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29자)
도첩 없는 나한은 비켜 주십시오
소림사 세무 조사 · 여무겸
가정 32년 9월 10일 한낮, 소림사 산문 계단에는 은행잎과 무승 열여덟과 세리 하나가 있었다. 해가 소실산 등성이를 넘어오자 돌계단의 그늘이 짧아졌고, 바닥까지 펼쳐 둔 두루마리 끝이 바람에 들썩였다. 은학은 고지서를 다시 말아 등에 메고 계단 첫 칸에 발을 올렸다.
무승들이 한 칸씩 내려왔다. 곤봉을 가로로 들어 어깨와 어깨 사이를 이었고, 앞줄 여섯이 담장처럼 계단을 가렸다. 은학은 원진의 곤봉 앞에서 멈추었다. 곤봉에는 손때가 까맣게 앉아 있었고, 가까이 대자 콩기름 냄새가 났다.
“지나가겠습니다.”
“지나가 보시오.”
은학은 곤봉 밑으로 허리를 숙였다. 원진이 곤봉을 한 치 내렸다. 은학이 더 숙이자 곤봉도 한 치 더 내려왔다. 무릎까지 굽혔을 때 관모가 곤봉에 닿아 비뚤어졌고, 원진이 덴 사람처럼 곤봉을 들었다.
“닿았소?”
“관모가 닿았습니다.”
“관모는 사람이 아니오.” 원진이 진 뒤를 돌아보았다. “관모는 쳐도 되는가?”
진 가운데에서 누가 대답했다. “관모가 머리에 얹혀 있으니 머리의 일부요.”
다른 무승이 받았다. “머리카락도 머리의 일부인데 우리는 깎지 않소?”
“그러니 관모도 깎자는 말이오?”
원진이 곤봉 끝으로 돌계단을 한 번 쳤다. 진이 조용해졌다. 은학은 관모를 바로 쓰고 허리를 폈다. 열여덟이 계단 위아래로 은학을 에워쌌지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내미는 손이 있으면 곧바로 거두었다. 계율 하나가 곤봉 열여덟보다 단단했다. 은학은 열세 해 전 겨울, 죽 줄에서 새치기한 장정을 무승이 어떻게 내보냈는지 알았다. 무승은 장정 앞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고, 장정이 지쳐서 줄 끝으로 돌아갔다. 소림은 그렇게 막았다.
“조사 절차 넷, 대면한 분들의 신원 확인입니다.” 은학이 품에서 붓을 꺼냈다. “승려가 되면 나라 제사와 승적을 맡은 예부에서 증서를 내줍니다. 도첩이라고 하지요. 도첩 없이 사사로이 머리를 깎은 사람은 대명률에 곤장 여든입니다. 여러분은 승려로서 소림의 땅을 지키시는 것이니, 승려라는 근거를 대 주십시오.”
진이 한동안 조용했다. 은행잎 하나가 원진의 민머리에 떨어졌다가 미끄러졌다.
“도첩은 방에 두고 왔소.” 오른쪽 끝 무승이 말했다.
“가져오시지요. 기다리겠습니다.”
무승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산문 안으로 사라진 뒤 다시 나오지 않았다. 다음 무승이 헛기침을 했다.
“나도 방에 두고 왔소.”
“같은 방입니까?”
“옆방이오.”
두 번째 무승도 올라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는 아무 말 없이 곤봉을 거두고 올라갔고, 네 번째는 올라가다가 돌아서서 은학에게 합장까지 하고 갔다. 은학은 붓끝으로 허공에 하나씩 금을 그었다. 금이 열하나가 되었을 때 계단에 남은 무승은 일곱이었다. 진 모양이 무너져 앞줄과 뒷줄 사이가 성글었다.
맨 앞의 원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좌 스님은 도첩이 있으십니까?”
“없소.”
“그러면 곤장 여든입니다.”
“막을 뿐 치지 않소.” 원진이 곤봉을 세웠다. “맞을 뿐 피하지 않소. 여든이든 여든하나든 맞으러 내려가겠소. 오늘은 여기 있소.”
은학은 붓을 내렸다. 원진 같은 사람은 절차로 비켜 세울 수 없었다. 절차가 원진의 다리를 무겁게 할 뿐이었다. 은학은 원진의 곤봉 옆, 사람 하나 지날 만한 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원진이 곤봉으로 틈을 막으려다 멈추었다. 곤봉을 내리면 은학의 가슴에 닿을 자리였다. 원진의 팔뚝에 힘줄이 불거졌다가 풀렸다.
은학은 나한진 한가운데에 섰다. 사방에서 무승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위로 계단이 스무 칸쯤 남아 있었고, 계단 꼭대기에서 혜공이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형.”
