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69자)

봉황 삼보는 없는 초식이다

무공 일타 강사 · 여무겸

칠월 초닷새 새벽⁠, 창을 열었는데 줄이 없었다⁠. 정확히는 줄이 있었다⁠. 우리 학관 앞을 지나 국숫집과 붓 가게를 지나⁠, 갈필수 학관 은빛 천 아래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자리 맡아 주는 장사꾼도 갈필수 줄 끝으로 옮겨 가 있었다⁠. 장사꾼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장사에는 편이 없다⁠.

“⁠쌤⁠, 큰일 났어요⁠.⁠”

대석이 계단을 두 칸씩 올라왔다⁠. 손에 수강증 묶음이 들려 있었다⁠.

“⁠어제 오후반 백 명⁠, 오늘 아침 신청 확인한 사람 쉰셋이요⁠.⁠”

“⁠나머지 마흔일곱은⁠?⁠”

“⁠스무 날짜리로 갔대요⁠. 한 달보다 열흘 빠르다고요⁠.⁠”

“⁠열흘 빠른 걸 누가 정했는데⁠?⁠”

“⁠표지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나는 국숫집으로 내려갔다⁠. 수강생 국숫집 둘째가 밀가루 묻은 손으로 국수 한 그릇과 『⁠스무 날 완성 검법⁠』 한 권을 같이 내왔다⁠. 형이 어젯밤 갈필수 학관에서 사 온 책이라고 했다⁠. 둘째는 국물을 내려놓으며 형 대신 사과했고⁠, 사과하면서 책값이 내 교재의 절반이라는 말을 두 번 했다⁠.

국물이 식는 동안 책장을 넘겼다⁠. 기초 자세⁠, 전진 베기⁠, 횡베기⁠. 막대 그림의 팔 각도⁠, 화살표 끝의 꺾임⁠, 칼끝 옆에 달아 둔 별표 세 개까지 대석이 밤새 그린 칠판과 같았다⁠. 다른 것은 표지 이름과 「⁠혈교 걱정 없음⁠」 도장 하나였다⁠. 맨 뒤 부록까지 넘겼을 때 국수를 한 젓가락 집었다가 웃음이 나서 도로 내려놓았다⁠.

「⁠봉황 삼보 — 세 걸음 두 박자를 마친 뒤⁠, 왼발로 한 번⁠, 오른발로 한 번⁠, 두 발로 한 번 뛰어올라 봉황이 날개를 접듯 내려앉는다⁠. 시연 가산점 열 점⁠. 갈필수 강사 직접 시연 확인⁠」

나는 교재를 낼 때마다 부록 맨 끝에 없는 초식을 한 줄 넣는다⁠. 세상 어느 문파에도 없고⁠, 시험에 나온 적도 없는 초식이다⁠. 베끼는 사람은 바쁘다⁠. 바쁜 사람은 부록까지 베낀다⁠. 갈필수는 거기에 그림을 그려 넣고⁠, 직접 시연까지 확인했다⁠.

“⁠둘째야⁠, 너희 형 오늘 몇 시 반이야⁠?⁠”

“⁠사시 반이요⁠. 오늘 봉황 삼보 배운대요⁠.⁠”

*

사시 반⁠, 갈필수 학관 강의실 문을 열었다⁠. 학관 거리에서는 남의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예의다⁠. 나는 예의보다 수강생이 급했다⁠.

강의실 가운데 마흔 명 남짓이 줄을 지어 뛰고 있었다⁠. 왼발로 한 번⁠, 오른발로 한 번⁠, 두 발로 한 번⁠. 바닥 판자가 쿵쿵 울렸고⁠, 창가의 먹물 그릇이 박자에 맞춰 조금씩 걸어 나갔다⁠. 칠판 앞에서 은관을 쓴 갈필수가 손뼉으로 박자를 쳤다⁠.

“⁠날개를 접어요⁠, 날개를⁠! 봉황이 닭처럼 내려앉으면 가산점 없어요⁠!⁠”

뛰던 사람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여럿 있었다⁠. 엊그제까지 우리 강의실 셋째 줄에 앉던 얼굴들이 나를 보고 한 발로 선 채 굳었다⁠. 두 발로 내려앉을 차례를 놓친 국숫집 첫째가 옆 사람과 부딪혀 넘어졌다⁠.

