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26자)

선착순 백 명, 고발장 한 장

무공 일타 강사 · 여무겸

강호력 삼백 년 칠월 초하루⁠, 해가 뜨기 전이었다⁠. 학관 이층 창을 열자 운하에서 비린 물 냄새가 올라왔고⁠, 창 아래로 사람 머리가 줄지어 있었다⁠. 줄은 학관 문 앞에서 시작해 국숫집과 붓 가게를 지나⁠, 운하 다리를 건너 무림문 성벽 그늘까지 이어졌다⁠.

항주의 옛 이름은 무림이다⁠. 성문 이름도 무림문이다⁠. 무림문 밖에서 무림에 들어가는 시험을 준비하는 거리⁠, 학관 거리에는 학관이 마흔 곳 있다⁠. 마흔 곳 가운데 문파 입문 시험 합격률 일 등이 「⁠봉천우 무공반⁠」이다⁠. 내가 봉천우다⁠.

“⁠쌤⁠, 큰일 났어요⁠.⁠”

조교 탁대석이 계단을 두 칸씩 밟고 올라왔다⁠. 표국에서 표사를 하던 사람이라 어깨가 문틀을 꽉 채우는데⁠, 놀라는 소리는 병아리 같았다⁠.

“⁠무슨 일⁠?⁠”

“⁠줄 맨 끝에 자리 맡아 주는 사람이 장사를 시작했어요⁠. 한 자리에 엽전 서른 닢이래요⁠.⁠”

“⁠우리 수강료 몇 닢이지⁠?⁠”

“⁠석 달에 은자 두 냥이요⁠.⁠”

“⁠그럼 아직 싸네⁠.⁠”

대석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칠판을 가리켰다⁠. 먹칠한 큰 판자에 횟가루 막대로 대석이 밤새 그린 그림이 있었다⁠. 맨 위에 큼직하게 「⁠한 달 완성 검법⁠」⁠, 아래로 ① 기초 자세 ② 전진 베기 ③ 횡베기⁠, 사람 모양 막대 그림이 칼을 쥐고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다⁠. 대석의 붓글씨는 학관 거리에서 제일 예쁘다⁠. 덩치를 보고 글씨를 보면 다들 두 번 쳐다본다⁠.

강사 대기실 구리 거울 앞에 앉았다⁠. 큰 키에 날렵한 몸이 의자에 비해 길었다⁠. 긴 검은 머리를 정수리로 끌어 올려 상투를 틀고⁠, 금관을 꽂았다⁠. 학관 거리에서 금관은 일등 강사만 쓴다⁠. 누가 정한 법은 없고⁠, 이등인 갈필수 강사가 은관을 쓰고 나온 날부터 그렇게 됐다⁠. 금빛 수를 놓은 흰 장포에 금빛 띠를 매고⁠, 접이 부채를 오른손에 쥐었다⁠. 거울 속 눈매가 자신만만했다⁠. 열네 해 동안 거울 앞에서 연습한 눈매다⁠.

*

진시 정각⁠, 강의실 문을 열었다⁠. 백 자리가 꽉 찼고 창틀에도 둘이 걸터앉아 있었다⁠. 큰 창으로 들어온 아침 볕이 책상마다 펼친 새 교재 위에 떨어졌다⁠. 먹 냄새와 땀 냄새⁠, 누가 몰래 먹다 만 찐빵 냄새가 섞였다⁠.

“⁠창틀에 앉은 두 사람⁠, 수강증⁠.⁠”

둘이 동시에 창밖으로 사라졌다⁠. 이층이었다⁠. 아래에서 “⁠괜찮아⁠!⁠” 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강의실이 웃었다⁠.

나는 부채를 펴지 않은 채 칠판을 탁 짚었다⁠.

“⁠자⁠, 『⁠한 달 완성 검법⁠』⁠. 제목 보고 웃은 사람 손⁠.⁠”

뒤쪽에서 서너 명이 손을 들었다⁠.

“⁠정직하네⁠. 시험에 정직은 안 나와⁠. 내려⁠.⁠”

웃음이 또 터졌다⁠. 이게 첫 오 분이다⁠. 웃겨서 귀를 열어 놓고⁠, 열린 귀에 넣는다⁠.

