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843자)
박스 먼지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성재담
쌀 포대는 이십 킬로그램이었고 이 위에 얹힌 생수 묶음은 열두 킬로그램이었다. 나는 상자를 들기 전에 무게부터 안다. 열네 살 때부터 그렇게 살았다.
컨테이너 안은 바깥보다 추웠다. 영하 7도의 밤공기가 트럭 문틈으로 밀려들어 와 상자 더미 사이에 고였고, 숨을 쉴 때마다 골판지 먼지가 목구멍에 붙었다. 천장 끝까지 쌓인 상자 벽 앞에서 나는 장갑을 벗고 맨 위 상자의 등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회색 먼지가 손금에 배었다. 두 손을 맞대고 한 번 비빈 다음 짝, 하고 손뼉을 쳤다. 그리고 숨을 배 밑까지 끌어 내렸다.
역도장에서는 이걸 탄산마그네슘으로 한다. 하얀 분필 가루를 손에 묻히고, 바벨 앞에 서서, 숨을 한 번 가두고 든다. 여기엔 분필이 없어서 상자 먼지를 쓴다. 버릇은 몸보다 오래 산다.
“아이고, 또 시작했네. 쇳덩이 기도한다.”
도크 밖에서 지게차가 후진 경보음을 울리며 멈췄다. 공삼분 언니였다. 마흔일곱, 이 센터에서 지게차를 열한 해 몰았다는 사람. 운전석에서 고개를 쭉 내밀고 언니는 즉석에서 가락을 뽑았다.
“상자야 상자야, 니는 와 이리 무겁노. 국가대표 언니가 손바닥에 침 뱉는다.”
“침 안 뱉었어요.”
“먼지 바르는 기나 침 뱉는 기나. 한 잔 꺾고 하나 들고, 레일 위에 사랑 싣고.”
컨테이너 안쪽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났다. 노광석 씨였다. 쉰둘, 철근공을 하다 무릎이 먼저 나가서 이리로 왔다고 했다. 사흘 전 내가 처음 13번 도크에 섰을 때, 이 사람은 내가 쌀 포대를 들어 올리는 것을 한참 보다가 말했다.
“국가대표는 아는디, 상자는 모르네.”
이 사람은 쌀 포대를 내 손에서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굽혀 포대 밑으로 팔을 넣은 다음 이것을 자기 배에 붙였다.
“바벨은 앞에서 들제. 상자는 배에 붙여. 팔로 들면 허리가 대신 들어. 허리가 대신 들믄 오십 살에 나처럼 되는 것이여.”
이날 이후 나는 상자를 배에 붙여 들었다. 허리 수술 자국이 조끼 밑 가죽 벨트에 눌려 따끔거렸다. 나는 이 따끔거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
이천 동부 허브는 도크 서른두 개가 한 줄로 늘어선 건물이다. 저녁 일곱 시에 레일이 돌기 시작하면 새벽 다섯 시까지 멈추지 않는다. 트럭이 도크에 꽁무니를 대면 우리가 이 안에 들어가 상자를 꺼내 레일에 올리고, 레일 끝에서 송장 번호를 읽는 사람들이 상자를 지역별로 가른다. 13번 도크에는 무거운 것만 온다. 생수, 쌀, 고양이 모래, 아령, 접이식 운동 기구.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자리라서 새로 온 나와 무릎이 나간 광석 씨가 맡았다.
작업장에는 휴대폰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출근하면 휴게실 옆 사물함에 넣고 잠근다. 무전기는 반장 이상만 차고, 채널은 2번 하나라 지게차 기사들도 다 듣는다. 레일마다 빨간 비상 정지 단추가 달려 있었지만, 첫날 반장 기봉이 이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누르면 경위서. 선 동안 밀린 물량은 그 조가 메워. 센터 생기고 일용직이 저거 누른 적 한 번도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빚이 사천칠백만 원이었다. 고향 군청 앞 상가 이층에 열었다가 두 해 만에 닫은 역도교실의 빚이었다. 성수기 야간 일당 십오만 원을 서른 날 받으면 사백오십만 원. 나는 이 숫자를 매일 밤 셔틀버스에서 다시 셌다.
열 시쯤 센터장이 바닥을 한 바퀴 돌았다. 엄평구, 마흔아홉. 남색 점퍼에 손을 찔러 넣고 천천히 걷다가 사람마다 어깨에 손을 얹는 사람이었다. 엄평구의 손이 내 어깨에 올라왔다.
“국가대표님, 13번 오늘 다 비우면 내일부터 일당에 이만 원 얹어 드릴게요.”
손이 따뜻했다. 이 따뜻한 손이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렸고, 엄평구는 광석 씨 쪽으로는 가지 않고 다음 도크로 갔다.
