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39자) · 소랑 · 1월 15일
목록의 쓸모
파도가 닿는 곳까지 · 진해솔
일월 칠일에 물길 프로덕션 촬영팀 넷이 물때의 방 세 개를 채웠다.
넷은 짐이 많았다. 삼각대 가방이 여섯, 조명 케이스가 넷, 은색 하드케이스는 셀 수가 없었다. 이 층 복도가 한순간에 공항 수하물 벨트처럼 변했고, 은결은 제 방문을 열 때마다 몸을 옆으로 돌려 케이스 사이를 빠져나와야 했다. 한도경은 읍내 모텔에 묵는다고 했다. 사장님 댁은 우리 애들이 쓰고, 나는 불편하게 해 드리면 안 되니까요. 소랑은 그 말이 친절인지 거리 두기인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촬영감독은 코를 골았다. 첫날 밤 벽 너머로 그 소리가 올라오자 은결이 거실로 내려와 진지한 얼굴로 녹음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소랑이 그건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앞으로 삼 주 동안 매일 날 소리라고 하자, 은결은 그래서 더 받아 두고 싶다고 했다. 둘은 거실 바닥에 엎드려 웃었다. 웃음소리가 이 층까지 올라갔는지 코 고는 소리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됐다.
윤나래만 달랐다. 아침마다 제일 먼저 일어나서 칠판 앞에 서 있었다. 규칙 세 줄을 읽고, 목록을 끝까지 읽고, 누가 보기 전에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소랑이 커피를 건네면 두 손으로 받았고, 두 번에 한 번은 고맙다는 말 뒤에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삼켰다.
사흘째 아침에 윤나래가 칠판의 세 번째 규칙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받은 것은 먼저 들려준다.
“사장님, 이거 안 들려주면 어떻게 돼요?”
“그럼 목록에 못 올려요. 은결 씨가 그렇게 정했어요.”
윤나래는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김이 안경에 서렸다가 걷혔다. 한참 뒤에 아주 작게, 십이월 포구에서 받은 할머니 숨이 아직 자기 카드에 있다고 했다. 대표님이 지우지 말라고 했다고. 소랑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윤나래는 컵을 내려놓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삐걱거리는 소리가 두 칸마다 한 번씩 났다.
*
목록은 일월 둘째 주에 열아홉 줄이 됐다.
소랑은 그 열아홉 줄을 공책에 옮겨 적다가 셈을 하나 했다. 사람이 내는 소리가 열둘이었고, 그 열둘 가운데 여덟이 예순 넘은 사람이었으며, 그 여덟 가운데 여섯이 여자였다. 이진리에 예순 넘은 여자는 스물셋이었다. 나머지 열일곱은 이제 일을 안 한다. 일을 안 하면 소리가 안 난다.
“공장 헐리는 것보다 그게 빨라요.”
소랑이 공책을 은결 쪽으로 밀었다. 은결은 숫자를 오래 봤다.
“그럼 이름을 지금 받아야 해요. 나중에 받으려면 여쭤볼 데가 없어요.”
그 말을 하고 나서 은결은 컵을 내려놓는 손을 한 번 떨었다. 여쭤볼 데가 없어진 이름 하나를 은결이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소랑은 크리스마스 이후로 짐작하고 있었다.
*
일월 구일 새벽, 소랑은 포구에서 만식호가 촬영되는 것을 봤다.
물길 카메라 두 대가 선창에 서 있었고, 배만식이 엔진 덮개를 열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통통통통, 그 소리가 선창 콘크리트를 타고 소랑의 장화 밑창으로 올라왔다. 어릴 때 방바닥에 귀를 대고 이 소리가 커지는 걸 기다리던 밤들이 발바닥에서 먼저 살아났다. 한도경이 만식의 어깨를 두드리며 흰 봉투를 조끼 안주머니에 꽂아 주고 있었다.
한도경이 선창 끝에 선 소랑을 먼저 봤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카메라 쪽으로 턱짓을 했다.
“사장님, 아버님 배 소리 좋네요. 이게 마지막 겨울이라는 게 화면에 딱 나와요. 통통통통. 이거 하나면 투자설명회 끝납니다.”
“이름은요?”
“아버님이 빼 달라시던데요. 저는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렸어요. 그게 동의죠.”