“⁠문파에서 이 세 수를 배우려면 몇 해 걸리지⁠? 화산은 기초만 삼 년⁠, 무당은 오 년⁠. 왜 오래 걸려⁠? 가르치는 사람이 천천히 가르치니까⁠. 문파는 내년에도 제자가 있어⁠. 여러분은⁠? 내년엔 나이가 한 살 많아⁠. 입문 대시험은 스물다섯까지⁠. 구월 아흐레까지 남은 날이 두 달 조금 넘어⁠. 그러니까 한 달에 떼고⁠, 남은 한 달은 대련이다⁠.⁠”

부채로 ①을 짚었다⁠.

“⁠기초 자세⁠. 별표 세 개⁠. 발은 어깨너비⁠, 무릎은 살짝⁠, 칼끝은 상대 목⁠. 여기서 외울 거 하나⁠. 「⁠세 걸음 두 박자⁠」⁠.⁠”

부채로 칠판 아래쪽을 두 번 쳤다⁠. 대석이 밤새 굵게 써 둔 글자였다⁠.

“⁠발은 세 번 나가는데 박자는 두 번 친다⁠. 하나⁠, 둘에 세 걸음⁠. 이게 입문 대시험 시연에서 시험관 눈썹을 올리게 하는 발이야⁠. 지난해 화산 시연 초식 열두 가지 중에 일곱이 이 발로 풀렸다⁠. 적중했지⁠? 적중했다⁠.⁠”

앞줄에서 붓 소리가 빨라졌다⁠. 맨 앞 가운데 자리의 선아람은 모의 시험 일 등을 석 달째 놓치지 않는 수석이다⁠. 단정히 묶은 머리에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렸고⁠, 받아 적는 글씨가 대석 글씨만큼 반듯했다⁠. 옆자리 노상목은 올해 스물넷⁠, 네 번째로 시험을 본다⁠. 손바닥 물집 위에 또 물집이 잡혀 붓을 쥘 때마다 얼굴을 찡그렸다⁠.

“⁠상목⁠.⁠”

“⁠네⁠, 쌤⁠.⁠”

“⁠어제 몇 시간 했어⁠?⁠”

“⁠여섯 시간이요⁠.⁠”

“⁠네 시간이라고 했지⁠?⁠”

“⁠한 번만 더 하려다가요⁠.⁠”

“⁠한 번만 더가 두 시간이야⁠. 오늘은 네 시간⁠.⁠”

상목이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나는 칠판 옆에 붙은 종이를 부채 끝으로 가리켰다⁠. 무림맹 항주 지부에서 해마다 붙이는 학관 허가증 사본이었다⁠.

「⁠학관은 초식만 가르친다⁠. 심법은 문파의 일이다 — 무림맹 항주 지부⁠」

“⁠이거 읽어 본 사람⁠.⁠”

아람이 손을 들었다⁠. “⁠심법은 속으로 기운을 돌리는 숨 쉬는 법이라서⁠, 학관은 가르치면 안 됩니다⁠. 오십 년 전 무림맹이 학관을 허락할 때 정한 약속이에요⁠.⁠”

“⁠정답⁠. 그래서 우리는 숨 쉬는 법 안 가르친다⁠. 칼 쥐는 법⁠, 발 놓는 법만⁠. 숨은 문파 가서 배워⁠. 붙고 나서⁠.⁠”

뒷줄 국숫집 둘째가 손을 들었다⁠. 밀가루가 소매에 허옇게 묻어 있었다⁠.

“⁠쌤⁠, 한 달에 안 떼면요⁠?⁠”

“⁠환불⁠.⁠”

“⁠그럼 두 달에 떼면요⁠?⁠”

“⁠그건 네가 늦은 거지⁠. 환불 안 돼⁠.⁠”

“⁠갈필수 쌤네는 석 달 보장이래요⁠.⁠”

“⁠갈필수 쌤네는 석 달 동안 은관을 닦아⁠. 여러분은 석 달 동안 칼을 닦고⁠.⁠”

강의실 벽에 붙은 「⁠합격 수기⁠」 종이들이 창바람에 한꺼번에 들썩였다⁠. 지난해 붙은 쉰여덟 명이 남기고 간 글이었다⁠. 「⁠쌤 말대로 세 걸음만 믿었습니다 — 무당 합격 소가경⁠」 같은 글씨가 벽 한 면을 덮고⁠, 남은 벽에는 올해 붙일 자리가 비어 있었다⁠. 새 수강생들은 첫날 수기 벽 앞에서 한참씩 서 있다 간다⁠. 나도 열일곱 살에 무림문 성벽에 붙은 합격 방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방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

②로 넘어갔다⁠. 전진 베기는 내가 직접 보였다⁠. 장포 자락을 걷어 띠에 꽂고⁠, 부채를 칼처럼 쥐었다⁠. 하나에 두 걸음⁠, 둘에 한 걸음⁠, 끝에서 부채를 아래로 내리긋자 공기가 짧게 찢어졌다⁠. 앞줄 두 사람의 앞머리가 뒤로 날렸다⁠.

