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712자)
기타 버튼
퇴직금으로 차린 카페 · 탁은담
슈퍼바이저의 차에서는 새 차 냄새 방향제가 났다. 진짜 새 차는 접착제와 가죽 냄새가 섞여 시큼하고, 방향제는 진짜 새 차를 흉내 낸 단내가 난다. 10월 12일 오전 열 시, 도석은 유리문이 열리기 전에 누가 왔는지 알았다.
슈퍼바이저는 서른하나, 목에 사원증을 걸고 태블릿을 옆구리에 끼고 들어왔다. 개점 때 인테리어 검수를 맡았던 사람이었다. 그날은 조명 색을 칭찬하고 샌드위치를 두 개 먹고 갔다.
“사장님, 정기 점검입니다. 상무님이 이번엔 꼼꼼하게 보라고 하셔서요.”
“지난주에 전화를 일곱 번 했습니다.”
“아, 그게, 제가 요즘 매장이 마흔 곳이라서요.”
슈퍼바이저는 점검표를 띄우고 하나씩 짚었다. 원두 보관 온도, 제빙기 필터 교체일, 우유 유통기한, 시럽 펌프 세척. 도석은 막힘없이 보여 주었다. 연구소에서 스물두 해 동안 감사를 받은 사람이었다. 점검표의 칸이 초록색으로 차는 동안 슈퍼바이저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마지막 줄에서 슈퍼바이저가 하부장 문을 열었다.
귤껍질 시럽 병, 볶은 보리 봉지, 저며서 꿀에 재운 생강 병이 나란히 있었다. 병마다 도석의 글씨로 날짜가 붙어 있었다.
“이건 본사 원재료가 아니네요.”
“제가 만든 겁니다. 손님 몇 분 드리려고요.”
“포스에 「기타」로 찍히는 게 이거죠? 상무님이 그거 보고 오라고 하셨어요.”
슈퍼바이저는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빨간 글씨 칸이 하나 열렸다. 「원재료 외부 조달 — 1차 경고」
“점검표에 귤껍질을 넣을 칸이 없어서 경고 칸에 넣습니다. 세 번이면 계약 해지 사유고요.”
“귤껍질 하나로 해지입니까?”
“귤껍질 하나가 아니라 원칙 하나라서요. 사장님 가게에서 배탈 나면 뉴스에는 달그락이 나와요. 너울마을점이 아니라요.”
맞는 말이었다. 도석은 반박할 말을 찾다가 하부장 문을 닫았다. 연구소에서도 같은 말을 했었다. 맛있는 시약보다 기록이 남는 시약을 쓰라고, 후배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다.
“이 병들이 뭔지 설명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나는 길 건너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손님 몫이고, 하나는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님 몫이고…….”
“사장님.”
슈퍼바이저가 태블릿을 내렸다.
“제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건 아셨으면 좋겠어요.”
경고장이 단말기 옆 프린터에서 나왔다. 종이에서 토너 냄새가 났다. 도석은 종이를 접지 않고 계산대 밑에 넣었다. 슈퍼바이저는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다시 돌아왔다.
“근데요. 그 귤 거, 한 잔만 주시면 안 돼요? 마신 건 기록에 안 남길게요.”
도석은 한 잔을 내렸다. 슈퍼바이저는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한참 있다가 사원증을 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저희 엄마가 겨울에 귤껍질 말렸어요. 베란다에서.”
슈퍼바이저는 커피값을 내고 갔다. 경고장은 계산대 밑에 그대로 있었다.
*
오후 두 시, 단미가 쉬는 시간에 나갔다. 도석은 우유를 데우다가 유리문 너머를 보았다. 상가 앞 꽃집 벤치에 단미가 앉아 있었고, 옆에 민트색 니트가 앉아 있었다. 채홍이었다. 채홍은 손을 크게 움직이며 말했고, 단미는 꽃집 화분만 보았다. 채홍이 무언가를 건넸다. 작은 종이였다.
이십 분 뒤 단미가 돌아왔다. 앞치마를 다시 두르는 단미에게서 섬유유연제 두 종류와 머리에 바르는 무언가의 냄새가 났다.
“점장 왔다 갔지?”
“냄새로 알아요? 사장님 진짜 무서워요.”
단미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계산대에 놓았다. 「달그락커피 판교 플래그십 · 점장 육채홍 · Brand Experience Lead」
“매니저 자리래요. 정규직이고, 사대보험이고, 연봉 삼천삼백이요. 십이월 개점 전까지 답 달래요.”
도석은 명함을 집지 않았다. 지금 단미에게 주는 시급으로는 한 해를 꽉 채워도 삼천삼백이 안 나왔다. 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라고 하실 거예요, 하지 말라고 하실 거예요?”
