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18자)

두 목소리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7월 29일 저녁 여덟 시⁠, 근호가 전화를 걸어 왔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차 안이었다⁠.

“⁠아홉 시에 식구방에 내가 말한다⁠. 변조 없이⁠, 내 이름으로⁠.⁠”

“⁠얼굴을 보여 주십시오⁠. 영상으로요⁠. 목소리만으로는 저쪽이 합성이라고 받아칩니다⁠.⁠”

“⁠얼굴은 못 보여 준다⁠.⁠” 근호가 바로 대답했다⁠. “⁠얼굴 나가면 회사 이름 나가고⁠, 회사 이름 나가면 감사 날아가고⁠, 감사 날아가면 물류센터 반장님네 열두 사람이 먼저 잘려⁠. 목소리까지가 내가 낼 수 있는 거다⁠.⁠”

“⁠목소리는 저쪽에도 있습니다⁠.⁠”

“⁠내 목소리는 나한테만 있어⁠.⁠” 근호가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이십오 년 들은 사람들이다⁠. 알아들을 거다⁠.⁠”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근호가 틀렸기를 바랐다⁠.

밤 아홉 시⁠, 회사 식구방에 음성 메시지 하나가 올라왔다⁠. 보낸 사람은 「⁠팀장 맹근호⁠」였다⁠. 방에서 근호가 실명으로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독산동 빌라 식탁에서 소휘와 함께 들었다⁠.

“⁠나다⁠. 품질팀 맹근호⁠.⁠”

변조가 없었다⁠. 금니 틈으로 ‘⁠ㅅ⁠’ 바람이 샜다⁠. 흠⁠, 흠⁠. 두 번째 기침은 반 박자보다 더 늦었다⁠. 근호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석 달 동안 팔부능선 목소리가 나였다⁠. 내가 여러분을 이 방에 불렀다⁠. 그러니까 내가 말한다⁠. 8월 5일 하지 마라⁠. 종목 공개되면 사지 마라⁠. 열 시 신호는 없다⁠. 미안하다⁠.⁠”

메시지는 일 분이 안 됐다⁠. 깔끔하게⁠, 는 붙지 않았다⁠.

방이 조용했다⁠. 십 초쯤 아무도 글을 올리지 않았다⁠. 다음 순간 방에 「⁠팔부능선⁠」의 음성 방송이 떴다⁠. 물속 같은 목소리였다⁠.

“⁠자⁠, 귀 열고⁠. 흠⁠, 흠⁠. 식구 여러분⁠, 방금 올라온 음성은 회사 안의 쥐가 만든 합성입니다⁠. 품질팀 오 과장은 소리를 만지는 사람입니다⁠. 팀장님 목소리를 따다 붙이는 건 그 사람한테 일도 아닙니다⁠. 흔들리지 마세요⁠. 깔끔하게⁠.⁠”

글이 쏟아졌다⁠. 「⁠역시 오승표⁠」⁠, 「⁠팀장님 목소리 따서 저렇게까지 하냐⁠」⁠, 「⁠소름 끼침⁠」⁠, 「⁠근데 진짜 팀장님 목소리 같은데⁠?⁠」⁠, 「⁠합성 기술 요즘 무섭잖아요⁠」⁠, 「⁠능선 선생님 목소리가 진짜지 석 달 들었는데⁠」

소휘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진짜를 가짜라고 해⁠.⁠”

“⁠석 달 동안 변조된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그 사람들한테는 물속 목소리가 진짜고⁠, 맨목소리가 처음 듣는 소리야⁠.⁠” 나는 휴대전화를 엎었다⁠. “⁠처음 듣는 소리는 다 가짜처럼 들려⁠.⁠”

휘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과장님 제가 방에 ‘⁠확인하고 싶으면 팀장님한테 직접 전화해 보세요⁠’라고 올렸는데요⁠, 아무도 안 해요⁠. 전화하면 진짜일까 봐 무서운가 봐요⁠.⁠」

구매팀 탁 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탁 대리는 인사도 없이 물었다⁠. “⁠과장님⁠, 이거 과장님이 만든 거예요⁠?⁠”

“⁠아닙니다⁠.⁠”

“⁠그럼 진짜 팀장님이에요⁠?⁠”

“⁠전화해 보세요⁠. 팀장님한테⁠.⁠”

탁 대리가 한참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이 둘이 그림을 그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벽이 한 뼘 앞에 붙은 거실이었다⁠.

