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6,366자)
서면 경고
스토커를 스토킹했다 · 서강림
10월 16일 금요일 오전 아홉 시 사십 분에 초인종이 두 번 울렸다. 나는 맨발로 현관에 가서 문에 난 렌즈부터 보았다. 렌즈 속 복도는 둥글게 휘어 있었다. 우체국 조끼를 입은 집배원이 노란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단말기를 들고 있었고, 복도 끝 창문이 집배원 귀 옆에 붙어 보였다. 복도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윤예원 씨 계세요? 법원 등기요.”
체인을 건 채 문을 한 뼘 열었다. 집배원이 틈으로 단말기를 밀어 넣었다. 화면에 손가락으로 이름을 쓰는데 손날의 연필 자국이 액정에 회색으로 번졌다. 집배원은 화면을 소매로 한 번 닦고 누런 창문 봉투를 건넸다. 봉투 왼쪽 위에 「서울서부지방법원」, 비닐 창 안에 내 이름과 302호.
봉투 안에는 종이 석 장이 접혀 있었다. 첫 장 맨 위 가운데에 「결정」 두 글자가 있었고, 제목 밑에 피의자 윤예원, 피해자 김도훈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내 이름이 위였다.
「주문. 1. 피의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범죄의 중단에 관하여 서면 경고한다. 2. 피의자는 2027. 1. 15.까지 피해자 및 피해자의 주거, 직장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에 접근하여서는 아니 된다. 3. 피의자는 같은 기간 피해자의 휴대전화 또는 이메일 주소로 전기통신을 이용하여 접근하여서는 아니 된다.」
경고는 따로 오지 않았다. 주문 1번 한 줄이 경고였다. 둘째 장에는 이유가 있었다. 7월 14일부터 9월 30일까지 쉰세 번, 출근길과 직장 앞과 운동 시설 앞. 셋째 장 맨 아래에는 굵은 글씨가 있었다. 「이 결정을 이행하지 아니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고지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습니다.」
결정문에는 감나무빌라라는 낱말이 없었다. 「피해자의 주거」와 「피해자의 직장」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주소를 몰라도 지켜야 하는 결정이었고, 나는 주소를 알았다. 시장 건너 감나무빌라 2층 왼쪽 창, 여의도 솔빛물산 본사 17층. 석 달 동안 따라다녀서 안 주소였다. 법원은 내가 그렇게 알게 된 주소에서 떨어지라고 했다.
블라인드는 아침에도 내려져 있었다. 결정문 석 장을 창가 책상에 펴 놓고 휴대전화로 찍었다. 찰칵. 법원 종이를 찍는 소리도 사람 등을 찍는 소리와 똑같았다.
*
오후 한 시, 합정 작업실 수박밭. 은비가 내 모니터에 지도 캡처를 띄우고 그림 프로그램의 원 도구를 집었다.
“언니, 감나무빌라 여기 맞죠? 축척 맞추고, 백 미터, 원.”
화면 위에 빨간 원이 그려졌다. 은비는 선을 그으면 끝을 꼭 한 번 더 문지른다. 원 테두리가 두 줄로 굵어졌다. 원 안에 망원시장 동쪽 입구가 들어갔고, 동쪽 입구 첫 가게 영희네 호떡이 들어갔고, 10월 8일에 김도훈과 내가 앞뒤로 줄을 서 있던 버스 정류장이 들어갔다.
“정육점은 반만 들어가요. 고기 써는 데는 원 안이고 계산대는 원 밖이에요. 고기는 못 보고 계산만 할 수 있어요.”
“계산만 해서 뭐 해.”
“떡집은 아슬아슬하게 밖이에요. 축하해요, 언니. 가래떡은 지켰어요.”
창가 자리에서 박수진 작가가 의자를 돌렸다.
“그래서 출근 몇 분 늘어.”
“십일 분이요. 동쪽 입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못 타니까 망원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 타면요.”