열한 시 조금 넘어서 광석 씨가 상자를 내려놓고 컨테이너 밖으로 나갔다. 도크 끝에서 기봉 반장과 뭔가를 이야기했다. 반장이 무전기를 입에 대고 몇 마디 했고, 잠깐 뒤에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반장이 광석 씨에게 고개를 저었다. 돌아온 광석 씨의 얼굴은 형광등 아래에서 생수 묶음 비닐처럼 하얬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여. 괜찮어.”
이 사람은 왼팔을 두어 번 주무르고 다시 쌀 포대를 배에 붙였다. 나는 이때 더 묻지 않았다. 내가 놓친 첫 번째 것이 이것이었다.
*
자정에 삼십 분을 쉬었다. 휴게실 컨테이너 안에서 공삼분 언니는 컵라면에 김치를 통째로 털어 넣으며 반장 흉내를 냈다. 손목의 초시계를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고 목소리를 깔았다.
“육지숙 씨, 당신 지금 숨 쉬는 데 삼 초 썼어. 경위서.”
대학생 알바 둘이 라면 국물을 뿜었다. 레일 끝 막내 탄은 웃음을 참느라 어깨만 들썩였다. 응우옌 반 탄, 스물다섯. 하노이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쳤다는 탄은 송장 번호를 한 번 보면 외웠다. 광석 씨는 구석에 앉아 라면을 반도 먹지 않았다. 고흥 바다 이야기를 했다. 성수기가 끝나면 딸의 학자금 대출 마지막 달이고, 그러면 내려가서 문어나 잡겠다고.
한 시 반, 무전기에서 엄평구의 목소리가 나왔다.
“레일 한 칸 올려. 권역에서 전화 왔어.”
레일이 빨라졌다. 바닥이 떨리는 소리가 반 박자 당겨졌다. 컨테이너 안 상자 벽은 아직 반이 남아 있었다. 나는 생수 묶음 둘을 한꺼번에 배에 붙여 나르기 시작했다. 광석 씨는 안쪽 끝에서 고양이 모래 포대를 끌어내고 있었다.
두 시를 조금 넘겼을 때 등 뒤에서 소리가 났다.
포대가 떨어지는 소리와는 달랐다. 더 무겁고, 더 물렀다. 돌아보니 광석 씨가 상자 벽에 어깨를 기댄 채 미끄러지고 있었다. 무릎이 먼저 꺾였고 머리가 고양이 모래 포대 위로 넘어갔다. 눈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아저씨.”
대답이 없었다. 나는 상자를 걷어차고 들어가 이 사람의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넣었다.
나는 백이십 킬로그램을 머리 위로 들어 본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은 바벨과 달랐다. 바벨은 무게가 한가운데 모여 있고, 잡으면 손에 붙는다. 축 늘어진 사람의 무게는 사방으로 흘렀다. 팔이 빠지고 머리가 넘어가고 다리가 상자에 걸렸다. 팔십 킬로그램이 조금 넘을 몸이 이백 킬로그램처럼 내 팔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나는 광석 씨가 가르쳐 준 대로 광석 씨를 배에 붙였다. 허리 수술 자국이 벨트 밑에서 찢어지는 것 같았다.
컨테이너를 빠져나와 도크 바닥에 이 사람을 눕혔을 때, 도크 위 전광판의 빨간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두 시 칠 분이었다. 바벨 앞에 서면 나는 늘 전광판의 남은 시간부터 보았다. 이 버릇이 이때도 먼저 고개를 들었다. 탄이 레일 끝에서 달려왔다. 탄은 무릎을 꿇고 광석 씨의 가슴 한가운데에 두 손을 포개 얹었다. 그리고 눌렀다. 소리 내어 셌다.
“하나, 둘, 셋, 넷.”
기봉 반장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사람 쓰러졌다고, 13번이라고. 그리고 무전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더 묻고 들었다. 나는 이 말을 듣지 못했다. 탄이 세는 숫자가 내 귀를 채우고 있었다. 이 분쯤 지나 무전기에서 엄평구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숨이 차 있었다.
“레일 세우지 마. 지금 권역이 보고 있어. 정문 말고 뒷문으로 옮겨. 휴게실로. 구급차 내가 불렀어.”
*
센터장은 이 분도 안 되어 13번 도크 앞에 나타났다. 지게차 옆에 세워 둔 짐 싣는 대차를 끌고 왔다. 탄이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을 세고 광석 씨의 입에 숨을 불어 넣는 동안, 엄평구는 대차를 광석 씨 옆에 붙였다.
“들어. 휴게실로 가요.”
“정문이 가깝습니다.”
내가 말했다. 정문 쪽 구급차 진입로까지는 걸어서 일 분이었다. 뒷문 하역장을 돌아 휴게실까지는 사 분이 넘었다. 나는 사흘 동안 이 길을 상자를 들고 걸었다.
“정문 앞에 구급차 서면 도크 여섯 개가 막혀요. 트럭이 못 빠져. 휴게실로 가서 눕혀요. 거기 히터 있어.”
