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81자)

할머니 무릎에서 울린 금속 탐지기

목욕탕 남북 회담 · 모세담

12월 7일 목요일 아침 일곱 시⁠, 통일탕 앞 골목에 검은 승합차 세 대가 줄지어 멈췄다⁠. 목요일은 목욕날이 아니라서 탕 안에는 새벽 등산 다녀온 동네 아주머니 둘뿐이었다⁠. 옥자는 카운터에서 귤을 까다가 차 문 여닫는 소리가 여섯 번 나는 것을 세었다⁠.

맨 앞에서 내린 남자는 마흔 중반⁠, 짧은 머리에 귀에는 투명한 줄이 감긴 이어폰을 꽂았다⁠. 뒤에 검은 점퍼 차림 넷이 따라오고⁠, 맨 끝에 누런 래브라도 한 마리가 목줄을 끌며 내렸다⁠. 개는 통일탕 현관 앞에서 코를 바닥에 붙이더니 김 냄새를 맡고 재채기를 했다⁠.

“⁠대통령경호처 선발팀장 곽도식입니다⁠. 대통령 행사 예정지 사전 안전 활동을 나왔습니다⁠.⁠”

“⁠허락한 적 없는데⁠.⁠”

“⁠남기오 비서관께 들었습니다⁠. 오늘은 둘러보기만 하겠습니다⁠.⁠”

“⁠둘러보는 데 개까지 와⁠?⁠”

“⁠폭발물 탐지견 보리입니다⁠. 훈련받은 개라 얌전합니다⁠.⁠”

보리는 현관 매트를 넘자마자 젖은 타일에서 네 발이 동시에 벌어졌다⁠. 엉덩이가 주저앉고⁠, 꼬리가 바닥을 쓸고⁠, 개는 놀란 눈으로 곽도식을 올려다보았다⁠. 곽도식이 목줄을 당겼다⁠. 팀장의 구두도 반 뼘 미끄러졌다⁠. 곽도식은 문틀을 붙잡고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넥타이를 고쳤다⁠.

“⁠구두 벗어요⁠. 개는 발 닦고⁠.⁠”

*

곽도식은 현관에 금속 탐지문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요원 하나가 손에 쥐는 막대형 탐지기를 꺼냈다⁠. 들어오는 사람을 하나씩 훑겠다고 했다⁠.

“⁠사장님부터 해 보겠습니다⁠. 협조 차원에서요⁠.⁠”

“⁠내 집에서 내가 왜 검사를 받아⁠?⁠”

“⁠행사 날에는 사장님도 받으셔야 합니다⁠. 미리 해 보시면 그날 덜 놀라십니다⁠.⁠”

옥자는 장갑을 벗어 카운터에 놓고 두 팔을 벌렸다⁠. 요원이 탐지기를 머리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렸다⁠. 가슴께에서 삐 소리가 났다⁠. 꽃무늬 셔츠 단추 대신 꽂아 둔 옷핀이었다⁠. 허리에서 삐⁠, 몸뻬 주머니 속 열쇠 꾸러미와 백 원짜리 동전 일곱 개였다⁠. 오른쪽 무릎에서 길게 삐이 소리가 났다⁠.

“⁠무릎에 뭐가 있으십니까⁠?⁠”

“⁠인공관절⁠. 2019년에 넣었어⁠. 빼 줄까⁠?⁠”

요원이 곽도식을 돌아보았다⁠. 곽도식은 수첩에 「⁠업주 — 우측 무릎 인공관절⁠」이라고 적었다⁠. 옥자는 카운터 너머로 수첩 글자를 거꾸로 읽었다⁠.

“⁠수요반 할머니 열한 명 중에 아홉이 무릎을 갈았어⁠. 둘은 양쪽 다⁠. 목욕날 다 같이 그거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불난 줄 알 거야⁠.⁠”

“⁠전원 등록해 두겠습니다⁠.⁠”

곽도식은 농담을 받지 않았다⁠. 옥자는 이 남자가 농담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받지 않는 사람이 더 무서웠다⁠. 받는 사람은 웃기면 넘어가는데⁠, 받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간다⁠.