진 맨 끝줄에 있던 은결이 앞치마를 벗어 계단 난간에 걸쳐 놓았다. 주걱은 놓지 않았다.
“돌아가라고 했잖아.”
“들었다. 대답을 안 했을 뿐이다.”
“나는 중이 아니야. 도첩도 없고, 계율도 반만 지켜.” 은결이 주걱을 허리띠에 꽂았다. “안 때려. 옮기기만 할 거야.”
은학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전에 몸이 공중에 떴다. 은결이 형의 허리를 한 팔로 감아 어깨에 얹었다. 쌀 한 가마를 지는 솜씨였다. 은학의 관모가 은결의 등을 따라 미끄러졌고, 은결이 다른 손으로 관모를 받아 형의 머리에 도로 씌웠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은학은 거꾸로 매달려 무승들의 짚신 바닥을 하나씩 보았다.
“조사 방해에 관한 고지.” 은학이 은결의 등에 대고 말했다. “첫 번째입니다.”
“응.”
“관원을 들어 옮기는 일은 계율로는 어떻게 됩니까?”
“몰라. 스님들한테 물어봐.”
은결은 계단 맨 아래에 이르러 형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은행잎을 발로 쓸어 낸 다음, 깨끗한 자리에 세웠다. 은학은 관복 앞섶을 털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원진이 비켜 섰다. 일곱 무승이 서로 얼굴을 보다가 길을 텄다. 이제 진은 은결 하나였다.
두 번째로 들렸을 때 은학은 은결의 어깨 너머로 산문 현판을 거꾸로 읽었다. 「寺林少」. 계단 위에서 빗자루를 든 사미승들이 몰려나와 난간에 매달렸다. 누가 큰 소리로 숫자를 셌다.
“둘!”
“조사 방해에 관한 고지, 두 번째.”
“형, 무거워졌어.”
“관아 밥이 너보다 낫다.”
“거짓말.” 은결이 계단 중간에서 숨을 골랐다. 어깨 위에서 형의 갈비뼈가 손바닥에 하나하나 잡혔다. 은결이 걸음을 늦췄다. “어머니는?”
“네가 한 번 내려와 보면 알지.”
“바빠.”
“솥 여섯이 바쁘지. 너는 솥을 젓는 사람이고.”
은결은 대답 대신 형을 계단 아래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은행잎을 쓸어 주지 않았다.
세 번째로 들렸을 때는 은결의 숨이 거칠었다. 은학은 무게를 늘리려고 두루마리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종이 스무 걸음치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은결이 내려가다 말고 계단 중간에 멈추어 섰다.
“형 목이 날아간다며. 그럼 도망가. 남쪽으로 가든지.”
“도망가면 다음 서리 목이다. 옆자리 둘 중 하나겠지. 둘 다 기침을 잘한다.”
“그게 형 일이야?”
“고을 일이다.” 은학이 거꾸로 매달린 채 말했다. “칙령이 내려왔고, 변방 병사들은 솜옷이 없다. 누가 대신 들지 않으면 내가 든다.”
“셋!” 난간의 사미승들이 소리쳤다.
은결이 형을 계단 맨 아래에 내려놓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땀이 났는지 손바닥이 번들거렸다. 은학은 관모를 고쳐 쓰고 두루마리를 내려다보았다. 끝을 잡아 풀기 시작했다.
“뭐 해?”
“무게를 늘린다.”
은학은 고지서 끝을 허리에 대고 몸을 천천히 돌렸다. 종이가 관복 위로 한 바퀴, 두 바퀴 감겼다. 스무 걸음치가 다 감기자 은학은 누에고치처럼 둥글어졌고, 목 아래로 「사백 년 체납 세금 고지서」의 「체납」 두 글자만 비스듬히 나와 있었다. 은학은 계단 네 번째 칸에 누웠다.
“이제 들어 보십시오.”
은결이 형을 내려다보았다. “종이가 찢어지잖아.”
“관아에서 낸 문서를 찢으면 문서 훼손이다. 훼손한 사람은 관아에 가서 따로 조사를 받는다. 조사를 받으러 오면 나는 계단 아래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형, 그건 반칙이야.”
“절차다.”
계단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굵고 낮은 웃음이 한 번 터지고, 염주가 손바닥에 부딪는 소리가 이어졌다. 혜공이 웃고 있었다. 난간의 사미승들이 놀라 서로 얼굴을 보았다. 원진은 곤봉을 짚고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떨렸다.
혜공이 계단을 두 칸 내려왔다.
“올라오게, 노 서리.”
“감겨서 못 일어나겠습니다.”