“십일 분이면 배경 한 컷이야. 아침마다 한 컷씩 날아가는 거고.”
작가님은 마우스를 몇 번 눌러 툰다락 댓글창을 띄웠다. 53회 댓글 맨 위에 공감 이천 개가 붙은 글이 있었다. 「편의점 간판 글씨 거꾸로 됨ㅋㅋㅋ 이거 복선임?」 바로 밑 댓글은 「가로등남 거울 세계로 감」이었다. 은비가 뒤집어 붙인 지난 회 배경 네 컷 중 한 컷에 편의점 간판이 있었다.
“은비야.”
“작가님, 저 진짜 간판은 봤어요. 근데 간판이 반대로 써 있어도 독자들이 좋아하잖아요. 공감 이천 개예요.”
“이천 개가 다 실수 찾은 사람이야.”
작가님은 의자를 다시 돌리면서 나에게 한마디를 더 던졌다.
“원 밖으로만 다녀. 너 원 안에서 걸리면 우리 작업실 문 닫아.”
나는 은비가 그린 원을 오래 보았다. 결정문은 집과 직장에서만 떨어지라고 하지 않았다. 피해자로부터도 백 미터. 감나무빌라와 솔빛물산은 제자리에 있었지만 김도훈의 몸은 움직였다. 김도훈이 걸어오면 원도 같이 걸어왔다. 은비가 내 표정을 보고 원 도구를 내려놓았다.
“언니, 그 아저씨가 언니 쪽으로 오면요? 그때는 언니가 도망가야 돼요?”
“응. 백 미터.”
“그럼 그 아저씨가 언니 집 앞에 서 있으면요?”
대답 대신 원 테두리를 한 줄로 정리했다. 테두리를 정리하는 데 사 분을 썼다.
*
저녁 여섯 시 반, 나는 망원시장 서쪽 입구로 들어갔다. 동쪽 입구까지는 시장 통로를 따라 이백 미터쯤이었다. 반쯤 걸었을 때 고향떡집 앞 맨홀 뚜껑 위에 영희 사장님이 앞치마 차림으로 서 있었다. 맨홀 뚜껑에는 하얀 분필로 줄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얘, 여기까지야. 한 발짝도 넘어오지 마.”
“사장님, 이게 뭐예요?”
“백 미터. 점심 장사 끝나고 내가 쟀어. 감나무빌라 대문 앞에서부터 내 걸음으로 백육십두 걸음. 여기가 백육십두 번째야.”
“저는 백 미터가 제 걸음으로 백사십 걸음이에요.”
“네 다리는 짧아도 보폭이 길잖아. 나는 사십 년을 이 시장에서 걸었어. 내 걸음이 자야.”
고향떡집 아주머니가 가래떡을 썰다가 칼을 든 채 나왔다.
“언니, 그 줄 우리 가게 앞이잖아. 손님들이 밟고 다녀.”
“밟아도 돼. 예원이만 안 넘으면 돼.”
망원정육 사장님이 고기 저울 너머에서 고개를 빼고 물었다.
“영희 누나, 그럼 우리 가게는 안이야, 밖이야?”
“반.”
“반이 어딨어.”
“너네 저울은 안이고 냉장고는 밖이야.”
은비가 지도 위에 그린 원과 사장님의 분필 줄은 열 걸음쯤 어긋났다. 나는 사장님 줄을 믿기로 했다. 사장님이 앞치마를 털고 동쪽 입구로 걸어가더니, 철판 앞에서 호떡 두 개를 종이봉투에 담아 다시 걸어왔다. 백육십두 걸음을 세는 입이 시장 통로 끝까지 들렸다. 사장님은 분필 줄 너머에서 팔을 뻗어 봉투를 건넸다. 봉투 바닥이 따뜻했다. 일 년 동안 사흘에 한 번 사 먹던 호떡을 이제는 맨홀 뚜껑 위에서 받았다.
“씨앗 두 개.”
“고맙습니다.”
