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03자)

추관 앞에서 전진 베기

무공 일타 강사 · 여무겸

칠월 초나흘 아침⁠, 관아로 가는 길에 학관 거리를 지났다⁠. 사흘 사이 거리의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국숫집 옆 학관은 「⁠정통 문파 출신 강사 — 혈교 걱정 없는 학관⁠」이라는 천을 내걸었고⁠, 붓 가게 이층 학관은 「⁠우리 학관 초식은 출처가 있습니다⁠」를 붙였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안 써 놓았다⁠.

갈필수 학관 앞이 제일 요란했다⁠. 은빛 천에 붉은 글씨였다⁠.

「⁠갈필수 필수검법 — 화산 장로님도 걱정하신 그 학관 말고⁠, 여기⁠」

“⁠쌤⁠, 저건 고발해도 돼요⁠?⁠” 대석이 교재 상자를 안고 물었다⁠. 관아가 증거로 가져오라 한 상자였다⁠.

“⁠뭐라고 고발해⁠?⁠”

“⁠남의 불행으로 장사한 죄요⁠.⁠”

“⁠그럼 학관 거리 마흔 곳이 다 잡혀가⁠.⁠”

대석이 상자를 고쳐 안았다⁠. 상자 모서리가 대석 턱에 닿았다⁠. 덩치에 비해 걸음이 작아서⁠, 대석과 걸으면 나는 늘 반 박자를 기다린다⁠.

*

항주부 관아 대청은 서늘했다⁠.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이 신발 밑창을 뚫고 들어왔다⁠. 대청 위 높은 의자에 추관이 앉아 있었다⁠. 쉰 남짓에 배가 나왔고⁠, 손에 든 파리채로 탁자를 톡톡 쳤다⁠. 형옥을 맡은 관리는 대개 무공을 모른다⁠. 이 추관도 그렇다는 것을 첫마디에서 알았다⁠.

“⁠혈교가 뭐 하던 데요⁠?⁠”

대청 아래 왼편에 무량이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검은 장포 자락이 돌바닥에 닿을 듯 말 듯했다⁠. 무량 뒤에 갈필수가 은관을 쓰고 섰고⁠, 대청 문밖에는 구경꾼이 모였다⁠. 구경꾼 맨 뒤에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린 아람이 보였다⁠. 아람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백 년 전 강남에서 백성을 모아 칼을 쥐여 주던 무리요⁠.⁠” 무량이 말했다⁠. “⁠농사꾼⁠, 뱃사공⁠, 소금 지는 사람에게 한 달 만에 칼을 가르쳐 군사로 만들었소⁠. 정파 문파들이 연합해 토벌했고⁠, 비급 『⁠연병보⁠』는 화산이 거두어 장경각에 두었소⁠.⁠”

“⁠그 비급이 저 강사 책이랑 같다⁠?⁠”

“⁠세 수가 같소⁠.⁠”

추관이 파리채로 나를 가리켰다⁠. “⁠강사⁠, 할 말 있소⁠?⁠”

“⁠있습니다⁠. 나리⁠, 세 걸음이면 몇 걸음입니까⁠?⁠”

“⁠세 걸음이지⁠.⁠”

“⁠그럼 세 걸음 걷는 사람은 다 혈교입니까⁠?⁠”

대청 문밖 구경꾼들이 웃었다⁠. 추관도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무량을 보고 내렸다⁠.

갈필수가 한 발 나섰다⁠. “⁠조합장 갈필수입니다⁠. 학관 거리 강사 서른아홉이 같은 뜻을 모았습니다⁠. 봉 강사 초식은 출처를 아무도 모릅니다⁠. 거리 사람 누구도 봉 강사가 어느 문파에서 배웠는지 들은 적이 없어요⁠.⁠”

“⁠서른아홉이면 저 빼고 다네요⁠.⁠”

“⁠거리 전체를 생각하셔야지⁠.⁠”

“⁠조합장님 학관 수강생은 제 학관에서 떨어진 애들이 반입니다⁠. 제가 없으면 조합장님 학관도 반이 비는데⁠, 거리 전체를 생각하시는 거 맞습니까⁠?⁠”

갈필수의 귀가 붉어졌다⁠. 추관이 파리채로 탁자를 두 번 쳤다⁠.