“⁠봉 강사⁠.⁠” 갈필수가 손뼉을 멈췄다⁠. “⁠여긴 조합 학관이오⁠.⁠”

“⁠압니다⁠. 봉황 삼보 배우러 왔습니다⁠. 직접 시연 확인하셨다길래⁠, 한 번만 보여 주시면 제 교재에도 넣으려고요⁠.⁠”

수강생들이 갈필수를 보았다⁠. 갈필수의 귀가 은관 아래에서 붉어졌다⁠.

“⁠강사는 시범을 아무 때나 보이지 않소⁠.⁠”

“⁠책에는 확인하셨다면서요⁠. 그날 하신 걸 오늘 한 번 더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왼발⁠, 오른발⁠, 두 발⁠. 제가 박자 쳐 드릴게요⁠.⁠”

나는 손뼉을 쳤다⁠. 하나⁠, 둘⁠. 아무도 뛰지 않았다⁠. 마흔 명이 숨을 죽이고 갈필수의 발을 보았다⁠.

갈필수가 장포 자락을 걷었다⁠. 마흔다섯 살 강사의 무릎이 굽었다가 펴지고⁠, 왼발이 떴다⁠. 오른발이 떴을 때 은관이 앞으로 기울었고⁠, 두 발로 뛰어올랐다가 내려앉는 순간 은관이 바닥에 떨어져 데구루루 굴렀다⁠. 봉황은 날개 대신 관을 접었다⁠.

“⁠이 초식은요⁠.⁠” 나는 은관을 주워 털어서 갈필수 손에 쥐여 주었다⁠. “⁠없습니다⁠. 제가 지어서 제 책 부록에 넣은 거예요⁠. 세상에 이걸 아는 사람은 저하고⁠, 제 책을 베낀 사람뿐입니다⁠.⁠”

강의실이 술렁였다⁠. 국숫집 첫째가 바닥에 앉은 채 책 맨 뒤를 펼쳐 보았다⁠. 몇이 책을 덮고 문으로 걸어갔다⁠. 나는 나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갈필수가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갈필수는 무너지지 않았다⁠. 은관을 머리에 다시 쓰고⁠, 끈을 턱 밑에서 단단히 묶었다⁠.

“⁠그래서⁠, 베꼈다 칩시다⁠.⁠”

“⁠칩시다가 아니고요⁠.⁠”

“⁠베꼈다 치고⁠. 봉 강사⁠, 내가 베낀 게 혈교 비급이면 봉 강사가 쓴 것도 혈교 비급이오⁠. 표절을 들추려면 원본이 누구 것인지 먼저 대야지⁠. 이 책이 봉 강사 책을 베꼈다고 관아에 가서 말하면⁠, 봉 강사 책이 혈교 비급이라는 걸 봉 강사 입으로 말하는 거요⁠.⁠”

나는 할 말을 찾았다⁠. 강의실 마흔 명이 내 입을 보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갈필수가 칠판을 손등으로 툭 쳤다⁠. “⁠봉 강사 책은 관아가 열흘 동안 못 팔게 했소⁠. 그 열흘 동안 애들은 뭘 보고 공부하오⁠? 시험은 구월 아흐레요⁠. 나는 빈 열흘을 채워 준 거요⁠. 거리 전체를 생각해서⁠.⁠”

“⁠제 그림으로 채우셨죠⁠.⁠”

“⁠그림은 그대 것이지만 애들 열흘은 애들 것이오⁠.⁠”

문으로 가던 수강생 몇이 멈췄다⁠. 갈필수는 멈춘 사람들을 보고 목소리를 키웠다⁠.

“⁠봉황 삼보는 빼면 되오⁠. 오늘부터 부록 한 장은 찢고 공부하시오⁠.⁠”

마흔 명이 일제히 책 맨 뒤를 찢었다⁠. 종이 찢는 소리가 강의실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은관 끈이 단단히 묶인 갈필수의 턱을 보며 문을 나왔다⁠. 들어갈 때 나 혼자였고⁠, 나올 때 뒤에 일곱 명이 따라왔다⁠.

