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52자)

그거 내 소리다

바닷가 게스트하우스의 마지막 손님 · 진해솔

군내버스 엔진은 언덕을 오를 때마다 기침을 했다⁠. 기침 한 번에 차체가 한 번 떨었고⁠, 맨 뒷자리 유리창이 창틀 안에서 달그락거렸다⁠.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차에는 우리 둘 말고 읍내 장에 가는 할머니 넷이 타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나를 보자마자 아직 안 갔느냐고 물었고⁠, 서율을 보자마자 누구냐고 물었다⁠.

“⁠손님이에요⁠.⁠”

“⁠손님이 아직 있나⁠?⁠”

“⁠사흘 손님이에요⁠.⁠”

할머니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그중 하나가 장바구니를 무릎에 올려놓고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어허⁠, 어어허⁠. 서율의 등이 의자 등받이에서 떨어졌다⁠.

“⁠할매⁠, 그 노래 어디서 들으셨어요⁠?⁠”

“⁠우리 손녀가 맨날 튼다⁠. 드라마에 나온 기라⁠. 요새 젊은 아들이 다 이거 안 부르나⁠?⁠”

할머니는 몇 소절을 더 흥얼거리다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지 그만두었다⁠. 원래 가사가 없는 대목이었다⁠. 서율은 창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창밖으로 빨간 동그라미를 단 집들이 지나갔다⁠. 모래미를 벗어나서도 동그라미는 끝나지 않았다⁠. 남쪽 갯마을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동그라미가 우리 마을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노래예요⁠.⁠”

서율이 창에 이마를 댄 채 말했다⁠.

“⁠「⁠물 빠지는 소리⁠」 두 해 전에 드라마 삽입곡으로 냈어요⁠. 처음에 십일 초 동안 할머니 목소리가 나와요⁠. 가사 없이 흥얼거리는 거요⁠. 서른 해 전에 한 방송사가 찍은 바닷마을 다큐멘터리에서 땄어요⁠. 자료실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녔고⁠, 제가 그걸 받아서 잘랐어요⁠. 누군지 몰랐어요⁠.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곡 끝에 작자 미상이라고만 넣었어요⁠.⁠”

“⁠그게 히트를 쳤어요⁠?⁠”

“⁠네⁠. 그러고 나서 방송사가 소송을 걸었어요⁠. 자기네 영상을 허락 없이 썼다고요⁠. 할머니 걱정을 한 사람은 없었어요⁠. 저도 안 했어요⁠.⁠”

버스가 언덕 꼭대기에서 기침을 멈췄다⁠. 내리막에서 엔진 소리가 가라앉자 맨 뒷자리 유리 떨리는 소리만 남았다⁠.

“⁠그 뒤로 한 음도 못 썼어요⁠. 누우면 그 십일 초가 들려요⁠. 석 달 전에 이사님이 작업실로 찾아왔어요⁠. 드라마를 보다가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대요⁠. 주인이 살아 계신다고 했어요⁠. 할머니가 허락하시면 시행사가 방송사 소송을 정리해 주겠다고요⁠.⁠”

“⁠그래서 오셨어요⁠.⁠”

“⁠그래서 왔어요⁠.⁠”

나는 서율의 옆얼굴을 보았다⁠. 창에 닿은 이마 아래로 김이 서렸다가 지워졌다⁠. 장바구니를 든 할머니가 다시 흥얼거렸다⁠. 어어허⁠. 이번에는 서율이 돌아보지 않았다⁠.

*

요양원 삼 층 복도에서는 소독약과 미역국 냄새가 같이 났다⁠. 삼백사 호 문은 열려 있었고⁠, 할머니는 창가 침대에 앉아 요구르트 뚜껑을 이로 뜯고 있었다⁠.