“⁠못 하겠어요⁠.⁠” 탁 대리가 말했다⁠. “⁠진짜면⁠, 제 집이 뭐가 되는지 모르겠어서요⁠.⁠”

*

이튿날 아침 여덟 시⁠, 회사 지하 2층 주차장⁠. 나는 화성으로 출근하기 전에 들렀다⁠. 근호의 회색 세단 앞에 주찬이 서 있었다⁠. 근호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창문만 내리고 있었다⁠.

“⁠팀장님⁠, 방에서 내보내 드렸어요⁠.⁠” 주찬이 말했다⁠. 형광 조끼 대신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밤새 대리를 뛰고 바로 출근한 얼굴이었다⁠. “⁠방도 새로 팠어요⁠. 「⁠두루 식구방 2⁠」 어젯밤 방은 터뜨렸고요⁠. 팀장님 음성도 같이 날아갔어요⁠.⁠”

근호가 창틀에 팔을 올렸다⁠. “⁠주찬아⁠.⁠”

“⁠팀장님이 끌고 들어오셨잖아요⁠.⁠” 주찬의 목소리가 컸다⁠. 주차장 천장에 부딪혀 두 번 울렸다⁠. “⁠저 넉 달 전에 팀장님이 ‘⁠주찬아⁠, 너 집 사야지⁠’ 하셔서 들어갔어요⁠. 대출도 팀장님이 말리는 척하면서 웃으셨잖아요⁠. 이제 와서 내리라고요⁠? 저 2억이에요⁠. 2억 들고 버스 기다리는데 운전사가 내려서 버스 없대요⁠. 그럼 저는 어디 가요⁠?⁠”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으면 끝까지 가세요⁠.⁠” 주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진심이었다⁠. “⁠팀장님이 시작한 거 팀장님이 끝까지 운전하세요⁠. 중간에 내리는 거⁠, 그거 오승표가 하는 거예요⁠.⁠”

근호가 창문을 끝까지 내렸다⁠. “⁠운전은 내가 끝까지 하마⁠. 대신 종점이 어딘지 승객들한테 말은 하고 가야지⁠. 그게 운전사 일이야⁠.⁠”

“⁠말하면 승객들이 내려요⁠. 내리면 저는 2억 빚만 남고요⁠.⁠” 주찬이 사원증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저 오늘 새벽에 대리 다섯 콜 뛰었어요⁠. 마지막 손님이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기사님 눈이 왜 그렇게 빨개요⁠.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집 사려고요⁠.⁠”

주찬이 나를 보았다⁠. 처음부터 내가 거기 있는 것을 알고 있던 눈이었다⁠. 주찬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로 새 방 공지를 올렸다⁠. 주차장에 있던 직원 몇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띠링⁠. 새 방의 첫 알림이었다⁠.

방을 터뜨리고 새 방을 파는 것은 세력만의 일이 아니었다⁠. 맘방이 그랬고⁠, 이제 회사 식구방도 그랬다⁠. 방이 바뀔 때마다 지난 방에서 오간 말이 지워졌다⁠. 근호가 실명으로 한 말도 지워졌다⁠. 남는 것은 새 방의 첫 공지와 숫자뿐이었다⁠.

*

열 시⁠, 사장이 근호와 나를 사장실로 불렀다⁠. 대기발령 중인 나까지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사장은 퍼팅 매트 대신 소파에 앉아 있었다⁠. 탁자에 퍼터가 가로로 놓여 있었다⁠.

“⁠근호 형님⁠, 어젯밤 그거 뭐예요⁠.⁠” 사장이 먼저 말했다⁠. “⁠형님 실명으로 회사 방에 그런 말을 올리면 어떡해요⁠.⁠”

“⁠사장님도 하지 마십시오⁠. 8월 5일⁠.⁠” 근호가 말했다⁠.

