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520자)

맘방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7월 27일 화요일 아침⁠, 화성 물류센터 반장이 출근하자마자 나를 컨테이너 뒤로 불렀다⁠. 반장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금융감독원 신고 센터에서 온 접수 문자와 은행에서 온 지급 정지 안내 문자가 나란히 떠 있었다⁠.

“⁠1332에 했어⁠. 112에도 했고⁠. 애들 셋이랑 같이 갔어⁠. 경찰서 민원실 아가씨가 화면 찍어 온 거 보고 잘하셨대⁠.⁠” 반장이 목 늘어난 티셔츠 깃을 잡아당겼다⁠. “⁠근데 본사 과장님⁠, 앱에 있던 2⁠,400은 처음부터 없던 돈이래⁠. 내가 실제로 보낸 건 천이백이고⁠. 천이백은 진짜 내 돈이지⁠.⁠”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알아⁠. 그래도 2⁠,400 잃은 거보다 천이백 잃은 게 나아⁠. 나는 오늘 아침에 천이백 번 거야⁠.⁠” 반장이 웃었다⁠. 웃음 끝이 갈라졌다⁠. 반장은 지게차에 오르기 전에 한마디를 보탰다⁠. “⁠반차 쓴다며⁠. 가서 마누라 일 봐⁠. 마누라 일은 반차로 안 끝나⁠.⁠”

오후 두 시⁠, 나는 독산동 사거리 수학학원 3층에 올라갔다⁠. 독산동 사거리 수학학원 3층에 올라갔다⁠. 계단에서 중학생들이 공식을 외우는 소리가 내려왔다⁠. 같은 공식을 열 명이 따로따로 외우니 돌림노래가 됐다⁠. 소휘는 상담실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이 아버님도 같이 오시래⁠.⁠” 소휘가 낮게 말했다⁠. “⁠당신 회사 일 하는 사람인 줄은 몰라⁠. 단미 아빠로만 알아⁠.⁠”

원장은 쉰 초반의 여자였다⁠. 손톱에 연보라색이 칠해져 있었고⁠, 상담실 책상 위에는 「⁠2학기 선행반 모집⁠」 전단과 휴대전화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 대에서 낮은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원장은 말소리가 나는 휴대전화를 서둘러 엎었다⁠.

“⁠아버님⁠, 소휘 쌤 남편분이시죠⁠. 학원에서 소휘 쌤 없으면 안 돌아가요⁠.⁠” 원장은 웃으며 보리차를 따랐다⁠. “⁠근데 오늘 무슨 일로⁠…⁠…⁠.⁠”

“⁠원장님이 학부모님들한테 보내시는 링크 때문에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팔부능선 맘방⁠」이요⁠.⁠”

원장의 손이 보리차 주전자 위에서 멈췄다⁠. 주전자 뚜껑이 달각 소리를 냈다⁠.

*

원장은 숨기지 않았다⁠. 숨길 필요가 없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엄마들 반찬값 버는 방이에요⁠. 저도 넉 달 했어요⁠. 이것 보세요⁠.⁠” 원장이 엎었던 휴대전화를 뒤집어 수익 인증 화면을 보여 주었다⁠. 「⁠+1⁠,340만 원⁠」 “⁠학원 월세가 2년 사이에 두 번 올랐어요⁠. 중학생은 해마다 줄고요⁠. 반 하나가 닫힐 때마다 쌤 하나를 내보내야 돼요⁠. 소휘 쌤 자리 지키려고 제가 이거 하는 거예요⁠.⁠”

“⁠한 분 데려올 때마다 얼마 받으십니까⁠?⁠”

원장이 소휘를 보았다⁠. 소휘는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 하나를 보여 주었다⁠. 학원 단체 대화방에서 원장이 실수로 올렸다가 지운 글을 누가 찍어 둔 것이었다⁠. 「⁠소개 수당 정산 — 7월 23명 × 30만⁠」

“⁠그건 운영팀에서 고맙다고 주는 거예요⁠. 저는 권유 같은 거 안 해요⁠. 엄마들이 좋다고 들어오는 거지⁠.⁠”