“네가 정할 일이야.”
“그 말 제일 싫어요. 우리 엄마도 그 말 하고 제 학자금 대출 보증 안 서 줬어요.”
단미는 웃으면서 말했고, 웃는 입과 달리 손은 스팀 노즐을 세게 닦았다. 도석은 같은 자리를 두 번 닦는 단미의 손을 보았다.
“답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말해 줘. 그것만.”
“그건 할게요.”
단미는 명함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넣는 손이 빨랐다.
*
저녁 여덟 시, 집 부엌에서는 된장찌개에 넣은 애호박이 달게 익는 냄새가 났다. 도석은 가게를 단미에게 맡기고 저녁을 먹으러 올라왔다. 윤옥은 식탁에 휴대전화 두 대를 세워 놓고 있었다. 한 대는 학부모 단톡방이었고, 한 대는 학교 교무실 메신저였다. 두 화면이 번갈아 울렸다.
“들어 봐. 「고2 3반 학부모방」 「플래그십 이 층에 스터디존 생긴대요」, 「아이들 독서실 대신 보내도 되겠네요」, 「거기 사장님이 3반 강재 아빠라던데요?」”
“사장 아니야. 나는 길 건너 작은 데 사장이야.”
“그러니까 내가 정정했지. 「큰 데는 본사가 직접 하는 데고 저희는 작은 데예요」 그랬더니 다들 「아~」 하고 조용해졌어. 그 「아~」가 무슨 「아~」인지 알아?”
“모르겠는데.”
“불쌍하다는 「아~」야.”
윤옥은 찌개를 떠서 도석 그릇에 덜었다. 윤옥은 초등학교 교무행정사였고, 하루 종일 공문과 학부모 전화를 받았다. 저녁에는 말이 두 배로 빨라졌다.
“근데 당신,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앞치마에 토너 냄새나.”
“토너 냄새를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나 교무실에서 일해. 프린터 냄새로 하루를 사는 사람이야. 당신만 코 있는 거 아니거든.”
도석은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렸다. 경고장 이야기를 하면 경고가 왜 나왔는지를 말해야 했고, 숨은 메뉴 이야기를 하면 재료비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말해야 했다. 줄줄이 따라가면 맨 끝에 오천만 원이 있었다.
“본사에서 점검 나왔어. 별일 없었어.”
“별일 없는데 왜 숟가락을 내려놔?”
“찌개가 뜨거워서.”
“당신 연구소 다닐 때도 뜨거운 거 잘 먹었잖아.”
윤옥은 휴대전화 하나를 들어 기사를 보여 주었다. 「커피 프랜차이즈 달그락, 싱가포르 투자 유치 추진… 직영 매장 늘린다」 기사 속 사진에 회색 코트가 작게 찍혀 있었다.
“이거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단톡방에서는 좋은 거래. 회사가 커지면 우리 가게도 같이 큰대.”
“큰집이 커지면 작은집도 큰다고?”
“응. 그렇게 말하더라.”
강재가 방에서 나와 물을 마시고 다시 들어가며 한마디를 놓고 갔다.
“엄마, 단톡방에서 큰다는 거 다 믿으면 우리 집은 벌써 강남 갔어.”
윤옥은 강재의 방문을 노려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도석은 웃음소리가 가라앉기 전에 찌개를 다 먹고 일어났다. 신발을 신으며 정자동 가게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
밤 열 시 반, 분당 정자동 카페거리는 문 닫은 가게가 반이었다. 달그락 정자점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간판의 민트색이 너울마을점보다 한 톤 바래 있었고, 문을 열자 소독약과 오래 쓴 원두 통의 기름 냄새가 같이 왔다. 아홉 해 동안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내린 가게의 냄새였다.
금예란은 의자를 테이블 위에 올리다가 돌아보았다. 쉰넷, 짧은 파마머리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너울마을? 생각보다 늙었네. 대화방 말투 보고 서른 몇인 줄 알았어.”
“마흔여덟입니다.”
“영포티네.”
“영포티는 마흔 초반입니다.”
“그걸 따지는 게 영포티야.”
예란은 의자 두 개를 도로 내려놓고 앉으라고 턱짓을 했다. 도석은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야근 귤을 따랐다. 예란은 냄새를 맡고 한 모금 마시더니 잔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본사가 알면 경고 먹어.”
“먹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예란이 처음으로 소리 내서 웃었다. 웃음 끝에 기침이 섞였다.