“⁠말싸움은 그만⁠. 보여 주시오⁠. 같은지 다른지⁠, 내 눈으로 보게⁠.⁠”

*

대청 가운데 돌바닥이 비었다⁠. 나는 장포 자락을 띠에 꽂고 부채를 칼처럼 쥐었다⁠. 무량이 숨을 멈추는 자리를 짚었다⁠. 그렇다면 숨을 멈추지 않으면 된다⁠. 입을 열고 걸으면 숨은 멈출 수가 없다⁠.

“⁠하나⁠, 두 걸음⁠. 둘⁠, 한 걸음⁠. 내리고⁠.⁠”

소리 내어 세면서 전진 베기를 했다⁠. 부채가 공기를 찢었고⁠, 대청 기둥 옆 촛불이 한 번 누웠다⁠. 숨은 끊기지 않았다⁠. 말하는 동안 숨을 참는 사람은 없다⁠.

“⁠보셨습니까⁠. 숨 쉬면서 갑니다⁠.⁠”

무량이 포졸에게서 창을 하나 빌렸다⁠. 창날을 바닥으로 돌려 쥐고⁠, 창대를 칼처럼 들었다⁠. 예순여덟 살 노인의 몸에서 군더더기가 빠져나갔다⁠. 하나에 두 걸음⁠, 둘에 한 걸음⁠, 마지막 걸음 직전에 노인의 가슴이 한 번 멈췄고⁠, 창대가 내려왔다⁠. 소리는 내 부채보다 낮고 무거웠다⁠. 대청 바닥 먼지가 둥글게 밀려났다⁠.

발이 같았다⁠. 박자도⁠, 무릎 굽는 깊이도⁠, 마지막에 칼이 떨어지는 각도도 같았다⁠. 문밖 구경꾼들이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말하지 말고 해 보시오⁠.⁠” 무량이 창을 포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말하면서 하는 게 제 방식입니다⁠. 강사라서요⁠.⁠”

“⁠시험장에서는 말하지 않소⁠. 대련에서도 말하지 않소⁠. 해 보시오⁠.⁠”

나는 입을 다물고 섰다⁠. 하나⁠, 두 걸음⁠. 둘⁠, 한 걸음⁠. 마지막 걸음 직전에 몸이 내 허락 없이 숨을 멈췄다⁠. 열네 해 동안 혼자 익힌 몸이 알아서 멈췄다⁠. 부채가 내려왔고⁠, 가슴 아래 배꼽 근처가 잠깐 따뜻해졌다가 식었다⁠.

추관이 파리채를 내려놓았다⁠.

“⁠같은데⁠?⁠”

“⁠나리⁠, 같은 길을 걸으면 같은 자리에서 숨이 찹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다 같은 고개에서 쉬어요⁠.⁠”

“⁠같은 고개에서 쉬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 숨을 멈추게 가르치는 것은 다르오⁠.⁠” 무량이 말했다⁠. “⁠연병보는 숨을 멈추는 그 자리에 심법을 숨겼소⁠. 칼만 가르친다고 하면서 숨을 함께 가르치는 칼이오⁠. 학관 약정을 어기는 칼이오⁠.⁠”

“⁠교재에는 숨 얘기가 한 줄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오⁠. 배우는 사람이 모르니까⁠.⁠”

추관이 무량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무공 모르는 사람이 두 무인 사이에서 판결을 내려야 하는 얼굴이었다⁠. 결국 추관이 할 줄 아는 일을 했다⁠. 서류를 꺼냈다⁠.

“⁠화산 사본은 언제 오오⁠?⁠”

“⁠화산으로 사람을 보냈소⁠. 표국 말로 열흘이면 오오⁠.⁠”

“⁠그럼 열흘⁠.⁠” 추관이 붓을 들었다⁠. “⁠봉천우 무공반의 『⁠한 달 완성 검법⁠』은 열흘 동안 팔지 마시오⁠. 열흘 안에 그 세 수를 누구에게 배웠는지 대시오⁠. 못 대면 혈교 금령대로 하오⁠. 혈교의 술을 익히거나 퍼뜨린 자는 볼기에 태 서른 대⁠, 가르친 곳은 문을 닫소⁠.⁠”

포졸이 대석의 교재 상자에 붉은 봉인 종이를 붙였다⁠. 대석이 상자를 놓친 것처럼 팔을 벌렸다가 다시 안았다⁠.

“⁠강의는요⁠?⁠” 내가 물었다⁠.

