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98자)

놓는 법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성재담

“⁠노광석 씨요⁠.⁠”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엄평구를 보았다⁠. 셔틀 정류장 형광등이 엄평구의 머리 위에서 깜빡였다⁠.

“⁠일하다 쓰러졌다고⁠, 구급대원이 닿기까지 삼십일 분이었다고⁠. 노동청 가서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엄평구는 화를 내지 않았다⁠. 차 열쇠를 손바닥에 쥐었다 폈다⁠.

“⁠증인 서는 건 자유예요⁠. 근데 지숙 씨⁠, 증인은 자기 이름 걸고 하는 거예요⁠. 사흘 된 사람 말하고⁠, 이 센터에서 몇 해씩 일한 사람 마흔다섯 명 말하고⁠. 초저녁에 휴게실에서 다들 고개 끄덕이는 거 봤잖아요⁠.⁠”

“⁠고개는 반장님이 끄덕이게 하셨죠⁠.⁠”

“⁠내일 저녁에 봬요⁠. 13번은 그대로예요⁠.⁠”

이 사람은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셔틀버스가 도착해 문을 열었고⁠, 나는 계단을 오르다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몸을 끌어 올렸다⁠. 버스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보았다⁠.

이날 저녁 출근해 사물함 앞에 섰을 때⁠, 사물함 줄 위에 「⁠작업 중 대화 금지⁠, 적발 시 다음 주 배정 제외⁠」라고 쓴 새 종이가 붙어 있었다⁠. 종이 귀퉁이에 센터장 도장이 빨갛게 찍혀 있었다⁠.

*

월요일 낮⁠, 나는 잠을 한 시간 자고 해미의 경차에 다시 탔다⁠. 고용노동부 지청 건물 삼층⁠, 근로감독관 사무실 앞 대기 의자에서 번호표를 뽑았다⁠. 칠십삼 번이었다⁠. 화면에 오십일 번이 떠 있었다⁠.

“⁠스물두 명이요⁠.⁠”

해미가 말했다⁠. 사흘째 같은 패딩을 입고 있었고⁠, 안주머니가 목장갑 모양으로 불룩했다⁠.

“⁠언니⁠, 저 의원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아빠 옆에 있으려면⁠.⁠”

“⁠그만두지 마요⁠.⁠”

“⁠언니는 빚 있으면서 증인 서잖아요⁠.⁠”

이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화면의 번호가 하나씩 올라갔다⁠. 옆자리 남자가 임금 체불 진정서를 무릎 위에서 세 번째 고쳐 쓰고 있었다⁠.

근로감독관은 마흔 중반의 여자였다⁠.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모니터를 한참 보더니 우리 쪽으로 돌렸다⁠. 회사가 낸 사고 보고였다⁠.

「⁠두 시 십오 분경 작업 중 쓰러진 근로자 발견⁠. 두 시 십칠 분 즉시 119 신고⁠. 지병 의심⁠.⁠」

“⁠두 시 십칠 분이요⁠?⁠”

내가 말했다⁠. 이 숫자는 내 휴대폰 화면에 떠 있던 숫자였다⁠. 사물함 앞에서 자물쇠를 두 번 틀리고 꺼낸 이 휴대폰⁠.

“⁠그건 제가 건 겁니다⁠. 사물함까지 뛰어가서요⁠. 회사가 건 게 아닙니다⁠.⁠”

“⁠회사 쪽에서는 현장에 있던 직원이 신고했다고만 적었어요⁠. 직원이 지숙 씨면 틀린 말은 아니죠⁠.⁠”

감독관이 안경을 내려 썼다⁠.