“근데 얘, 그 양반은 너네 골목 오는 거 안 막혔지?”
“네.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안 막혔어요.”
“그럼 너만 줄 안에 있네. 아니, 줄 밖이구나. 헷갈려.”
사장님은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다른 손으로 동쪽 입구 철판을 가리켰다.
“어제 저녁에 그 양반 우리 가게 왔다. 호떡 두 개, 꿀로. 정장 입고.”
“팔았어요?”
“팔았지.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야. 오는 손님은 다 받아. 너도 받고 그 양반도 받아. 대신 둘 다 본 거는 다 기억해.”
나는 봉투를 쥐고 분필 줄 앞에서 몸을 돌렸다. 같은 철판에서 구운 같은 호떡을 김도훈은 원 안에서 받았고 나는 원 밖에서 받았다.
*
10월 23일 금요일 밤 열한 시 삼십팔 분, 나는 합정에서 버스 대신 6호선을 타고 망원역에서 걸어와 골목 입구 편의점 앞에 닿았다. 편의점 간판 글씨는 똑바로였다. 가로등 밑에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패딩이 아니었다. 남색 정장에 어깨에 멘 검은 가죽 서류 가방, 왼손에 망사 빨래 가방. 길 건너 뽀송 빨래방 안에서 3번 건조기가 돌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 불빛이 턱 밑에서 얼굴을 밝혔다. 김도훈이었다.
편의점에서 가로등까지 내 걸음으로 서른 걸음이었다. 가로등에서 우리 건물 현관까지는 여섯 걸음이었다. 결정문을 지키려면 지금 선 자리에서 뒤로 백십 걸음을 물러나야 했다. 나는 물러났다. 큰길 버스 정류장 유리 벽에 등을 대고 112를 눌렀다.
“112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스토킹 신고했던 사람인데요, 그 남자가 지금 우리 집 앞에 있어요. 망원동이요.”
“상대방에게 접근금지 결정 있으세요?”
“저한테 있어요.”
수화기 너머가 이 초쯤 조용했다.
“신고자분이 접근금지를 받으셨다고요?”
“네. 제가 그 사람한테 가면 안 돼요. 근데 그 사람이 우리 집 앞에 있어요.”
“일단 출동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계세요.”
순찰차는 열한 시 오십일 분에 골목으로 들어왔다. 경찰관 두 사람이 내렸고, 한 사람은 6월 18일 밤에 왔던 젊은 경찰관이었다. 수첩도 같은 검은 수첩이었다. 젊은 경찰관이 나에게 오고, 나이 든 경찰관이 가로등으로 갔다. 김도훈은 경찰관에게 휴대전화 화면을 돌려 보여 주었다. 법원에서 우편으로 받은 결정문을 스캔한 파일이었다. 손전등 불빛이 화면 위에서 위아래로 두 번 움직였다.
젊은 경찰관이 수첩을 펴고 물었다.
“직접적인 위협은 없었죠?”
“6월에도 그거 물어보셨어요.”
경찰관은 볼펜을 멈추고 나를 다시 보았다. 6월의 나를 찾는 눈이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연락은요?”
“연락하면 안 돼요. 법원이 막았어요. 저만요.”
나이 든 경찰관이 가로등에서 돌아왔다.
“저분이 결정문을 보여 주시네요. 신고자분이 저분한테서 백 미터 안으로 가시면 안 되는 거라고요. 일단 집에 들어가 계세요. 저분은 저희가 얘기 들을게요.”
“집에 가려면 저 사람 옆을 지나가야 해요. 여섯 걸음이에요.”
경찰관 두 사람이 골목을 보았다. 편의점, 가로등, 현관. 일직선이었다.
“저희가 같이 가 드릴게요.”
경찰관 둘 사이에 끼어 골목을 걸었다. 스물네 걸음째에 김도훈이 휴대전화를 내리고 처음 고개를 들었다. 경찰관 어깨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법적으로는, 경찰관이 동행하면 접근으로 보지 않을 겁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경찰관 둘도 따라 멈췄다.