“⁠강의는 막으라는 말이 금령에 없소⁠. 책만 안 팔면 되오⁠.⁠”

“⁠책 없이 강의를 하라고요⁠?⁠”

“⁠입은 있지 않소⁠?⁠”

*

관아 계단을 내려오자 구경꾼들이 흩어졌다⁠. 아람이 기둥 뒤에 서 있다가⁠, 무량이 내려오자 앞으로 나왔다⁠. 무량은 아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도 두 계단 위에서 멈췄다⁠. 비켜 갈 길이 없었다⁠.

“⁠학관을 끊어라⁠.⁠” 무량이 말했다⁠. “⁠오늘부터⁠.⁠”

“⁠수강료를 석 달 치 냈어요⁠. 환불이 안 돼요⁠.⁠”

“⁠되는데⁠.⁠” 내가 말했다⁠.

“⁠쌤은 가만히 계세요⁠.⁠”

아람이 처음으로 나를 쌤이라고 불렀다⁠. 강의실에서는 늘 선생님이라고 했다⁠. 무량의 눈이 나에게 왔다가 아람에게 돌아갔다⁠.

“⁠아람아⁠, 너는 화산 사람이다⁠.⁠”

“⁠화산 사람인데 화산 선발에서 두 번 떨어졌어요⁠. 할아버지한테 십오 년 기초를 배웠는데요⁠. 저 쌤한테는 석 달 배우고 모의 시험 일 등이에요⁠.⁠”

“⁠모의 시험은 칼이 아니다⁠.⁠”

“⁠입문 대시험도 시험이에요⁠. 시험은 붙어야 칼을 계속 잡아요⁠.⁠”

무량의 팔짱이 한 번 조여졌다⁠. 수염이 바람에 움직였다⁠. 대답 대신 무량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봉 강사⁠.⁠”

“⁠네⁠.⁠”

“⁠내 손자 몸에 열이 한 번이라도 오르면⁠, 그대 칼을 내 손으로 부러뜨리겠소⁠.⁠”

“⁠저는 칼이 없습니다⁠. 부채뿐이에요⁠.⁠”

“⁠부채도 부러지오⁠.⁠”

무량이 계단을 내려갔다⁠. 아람은 따라가지 않았다⁠. 할아버지 등이 관아 앞 버드나무 길 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람은 접어 올린 소매를 풀었다가 다시 접었다⁠.

“⁠선아람⁠.⁠”

“⁠진아람이에요⁠. 이제 다 알잖아요⁠.⁠”

“⁠수석 자리는 그대로야⁠. 내일 진시⁠.⁠”

아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반대편 길로 갔다⁠. 대석이 봉인된 상자를 안은 채 내 옆에 와 섰다⁠.

“⁠쌤⁠, 장로님 진짜 부채 부러뜨릴 것 같아요⁠.⁠”

“⁠부채는 또 사⁠.⁠”

“⁠그 부채⁠, 쌤 아버님 거라면서요⁠.⁠”

나는 부채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

오후 강의는 책 없이 했다⁠. 백 자리 가운데 여든 자리가 찼다⁠. 빈 스무 자리 위로 창 볕이 그대로 떨어져 책상 나뭇결이 하얗게 보였다⁠. 아래층 대석 책상 앞에는 환불 줄이 생겼고⁠, 대석은 엽전을 셀 때마다 한숨을 한 번씩 쉬었다⁠.

“⁠오늘은 교재가 없다⁠. 관아가 열흘 동안 쉬래⁠. 대신 교재보다 좋은 게 있어⁠.⁠”

나는 대석을 강의실로 불러 올렸다⁠. 대석이 칠판 앞에 어깨를 펴고 섰다⁠. 칠판보다 넓었다⁠.

“⁠기초 자세⁠. 대석 조교 발 봐⁠. 어깨너비⁠. 무릎 봐⁠. 살짝⁠. 이 덩치가 무릎을 살짝 굽히면 바닥이 운다⁠. 들리지⁠?⁠”

대석이 무릎을 굽히자 마룻바닥이 정말로 끼익 울었다⁠. 강의실이 오늘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빈 스무 자리가 덜 비어 보였다⁠.

“⁠책은 없어도 몸은 있어⁠. 시험장에 책 들고 가는 사람 없다⁠. 오늘부터 필기 그만⁠, 눈으로 봐⁠.⁠”

강의가 끝나고 다들 내려간 뒤 상목이 남았다⁠. 물집 잡힌 손으로 엽전 꾸러미를 내밀었다⁠.

