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35자)

두 사람 몫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성재담

“⁠두 시 칠 분이었어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어깨 위에서 엄평구의 손가락이 멈췄다⁠.

“⁠컨테이너 안에서 고양이 모래 포대를 꺼내시다가 쓰러지셨어요⁠. 일하시던 중이었어요⁠. 구급대원이 아버님 몸에 손을 댄 건 두 시 삼십팔 분이었고요⁠.⁠”

해미가 두 시 칠 분⁠, 두 시 삼십팔 분 하고 숫자를 입속으로 따라 했다⁠. 의원 근무복 위에 걸친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가 다시 반쯤 내렸다⁠.

“⁠삼십일 분이요⁠?⁠”

“⁠휴게실로 옮기느라고요⁠.⁠”

엄평구의 손이 내 어깨에서 떨어졌다⁠. 엄평구는 해미 쪽으로 반걸음 다가서며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경황이 없으셨을 거예요⁠. 지숙 씨가 출근한 지 사흘째라서 시간 감이 아직 없어요⁠. 정확한 시간은 저희가 확인해서 알려 드릴게요⁠. 아버님 치료비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사흘이면 시계는 볼 줄 알아요⁠.⁠”

내가 말했다⁠. 사무실에 있던 관리팀 직원 둘이 고개를 들었다⁠. 해미는 엄평구를 보지 않고 나를 보았다⁠.

“⁠병원 같이 가 주실 수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그 시간을 물어보셨는데 저는 아무것도 몰라서⁠.⁠”

*

수원의 대학병원 중환자실 앞 복도는 소독약 냄새와 누군가 데워 먹은 편의점 김밥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셔틀 대신 해미의 경차 조수석에 앉아 왔다⁠.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서 좌석을 끝까지 젖혔다⁠.

담당 의사는 젊었고 말이 빨랐다⁠. 심장이 멈춘 뒤 뇌에 피가 안 가는 시간이 길었다고⁠, 가슴 압박을 계속 받으신 건 다행인데 제세동이 늦었다고⁠, 깨어나실지 깨어나셔도 어디까지 돌아오실지 며칠은 봐야 한다고 했다⁠. 해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의 말을 중간에 받아 이었다⁠. 저산소성 손상⁠, 체온 조절 치료 같은 말을 의사보다 먼저 꺼냈다⁠. 동네 의원 간호조무사라고 했다⁠. 아는 말이 많아서 더 빨리 무너지는 얼굴이었다⁠.

의사가 가고 나서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목장갑 한 짝을 꺼냈다⁠. 컨테이너 바닥에서 주운 장갑이었다⁠. 엄지손가락 자리에 구멍이 나 있었고⁠, 이 구멍 둘레를 누가 회색 실로 감쳐 놓았다⁠.

해미는 장갑을 받아 들고 한참 엄지 자리를 만졌다⁠.

“⁠아빠가 장갑을 안 버려요⁠. 구멍 나면 꿰매요⁠. 장갑 한 켤레에 천 원인데⁠.⁠”

해미는 장갑을 무릎 위에 펴 놓고 실밥을 하나하나 손톱으로 눌렀다⁠.

“⁠제 학자금이 이번 달에 끝나요⁠. 아빠가 그거 끝나면 고흥 간다고 했어요⁠. 문어 잡는다고⁠. 문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면서⁠.⁠”

나는 이 옆에 앉아 있었다⁠. 허리가 의자 등받이에 닿을 때마다 수술 자국이 쿡쿡 쑤셨다⁠. 할 말을 고르다가 고르지 못했다⁠. 해미가 장갑을 접어 패딩 안주머니에 넣었다⁠.

*

저녁 여섯 시 오십 분⁠, 레일이 돌기 십 분 전에 기봉 반장이 휴게실 컨테이너에 야간조를 모았다⁠. 마흔다섯 명이 들어가기엔 좁은 방이라 뒤쪽 사람들은 문밖에 서서 고개만 들이밀었다⁠. 히터에서 먼지 타는 냄새가 났다⁠.