“⁠이게 시연 점수 열 점짜리 소리야⁠. 이 소리 안 나면 칼이 아니라 빨래 방망이다⁠.⁠”

창밖 운하에서 빨래하던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강의실이 또 웃었다⁠.

뒤쪽 문이 열린 것은 내가 ③ 횡베기를 짚으려고 부채를 든 참이었다⁠. 문짝이 벽에 부딪혀 쾅 소리가 났고⁠, 백 명이 한꺼번에 돌아보았다⁠.

문가에 노인이 서 있었다⁠. 흰 상투에 긴 흰 수염⁠, 검은 장포를 입고 팔짱을 꼈다⁠. 볕을 등져 얼굴이 어두웠는데 눈은 또렷하게 보였다⁠. 칠판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칠판 아래 「⁠세 걸음 두 박자⁠」 한 줄만 보고 있었다⁠. 노인 뒤로 붉은 띠를 맨 관아 포졸 둘이 창을 세워 들었고⁠, 포졸 뒤에서 은관을 쓴 갈필수 강사가 고개를 반쯤 내밀었다⁠.

“⁠수강 신청은 아래층입니다⁠. 어르신은 나이 제한에 걸리실 거고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노인이 팔짱을 풀지 않은 채 강의실 가운데 통로를 걸어 내려왔다⁠. 발소리가 바닥 판자마다 한 번씩 무겁게 떨어졌다⁠.

“⁠화산파 장로 진무량이오⁠.⁠”

강의실이 숨을 멈췄다⁠. 화산 장로가 학관 거리에 발을 들인 것은 학관 거리가 생긴 뒤로 처음이었다⁠. 문파 사람들은 이 거리를 「⁠시험 장사꾼 골목⁠」이라 부르고 고개를 돌려 지나간다⁠.

“⁠봉천우 강사⁠, 그 교재를 쓴 사람이오⁠?⁠”

“⁠제가 썼습니다⁠. 한 권 드릴까요⁠? 오늘은 첫날이라 이 할 깎아 드립니다⁠.⁠”

무량이 칠판 앞에서 멈췄다⁠. 부채 끝과 노인의 수염이 한 자 거리였다⁠.

“⁠세 걸음 두 박자⁠. 하나에 두 걸음⁠, 둘에 한 걸음⁠, 마지막 걸음에서 칼을 내린다⁠. 마지막 걸음 직전에 숨을 한 번 멈춘다⁠. 맞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멈추는 자리는 교재에 없다⁠. 칠판에도 없다⁠. 내가 방금 보인 전진 베기에서 노인이 그걸 보았다⁠.

“⁠백 년 전 사라진 혈교에 『⁠연병보⁠』라는 비급이 있었소⁠. 백성을 한 달 만에 군사로 만드는 칼이었지⁠. 화산 장경각에 그 사본이 있고⁠, 나는 그걸 열 번 읽었소⁠. 그대의 세 수는 연병보의 세 수와 발 하나⁠, 숨 하나 다르지 않소⁠.⁠”

“⁠발은 사람마다 두 개입니다⁠, 장로님⁠. 앞으로 나가는 길은 몇 개 없어요⁠. 같은 길로 걷는 사람이 많은 게 제 탓입니까⁠?⁠”

“⁠같은 길을 걷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 숨을 멈추는 것은 다르오⁠.⁠”

“⁠그럼 숨을 쉬면서 걸으면 되겠네요⁠. 여러분⁠, 숨 쉬면서 걸어⁠.⁠”

뒷줄에서 누가 푸흡 웃다가 입을 막았다⁠. 무량의 수염이 움직이지 않았다⁠.