“⁠늦었다⁠.⁠”

“⁠버스가 늦었어요⁠, 할머니⁠.⁠”

“⁠버스는 맨날 늦는다⁠. 니가 일찍 나오면 된다⁠.⁠”

할머니는 여든여덟이었고 어깨가 내 손바닥 둘을 합친 것만 했다⁠. 이 어깨로 마흔여덟 해 동안 손님 이불을 볕에 내다 걸었다⁠. 두 해 전 마루에서 넘어진 뒤로 왼쪽 다리를 끌었지만⁠, 말은 넘어지기 전과 똑같이 빨랐다⁠.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다 마시고 빈 통을 서율 쪽으로 내밀었다⁠. 서율이 이걸 받아 들었다⁠.

“⁠니가 그 소리 하는 아가씨가⁠?⁠”

서율이 빈 요구르트 통을 쥔 채 굳었다⁠.

“⁠만규가 그카더라⁠. 서울서 소리 하는 아가씨가 올 끼라고⁠. 키가 크고 코트를 얇게 입고 올 끼라고⁠. 니 코트 얇네⁠.⁠”

나는 할머니 침대 머리맡을 보았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홍시가 다섯 개 들어 있었다⁠. 껍질이 얇아서 비치는 속이 주황빛이었다⁠. 할머니는 홍시를 사 본 적이 없었다⁠. 모래미에는 감나무가 없었다⁠.

“⁠할머니⁠, 만규가 누구예요⁠?⁠”

“⁠시행사 이사 안 있나⁠. 니 모르나⁠?⁠”

“⁠아는데요⁠, 그 사람이 여기 왜 와요⁠?⁠”

“⁠달마다 온다⁠. 와서 홍시 놓고 간다⁠. 나는 홍시 안 좋아한다⁠. 간호사들 준다⁠.⁠”

서율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두 번 미끄러졌다⁠. 세 번째에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파도 소리가 깔렸다⁠. 자갈이 끌려 나가는 소리였다⁠. 이 위로 목소리가 얹혔다⁠.

어어허⁠, 어어허⁠.

할머니는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얼굴로 휴대전화를 보았다⁠. 두 번째 어어허에서 할머니의 오른손이 이불 위로 올라왔다⁠.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무언가를 쥐었다가 들었다 놓았다⁠. 그물을 털 때의 손이었다⁠. 그물을 들어 멸치를 털고⁠, 그물을 놓고⁠, 다시 들었다⁠. 할머니의 손이 노래에 맞춰 세 번 그물을 털었다⁠. 십일 초가 지나고 드럼과 피아노가 들어오자 손이 멈췄다⁠.

“⁠그거 내 소리다⁠.⁠”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끄라는 손짓을 했다⁠. 서율이 껐다⁠. 방 안이 조용해지자 복도 끝 식당에서 숟가락이 식판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멸치 털 때다⁠. 텔레비 사람들이 와서 찍어 갔다⁠. 그날 니 할아버지 배가 사흘째 안 들어왔다⁠. 노래라도 안 하면 손이 안 움직이더라⁠. 그래서 했다⁠.⁠”

할머니가 서율을 보았다⁠. 서율은 요구르트 통을 아직도 쥐고 있었다⁠. 플라스틱이 손안에서 우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 이 사람이 그 소리를 허락 없이⁠…⁠”

“⁠안다⁠. 만규가 다 말했다⁠.⁠”

할머니는 이 말만 하고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를 낼 줄 알았다⁠. 할머니는 화를 내지 않았고⁠, 대신 나에게 홍시 하나를 집어 주며 저 아가씨 먹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침대 밑으로 손을 뻗었다⁠. 왼쪽 다리를 끌며 몸을 숙이는 바람에 침대 난간이 삐걱 울었고⁠, 나는 할머니 어깨를 붙잡았다⁠. 할머니는 내 손을 뿌리치고 보따리 하나를 끌어냈다⁠. 꽃무늬 보자기의 네 귀가 맞춰 묶여 있었다⁠. 묶은 매듭이 단단해서 할머니가 매듭을 푸는 데 한참 걸렸다⁠. 안에서 나온 건 틀니 통⁠, 녹슨 망치 하나⁠, 털실 양말 두 켤레⁠, 그리고 뚜껑도 안 딴 요구르트 열두 개였다⁠.