“⁠문제는 쓰러진 시각이에요⁠. 두 시 십오 분에 쓰러져 이 분 만에 신고했으면 회사 대응은 빠른 편이에요⁠. 두 시 칠 분이면 십 분 동안 아무도 밖에 연락을 안 한 거고요⁠. 그 시각을 본 사람이 선생님 말고 또 있습니까⁠?⁠”

“⁠가슴을 누른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와서 말해 줄 수 있습니까⁠?⁠”

해미가 나를 보았다⁠. 나는 냉동 도크 분류대 앞에 서 있던 하얀 손가락을 생각했다⁠. 해미는 체류 연장 이야기를 휴게실에서 딱 한 번 했다⁠. 삼 주 뒤라고⁠.

“⁠물어보겠습니다⁠.⁠”

“⁠사설 구급차에 봉투 건넨 건 지숙 씨 혼자 봤고요⁠?⁠”

“⁠네⁠.⁠”

감독관은 이것을 적고 펜을 내려놓았다⁠.

“⁠한 사람이 본 건 한 사람이 본 거예요⁠. 회사는 마흔다섯 명을 데려올 거고요⁠.⁠”

*

지청 주차장에서 해미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후 한 시 오 분이었다⁠. 이 사람은 화면을 보고 잠깐 망설이다 스피커를 켜서 운전대 위에 올려놓았다⁠.

“⁠노해미 씨⁠, 엄평구입니다⁠. 정오가 지났네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병원 복도에서 해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던 이 목소리였다⁠.

“⁠도장 안 찍으셨으니까 위로금 건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회사도 절차대로 가야죠⁠. 그리고 해미 씨⁠, 혹시 아버님 채용 때 건강검진 문진표 보신 적 있어요⁠?⁠”

“⁠그게 왜요⁠?⁠”

“⁠보시면 아실 거예요⁠. 산재 신청하시면 공단에서도 그걸 볼 거고요⁠. 나중에 놀라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몸조리 잘하세요⁠.⁠”

전화가 끊겼다⁠. 해미는 운전대를 두 손으로 잡고 앞 유리를 보았다⁠. 와이퍼 끝에 붙은 낙엽 한 장이 바람에 떨었다⁠.

“⁠삼천이 날아갔어요⁠. 중환자실 하루에 얼만지 알아요⁠? 저 알아요⁠. 제가 의원에서 그런 거 계산해 드리는 사람이에요⁠.⁠”

해미가 숨을 끊어 쉬었다⁠.

“⁠문진표가 뭔데요⁠. 아빠가 뭘 숨겼는데요⁠. 언니는 알아요⁠?⁠”

“⁠몰라요⁠.⁠”

나는 정말 몰랐다⁠. 광석 씨는 사흘 동안 나에게 상자 드는 법만 가르쳤다⁠. 왼팔을 두어 번 주무르던 손⁠, 열한 시에 도크 끝에서 돌아오던 하얀 얼굴⁠. 내가 아는 것은 이 두 장면뿐이었다⁠. 해미가 시동을 걸었다⁠. 차가 주차장 턱을 넘을 때 내 허리가 덜컹 울렸다⁠.

*

이날 밤 작업장은 레일 소리만 났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반장이 도크 사이를 오가며 입을 여는 사람을 찾았다⁠. 대학생 둘은 손짓으로 상자를 넘겼고⁠, 쉰 넘은 형님들은 담배를 못 피워 입술만 달싹였다⁠.

공삼분 언니만 노래를 불렀다⁠. 지게차 운전석에서⁠, 반장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말을 하지 말라 하네⁠, 말을 하지 말라 하네⁠. 노래는 말이 아이다⁠, 노래는 가락이다⁠.⁠”

“⁠공 기사님⁠.⁠”

“⁠대화 금지라 써 놨지⁠, 노래 금지라 썼나⁠. 반장님 글 읽을 줄 알제⁠?⁠”