“⁠백 년 걸려 가르칠 것을 한 달에 판다⁠. 그게 그대 장사요⁠. 한 달에 배운 칼은 한 달 만에 사람을 벤다⁠.⁠”

“⁠백 년 걸려 가르치시면 수강료도 백 년 치 받으십니까⁠? 여기 앉은 애들은 백 년이 없어요⁠. 생선 장수 아들⁠, 뱃사공 딸⁠, 국숫집 둘째⁠. 화산 산문 앞에 가서 삼 년 기초 배우게 해 달라고 하면 누가 밥을 줍니까⁠?⁠”

“⁠밥 때문에 칼을 쥐면 밥 때문에 칼을 쓰오⁠. 백 년 전 혈교 군사들이 그랬소⁠.⁠”

무량이 고개를 돌려 포졸에게 턱짓했다⁠. 포졸 하나가 종이를 꺼내 칠판 옆 학관 허가증 위에 겹쳐 붙였다⁠. 붉은 관인이 찍혀 있었다⁠.

「⁠고발 — 봉천우 무공반 강사 봉천우가 혈교 비급을 익혀 가르친다는 고발을 받았다⁠. 칠월 초나흘 진시⁠, 항주부 관아 대청으로 나오라 — 항주부 추관⁠」

추관은 관아에서 형옥⁠, 그러니까 죄 다스리는 일을 맡은 관리다⁠. 학관 거리 사람이 추관 이름을 듣는 날은 대개 장사가 끝나는 날이다⁠.

“⁠출처를 대시오⁠. 그 세 수를 누구에게 배웠소⁠?⁠”

“⁠제 머리에서요⁠.⁠”

“⁠머리가 백 년 전 혈교에 가 있었나 보오⁠.⁠”

“⁠제가 공부를 좀 깊게 합니다⁠.⁠”

갈필수가 문가에서 한 발 들어왔다⁠. 은관이 볕에 반짝였다⁠.

“⁠봉 강사⁠, 학관 거리 전체를 생각하셔야지⁠. 팔월에 무림맹 허가 갱신이 있는데⁠, 혈교 소리가 난 거리에 허가를 내주겠소⁠? 조합장으로서 하는 말이오⁠.⁠”

“⁠조합장님⁠, 지난달 제 모의 시험 문제 베껴 가신 건 조합장으로서 하신 겁니까⁠, 강사로서 하신 겁니까⁠?⁠”

갈필수의 입이 다물어졌다⁠. 강의실에서 낮은 웃음이 퍼지다가 무량의 눈길에 꺼졌다⁠.

*

포졸들이 문으로 돌아갔다⁠. 무량은 가지 않고 강의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백 명의 얼굴이 한 사람씩 장로의 눈 아래로 지나갔다⁠. 창밖에서 운하 배가 노를 젓는 소리가 들렸다⁠. 셋에 밀고 둘에 쉬는 소리였다⁠. 나는 귀를 막고 싶었다⁠.

“⁠여기 앉은 젊은이들⁠, 들으시오⁠. 이 칼로 시험에 붙으면 문파에 들어가서 쫓겨나오⁠. 붙기 전에 몸이 먼저 무너질 수도 있소⁠. 오늘 환불을 받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오⁠.⁠”

“⁠환불은 아래층 대석 조교에게⁠.⁠”

내 말에 대석이 문가에서 덩치를 움찔했다⁠. 강의실이 웃지 않았다⁠. 첫 오 분이 지난 뒤로 내 강의실이 웃지 않은 날은 없었다⁠.

앞줄 가운데에서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났다⁠. 선아람이 붓을 쥔 채 일어나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접어 올린 소매 아래로 손목이 떨렸다⁠.

무량이 아람을 보았다⁠. 팔짱이 처음으로 풀렸다⁠.

“⁠할아버지⁠.⁠”

강의실 백 개의 고개가 칠판에서 앞줄로⁠, 앞줄에서 문가로⁠, 다시 앞줄로 돌아갔다⁠. 나는 부채를 쥔 손을 내렸다⁠. 부채 끝에서 횟가루가 떨어졌다⁠.

“⁠아람아⁠.⁠” 무량의 목소리가 한 단 낮아졌다⁠. “⁠여기서 뭘 하느냐⁠?⁠”

아람이 손에 쥔 교재를 내려다보았다⁠. 표지에 「⁠한 달 완성 검법 — 봉천우⁠」⁠. 속표지에는 반듯한 글씨로 「⁠선아람⁠」⁠.

“⁠필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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