*

이튿날 칠월 초엿새⁠, 무림문 앞 공터에서 무료 특강을 열었다⁠. 책을 팔 수 없으면 책 없이 가르치면 된다⁠. 관아는 책만 막았다⁠. 공터는 무림문 성벽 그늘이 길게 드리운 자리라 한낮에도 서늘했고⁠, 성벽 아래 돌 틈마다 이끼 냄새가 났다⁠.

대석이 학관 칠판을 떼어 등에 지고 왔다⁠. 문짝만 한 판자를 진 덩치가 성문을 지나가자 성문지기가 창을 반쯤 들었다가 내렸다⁠.

“⁠제목은요⁠, 쌤⁠?⁠”

“⁠「⁠없는 초식 찾기⁠」⁠.⁠”

대석이 칠판에 반듯하게 썼다⁠. 공터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 수강생⁠, 갈필수 학관에서 찢은 부록을 들고 온 사람들⁠, 지나가다 멈춘 짐꾼과 생선 장수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문지기까지⁠. 성벽 아래에는 무림맹 항주 지부의 방이 붙어 있었다⁠. 「⁠팔월 학관 허가 갱신 — 시비가 있는 학관은 갱신을 미룬다⁠」⁠. 방 옆에서 붉은 띠를 맨 포졸 둘이 팔짱을 끼고 나를 지켜보았다⁠. 팔짱은 화산에서 배웠는지 모른다⁠.

“⁠자⁠, 다들 부록 찢었지⁠? 찢은 거 들어 봐⁠.⁠”

쉰 장쯤 되는 종이가 올라왔다⁠.

“⁠봉황 삼보⁠. 이거 시험에 나온다고 믿고 어젯밤에 연습한 사람 손⁠.⁠”

종이를 든 손 가운데 절반이 남았다⁠.

“⁠무릎 괜찮아⁠?⁠”

웃음이 터졌다⁠. 짐꾼 하나가 무릎을 문지르며 웃었다⁠.

“⁠시험에 안 나오는 걸 시험에 나온다고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야⁠. 모르는 사람⁠, 아니면 베낀 사람⁠. 오늘은 시험에 나오는 것만 한다⁠. 대석 조교⁠, 발⁠.⁠”

대석이 어깨너비로 발을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공터 흙바닥이 눌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부채로 대석의 무릎⁠, 칼끝 자리⁠, 발뒤꿈치를 차례로 짚었다⁠. 책이 없으니 말이 빨라졌고⁠, 말이 빨라지니 사람들이 따라 하느라 웃을 틈이 없었다⁠. 해가 성벽을 넘어올 즈음⁠, 공터 앞줄에서 갈필수 학관 부록을 든 사람 스무 명이 칼 대신 막대기를 쥐고 내 박자대로 걷고 있었다⁠.

“⁠하나에 두 걸음⁠, 둘에 한 걸음⁠.⁠”

말하면서 걸으면 숨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박자를 소리 내어 셌고⁠, 공터의 백여 명이 따라 셌다⁠. 성벽에 부딪힌 소리가 돌아와 한 번 더 들렸다⁠.

특강이 끝나고 대석이 수강증을 다시 셌다⁠. 쉰셋이 여든일곱이 되었다⁠. 대석이 엽전을 세다 말고 울먹였다⁠.

“⁠쌤⁠, 환불 줄이 신청 줄로 바뀌었어요⁠.⁠”

“⁠울지 마⁠. 조교가 울면 수강생이 불안해해⁠.⁠”

“⁠기뻐서요⁠.⁠”

“⁠기뻐도 불안해해⁠.⁠”

공터 끝 버드나무 아래에 회색 무복을 입은 젊은 사내 둘이 서 있었다⁠. 가슴에 매화 수가 작게 놓여 있었다⁠. 화산 제자들이었다⁠. 둘은 특강 내내 칼을 쥔 손 대신 사람들의 가슴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걸음 직전⁠, 숨이 멈추는 자리를 보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자 둘은 고개를 숙이고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칠판을 떼어 내는데 아람이 왔다⁠. 특강 내내 보이지 않던 얼굴이었다⁠.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린 팔에 책 보따리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이에요⁠.⁠” 아람이 버드나무를 턱으로 가리켰다⁠. “⁠쌤 강의 듣는 사람 중에 숨이 멎는 사람이 몇인지 세 오래요⁠.⁠”