“⁠요구르트는 왜 모으셨어요⁠?⁠”

“⁠집에 가서 끝순이 줄라꼬⁠.⁠”

서율이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떨렸는데⁠, 웃음을 참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이 어깨를 망치 자루로 톡 쳤다⁠.

“⁠웃지 마라⁠. 여 요구르트가 하루 하나다⁠. 열두 날 굶은 기다⁠.⁠”

“⁠할머니⁠, 굶으신 거 아니잖아요⁠.⁠”

“⁠내 입에는 굶은 기다⁠. 미르야⁠, 니 언제 데리러 오노⁠?⁠”

나는 대답을 미뤘다⁠. 지난달에도 이 전달에도 나는 봄에 오겠다고 했다⁠. 봄에는 마루가 덜 차고 축대 밑 물도 순해진다고⁠. 할머니는 이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끄덕이지 않았다⁠.

“⁠봄에 집 없다 카더라⁠. 만규가 그카더라⁠.⁠”

“⁠끝방 창이 깨졌어요⁠. 어제요⁠. 지금 가시면 추워요⁠.⁠”

“⁠창이 깨지면 김 발 치면 된다⁠.⁠”

“⁠끝순 할머니가 벌써 치셨어요⁠.⁠”

“⁠그라믄 됐네⁠.⁠”

할머니가 보따리를 도로 묶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가 굵어서 보자기 귀가 자꾸 미끄러졌다⁠. 나는 이 손을 대신 잡아 매듭을 지어 주려다⁠, 할머니가 내 손등을 철썩 때리는 바람에 손을 뺐다⁠. 손등이 화끈했다⁠. 여든여덟 살 손이 그렇게 맵다는 걸 나는 이날 처음 알았다⁠.

“⁠내 짐은 내가 싼다⁠. 니는 날짜만 가지고 온나⁠.⁠”

*

진만규는 열한 시에 왔다⁠.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먼저 들렸다⁠. 요양원 복도는 고무 바닥이라 구두 소리가 잘 나지 않는데⁠, 진만규는 뒤꿈치부터 딛는 사람이라 한 걸음마다 둔하게 쿵 소리가 났다⁠. 손에 홍시 바구니가 하나 더 들려 있었다⁠. 진만규는 문 앞에서 나와 서율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할머님⁠, 진만규입니다⁠.⁠”

“⁠만규 왔나⁠? 또 홍시가⁠?⁠”

“⁠드실 만한 게 이것밖에 생각이 안 나서요⁠.⁠”

“⁠나는 홍시 안 묵는다 캤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데리고 요양원 뒤뜰로 나갔다⁠. 뜰에는 동백나무 세 그루와 벤치 하나가 있었다⁠. 동백은 아직 꽃을 안 달았고⁠, 벤치 밑에 누가 버린 휠체어 발판 하나가 녹슬어 있었다⁠. 진만규는 벤치에 앉지 않았다⁠. 나도 앉지 않았다⁠.

“⁠할머니한테 무슨 얘기를 하셨어요⁠?⁠”

“⁠있는 그대로요⁠. 할머님 목소리가 서울 노래에 들어갔고⁠, 그 노래가 소송에 걸렸고⁠, 할머님이 허락하시면 소송이 풀린다고요⁠.⁠”

“⁠그 소송 풀어서 이사님이 얻는 게 뭔데요⁠?⁠”

“⁠할머님 목소리요⁠.⁠”

진만규는 이 말을 할 때 동백나무를 보았다⁠.