반장이 종이를 다시 보러 사물함 쪽으로 갔다⁠. 대학생 하나가 상자 뒤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었다⁠. 반장은 볼펜을 들고 돌아와 종이 아래에 「⁠노래 포함⁠」이라고 한 줄을 덧붙였다⁠. 공삼분 언니는 이것을 지게차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입을 다문 채 콧소리로 같은 가락을 이어 갔다⁠. 흠흠 흠흐흠⁠. 반장이 이 앞에 섰다가⁠, 콧소리를 막는 문장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13번 레일 끝⁠, 레일이 다른 레일과 합쳐지는 굽은 자리에 이 대학생이 서 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써서 다들 안경이라고 불렀다⁠. 상자 하나가 레일 위로 내려왔다⁠. 「⁠취급 주의 5kg⁠」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레일 롤러 위에서 상자가 우그러지는 소리를 냈다⁠. 안에 든 것은 무쇠 아령 세트였다⁠. 나는 이 상자를 내리면서 이것이 이십오 킬로그램이 넘는다는 것을 손으로 알았다⁠. 스티커가 잘못 붙어 있었다⁠.

안경이 굽은 자리에서 이 상자를 한 손으로 밀었다⁠. 오 킬로그램짜리를 미는 힘이었다⁠. 상자가 꿈쩍하지 않고 롤러를 따라 미끄러졌고⁠, 안경의 손등이 상자와 레일 가드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레일은 계속 돌았다⁠. 안경이 소리를 질렀는데⁠, 이 소리가 대화 금지인 작업장에서 처음 나온 사람 목소리였다⁠.

나는 레일 옆을 달렸다⁠. 왼다리가 끌렸다⁠. 빨간 단추는 레일 기둥에 붙어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이것을 내려쳤다⁠.

레일이 섰다⁠.

서른두 개 도크의 레일이 연결된 줄 전체가 한 번에 숨을 멈췄다⁠. 바닥의 떨림이 발바닥에서 빠져나갔다⁠. 지게차 후진 경보음도 테이프 뜯는 소리도 멈추고⁠, 천장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안경의 숨소리만 남았다⁠. 마흔다섯 명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상자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안경의 손을 빼냈다⁠. 손등의 살갗이 롤러 무늬대로 벗겨져 있었고⁠, 손가락은 다 움직였다⁠.

*

엄평구는 사 분 만에 내려왔다⁠. 이 사 분 동안 레일은 서 있었다⁠.

“⁠누가 눌렀어요⁠?⁠”

“⁠접니다⁠.⁠”

엄평구는 내 앞에 섰다⁠. 마흔다섯 명이 도크마다 서서 우리를 보았다⁠. 공삼분 언니가 지게차 시동을 껐다⁠.

“⁠경위서 쓰세요⁠. 지금 사 분에 밀린 물량이 천이백 상자예요⁠. 그건 13번 조가 메우고요⁠. 13번 조는 지숙 씨 혼자죠⁠.⁠”

“⁠사람 손이 끼었습니다⁠.⁠”

“⁠손 빼고 다시 돌리면 됐어요⁠. 레일 세우는 건 반장이 판단해요⁠. 지숙 씨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반장님은 사물함 앞에서 종이 읽고 계셨습니다⁠.⁠”

누군가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엄평구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경위서 안 쓰면 오늘 일당은 없어요⁠. 그리고 내일 배정은 파견 회사가 정해요⁠.⁠”

나는 대답 대신 돌아서서 안경이 서 있던 굽은 자리에 섰다⁠. 거기 떨어져 있던 아령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마흔다섯 명을 향해 말했다⁠. 대화 금지인 작업장에서⁠, 아주 크게⁠.

“⁠역도장에 처음 오면 바벨 드는 법보다 먼저 배우는 게 있어요⁠. 놓는 법이요⁠.⁠”

나는 아령 상자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이것을 배에 붙여 들어 올렸다⁠.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들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놔요⁠. 앞으로 던지고⁠, 발은 뒤로 빼고요⁠.⁠”

나는 상자를 앞으로 밀어 던지며 두 발을 뒤로 뺐다⁠. 상자가 바닥에 떨어져 귀퉁이가 찢어졌고⁠, 아령 하나가 굴러 나와 레일 기둥에 부딪혀 쨍 하고 울렸다⁠.