나는 지난주 채석란이 보내 준 판결문 몇 장을 떠올렸다⁠. 비슷한 사건들의 판결문에는 사람들이 층층이 나뉘어 있었다⁠. 맨 위에 돈을 대는 전주가 있고⁠, 시세를 움직이는 조직이 있고⁠, 다시 아래에 리딩방을 돌리는 운영책이 있고⁠, 맨 아래 회원을 데려오는 모집책이 있었다⁠. 남긴 돈은 위에서부터 큰 몫으로 나뉘었고⁠, 모집책에게는 한 사람당 몇십만 원씩이 떨어졌다⁠. 판결문은 모집책도 처벌했다⁠. 받은 돈이 적어도⁠, 데려온 사람이 잃은 돈은 적지 않았다⁠. 원장은 자기가 맨 아래 층에 앉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엄마들이 들어오는 방에서 원금 보장이라고 합니다⁠.⁠” 나는 휴대전화로 맘방 녹음 하나를 틀었다⁠. 무향실에서 마흔 대 가운데 하나로 들었던 목소리였다⁠. 사모님들⁠, 반찬값 정도가 아니라 학원비가 나옵니다⁠. 원금은 제가 책임집니다⁠.

원장의 얼굴이 굳었다가 풀렸다⁠. “⁠아버님⁠, 그건 선생님 말씀이 좀 세게 나온 거고요⁠.⁠”

“⁠이 목소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낸 겁니다⁠. 진짜 주인은 원금 보장이라는 말을 안 합니다⁠.⁠”

“⁠목소리가 무슨 상관이에요⁠. 돈이 들어오는데⁠.⁠” 원장이 보리차를 내 쪽으로 밀었다⁠. 찻잔이 받침 위에서 달그락거렸다⁠. 일주일 전 주찬이 차 안에서 한 말과 같은 말이었다⁠. 가짜 목소리가 진짜 돈을 준다⁠. 돈이 들어오는 동안 사람들은 목소리를 묻지 않는다⁠.

소휘가 일어났다⁠. “⁠원장님⁠, 우리 반 민서 엄마가 적금 깨서 넣었대요⁠. 지난주에⁠. 민서 2학기 학원비는 그 적금에서 나오는 거였어요⁠.⁠”

“⁠소휘 쌤⁠.⁠” 원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차가워졌다⁠. “⁠쌤은 수학만 가르치세요⁠. 엄마들 돈은 엄마들이 알아서 해요⁠.⁠”

*

오후 네 시⁠, 단미의 유치원 정문 앞⁠. 하원을 기다리는 엄마들이 그늘 아래 모여 있었다⁠. 몇은 양산을 쓰고⁠, 몇은 손풍기를 얼굴에 대고⁠, 몇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귀에 댄 엄마들의 얼굴이 같은 표정이었다⁠. 같은 방송을 듣고 있었다⁠.

“⁠사모님들⁠, 귀 열고⁠.⁠” 누군가의 휴대전화 스피커에서 작게 새어 나왔다⁠.

햇살반 반장 어머님이 손풍기를 끄며 말했다⁠. “⁠능선 선생님 목소리 진짜 다정하지 않아요⁠? 우리 남편보다 다정해⁠.⁠”

“⁠우리 남편은 귀 닫고 살아요⁠. 귀 열라는 말 들으니까 눈물 나⁠.⁠”

웃음이 터졌다⁠. 나는 단미를 기다리는 아빠 둘 사이에 서서 웃음소리를 들었다⁠. 웃음 끝에 한숨이 섞인 사람이 넷이었다⁠.

“⁠근데 어제 방이 없어졌어요⁠.⁠” 반장 어머님이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밤 열한 시에 들어가 보니까 「⁠방장이 방을 닫았습니다⁠」만 떠 있고 대화가 하나도 없어⁠. 아침에 문자로 새 방 주소가 왔어요⁠. 이름이 「⁠반찬값 연구소⁠」로 바뀌었고요⁠. 운영팀이 그러는데 보안 때문에 가끔 옮긴대요⁠.⁠”

“⁠전에 있던 대화는요⁠?⁠” 내가 물었다⁠. 엄마들이 단미 아빠를 돌아보았다⁠.