“⁠어젯밤 일⁠, 밖에 나가서 말하지 마⁠. 기자든 노동청이든 전화 오면 사무실로 돌려⁠. 노광석 씨는 원래 지병이 있었고⁠, 출근할 때부터 안색이 안 좋았어⁠. 다들 봤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반장이 한 사람씩 얼굴을 짚어 가며 다시 물었다⁠. 쉰 넘은 형님 하나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얼굴이 누렜어⁠.⁠”

두 번째 사람도 끄덕였다⁠. 세 번째도⁠. 고개가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이 말이 사실이 되어 가는 소리가 났다⁠. 반장의 눈이 공삼분 언니에게 갔다⁠.

“⁠공 기사님⁠.⁠”

“⁠내는 지게차 위에 있어서 안색까지는 못 봤다⁠. 거기서 보면 사람이 다 정수리다⁠. 정수리 색깔은 다 똑같드라⁠.⁠”

대학생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가 반장의 눈길에 입을 막았다⁠. 반장은 다음으로 탄을 보았다⁠.

“⁠응우옌 반 탄 씨는 오늘부터 레일 끝 말고 냉동 도크 분류대⁠. 센터장님 지시⁠.⁠”

탄이 고개를 숙였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냉동 도크는 영하 20도로 맞춰진 창고 쪽 분류대였고⁠, 거기 서 있으면 장갑 두 겹을 껴도 손가락 끝이 하얘진다고 했다⁠.

“⁠반장님⁠.⁠”

내가 말했다⁠. 마흔다섯 명의 얼굴이 내 쪽으로 돌았다⁠.

“⁠열한 시에 아저씨가 도크 끝에서 반장님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반장님이 무전 올리고 고개 저으셨잖아요⁠.⁠”

반장은 초시계 버튼을 한 번 눌렀다 뗐다⁠. 이 작은 딸깍 소리가 히터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물 마시러 간다고 했어⁠. 그래서 레일 돌 때는 안 된다고 했지⁠. 됐어⁠? 다들 나가⁠. 일곱 시야⁠.⁠”

*

레일이 돌기 직전⁠, 반장이 13번 도크 앞에 나를 따로 세웠다⁠.

“⁠오늘부터 13번은 육지숙 씨 혼자⁠. 노광석 씨 몫까지⁠. 트럭 세 대⁠.⁠”

반장은 손목의 초시계를 내 눈앞에 들어 보였다⁠.

“⁠센터장님 지시야⁠. 국가대표니까 두 사람 몫 하실 거라고⁠.⁠”

뒤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대학생 알바 둘이었다⁠. 냉동 도크 쪽으로 걸어가던 탄이 고개만 돌렸다가 반장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걸었다⁠. 이 사람의 장갑 낀 두 손이 허벅지 옆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공삼분 언니가 지게차를 몰고 와 13번 앞에 빈 팔레트를 내려놓았다⁠. 운전석에서 반장 쪽은 보지도 않고 노래를 뽑았다⁠.

“⁠두 사람 몫을 한 사람이 지네⁠, 반장님 시계는 거꾸로 가네⁠. 쇳덩이야 쇳덩이야⁠, 니 허리는 니 허리다⁠.⁠”

“⁠공 기사님⁠, 무전 채널에서 노래하지 마세요⁠.⁠”

“⁠무전기 안 잡았다⁠. 내 목청이 커서 그렇다⁠.⁠”

나는 장갑을 벗고 맨 앞 상자의 등에서 먼지를 쓸었다⁠. 손바닥을 맞대 한 번 비비고 손뼉을 쳤다⁠. 반장이 초시계를 눌렀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십일 톤 트럭 한 대에는 상자가 천이백 개쯤 들어간다⁠. 13번 트럭은 무거운 것만 실어서 칠백 개 남짓이다⁠. 나는 이 칠백 개를 하나씩 배에 붙였다⁠. 무릎을 굽히고⁠, 숨을 가두고⁠, 엉덩이부터 밀어 올리고⁠, 돌면서 레일에 얹는다⁠. 발은 비틀지 않는다⁠. 몸통째 돈다⁠. 역도장에서 열여섯 해 동안 하던 일을 상자에 대고 했다⁠. 리듬이 붙자 손이 먼저 나갔다⁠. 생수⁠, 쌀⁠, 아령⁠, 고양이 모래⁠. 무게가 손바닥에 닿기도 전에 몸이 먼저 무게를 알았다⁠.