“⁠리조트 로비에 그 소리를 틀 겁니다⁠. 문 여는 날 첫 손님이 들어올 때요⁠. 서른 해 전 다큐멘터리 영상 말고⁠, 지금 할머님 목소리로요⁠. 할머님 허락을 받아서⁠, 할머님 이름을 걸고요⁠.⁠”

“⁠마을을 다 허물고 그 자리에 우리 할머니 노래를 틀겠다고요⁠?⁠”

“⁠마을은 못 남습니다⁠. 노래는 남길 수 있습니다⁠.⁠”

“⁠그걸 왜 이사님이 정해요⁠?⁠”

진만규가 나를 보았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첫날 마루에서처럼 숨을 안 쉬고 말했다⁠.

“⁠모래미 방파제가 이백십 미터입니다⁠. 제가 그중 사십 미터를 쌓았습니다⁠. 스물넷 겨울에요⁠. 그해 일월에 같이 돌을 나르던 형님 하나가 테트라포드 사이로 떨어졌습니다⁠. 물이 빠질 때 떨어져서 사흘 뒤에 남쪽 갯마을 앞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그 뒤로 숙소에서 못 잤습니다⁠. 공사판 숙소가 바다 바로 옆이었고⁠, 밤새 물이 빠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할머님이 저를 데려가서 끝방에 눕혔습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빠져나가는 소리를 세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안 자니까 마루에 앉아서 그 노래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겨울 석 달을 끝방에서 잤습니다⁠. 세 번째 널은 첫날 밤에 밟았고요⁠.⁠”

동백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마른 잎이 서로 비벼지는 소리가 났다⁠. 이 사람은 넥타이를 손가락으로 한 번 고쳐 맸다⁠.

“⁠곽미르 씨⁠, 지난여름 태풍 때 잠자리 축대 위로 물이 넘어온 거 아시죠⁠. 마루 밑까지 들어왔습니다⁠. 할머님이 그 집에서 겨울을 나시면 돌아가십니다⁠. 저는 그 꼴을 그 바다에서 한 번 더 못 봅니다⁠.⁠”

“⁠그래서 집을 허물어요⁠?⁠”

“⁠그래서 할머님을 옮깁니다⁠.⁠”

이 말은 앞의 말들과 다르게 짧았다⁠. 나는 이 짧음을 알아들었다⁠.

“⁠어디로요⁠?⁠”

“⁠다음 주 화요일에 부산 요양병원으로 모십니다⁠. 바다 안 보이는 일인실입니다⁠. 시행사 이주 지원으로 드는 비용이고⁠, 보호자 동의는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어 하세요⁠. 침대 밑에 짐을 싸 두셨어요⁠.⁠”

“⁠압니다⁠. 그 보따리는 석 달째 거기 있습니다⁠. 요구르트는 간호사들이 하루에 하나씩 몰래 더 넣어 드리고요⁠. 할머님이 세어 보시고 안 맞으면 화를 내셔서요⁠.⁠”

나는 이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세는 줄도⁠, 간호사들이 이걸 맞춰 주는 줄도 나는 몰랐다⁠. 이 남자는 달마다 와서 이걸 보고 갔다⁠.

“⁠화요일 전에 제가 모시고 갈 거예요⁠.⁠”

“⁠곽미르 씨는 손녀십니다⁠. 요양원은 보호자 말을 듣습니다⁠.⁠”

“⁠보호자가 누군데요⁠?⁠”

진만규가 대답 대신 내 뒤를 보았다⁠.

요양원 뒷문이 열려 있었다⁠. 문간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한 손에 할머니 겨울 내복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 문고리를 쥔 채⁠. 부산에서 첫차를 타고 온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게 더 나빴다⁠. 아버지는 뜰로 내려와 진만규 옆에 섰다⁠. 비닐봉지가 무릎에 부딪쳐 바스락거렸다⁠.

“⁠내가 하자 캤다⁠, 미르야⁠.⁠”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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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차승객2026.09.26· 3화

    손님이 녹음기로 뭘 녹음하는 건지 3화를 보고도 잘 모르겠어요. 바닷소리인가요?

    • 진해솔작가2026.09.27

      바닷소리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요. 3화 제목이 그 힌트입니다.

그거 내 소리다 · 바닷가 게스트하우스의 마지막 손님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