“왜 여기 있어요?”
“빨래합니다. 건조기가 십팔 분 남았습니다.”
“정장 입고요?”
“야근하고 바로 왔습니다.”
“결정문은 왜 들고 있어요?”
김도훈은 휴대전화를 정장 안주머니에 넣었다.
“결정문이 지켜지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윤예원 씨가 조서에 고쳐 쓴 말을 빌리면요.”
따라갔다를 확인하러 갔다로 고쳐 달라던 내 목소리가 조사실 의자 소리와 함께 되돌아왔다. 젊은 경찰관이 김도훈과 나 사이로 한 걸음 들어왔다.
“두 분 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선생님은 건조 끝나면 가시는 거죠?”
“십팔 분 뒤에 가겠습니다.”
나는 현관 번호판을 물티슈로 닦고 번호를 누르고 다시 닦았다. 3층 복도 끝까지 한 번 더 본 다음 302호에 들어가 불을 켜지 않고 블라인드 날개 하나를 눌렀다. 뽀송 빨래방 유리문 안에 경찰 모자 두 개와 남색 정장 하나가 3번 건조기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경찰관 둘은 십팔 분 동안 건조기 창이 도는 것을 보았다. 자정 구 분에 건조기가 멈췄다. 김도훈이 문을 열고 꺼낸 것은 흰 셔츠 한 장이었다. 셔츠 한 장을 사십 분 말리려고 사천 원을 낸 남자는 망사 가방을 들고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딱, 따각.
자정 십사 분에 문자가 왔다. 「[마포경찰서] 112 신고가 처리되었습니다. 접수번호 안내」. 나는 메모장에 적었다. 「10/23 23:38 정장. 23:51 순찰차. 3번 건조기. 셔츠 한 장. 00:09 종료」. 젊은 경찰관은 떠나기 전에 출동 기록은 나중에 정보공개 청구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신고자 칸에 내 이름이 남는 기록을 처음으로 하나 얻었다.
*
10월 30일 금요일, 등기가 또 왔다. 이번 봉투는 두툼했다. 「공소장」 첫 장에 서울서부지방공소청 검사의 이름이 있었고, 피고인 칸에 내 이름이 있었다. 피의자라는 말이 피고인으로 바뀌기까지 열여드레였다. 공소사실은 결정문 둘째 장과 같았다. 쉰세 번, 출근길, 직장 앞, 운동 시설 앞. 봄의 가로등은 한 줄도 없었다.
공소장 밑에 「국선변호인 선정에 관한 고지」라는 종이가 있었다. 가난해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으면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변호사 사무실 두 곳에 전화했다. 착수금이 삼백삼십만 원, 오백오십만 원이었다. 내 월급은 이백십만 원이었고, 다음 달 월세는 오십오만 원이었다.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서 빈 줄에 볼펜으로 이름과 사건 번호를 쓰고 통장 거래 내역 석 달 치를 붙였다. 망원우체국 창구 직원이 봉투 무게를 재고 등기 요금 이천육백 원을 받았다.
11월 2일 월요일 오후 세 시 칠 분, 작업실에서 56회 배경 원근 격자를 켜 놓았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윤예원 님 사건의 국선변호인으로 변호사 안지혜(공덕동)가 선정되었습니다.」
안지혜. 원근 격자 위에서 커서가 멈췄다. 고2 겨울, 독서실이 끝나는 밤 열한 시마다 나는 지혜를 아파트 정문까지 데려다주었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빼지 않았다. 지혜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졸업하고 연락이 끊겼고, 지혜가 변호사가 됐다는 말은 동창 단톡방에서 지나가듯 읽었다.
사 분 뒤에 02로 시작하는 번호가 떴다. 받자마자 목소리가 먼저 왔다.
“야, 윤예원.”
“지혜야?”
“나 네 국선이야. 서류 지금 보고 있어. 근데 먼저 말할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