“⁠다 날아갔죠⁠. 선생님이 원금 보장한다고 하신 것도요⁠. 그거 다시 들으려고 했는데⁠.⁠”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엄마들에게 화면 하나를 보여 주었다⁠. 무향실에서 녹음해 둔 맘방 방송이었다⁠. 「⁠원금은 제가 책임집니다⁠」라는 말이 날짜와 시각과 함께 남아 있었다⁠.

“⁠방은 신고가 들어오거나 말썽이 나면 터뜨리고 새 이름으로 다시 엽니다⁠. 방이 터지면 그 안에서 한 말이 같이 사라집니다⁠. 원금 보장이라고 한 말도⁠, 대출 받으라고 한 말도요⁠.⁠” 내가 말했다⁠. “⁠지금 새 방에 있는 공지⁠, 방송⁠, 입금하신 내역을 전부 화면으로 찍어 두십시오⁠. 방이 또 터지기 전에요⁠. 돈을 보낸 계좌 번호도요⁠. 그게 있어야 나중에 신고도 하고 고소도 합니다⁠.⁠”

반장 어머님이 나를 위아래로 보았다⁠. “⁠아버님은 뭐 하시는 분이세요⁠?⁠”

“⁠브레이크 만듭니다⁠.⁠”

“⁠아⁠.⁠” 반장 어머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반장 어머님은 휴대전화를 들어 맘방 화면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옆의 엄마가 따라 찍었다⁠. 찰칵⁠, 찰칵⁠. 유치원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미가 신발을 거꾸로 신고 뛰어와 내 다리에 매달렸다⁠.

“⁠아빠가 왜 왔어⁠? 오늘 금요일 아닌데⁠.⁠”

“⁠아빠 오늘 반차야⁠.⁠”

“⁠반차가 뭐야⁠?⁠”

“⁠반만 회사 가는 거⁠.⁠”

단미가 엄마들을 둘러보며 크게 말했다⁠. “⁠우리 아빠 반만 회사 다녀요⁠.⁠” 엄마들이 다시 웃었다⁠. 이번 웃음에는 한숨이 섞이지 않았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단미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땀에 젖은 작은 손바닥이 미끄러웠다⁠. 소휘는 반 발 앞에서 걸었다⁠. 학원에서 나온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소휘가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다⁠.

“⁠민서 엄마한테 오늘 저녁에 전화할 거야⁠.⁠” 소휘가 신호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적금 깬 거 아직 다 안 넣었으면 넣지 말라고⁠. 원장님이 알면 나 잘려⁠.⁠”

“⁠잘려도 해⁠?⁠”

“⁠당신은 잘려서 화성 갔잖아⁠.⁠” 신호가 바뀌었다⁠. 소휘가 단미의 다른 손을 잡았다⁠. 우리 셋이 나란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단미가 두 손에 매달려 발을 들었다⁠. 우리는 단미를 들어 올린 채 건넜다⁠. 단미가 공중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 비명이 차 소리보다 컸다⁠.

*

저녁 일곱 시⁠, 독산동 빌라 식탁에서 소휘가 새 방 「⁠반찬값 연구소⁠」의 저녁 방송을 들었다⁠. 소휘는 반장 어머님에게서 받은 초대로 들어가 있었다⁠.

“⁠사모님들⁠, 귀 열고⁠. 흠⁠, 흠⁠. 8월 5일 아침 아홉 시⁠. 반찬값 열 배⁠. 아이들 학원비 걱정⁠, 그날로 끝냅니다⁠. 깔끔하게⁠.⁠”

소휘가 방 사람 수를 확인했다⁠. 「⁠340⁠」 그중 몇이 독산동 사람이고⁠, 몇이 학원 학부모이고⁠, 몇이 단미 친구 엄마인지 소휘는 소리 내어 셌다⁠. 셋에서 멈추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학원 엄마 열한 명⁠, 햇살반 엄마 넷⁠.⁠” 소휘가 말했다⁠. “⁠그래서 얼마⁠? 한 사람 평균 천만 원만 잡아도⁠.⁠”

“⁠계산하지 마⁠.⁠”

“⁠해야 돼⁠. 안 하면 나도 원장님처럼 돼⁠.⁠” 소휘가 볼펜을 쥐었다가 놓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원장의 문자였다⁠. 「⁠소휘 쌤⁠, 엄마들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 2학기 반 편성 아직 안 끝났어요⁠.⁠」

소휘가 문자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 편성이 안 끝났다는 말은 소휘의 반이 없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

이튿날 점심⁠, 금천경찰서 앞 분식집에서 채석란이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내가 앞에 앉자 채석란은 순대를 내 쪽으로 밀었다⁠.