원진이 내려와 곤봉 끝을 내밀었다. 은학은 곤봉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곤봉을 붙잡은 것은 관원이었으니 무승이 관원에게 손을 댄 것은 아니었다. 원진은 은학의 손과 곤봉을 번갈아 보며 계율에 어긋난 데가 없는지 한참 따졌다. 은학이 고치 같은 몸으로 한 칸씩 올라가는 동안 은결은 맨 아래 칸에 서서 따라오지 않았다.
*
계단 꼭대기에서 혜공은 은학을 대웅전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담을 따라 돌아 공양간 뒷마당으로 갔다. 은학은 몸에 감긴 종이를 한 바퀴씩 풀면서 걸었고, 원진이 풀린 종이 끝을 들고 뒤를 따랐다. 사미승 셋이 원진 뒤에 붙어 종이 중간을 받쳤다. 혼례 행차처럼 길었다.
뒷마당 문을 넘자마자 김이 얼굴을 덮었다. 솥 여섯이 한 줄로 아궁이에 앉아 있었고, 아궁이마다 장작이 튀었다. 좁쌀이 퍼지는 냄새가 무겁게 깔려 숨을 쉴 때마다 입안이 텁텁했다. 솥 앞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서 있을 힘이 없는 사람은 담에 등을 붙였고, 아이들은 어른 다리 사이에 끼어 있었다. 마당 끝에서 담 밖까지 머리가 이어졌다. 은학은 사람을 세려다가 그만두었다. 관아 문서에는 삼천이라고 적혀 있었고, 마당은 문서보다 넓었다.
장 영감도 있었다. 아까 산길에서 사발을 끌어안던 노인이었다. 은학의 관복을 보더니 사발을 무릎 사이에 숨겼다.
“여기서 읽게.” 혜공이 말했다.
은학은 혜공을 보았다.
“고지 절차라고 했지. 절차는 받을 사람에게 읽어 주는 것 아닌가? 이 사람들이 소림의 땅에서 나는 것을 받아 가네. 세금을 걷으면 이 사람들의 몫이 줄어드니, 이 사람들도 받을 사람이지.” 혜공이 염주를 한 알 굴렸다. “고지서를 소리 내어 읽게. 사백 년 치 전부.”
솥 앞에서 죽을 젓던 무승 하나가 주걱을 멈추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이쪽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관복을 알아보고 옆 사람의 팔을 쳤다. 수군거림이 마당 끝까지 퍼졌다가, 끝에서부터 조용해졌다.
은학은 손바닥의 땀을 관복에 닦았다. 사백 년 치를 다 읽으면 해가 진다. 해가 지면 죽이 식는다. 읽지 않으면 고지 절차는 여기서 끊기고, 섣달 그믐은 그대로 온다. 혜공은 두 가지를 다 알고 마당 한가운데를 비워 주었다. 장 영감이 무릎 사이에서 사발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빈 사발이 돌바닥에 닿는 소리가 마당에 똑똑히 들렸다.
“나리, 읽지 마시오.” 담 밑에서 아낙 하나가 소리쳤다. 아까 장 영감의 소매를 당기던 아낙이었다. “죽 식소. 애들 배곯소.”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사백 년을 어찌 빨리 읽소?”
마당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웃음 끝에 욕이 섞였다. 은학은 웃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장 영감 앞으로 한 걸음 갔다.
“영감님, 아까 이장이 소를 끌고 갔다고 하셨지요. 영감님 갑에 빈 세금이 있었다고요.”
“그랬소.”
“빈 세금은 땅이 있는데 세금을 안 내는 집에서 생깁니다. 고을이 나라에 바칠 몫은 줄지 않으니, 빈 만큼 남은 집이 메웁니다. 영감님의 누렁이는 그 빈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은학은 마당을 한 번 둘러보았다. “소림의 땅이 세금을 안 내면, 그 몫도 어딘가로 갑니다. 여기 계신 분들 집으로 갑니다.”
“그러면 우리 죽을 줄여서 우리 세금을 줄여 주겠다는 말이오?” 장 영감이 사발을 집어 들었다. “나리 말은 늘 그렇게 앞뒤가 맞소. 맞는데 배가 고프오.”
혜공이 은학을 보았다. 이기려고 꺼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얼굴이었고, 그래서 더 물러서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궁이 하나에서 장작이 무너지며 불티가 솟았다.
원진이 종이 끝을 은학에게 넘겼다. 은학은 종이를 받아 펼쳤다. 첫 줄은 북송 정화 3년 가을이었다. 은학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솥 여섯에서 김이 올라와 종이의 먹 글씨가 조금씩 번졌다.
“북송 정화 3년, 가을 세금.”
맨 앞줄의 아이 하나가 은학을 올려다보았다. 입가에 좁쌀 한 알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