“⁠몇이래⁠?⁠”

“⁠그건 할아버지한테만 말해요⁠.⁠” 아람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할아버지 객사에서 나왔어요⁠. 사흘째 하숙집에 있어요⁠.⁠”

“⁠하숙비는⁠?⁠”

“⁠수강료 환불받은 걸로요⁠.⁠”

나는 부채를 펴다 말았다⁠. 대석이 칠판을 진 채로 돌아서서 아람을 보았다⁠. 수석이 환불을 받았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환불받았으면 수강생이 아닌데⁠.⁠”

“⁠그러니까 새벽반은 공짜로 들을게요⁠.⁠” 아람이 고개를 들었다⁠. “⁠쌤이 숨을 멈추게 가르치는지 아닌지⁠, 제 몸으로 보려고요⁠. 할아버지 제자들 눈 말고요⁠.⁠”

장사꾼이 하나 더 늘었다⁠. 나는 웃었고⁠, 아람은 웃지 않았다⁠.

*

초엿새 밤⁠, 나는 새벽반을 열겠다고 붙였다⁠. 책 없이 사흘을 버텼으니 모자란 시간을 몸으로 채워야 했다⁠. 묘시 첫 종이 울리기 전⁠, 학관 강의실에 스무 명이 모였다⁠. 창밖은 아직 검었고 운하 위로 물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등잔 셋을 켰다⁠.

상목은 맨 앞에⁠, 아람은 둘째 줄에 있었다⁠. 하루 네 시간이라고 했는데⁠, 새벽반 한 시간을 더하면 다섯 시간이 된다는 것을 상목도 나도 알았다⁠. 나는 모른 척했다⁠. 시험까지 두 달이 안 남아 있었다⁠.

“⁠전진 베기⁠, 스무 번⁠. 박자는 내가 센다⁠.⁠”

하나에 두 걸음⁠, 둘에 한 걸음⁠. 스무 명의 발이 바닥을 쳤다⁠. 나는 박자를 세며 줄 사이를 걸었다⁠. 열 번째 즈음부터 박자를 세는 내 목소리가 쉬기 시작했다⁠. 대석이 내 대신 세기 시작했고⁠, 대석은 숫자만 셌다⁠. 박자 사이를 채우던 내 잔소리가 빠지자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발소리와 칼 바람 소리만 났다⁠.

열다섯 번째 즈음⁠, 상목의 칼이 늦게 내려왔다⁠.

“⁠상목⁠, 늦어⁠.⁠”

상목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 걸음 직전에서 몸이 멈춰 있었다⁠. 등잔 불빛 아래 얼굴이 붉었고⁠, 목에 핏줄이 섰다⁠. 입이 닫혀 있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 채 내려오지 않았다⁠.

“⁠숨 쉬어⁠.⁠”

상목의 칼이 손에서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나무칼이 판자 위에서 두 번 튀었다⁠. 상목의 무릎이 꺾였고⁠, 나는 부채를 던지고 달려가 쓰러지는 어깨를 받았다⁠. 몸이 화로처럼 뜨거웠다⁠. 손바닥 물집들이 하얗게 부풀어 있었고⁠, 눈동자가 위로 돌아가 흰자만 보였다⁠.

강의실 뒤에서 누가 말했다⁠.

“⁠주화입마다⁠.⁠”

기운이 제 길을 잃고 거꾸로 돌아 몸을 태우는 병이다⁠. 무인 사이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수강생들이 칼을 든 채 뒤로 물러났다⁠. 등잔 불이 흔들렸다⁠. 상목의 가슴은 여전히 부풀어 있었다⁠. 마지막 걸음 직전⁠, 무량이 짚은 자리에서 숨이 멈춰 내려오지 않았다⁠.

“⁠대석⁠, 문짝 떼⁠.⁠”

대석이 강의실 문을 경첩째 뜯었다⁠. 우리는 상목을 문짝에 눕혔다⁠. 문짝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래층 벽에 붙은 합격 수기들이 등 뒤에서 바람에 들썩였다⁠. 나는 상목의 닫힌 입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숨이 나오지 않았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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