*

아홉 시⁠, 출입문 종이 울리고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회색 코트⁠, 하나로 묶은 머리⁠, 목에 걸린 출입증⁠. 출입증에는 「⁠통일부⁠」와 「⁠봉채은⁠」이 박혀 있었다⁠.

“⁠할머니⁠.⁠”

“⁠너 회사 안 가고 여기 왜 와⁠?⁠”

“⁠여기가 회사야⁠. 나 이번 회담 지원단 막내야⁠. 판문점 연락 채널로 오는 통지문을 받아서 정리하는 일⁠.⁠”

채은은 구두를 벗고 들어와 곽도식에게 고개를 숙였다⁠. 곽도식도 고개를 숙였다⁠. 옥자는 둘이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고개 숙이는 각도에서 알아챘다⁠.

“⁠어제 그 안경 쓴 사람 보낸 것도 너야⁠?⁠”

“⁠보낸 건 대통령실이고⁠, 나는 바나나우유만 부탁했어⁠.⁠”

“⁠한통속이네⁠.⁠”

채은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북측 통지문 사본 — 대외비⁠」라는 도장이 위에 찍혀 있었다⁠. 채은은 손바닥으로 도장을 가리고 아래 문장만 보여 주었다⁠.

「⁠회담 장소는 경기 파주 문산 통일탕 여탕으로 한다⁠. 수석대표 단독 회담은 탕 안에서 한다⁠. 목욕탕은 있는 그대로 둔다⁠.⁠」

“⁠있는 그대로⁠?⁠”

“⁠고치지 말고 꾸미지 말라는 거야⁠. 현수막도 달지 말고 화분도 들이지 말래⁠. 처음 보는 조건이라 위에서 다들 머리 싸맸어⁠.⁠”

“⁠그럼 물도 그대로 둬야지⁠. 물이 목욕탕이야⁠.⁠”

채은이 곽도식을 힐끔 보았다⁠. 곽도식은 고개를 젓지 않았다⁠. 고개를 젓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할머니⁠, 그게⁠…⁠…⁠.⁠”

“⁠너도 저 사람들 편이냐⁠?⁠”

“⁠할머니⁠, 그건 공문이야⁠. 나는 공문 들고 온 사람이고⁠.⁠”

“⁠공문 든 손녀는 처음 본다⁠.⁠”

*

열한 시 반⁠, 휴게실 평상에 짜장면 두 그릇이 올라왔다⁠. 채은이 시킨 것이었다⁠. 요원들은 현관 앞에 서서 김밥을 한 줄씩 먹었고⁠, 보리는 뜨끈한 평상 밑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눈을 감았다⁠. 폭발물 탐지견이 통일탕에서 처음 배운 것은 바닥 난방이었다⁠.

채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아빠⁠」가 떴다⁠. 채은이 받기도 전에 옥자가 손을 내밀었고⁠, 채은은 할머니 손에 전화를 넘겼다⁠.

“⁠엄마⁠, 채은이한테 들었어⁠. 정부가 목욕탕을 빌린다며⁠? 돈 준다며⁠? 이참에 빌려줘⁠. 어차피 그거⁠…⁠…⁠.⁠”

“⁠어차피 뭐⁠?⁠”

수화기 너머에서 아들 재국이 말을 삼켰다⁠. 일산 아파트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가 알아서 해⁠. 나는 엄마 무릎 걱정돼서 그러지⁠.⁠”

“⁠내 무릎은 아까 경호처에 등록했다⁠.⁠”

옥자는 전화를 채은에게 돌려주고 짜장면을 비볐다⁠. 채은은 아빠와 할머니 사이에서 단무지만 씹었다⁠. 단무지 씹는 소리가 휴게실에 크게 울렸다⁠.

출입문 종이 또 울렸다⁠. 골목 순대국집 구학봉이 앞치마를 두른 채 고개만 들이밀었다⁠. 문산 역전 상인회 회장이었다⁠.