“아홉 해 전에 여기서 백오십 미터 떨어진 데 직영점이 들어왔어. 그때 본사 사람들도 상권이 커진다고 했지. 커지긴 했어. 직영점 앞엔 줄이 길었는데 우리 가게 앞은 비었어. 직영점은 두 해 뒤에 닫았어. 본사는 테스트가 끝났다고 했고. 나는 그 두 해 동안 모은 돈 절반을 가게에 부었고.”
“그래서 협의회를 하자는 겁니다.”
“협의회.”
예란은 고무장갑을 벗어 테이블에 던졌다.
“세 번 만들었어. 세 번 다 깨졌고. 한 번은 대표가 본사 지역장으로 갔어. 한 번은 단톡방에서 누가 뭘 캡처해서 본사에 보냈고. 나머지 한 번은 말 안 할래. 아직 창피해.”
“이번엔 다를 겁니다.”
“다들 그렇게 말했어. 너울마을 사장님은 뭐가 다른데?”
도석은 대답을 찾다가 잔을 가리켰다.
“이게 다릅니다. 본사는 이걸 못 만듭니다. 손님 한 명 한 명 냄새를 맡아야 나옵니다.”
“그게 무기라고? 그거 때문에 오늘 경고 먹었다며.”
예란은 휴대전화를 들어 녹음 버튼을 눌렀다. 도석 앞에서 남편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여보, 나 좀 늦어. 너울마을에서 웬 영포티가 와서 귤 커피를 먹이네. 맛은 있어. 끊어.”
예란은 휴대전화를 엎어 놓고 도석을 보았다. 웃음기가 빠진 얼굴이었다.
“하나만 알려 줄게. 이번 상무 엄혜지지? 걔 일 잘해. 직영점 낼 때마다 그 동네 상가 번영회부터 찾아가. 점주 하나가 시끄러워지기 전에 동네를 먼저 사. 싱가포르 돈 받으려고 올해 아주 미쳤다던데. 너네 상가 게시판 내일 아침에 봐.”
“협의회는요?”
“너 혼자 시끄러운 거 끝까지 버티면, 그때 다시 와. 혼자 말고.”
예란은 고무장갑을 다시 끼고 의자를 하나씩 테이블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도석이 일어날 때까지 쳐다보지 않았다.
*
이튿날 아침 일곱 시, 도석은 상가 복도 게시판 앞에서 멈췄다. 참기름 냄새와 스팀 냄새 사이에 새 종이의 잉크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엊저녁까지 없던 공고가 압정 네 개로 붙어 있었다.
「너울마을 상가 번영회 설명회 — 달그락커피 플래그십과 함께하는 상가 상생 방안」
「10월 14일(목) 저녁 일곱 시 · 2층 수학학원 강의실 · 다과 제공(달그락커피 협찬)」
맨 아래에 번영회장의 도장이 빨갛게 찍혀 있었고, 도장 옆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참석 점포에 공동 쿠폰 우선 배정」
반찬가게 할머니가 시금치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다가 공고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사장, 다과는 사장네 큰집이 낸대. 거기 가면 사장 커피 나오는 거야?”
“안 나올 겁니다.”
“그럼 안 가. 남의 집 커피는 써.”
할머니가 지나가자 복도 끝 부동산 유리문이 열렸다. 믹스커피와 인주 냄새가 먼저 나왔고, 번영회장이 뒤따라 나왔다. 예순둘, 상가 1층에서 스무 해 동안 부동산을 한 사람이었고, 너울마을점 자리도 번영회장이 중개했다. 번영회장은 도석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마 사장, 공고 봤지? 목요일에 와. 와서 박수만 쳐. 본사가 상가 외벽 칠도 해 준대. 우리 상가 칠 벗겨진 거 십 년 됐어.”
“회장님, 길 건너가 같은 간판입니다. 제 가게 손님이 건너갑니다.”
“건너갔다가 돌아와. 사람은 원래 큰 데 구경하고 작은 데서 사는 거야. 내가 이 동네 집 사고파는 거 스무 해 봤어.”
“집이랑 커피는 다릅니다.”
번영회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 줄었다.
“마 사장. 가게 계약할 때 내가 그 자리 권리금 깎아 준 거 기억하지? 목요일에 와서 분위기 깨지 마. 상가가 한목소리를 내야 본사가 돈을 더 줘.”
번영회장은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에 붙은 매물 종이들이 흔들렸다. 도석은 게시판 앞에 혼자 남아 압정 하나를 눌러 박았다. 헐거운 데가 없었다. 공고 어디에도 너울마을점의 자리는 없었다. 도석은 휴대전화를 꺼내 목요일 저녁 일곱 시에 알림을 맞췄다. 박수를 치러 가는 알림은 아니었다.
도석은 압정 하나를 눌러 박았다. 헐거운 데가 없었다. 공고 옆에 도석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