사장이 웃었다⁠. “⁠나는 그날 안 사요⁠. 나는 그 반대편이야⁠.⁠”

나는 사장의 말을 다시 들었다⁠. 반대편⁠.

“⁠표 선배 투자조합에 5억 넣었어요⁠. 리딩방 회원으로 넣은 게 아니고요⁠. 조합원으로⁠.⁠” 사장이 퍼터를 손바닥으로 굴렸다⁠. “⁠표 선배가 종목 고르고⁠, 조합 돈으로 미리 사 두고⁠, 끝나면 남은 돈을 나눠요⁠. 돈 댄 사람이 3할⁠, 운용한 표 선배 쪽이 절반⁠, 나머지는 방 돌리는 사람들 몫⁠. 형님 몫도 거기서 나간 거예요⁠. 형님 계좌에 들어간 회비랑은 별개로⁠.⁠”

근호의 얼굴이 하얘졌다⁠. “⁠나는 그런 몫 받은 적 없어⁠.⁠”

“⁠형님 이름 계좌에 들어갔겠죠⁠. 형님이 안 꺼내 봤을 뿐이지⁠.⁠” 사장이 퍼터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쇠가 유리에 닿아 쨍 소리를 냈다⁠. “⁠형님⁠, 8월 5일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요⁠. 형님이 입 열면 회사 감사도 날아가고 형님도 날아가요⁠. 사표는 8월 6일에 받아 줄게요⁠. 퇴직금은 두 배로⁠.⁠”

“⁠사장님은 회사 직원 백 명이 사는 날 반대편에 앉아 계시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오 과장⁠, 돈은 원래 반대편이 있어야 움직여⁠. 사는 사람이 있으면 파는 사람이 있지⁠.⁠” 사장이 나를 보았다⁠. 처음으로 웃지 않았다⁠. “⁠직원 백 명이 집을 사게 해 준 것도 그 반대편 돈이야⁠. 석 달 동안⁠. 그건 왜 아무도 고맙다고 안 해⁠?⁠”

사장실 벽시계 초침이 똑딱거렸다⁠. 근호의 숨이 길어졌다⁠. 무엇을 내려놓을 때 나는 숨이었다⁠. 이번에는 내려놓는 것이 없었다⁠. 내려놓을 것이 이미 사장 손에 있었다⁠.

*

사장실을 나오자 품질팀 칸막이 너머에서 휘람이 손짓했다⁠. 휘람은 휴대전화를 두 대 들고 있었다⁠. 하나는 새 식구방⁠, 하나는 VIP방이었다⁠.

“⁠과장님⁠, 새 방 첫 방송 들으셨어요⁠? ‘⁠팀장님은 쥐한테 협박당해서 억지로 녹음하신 겁니다⁠. 팀장님을 지켜 드립시다⁠.⁠’ 이래요⁠. 이제 팀장님이 피해자래요⁠.⁠” 휘람이 다른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VIP방에서는 더 웃겨요⁠. 평생 회원 990만 원을 오늘까지만 790만 원에 해 준대요⁠. ‘⁠8월 5일 전 마지막 할인⁠’⁠. 블랙 프라이데이예요⁠?⁠”

“⁠들어가는 사람 있어⁠?⁠”

“⁠어젯밤에만 스물두 명이요⁠.⁠” 휘람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아 그리고 저 구독자 천 명 넘었어요⁠. 과장님 덕에 구백십삼에서 시작해서⁠. 근데 수익 신청 버튼이 하나도 안 기뻐요⁠.⁠”

나는 휘람의 컵에 그려진 쥐를 보았다⁠. 물방울에 번져서 수염이 다 지워져 있었다⁠.

*

비상계단 3층과 4층 사이 층계참에 근호가 앉았다⁠. 나는 두 계단 아래에 앉았다⁠. 계단통은 소리가 위아래로 길게 울리는 자리였다⁠. 근호가 말하는 동안 근호의 목소리가 위층과 아래층으로 번졌다가 돌아왔다⁠.