“⁠옥자 누님⁠, 대통령 온다며⁠? 골목에 소문 다 났어⁠. 순대 몇 근 준비하면 돼⁠?⁠”

“⁠대통령은 순대 안 먹어⁠.⁠”

“⁠기자들은 먹지⁠. 기자가 몇 명 온대⁠?⁠”

곽도식이 김밥을 삼키고 말했다⁠. “⁠행사 정보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 못 하는 걸 보니 많이 오는구먼⁠.⁠”

구학봉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골목 끝 순대국집에서 벌써 솥뚜껑 여닫는 소리가 쩔렁 났다⁠. 옥자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

열두 시 반⁠, 곽도식이 여탕 문 앞으로 왔다⁠. 탕 안의 아주머니 둘은 벌써 옷을 입고 나갔다⁠. 둘 다 나가면서 대통령 오시면 우리도 구경시켜 달라며 옥자 손에 목욕비를 쥐여 주었다⁠.

“⁠여탕 안을 보겠습니다⁠. 여성 경호관이 들어갑니다⁠.⁠”

검은 점퍼 차림의 여자 요원이 앞으로 나왔다⁠. 옥자는 여탕 문 앞을 고무장화 두 짝으로 막고 버텼다⁠.

“⁠여자면 들어가도 돼⁠. 장화는 신고⁠.⁠”

여자 요원은 옥자가 내민 남는 장화를 신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분홍 장화가 두 켤레가 되었다⁠. 요원은 천창⁠, 환기구⁠, 수도꼭지⁠, 배수구를 차례로 살폈다⁠. 막대형 탐지기를 수도꼭지에 대자 삐⁠, 샤워기에 대자 삐⁠, 탕 가장자리 손잡이에 대자 삐 소리가 났다⁠. 목욕탕은 온통 쇠였다⁠. 요원이 탕 옆 못에 걸어 둔 박 바가지 앞에서 멈췄다⁠. 탐지기를 갖다 대자 바가지에 감긴 철사에서 짧게 삐 소리가 났다⁠.

“⁠이건 뭡니까⁠?⁠”

“⁠바가지⁠.⁠”

“⁠철사가 감겨 있습니다⁠.⁠”

옥자가 장화 소리를 내며 들어가 바가지를 못째로 손바닥으로 가렸다⁠.

“⁠쉰 해도 넘게 여기 있던 거야⁠. 폭탄이면 진작 터졌어⁠.⁠”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탕 앞에서 다시 멈췄다⁠. 김이 오르는 물 위로 탐지기를 휘저어 보다가 문 밖의 곽도식을 돌아보았다⁠.

“⁠팀장님⁠, 물속은 안 됩니다⁠.⁠”

곽도식이 문지방 너머에서 말했다⁠. 몸은 문밖에 두고 목소리만 들여보냈다⁠.

“⁠사장님⁠, 탐지기는 물속을 못 봅니다⁠. 개도 물속 냄새는 못 맡습니다⁠. 탕 바닥과 배수구를 보려면 물을 빼야 합니다⁠.⁠”

“⁠물을 빼면 다시 채우고 데우는 데 반나절이야⁠. 가스가 얼마 드는지 알아⁠?⁠”

“⁠비용은 정부에서 보전합니다⁠.⁠”

“⁠보전이 뭐야⁠?⁠”

“⁠드신 만큼 드린다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옥자는 장갑을 다시 꼈다⁠. 장갑 낀 손을 허리에 얹었다⁠. 곽도식이 한 걸음 물러났다⁠. 물러나다가 젖은 타일에서 또 미끄러질 뻔했고⁠, 이번에는 보리가 팀장의 바짓단을 물어 붙잡았다⁠.

“⁠토요일이 목욕날이야⁠. 토요일 새벽 다섯 시까지 물 다시 채워 놓을 거면 빼⁠.⁠”

“⁠검측이 끝나면 채우시면 됩니다⁠.⁠”

“⁠약속해⁠.⁠”

“⁠약속드리겠습니다⁠.⁠”

곽도식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이번에는 옥자도 거꾸로 읽지 못했다⁠.

*

옥자는 남이 마개를 뽑게 두지 않았다⁠. 고무장화를 신은 채 탕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굽히고⁠, 탕 바닥 가운데 놋쇠 마개 고리를 손가락에 걸었다⁠. 쉰 해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뽑았다 꽂았다 한 마개였다⁠. 당기자 꾸르륵 소리가 나고 물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빠지기 시작했다⁠.

채은이 탕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출입증이 물 위로 늘어졌다⁠.