한도경은 동의라는 말을 두 번 굴려 발음했다. 소랑은 그 말이 아버지 조끼 속 봉투와 같은 무게로 들렸다. 카메라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소랑은 그 앞을 가로질러 걸어 나왔고, 등 뒤에서 촬영감독이 컷, 하고 짧게 말했다.
저녁에 소랑은 아버지 집에 갔다. 물때에서 언덕 하나 너머,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바다민박 간판이 붙어 있던 그 집이었다. 벽에 걸린 어머니 사진 옆에 달력이 삼 년째 그대로 걸려 있었고, 방 안에는 김치 냄새와 등유 냄새와 오래된 담배 냄새가 층층이 앉아 있었다.
“아빠, 한도경한테 이름 줬어요?”
만식이 소주잔을 채우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안 줬다. 소리만 줬다. 이십만 원 주더라.”
“저는 공짜로 달라고 했는데 안 주고요?”
“니는 이름을 달라 캤다 아이가.”
만식이 잔을 비웠다.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였다.
“저 사람은 방송에 예쁘게 내 준다 카더라. 사라지는 마을의 마지막 겨울. 투자하는 사람들이 그거 보고 돈 넣는다. 돈 들어와야 선착장 새로 하고, 엔진 바꾸고, 젊은 아들이 돌아온다. 니 목록은 뭐꼬. 이 사람 없어지고 저 사람 없어지고. 그거 보고 누가 여기 오겠노.”
“이름이 있으면 그 사람이 여기 살았다는 게 남잖아요.”
“살았다는 기 무슨 소용이고. 사는 기 중요하지.”
만식이 어머니 사진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니 엄마 민박도 니 목록에 올리지? 바다민박, 몇 년부터 몇 년까지, 배정순. 그라믄 좋겠나?”
소랑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에서 뭔가가 올라왔다가 이 사이에서 멈췄다. 삼 년 동안 이럴 때마다 소랑은 농담을 했다. 오늘은 농담이 안 나왔다.
“아빠는 이름을 안 주고 팔았잖아요. 저는 이름을 받고 안 팔 거예요. 누가 부고를 쓰는지는 그걸로 봐요.”
만식이 잔을 상에 탁 내려놓았다. 소주가 넘쳐서 장판에 번졌다.
“니 이 동네 떠날 때도 그리 말했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다꼬. 이제 와서 뭘 남긴다꼬.”
소랑은 일어나서 신발을 신었다. 현관문을 닫을 때 안에서 라디오가 켜졌다. 트로트가 반쯤 끊겨 나왔다. 언덕을 넘는 동안 소랑은 장화 속 발가락이 얼어서 제 것 같지 않았는데, 그 감각이 오히려 나았다. 얼굴이 뜨거운 것보다는 발이 차가운 게 나았다. 언덕 꼭대기에서 뒤를 돌아보자 아버지 집 창에 불이 하나 켜져 있었다. 어머니가 있을 때는 민박 간판 불까지 두 개였다. 소랑은 그 창을 한참 보다가, 물때 현관 등이 켜진 쪽으로 내려갔다.
*
일월 십이일, 소랑은 버스를 타고 사십 분을 가서 해평군청 해양관광과 문을 열었다.
정비사업 담당은 민서하 주무관이었다. 스물여섯이라고 했다. 친절했고, 말하면서 모니터를 보는 사람이었다. 소랑이 소리 목록을 기록물로 남길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민서하는 자판을 두드려 화면을 돌려 보였다. 향토문화유산 지정 요건, 제작 또는 형성된 지 백 년 이상.
“백 년이요? 소리는 백 년 전에 녹음을 못 했는데요.”
“그러네요. 제도가 물건 기준이라서요. 죄송해요.”
“그럼 하나만 여쭤볼게요. 제빙 공장 헐기 전에 하루만 돌려 주실 수 있어요? 겨울 소리밖에 못 받았어요. 여름에 나는 소리는 달라요.”
민서하가 처음으로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과장님이 안 된다고 하실 거예요. 철거 전 가동은 안전 문제가 있어서요. 그리고 사장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 공장 헐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지붕이 작년 태풍에 반 내려앉았어요. 사람 다쳐요.”
“맞아요. 헐어야죠. 헐기 전에 하루만요.”