“⁠과장님 화장실 녹음⁠, 표서걸이 갖고 있어요⁠.⁠” 채석란이 말했다⁠. “⁠어젯밤부터 뫼빛 사무실 화장실 환풍구에 테이프가 붙었어요⁠. 송출 시간표도 바꿨고요⁠. 과장님 동기가 일을 잘하네요⁠.⁠”

“⁠8월 5일 전에 들어가십시오⁠. 맘방에 엄마들 삼백 명이 넘습니다⁠.⁠”

“⁠안 들어가요⁠.⁠” 채석란이 어묵 국물을 마셨다⁠. “⁠대신 하나 부탁할게요⁠. 과장님이 엄마들한테 기록 남기라고 하셨다면서요⁠. 반장 어머님이 오늘 아침에 1332에 전화했어요⁠. 잘하셨어요⁠. 그 기록⁠, 흩어지지 않게 모아 주세요⁠. 피해자가 한 분씩 따로 오면 사건이 한 개씩 쪼개져요⁠. 같이 오면 하나의 사건이 돼요⁠. 판사는 한 사람의 억울함보다 삼백 명의 화면을 더 오래 봐요⁠.⁠”

분식집 주인이 김밥 한 줄을 서비스로 내려놓았다⁠. “⁠경위님⁠, 오늘은 혼자 아니시네⁠. 애인⁠?⁠”

“⁠피해자요⁠.⁠” 채석란이 김밥을 집었다⁠. “⁠아직 피해는 안 봤는데⁠, 곧 볼 사람⁠.⁠”

주인이 나를 딱하다는 눈으로 보고 돌아갔다⁠. 나는 김밥에 손을 대지 않았다⁠. 피해자라는 말이 내 앞에 놓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면 8월 5일 아침에 막아 주십니까⁠?⁠”

“⁠그날 아침엔 팔아야 잡혀요⁠. 몇 번 말해요⁠.⁠” 채석란이 숟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과장님은 막는 사람⁠, 저는 잡는 사람⁠. 둘 다 하려고 하면 둘 다 못 해요⁠.⁠”

*

밤 열 시⁠, 단미가 잠든 뒤 소휘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는 사직서 양식이 떠 있었다⁠. 소휘는 제목 칸에 커서를 놓고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내일 학원 그만둘 거야⁠.⁠” 소휘가 말했다⁠. “⁠원장님 밑에서 엄마들 얼굴 보고 수학 가르칠 자신이 없어⁠.⁠”

“⁠잔금 날 한 달 남았어⁠.⁠”

“⁠알아⁠.⁠” 소휘가 키보드를 쳤다⁠. 타닥⁠, 타닥⁠.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빠르고 고른 소리였다⁠. “⁠그래서 얼마⁠? 내 월급 없으면 우리 한 달에 얼마 모자라는지⁠, 지금 계산하고 있어⁠.⁠”

소휘는 계산을 다 하고 나서 사직서 칸 하나를 채웠다⁠. 사유⁠. 「⁠개인 사정⁠」 소휘는 네 글자를 지우고 다시 썼다⁠. 「⁠학부모님들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권한 학원에서 더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저장 단추를 눌렀다⁠. 딸깍⁠. 소휘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한참 떨렸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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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림2026.11.01· 9화

    1332, 112 신고 순서까지 나와서 실제로 도움이 됐어요. 반장님네처럼 당하면 바로 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

    • 문채겸작가2026.11.01

      네, 금융감독원 1332와 경찰 112, 그리고 돈 보낸 은행에 바로 지급 정지를 거는 게 먼저예요. 빠를수록 돌려받을 길이 넓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