“⁠쌤⁠, 봉인 붙기 전에 남은 교재 있으면 한 권만 더 주세요⁠. 동생 주려고요⁠.⁠”

“⁠동생 몇 살인데⁠?⁠”

“⁠열여섯이요⁠.⁠”

“⁠열여섯이 무슨 입문 시험이야⁠. 거짓말이 늘었네⁠.⁠”

상목이 엽전을 도로 쥐었다⁠. 귀가 빨개졌다⁠. 손바닥 물집 하나가 터져 엽전 꾸러미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하루 네 시간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사수라서요⁠. 남들 네 시간 하면 저는 여덟 시간 해야 맞아요⁠. 어머니가 가게를 팔았어요⁠. 생선 궤짝까지 다요⁠.⁠”

“⁠그러니까 네 시간⁠. 몸이 먼저 무너지면 가게 판 돈이 강물에 들어가⁠.⁠”

“⁠한 번만 더요⁠.⁠”

“⁠안 돼⁠. 내려가⁠.⁠”

상목이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한 칸씩 무겁게 떨어졌다⁠. 칠판에는 대석의 글씨로 「⁠세 걸음 두 박자⁠」가 남아 있었다⁠. 무량이 짚은 자리⁠, 마지막 걸음 직전의 숨이 칠판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

밤에 학관 삼층 내 방에 혼자 앉았다⁠. 창밖 운하에 배 등불 몇 개가 지나갔다⁠. 노 젓는 소리가 셋에 밀고 둘에 쉬었다⁠.

출처를 대라고 했다⁠. 출처는 있다⁠. 전당강 하구⁠, 강물이 바다로 꺾이는 나루⁠. 어머니가 사는 뱃집 마루 밑에 기름 먹인 상자가 있고⁠, 상자 안에 누렇게 바랜 책이 있다⁠. 표지 한가운데 핏빛 인장이 찍혀 있다⁠. 열다섯 살⁠, 아버지 배가 조수에 뒤집힌 해에 처음 열어 보았다⁠. 증조할아버지 봉대길이 백 년 전 이 책을 들고 강가로 숨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어머니는 집안 이야기를 한 번 하고 다시는 하지 않았다⁠.

출처를 대면 끝이다⁠. 혈교의 술을 익힌 자는 태 서른 대⁠. 가르친 곳은 문을 닫는다⁠. 무림맹 규약대로라면 내 수강생 백 명은 입문 대시험을 못 본다⁠. 어머니는 나루에서 혈교 집안 소리를 들으며 오리알을 판다⁠.

출처를 안 대면 열흘 뒤에 끝이다⁠. 같은 끝이면 늦게 오는 끝이 낫다⁠. 열흘이면 강의 스무 번을 할 수 있다⁠.

계단에서 쿵쿵 소리가 올라왔다⁠. 대석은 급할 때 계단을 두 칸씩 밟는다⁠. 문이 열리고 대석이 숨을 몰아쉬며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쌤⁠, 큰일 났어요⁠.⁠”

“⁠오늘 몇 번째야⁠?⁠”

“⁠이게 진짜예요⁠.⁠”

종이 맨 위는 전단이었다⁠. 먹이 채 마르지 않아 손가락에 묻어났다⁠.

「⁠『⁠스무 날 완성 검법⁠』 — 갈필수 지음⁠. 봉천우보다 열흘 빠르다⁠. 혈교 걱정 없음⁠. 오늘 밤부터 판매⁠, 값은 절반⁠」

전단 아래 묶음은 책이었다⁠. 표지를 넘기자 첫 그림이 기초 자세였다⁠. 사람 모양 막대 그림⁠, 화살표⁠, 칼끝은 상대 목⁠. 대석이 그린 내 칠판 그림과 막대 하나 굵기까지 같았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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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새벽2026.11.06· 2화

    「쌤, 큰일 났어요」 「오늘 몇 번째야?」 대석이 너무 좋아요 ㅋㅋㅋ 『스무 날 완성 검법』 전단에 「봉천우보다 열흘 빠르다」라니 요즘 학원가 그대로네요. 막대 그림 굵기까지 베꼈다는 데서 빵 터졌어요.

    • 여무겸작가2026.11.06

      갈필수는 늘 남보다 먼저 파는 사람이에요. 교재 출처를 대라는 추관의 열흘이 천우에게 생각보다 큰 숙제가 됩니다.

추관 앞에서 전진 베기 · 무공 일타 강사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