“사람이 숨을 안 쉽니다.”
“그러니까 빨리 들라고요.”
나는 대차 손잡이를 잡았다. 엄평구도 잡았다. 우리 둘의 손이 손잡이 하나 위에 겹쳤다. 엄평구의 손은 따뜻했다. 열 시에 내 어깨를 두드리던 이 손이었다. 엄평구가 당겼고 나는 버텼다. 대차 바퀴가 바닥에서 반 바퀴 돌다 멈췄다. 몸으로 버티는 것이라면 나는 엄평구에게 지지 않는다.
“육지숙 씨. 지금 이 사람 살리고 싶어요, 나랑 힘겨루기 하고 싶어요?”
이 말에 손이 풀렸다. 기봉 반장과 대학생 둘이 광석 씨를 대차에 실었고, 탄이 대차 옆을 따라 뛰면서 계속 가슴을 눌렀다. 대차가 뒷문 쪽으로 굴러갔다.
나는 반대쪽, 휴게실 옆 사물함으로 뛰었다. 손가락이 떨려서 자물쇠 번호를 두 번 틀렸다. 휴대폰을 꺼냈을 때 화면의 시계는 두 시 십칠 분이었다. 119에 주소를 말했다. 이천 동부 허브, 13번 도크, 정문으로 오시라고. 그리고 말하자마자 뒷문으로 오시라고 고쳐 말했다. 반장이 거기 있었으니까.
구급대원이 휴게실 바닥에 누운 광석 씨에게 손을 얹은 것은 두 시 삼십팔 분이었다. 구급차는 정문에 먼저 섰다가 경비실 안내를 받고 뒷문으로 돌아왔다. 대원 하나가 탄을 밀어내고 멈춘 심장에 전기 충격을 주는 제세동기를 붙였다. 탄은 밀려나서도 무릎을 꿇은 채로 두 손을 허공에 포개고 있었다. 탄의 입술이 계속 숫자를 셌다.
두 시 칠 분에서 두 시 삼십팔 분까지, 삼십일 분이었다.
레일은 한 번도 서지 않았다.
119 구급차가 광석 씨를 싣고 떠난 지 십이 분쯤 지나서, 뒷문 하역장에 흰 승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옆구리에 빨간 줄이 그어진 사설 구급차였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두리번거리다가 엄평구를 찾아 무언가를 물었고, 엄평구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이 남자 손에 쥐여 주었다. 승합차는 시동을 끄지도 않고 도로 나갔다.
나는 하역장 기둥 옆에 서서 이것을 보았다. 엄평구가 돌아서다 나를 발견했다. 놀라지 않았다.
“들어가요, 지숙 씨. 13번 아직 반 남았어요.”
“구급차 부르셨다는 게 저 차였습니까?”
“빨리 오는 걸 불렀죠. 119가 먼저 왔으니 다행이고.”
“저 차가 지금 왔습니다. 두 시 오십 분입니다.”
엄평구는 대답 대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무전기를 입에 댔다.
“13번 도크, 인원 하나 비었으니까 옆 도크에서 하나 붙여. 물량 그대로 가.”
엄평구는 나를 지나쳐 갔다. 지나가면서 내 어깨를 두드리지는 않았다. 나는 컨테이너로 돌아가 남은 상자를 내렸다. 광석 씨가 끌어내다 만 고양이 모래 포대가 바닥에 반쯤 찢어진 채 누워 있었고, 거기서 흘러나온 회색 모래에 광석 씨의 무릎 자국이 두 개 찍혀 있었다.
*
아침 여섯 시, 퇴근 셔틀이 떠나기 전에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패딩 밑에 연분홍 의원 근무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스물넷쯤 되어 보였다. 머리를 묶은 고무줄이 반쯤 풀려 있었다.
“노광석 씨 딸이에요. 노해미요. 수원 병원에서 오는 길이에요. 아빠가 왜 저래요?”
엄평구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해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많이 놀라셨죠. 아버님이 원래 지병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일 시작하실 때부터 가슴이 안 좋다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바로 구급차 불러서 모셨어요.”
나는 사무실 문가에 서 있었다. 퇴근 도장을 찍으러 왔다가 거기 멈춰 있었다.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서 문틀을 잡고 있었다.
엄평구가 나를 보았다. 걸어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열 시에, 그리고 대차 손잡이 위에서 느꼈던 이 따뜻한 손이었다.
“이분이 바로 옆에 계셨어요. 국가대표 출신이세요. 말씀드려요, 지숙 씨. 아버님 일 시작하실 때부터 안색이 안 좋으셨죠?”
어깨 위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해미가 나를 보았다. 눈 밑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옆에 계셨어요? 우리 아빠, 몇 시에 쓰러졌어요?”
빚이 사천칠백만 원이었다. 다음 주 배정 문자는 센터장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나는 이 두 숫자를 알면서, 어깨 위의 손을 그대로 둔 채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