대학생 하나가 옆 도크에서 소리를 질렀다⁠.

“⁠국대⁠! 국대⁠!⁠”

다른 도크 사람들도 손을 멈추고 13번을 보았다⁠. 나는 이 소리가 싫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좋았다⁠. 은퇴하고 네 해 만에 처음으로 누가 내 들기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더 빨리 들었다⁠. 첫 트럭을 한 시간 사십 분에 비웠다⁠. 반장의 초시계를 내가 먼저 들여다보았다⁠.

새벽 세 시⁠, 두 번째 트럭의 반을 넘겼을 때 왼쪽 엉덩이에서 발목까지 찌르르한 것이 내려갔다⁠.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느낌을 안다⁠. 선발전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처음 느꼈던 이 저림이었다⁠. 컨테이너 구석에 등을 돌리고 서서 조끼 안주머니의 알약 두 개를 침으로 삼켰다⁠. 아무도 보지 못한 줄 알았다⁠. 왼발 엄지가 내 발가락 같지 않았다⁠.

세 시 반⁠, 탄이 냉동 도크 쪽에서 걸어와 13번 컨테이너 입구에 캔커피 하나를 놓고 갔다⁠. 자판기에서 막 뽑은 것이라 캔 둘레에서 김이 올랐다⁠. 탄의 장갑 끝으로 삐져나온 손가락이 밀랍처럼 하얬다⁠. 탄은 돌아서다 말고 컨테이너 안을 향해 말했다⁠.

“⁠누나⁠, 왼쪽 다리 끌어요⁠. 열세 걸음에 한 번씩요⁠. 처음엔 스무 걸음에 한 번이었어요⁠.⁠”

“⁠세고 있었어⁠?⁠”

“⁠저는 다 세요⁠. 버릇이에요⁠.⁠”

이 사람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냉동 도크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캔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이 열기가 손바닥에서 식을 때까지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상자 앞에서 먼지를 쓸었다⁠.

*

새벽 네 시⁠, 흡연장은 정문 경비실 옆 철제 차양 밑에 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엄평구가 거기 있었다⁠.

“⁠사설 구급차는 회사 지정이에요⁠. 계약이 돼 있어서 그쪽부터 부르게 돼 있어요⁠.⁠”

내가 묻기도 전에 엄평구가 말했다⁠. 담배 연기가 영하의 공기 속에서 오래 흩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문 말고 뒷문이었습니까⁠?⁠”

“⁠도크 여섯 개요⁠. 트럭 여섯 대가 못 빠지면 아침에 물량 삼천 상자가 밀려요⁠. 그러면 권역 평가에서 우리 센터가 빨간불이에요⁠. 빨간불 세 번이면 본사가 야간조를 다시 짜요⁠. 다시 짠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엄평구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영상이 재생됐다⁠. 사 년 전의 선발전⁠, 여자부 일반 체급 용상 삼차 시기⁠. 하얀 경기복을 입은 내가 바벨을 가슴에 받고 일어서서 머리 위로 밀어 올리다가 뒤로 휘청이는 장면이었다⁠. 거기서 놓았으면 됐다⁠. 바벨을 앞으로 던지고 몸을 빼면 됐다⁠. 화면 속의 나는 놓지 않았다⁠. 허리가 뒤로 꺾이는데도 팔꿈치를 펴고 버텼다⁠.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졌다⁠. 감독님의 목소리가 이 비명 사이로 들렸다⁠. “⁠버텨⁠, 버텨⁠.⁠”

엄평구가 영상을 멈췄다⁠.