“⁠반년 전에 표 대표가 그랬다⁠. 선생님은 종목 고르는 눈이 있다고⁠. 다음 날 갈 종목을 전날 밤에 알려 줄 테니 아침에 방송만 해 달라고⁠.⁠” 근호가 손가락으로 계단 모서리를 문질렀다⁠. “⁠나는 내가 고른 줄 알았어⁠. 표 대표가 준 종목 셋 가운데 하나를 골랐으니까⁠. 셋이 다 그 사람들이 미리 사 둔 거였겠지⁠. 내가 방송하면 회원들이 사고⁠, 회원들이 사는 동안 그쪽이 팔고⁠. 처음 석 달은 그쪽이 다시 올려 줘서 다 같이 벌었고⁠. 나는 그게 시장인 줄 알았다⁠.⁠”

“⁠뫼빛 사무실 안쪽 방에 서랍장이 하나 있었다⁠. 한번은 실장이 열어 둔 걸 봤어⁠. 남의 신분증 사본이랑 통장⁠, 오래된 휴대전화가 이름표 붙어서 줄줄이 들어 있더라⁠.⁠” 근호가 계단 난간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실장이 웃으면서 그러더라⁠. 대출 연체된 사람들⁠, 일용직 하는 사람들한테 백만 원씩 주고 이름 빌렸다고⁠. 그 이름들로 주식을 서로 사고팔면 그래프가 산처럼 그려진대⁠. 나는 그걸 농담으로 들었어⁠. 내 이름도 그 서랍 어딘가에 들어가 있는 줄 모르고⁠.⁠”

“⁠이제 아십니까⁠?⁠”

“⁠알아⁠. 어젯밤에 알았다⁠. 내 맨목소리를 사람들이 합성이라고 할 때⁠.⁠” 근호가 웃었다⁠. 계단통이 웃음을 위로 올려 보냈다⁠. “⁠이십오 년 동안 클레임 회의에서 내가 ‘⁠이 소리 진짜다⁠’ 하면 다들 믿었어⁠. 그런데 어젯밤엔 내 목소리로 ‘⁠나다⁠’ 했는데 아무도 안 믿어⁠. 내 진짜 목소리는 이제 아무도 안 믿는다⁠.⁠”

근호가 일어났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근호는 계단을 올라가다 멈추고 내려다보았다⁠.

“⁠오 과장⁠, 무향실 녹음 지웠다고 했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근호는 내 침묵을 오래 들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발소리가 한 층씩 멀어졌다⁠.

*

밤 열한 시⁠, 독산동 빌라 식탁 위에 작은 저장 장치가 놓여 있었다⁠. 지갑 안쪽 칸에서 3주 동안 들고 다닌 것이었다⁠. 소휘가 맞은편에 앉아 저장 장치를 보았다⁠.

“⁠그거 경찰에 넘기면 팀장님은⁠?⁠”

“⁠잡혀가⁠.⁠”

“⁠팀장님이 어젯밤에 맨목소리로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어젯밤 일은 방이 터지면서 지워졌어⁠. 남은 건 팀장님 이름 계좌랑 팀장님 목소리 마흔 개야⁠. 표서걸은 8월 5일 끝나면 팀장님만 남기고 사라져⁠. 경찰이 팀장님을 먼저 잡으면 표서걸을 쫓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겨⁠.⁠” 나는 저장 장치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가벼웠다⁠. “⁠그리고 팀장님은 이 녹음 지우라고 했어⁠. 나를 걱정해서⁠.⁠”

“⁠그래서 넘긴다는 거야⁠?⁠”

“⁠응⁠.⁠”

소휘가 볼펜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계산할 것이 없는 얼굴이었다⁠. 소휘가 오래 있다가 말했다⁠.

“⁠당신 대답이 짧네⁠.⁠”

“⁠거짓말 아니야⁠.⁠”

“⁠알아⁠. 이번엔 짧아도 진짜야⁠.⁠” 소휘가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메로나 한 개를 꺼내 내 앞에 놓았다⁠. 근호가 사 준 열 개짜리 봉지에서 남은 마지막 하나였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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