“⁠할머니⁠, 미안⁠.⁠”

“⁠뭐가⁠?⁠”

“⁠그냥⁠. 할머니 탕 물 빼는 거 처음 보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빼⁠. 청소하려고⁠. 오늘은 남이 시켜서 빼는 거지⁠.⁠”

물은 41도 김을 마지막으로 뿜고 줄어들었다⁠. 물이 빠지자 탕 바닥 타일의 금이 하나씩 드러났다⁠. 1978년에 깐 하늘색 타일이었다⁠. 시아버지가 깔았고⁠, 갈라지면 남편이 메웠고⁠, 남편이 떠난 뒤로는 옥자가 메웠다⁠. 금마다 메운 사람이 달랐다⁠.

“⁠채은아⁠, 북에서 왜 하필 우리 탕이래⁠?⁠”

“⁠나도 몰라⁠. 물어봤는데 위에서 아직 말하지 말래⁠.⁠”

“⁠말하지 말라는 걸 보니 알기는 아는구나⁠.⁠”

채은은 대답하지 않고 출입증을 셔츠 속으로 밀어 넣었다⁠. 거짓말을 못 하는 아이는 거짓말 대신 손을 바쁘게 했다⁠. 다섯 살 때도 그랬다⁠.

마지막 물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며 휘파람 같은 소리를 냈다⁠. 빈 탕은 생각보다 깊었다⁠. 옥자는 빈 탕 바닥에 서서 탕 가장자리를 올려다보았다⁠. 노란 바가지 열두 개가 엎어진 채 나란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검측은 오후 세 시에 끝났다⁠. 여자 요원이 배수구 덮개를 열고 손전등을 비추다가 뭔가를 집어 올렸다⁠. 녹슨 실핀 한 줌과 1990년대 백 원짜리 동전 몇 개⁠, 그리고 금반지 하나였다⁠.

“⁠이건 누구 겁니까⁠?⁠”

“⁠정분 언니 거⁠. 2009년에 잃어버렸다고 한 달을 울었어⁠.⁠”

곽도식은 금반지를 비닐 봉투에 넣어 옥자에게 건넸다⁠. 그다음 요원들에게 손짓했다⁠. 요원 둘이 노란 띠를 들고 여탕 문 앞으로 갔다⁠. 띠에는 검은 글씨가 박혀 있었다⁠.

「⁠경호 검측 완료 구역 — 출입 금지⁠」

“⁠이게 뭐야⁠?⁠”

“⁠검측을 마친 곳은 행사 날까지 봉인합니다⁠. 누가 들어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아까 약속했잖아⁠. 토요일 새벽까지 물 채운다고⁠.⁠”

“⁠검측이 끝나면 채우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채우려면 사람이 들어가야 하고⁠, 사람이 들어가면 다시 검측해야 합니다⁠. 다시 검측하려면 물을 또 빼야 합니다⁠.⁠”

옥자는 곽도식을 보았다⁠. 곽도식은 옥자를 보았다⁠. 둘 사이로 김이 흐르지 않았다⁠. 여탕 물이 다 빠져서 김도 없었다⁠.

“⁠그러니까 토요일에 할머니들은⁠?⁠”

“⁠회담 날까지 여탕은 쓰실 수 없습니다⁠.⁠”

곽도식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서 숙이는 고개가 아니었다⁠. 규정을 다 말했다는 고개였다⁠.

옥자의 몸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단톡방이었다⁠. 정분이 한 손가락으로 찍은 글자가 떴다⁠.

「⁠토요일물있냐⁠」

옥자는 노란 띠 너머 빈 탕을 보았다⁠. 박 바가지가 못에 매달려 혼자 흔들렸다⁠. 보일러실 쪽으로 난 벽 너머에서⁠, 남은 물을 데우려는 늙은 보일러가 두 번 기침을 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유하람2026.11.06· 2화

    탐지기가 할머니 무릎에서 삐 울리는 거 너무 웃겼어요. 인공관절이죠? 정분 할머니가 한 손가락으로 찍은 「토요일물있냐」에서 빵 터졌습니다. 경호처 팀장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 너무 단호하네요.

    • 모세담작가2026.11.06

      곽도식은 규정을 다 말한 다음에야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에요. 수요반 할머니들이 토요일에 어디서 씻는지는 다음 화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