“⁠바벨 안 놓고 허리 부러진 사람⁠. 지숙 씨는 버티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잖아요⁠. 여기 마흔다섯 명이 다 그렇게 버텨서 사는 거예요⁠. 노광석 씨도 버틴 거고⁠.⁠”

“⁠그분은 버틴 게 아니라 쓰러진 겁니다⁠.⁠”

“⁠나도 스무 해 전에 13번에서 상자 내렸어요⁠. 허리 거기서 버렸고⁠. 그래서 알아요⁠. 버틴 사람이 남는 거⁠.⁠”

이 사람은 담배를 비벼 끄고 점퍼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뒷면에 볼펜으로 「⁠성수기 끝나면 직고용⁠, 조장⁠, 월 사백⁠」이라고 적혀 있었다⁠.

“⁠빚 있다면서요⁠. 사천칠백⁠. 파견 회사에서 가불 물어보셨다고 들었어요⁠.⁠”

“⁠제가 조장 되면 13번은 누가 듭니까⁠?⁠”

“⁠새 사람이요⁠. 성수기엔 버스로 와요⁠. 지숙 씨는 그 사람들한테 상자 배에 붙이는 법만 가르치면 돼요⁠. 노광석 씨가 지숙 씨한테 가르친 것처럼⁠.⁠”

이 이름이 엄평구의 입에서 너무 쉽게 나왔다⁠. 나는 명함을 받지 않았다⁠. 엄평구는 명함을 내 조끼 앞주머니에 꽂아 넣고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노광석 씨 집에는 위로금 삼천 드리기로 했어요⁠. 합의하시면 바로⁠. 산재로 가면 일 년 걸려요⁠. 그동안 중환자실 병원비는 누가 내요⁠? 지숙 씨가 낼 거예요⁠?⁠”

*

다섯 시 십 분⁠, 사물함에서 막 꺼낸 휴대폰이 퇴근 셔틀 정류장에서 울렸다⁠. 해미였다⁠.

“⁠센터장님이 병원에 왔다 갔어요⁠. 봉투랑 서류 가지고요⁠. 월요일 정오까지 도장 찍으면 삼천이래요⁠. 안 찍으면 회사는 지병이라고 끝까지 다툴 거래요⁠. 아빠가 원래 아팠다고⁠. 그 사람이 그러는데 아빠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할 거래요⁠.⁠”

이 사람의 목소리가 거기서 한 번 끊겼다⁠. 수화기 너머에서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언니⁠. 언니가 증인 서 주면 저 도장 안 찍을게요⁠. 아빠가 일하다 쓰러졌다고⁠, 삼십일 분이었다고⁠, 노동청 가서 말해 줄 수 있어요⁠?⁠”

나는 조끼 앞주머니의 명함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월 사백⁠. 사천칠백을 나누면 열두 달이 조금 안 됐다⁠. 이 셈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끝났다⁠. 왼발 엄지는 아직도 남의 발가락 같았다⁠.

“⁠서 줄게요⁠.⁠”

내 입에서 이 말이 나왔다⁠. 해미가 전화기 너머에서 울음을 한 번 삼켰다⁠.

휴대폰을 내리고 돌아섰을 때⁠, 셔틀 정류장 표지판 옆에 엄평구가 서 있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차 열쇠를 손가락에 건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입김이 엄평구의 얼굴 앞에서 천천히 흩어졌다⁠.

“⁠지숙 씨⁠.⁠”

엄평구가 한 걸음 다가왔다⁠.

“⁠누구 증인을 선다고요⁠?⁠”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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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0.26· 2화

    두 사람 몫이라는 게 쓰러진 동료 몫까지 한다는 뜻인가요? 회사는 그걸 알고 있어요?

    • 성재담작가2026.10.26

      회사는 숫자만 봐요. 그날 처리량이 맞으면 누가 몇 개를 들었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그 빈틈에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두 사람 몫 ·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