“안 돼요.”
소랑이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주무관님, 그 공장 안에 들어가 보셨어요?”
민서하의 손이 자판 위에서 멈췄다. 한참 뒤에 대답이 왔다.
“저희 할머니가 거기서 이십 년 얼음을 깨셨어요. 어릴 때 따라가서 얼음 조각 주워 먹었어요.”
“그 소리 기억나세요?”
민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랑의 연락처를 메모지에 받아 모니터 옆에 붙였다. 약속은 없었다. 약속이 없다는 것까지 소랑은 알아들었다.
군청 앞 정류장에서 버스는 사십 분에 한 대였다. 소랑은 벤치에 앉아 아까 본 화면을 다시 떠올렸다. 물건은 오래될수록 귀해지는데 소리는 반대라서, 지금 나는 소리가 제일 귀하고 안 나게 되는 순간 이미 없다. 백 년을 기다릴 수 없는 것은 지금 받아야 한다. 소랑은 그 문장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으면서 손가락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제 생각을 이렇게 빨리 적어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
소랑이 군청에서 돌아온 날 밤, 은결이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난로 앞 상 위에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오색 깃발을 두른 목선 앞에 젊은 남자가 서서 이를 다 드러내고 웃는 사진이었다. 뒷면에 볼펜으로 1987. 4. 만식호 진수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님 댁에 다녀왔어요. 세 번째로 여쭤보러요.”
“혼자요? 아빠가 뭐라셨어요?”
“이름은 안 된대요. 두 번 그러셨어요. 세 번째에는 대답을 바꾸셨어요. 이름은 안 되는데, 받은 걸 한번 들려줘 보라고요.”
은결이 사진을 소랑 쪽으로 밀었다.
“제가 헤드폰을 씌워 드렸어요. 통통 소리를 삼 분 들으시더니 이 사진을 꺼내 주셨어요. 소랑이 갖다주라고요. 이 배 처음 띄운 날 소랑 씨 어머님이 찍으셨대요.”
소랑은 사진을 집어 들었다. 모서리가 닳아 손끝에 부드럽게 걸렸다. 사진 속 아버지는 지금 소랑보다 어렸다. 그 뒤로 뱃전에 기대 선 여자의 치맛자락이 반쯤 잘려 있었다.
“이름은 안 주고 사진은 줬네요.”
“네. 그래서 목록에는 아직 안 올렸어요.”
소랑은 사진을 칠판 옆 못에 걸었다. 목록 바깥, 목록 바로 옆자리였다.
*
일월 십오일 저녁, 소랑은 목록을 처음부터 다시 읽다가 세 줄에서 멈췄다.
슈퍼 아줌마 냉장고 문. 우체부 박 씨 오토바이. 이장님 방송 전 기침.
“은결 씨, 이거 고쳐야 돼요.”
“뭐를요?”
“아줌마라고 적으면 이름이 아니에요. 박 씨도 이름이 아니고요.”
은결이 칠판 앞에 섰다. 분필 가루가 소매에 묻었다. 두 사람은 그날 밤 목록 열아홉 줄 가운데 일곱 줄을 고쳤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셋이었고, 셋 다 소랑이 서른세 해를 알아 온 사람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소랑은 슈퍼에 가서 계산대 앞에 섰다.
“아줌마, 성함이 정자 해자 맞죠?”
“와, 갑자기?”
“목록에 적으려고요. 냉장고 문 소리 옆에요.”
슈퍼 아줌마가 비닐봉지를 접다가 멈췄다. 한참 소랑을 보다가 봉지를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내 이름 누가 불러 준 거, 이십 년 만이다. 시어른 돌아가시고 나서는 다들 슈퍼 아지매라 캤다.”
“정해자 씨.”
“아이고, 하지 마라. 닭살 돋는다.”
정해자 씨는 그렇게 말하고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었다가 닫았다. 여름에만 나는 소리라더니 겨울에도 났다. 문 고무가 낡아서 쩍 하고 떨어지는 소리였다. 소랑은 그 소리를 들으며 목록 열아홉 줄 가운데 이름이 붙은 줄을 셌다. 열셋이었다. 여섯 줄은 아직 이름이 없었고, 그 여섯 가운데 하나는 목록 밖에서 기다리는 만식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