계⁠.⁠”

“⁠여자는 누구야⁠?⁠”

“⁠베이지 소매⁠. 인사팀 김 과장이 베이지 좋아하잖아⁠.⁠”

“⁠김 과장님은 결혼하셨어⁠.⁠”

“⁠그러니까 문제지⁠.⁠”

“⁠아니야⁠, 리테일지원팀 아닐까⁠? 송년회에 리테일지원팀도 왔잖아⁠. 거기 곱슬머리 대리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가⁠, 가람이⁠?⁠”

“⁠가람바이오냐⁠.⁠”

넷이 동시에 웃었다⁠. 나는 제육을 입에 넣고 씹었다⁠. 맛이 나지 않았다⁠. 반묶음한 머리 끝을 손가락으로 잡아 블라우스 깃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곱슬머리를 숨길 방법은 없었다⁠. 숟가락을 내려놓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IT헬프데스크⁠: 게시판 사진 봤어⁠? 본부 단톡방이 난리야⁠. 다들 여자 찾는 중⁠.⁠」

「⁠채가온⁠: 지금 내 뒤에서 찾는 중⁠.⁠」

「⁠IT헬프데스크⁠: 뒤 돌아보지 마⁠.⁠」

「⁠채가온⁠: 제육이 목에 걸렸어⁠.⁠」

보고서 말투로 적으면 이렇다⁠. 사내 익명 게시판에 감사 대상자의 교제 사진이 유출됨⁠. 게시 시간 십 분⁠. 열람자 수 확인 불가⁠. 감사인은 구내식당에서 신원 특정 직전까지 감⁠. 특정을 막은 것은 가람바이오⁠.

나는 식판을 반쯤 남기고 일어났다⁠. 등 뒤 탁자를 지나갈 때 누군가 내 베이지 바지를 힐끔 보았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지 않았다⁠. 빨리 걸으면 그게 답이었다⁠.

*

오후 내내 나는 세 건을 거꾸로 읽었다⁠. 염명숙 계좌 대신 세 종목에서 시작했다⁠. 1월 11일 오전 열 시 사십 분⁠, 서진정밀에 큰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대륙증권 법인영업부를 거친 연기금 주문이었다⁠. 연기금처럼 큰손의 주문은 법인영업부가 받고⁠, 리테일 영업본부는 법인영업부 주문을 알 수 없게 둘 사이에 정보교류 차단벽이 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서로 들으면 안 되는 말을 막아 두는 벽이다⁠. 법인영업부와 리테일 영업본부를 둘 다 거느리는 사람은 회사에 한 명이었다⁠. 노강철 영업본부장⁠.

나는 1월 11일 오전 열 시부터 열 시 사십 분까지 서진정밀을 산 대륙증권 계좌를 전부 뽑았다⁠. 이백 개가 넘었다⁠. 육 차장이 옆에서 형광펜 뚜껑을 열어 주었다⁠.

“⁠그다음은 2월 3일 가람바이오⁠. 같은 시간대⁠. 겹치는 계좌만 남겨⁠.⁠”

겹치는 계좌는 열한 개였다⁠. 2월 17일 대해전선까지 겹치는 계좌는 둘이었다⁠. 하나는 염명숙⁠. 다른 하나는 「⁠정미옥⁠」이라는 쉰 살 여자 명의 계좌였다⁠. 주소가 경기 분당이었다⁠. 개설일은 2025년 10월⁠. 개설 지점은 본사 영업부⁠.

이름이 낯익었다⁠. 리테일지원팀에 있던 재작년 가을⁠, 계좌 개설 서류를 검토하다 같은 이름을 본 적이 있었다⁠. 신분증 사본 위에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본부장님 처제분 — 빨리 처리 부탁⁠」⁠. 신분증 사진 속 여자는 이후로 영업부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나는 접속 기록을 열었다⁠. 정미옥 계좌의 매수 주문은 세 번 다 모바일 앱에서 나왔다⁠. 접속 위치는 분당이 아니었다⁠. 본사 3층 영업본부 무선망이었다⁠. 송년회 사진 제보가 나온 무선망과 같았다⁠.

차명계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열어 놓고 실제로는 자기가 굴리는 계좌다⁠. 증권사 임직원은 자기 이름으로 된 계좌 하나로만 주식을 사고팔 수 있고⁠, 매매 명세를 분기마다 회사에 알려야 한다⁠. 작년 봄 신문에 증권사 임직원들이 여섯 해 동안 남의 이름으로 굴린 돈이 팔십억이 넘게 적발됐다는 기사가 났을 때⁠, 육 차장은 기사를 오려 문서함에 붙였다⁠. 기사 귀퉁이에 빨간 형광펜으로 「⁠우리 회사는⁠?⁠」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빨간 형광펜을 집었다⁠. 육 차장이 말한 대로⁠, 빨강은 사람 입에서 나와야 칠한다⁠. 아직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노랑으로 정미옥이라는 이름에 줄을 긋고⁠, 종이를 들고 팀장실로 갔다⁠.

“⁠팀장님⁠. 본부장님 처제 명의 계좌가 세 번 다 같은 날⁠, 같은 종목을⁠, 염명숙 고객님보다 칠 분 먼저 샀습니다⁠. 주문은 3층에서 나갔어요⁠.⁠”

옥경 팀장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한 줄씩 읽어 내려가는 동안 팔짱이 풀렸다⁠. 다 읽고 나서 옥경 팀장은 종이를 내려놓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서 여의도 빌딩 유리창마다 오후 해가 번쩍였다⁠.

“⁠십 년 전에도 칠 분이었어⁠.⁠” 옥경 팀장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네⁠?⁠”

“⁠아무것도 아니야⁠. 내일 아침 아홉 시⁠, 영업본부 전체 회의 잡아⁠. 감사팀 이름으로⁠.⁠”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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