“⁠상자는 깨져도 돼요⁠. 테이프로 붙이면 돼요⁠. 허리는 안 붙어요⁠. 손도 안 붙고요⁠. 저는 사 년 전에 그걸 안 놔서 지금 여기 있어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게차 위에서 공삼분 언니가 손뼉을 쳤다⁠.

“⁠국가대표 강습 시작했다⁠! 수강료는 공짜다⁠!⁠”

옆 도크의 쉰 넘은 형님 하나가 발밑의 베개 상자를 들어 올리더니 앞으로 던지고 발을 뺐다⁠. 베개 상자가 바닥에서 통 튀어 올라 반장 발등에 떨어졌다⁠. 웃음이 터졌다⁠. 대학생 하나가 휴지 상자를 던졌다⁠. 다른 사람이 수건 상자를 던졌다⁠. 서른두 개 도크에서 가벼운 상자들이 하나씩 앞으로 날아가 떨어졌고⁠, 사람들이 발을 뒤로 뺐다⁠.

“⁠상자 깨지면 변상이에요⁠.⁠”

엄평구가 말했다⁠. 엄평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높았다⁠.

“⁠제 일당에서 까세요⁠. 어차피 오늘 없다면서요⁠.⁠”

엄평구는 나를 한참 보다가 반장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반장이 빨간 단추 옆의 열쇠를 돌렸다⁠. 레일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바닥의 떨림이 발바닥으로 돌아왔다⁠. 안경은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쥔 채 의무실로 걸어가다 돌아서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반장이 13번 앞을 지나가며 내 귀에만 들리게 말했다⁠.

“⁠너 때문에 나도 경위서야⁠. 레일 선 동안 사물함 앞에 있었다고⁠.⁠”

“⁠사실이잖아요⁠.⁠”

“⁠사실이 다 쓸모 있는 줄 알아⁠?⁠”

이 사람은 초시계를 눌렀다⁠. 나는 다음 상자 앞에서 먼지를 쓸었다⁠. 손바닥이 아까보다 오래 떨렸다⁠.

*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셔틀 정류장은 아직 깜깜했다⁠. 일당 없는 밤이 끝났다⁠. 나는 사천칠백에서 십오만 원이 줄지 않은 숫자를 머릿속에 다시 썼다⁠.

탄이 정류장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냉동 도크에서 나온 탄의 손가락 끝에 흰 반창고가 세 개 감겨 있었다⁠. 탄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기둥에서 몸을 뗐다⁠.

“⁠누나⁠.⁠”

입김이 탄의 입 앞에서 하얗게 뭉쳤다⁠.

“⁠두 시 칠 분이에요⁠. 저 셌어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쓰러지는 소리 났을 때 13번 위에 있는 전광판 시계 봤어요⁠. 두 시 칠 분⁠. 그리고 구급대원 올 때까지 일흔여섯 번 돌았어요⁠. 서른 번 누르고 두 번 불고⁠, 그게 한 번이에요⁠. 대차 위에서도 눌렀어요⁠. 휴게실 바닥에서도요⁠. 한 번도 안 놓쳤어요⁠.⁠”

이 사람은 반창고 감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폈다⁠. 일흔여섯을 세는 손 같았다⁠.

“⁠감독관한테 그 말 해 줄 수 있어⁠?⁠”

탄은 정류장 너머 깜깜한 도로를 보았다⁠. 셔틀버스 불빛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말할 수 있어요⁠. 근데 누나⁠, 저 말하면요⁠.⁠”

탄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저 베트남 가요⁠.⁠”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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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귤까는중2026.10.26· 3화

    놓는 법이라는 제목이 바벨 놓는 얘기인가요, 다른 뜻인가요?

    • 성재담작가2026.10.26

      둘 다예요. 바벨은 잘 놓아야 다치지 않는데, 주인공은 다른 걸 놓는 법을 몰라서 다칩니다.

놓는 법 ·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