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78자)

가림막

퇴직금으로 차린 카페 · 탁은담

여섯 시 사십 분⁠, 상가 복도에서는 참기름 냄새가 먼저 났다⁠. 반찬가게 손맛찬방의 할머니가 시금치를 무치는 시간이었다⁠. 세탁소 셔터 밑으로는 다리미 스팀이 낮게 기어 나왔고⁠, 밤새 젖은 은행잎이 유리문 앞에 눌어붙어 들큼한 냄새를 냈다⁠. 마도석은 열쇠를 돌리기 전에 숨을 한 번 길게 들이마셨다⁠. 냄새로 아침을 확인하는 버릇은 새말식품 향료연구소에서 스물두 해 동안 몸에 붙었고⁠, 희망퇴직 서류에 도장을 찍은 뒤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달그락커피 너울마을점은 판교 너울마을 7단지 상가 1층 끝에 있었다⁠. 열여섯 석⁠, 민트색 간판⁠, 칠월 첫날에 연 가게였다⁠. 도석은 에스프레소 기계의 전원을 올리고 그라인더 날을 닦았다⁠. 기계가 데워지는 이십 분 동안 원두 봉지를 열어 냄새를 맡고⁠, 우유 냉장고 온도를 보고⁠, 계산대 옆 작은 칠판을 뒤집어 뒷면의 분필 글씨를 고쳐 썼다⁠. 앞면에는 본사가 정한 메뉴가 인쇄돼 있었고⁠, 뒷면에는 도석이 지은 음료 일곱 가지가 적혀 있었다⁠.

일곱 시 이 분 전⁠, 도석의 코에 낯선 냄새가 들어왔다⁠. 톱밥과 실리콘⁠, 갓 자른 석고 보드의 분필 같은 냄새였다⁠. 찻길 건너에서 오는 냄새였다⁠.

“⁠사장님⁠.⁠”

출근한 주단미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며 뒤를 가리켰다⁠. 스물넷⁠, 개점 날부터 같이 일한 바리스타였다⁠. 단미는 앞치마 끈을 묶으면서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간판이 길 건너에 하나 더 생겼어요⁠. 저게 거울이에요⁠, 아니면 제가 아직 덜 깼어요⁠?⁠”

도석은 유리문 앞으로 갔다⁠. 문 닫은 은행 건물이 통째로 가림막에 싸여 있었다⁠. 가림막은 도석의 앞치마와 같은 민트색이었고⁠, 위에서 아래까지 흰 글씨가 박혀 있었다⁠.

「⁠달그락커피 판교 플래그십 · 2027년 12월 오픈 · 120석⁠」

*

도석은 찻길을 건넜다⁠. 오른손에 은색 우유 스팀 피처를 쥔 채였다⁠. 내려놓는 것을 잊었다⁠. 희끗한 짧은 머리 위로 아침 해가 들었고⁠, 짙은 눈썹 밑으로 가림막의 흰 글씨가 너무 크게 들어왔다⁠. 둥근 배 위로 민트색 앞치마가 출렁였고⁠, 앞치마 안 체크무늬 남방은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그대로였다⁠.

현장 소장은 안전모를 벗고 도면을 접었다⁠.

“⁠카페 사장님이세요⁠? 저희는 인테리어만 해요⁠. 누가 들어오는지는 저기 써 있는 대로고요⁠.⁠”

“⁠같은 회사가 길 건너에 가게를 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건 본사에 물어보셔야죠⁠. 오늘 열한 시에 본사 분들 오신대요⁠.⁠”

도석은 가게로 돌아오며 담당 슈퍼바이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일곱 번 가고 끊겼다⁠. 대신 본사 점주 앱에 알림이 떴다⁠.

「⁠점주님⁠, 판교 플래그십 오픈 소식을 공유드립니다⁠. 상생의 시너지를 기대해 주세요 :⁠)⁠」

웃는 얼굴 표시가 도석의 엄지 밑에서 웃고 있었다⁠. 바로 위에 아내 하윤옥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여보 길 건너 이 층짜리 카페 생긴대⁠. 단톡방 난리 났어 ㅋㅋ 플래그십 오면 학원가 집값 오른대⁠」

「⁠당신 가게랑 같은 데라던데 그럼 우리 거야⁠?⁠」

도석은 「⁠아니야⁠」를 쳤다가 지우고⁠, 「⁠저녁에 얘기해⁠」를 보냈다⁠. 화면 위로 은행 앱 알림이 한 줄 미끄러져 내려왔다⁠. 「⁠10월 10일 신용대출 이자 출금 예정⁠」 도석은 알림을 옆으로 밀어 지웠다⁠. 윤옥은 가게에 퇴직금 이억만 들어간 줄 알았다⁠. 오천만 원은 도석 혼자 아는 돈이었다⁠.

“⁠사장님⁠, 카드 단말기에 사장님 피처 자국 났어요⁠.⁠”

단미가 행주로 단말기를 닦았다⁠. 도석은 그제야 스팀 피처를 내려놓았다⁠. 손잡이에 손바닥 땀이 둥글게 남아 있었다⁠.

*

아홉 시 반이 되자 늘 오는 사람들이 왔다⁠. 맨 먼저 들어온 손님은 길 건너 테크노밸리에서 밤을 새운 개발자였다⁠. 서른둘⁠, 후드 끈이 짝짝이였고⁠, 몸에서 모니터 열기와 식은 김밥 냄새가 났다⁠. 개발자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뒷면이요⁠.⁠”

도석은 귤껍질 병을 열었다⁠. 지난겨울 귤을 까서 껍질만 말리고⁠, 설탕에 재워 시럽으로 졸인 병이었다⁠. 뚜껑이 열리자 가게 안의 공기가 한 칸 밝아졌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 내리고⁠, 시럽을 한 숟가락 반 넣고⁠, 우유를 데워 위에 얹었다⁠. 개발자가 처음 왔던 날 도석이 맡은 냄새는 사무실 공기에 지친 사람의 냄새였고⁠, 개발자가 한 말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도석은 집에서 겨울에 귤 까던 냄새를 떠올렸다⁠. 그렇게 나온 음료가 뒷면 첫 줄의 「⁠야근 귤⁠」이었다⁠.

“⁠사장님⁠, 길 건너에 저거 뭐예요⁠? 회사 사람들 벌써 단톡방에서 투표해요⁠. 이 층 창가 콘센트 몇 개냐고⁠.⁠”

“⁠같은 회사야⁠. 본사가 직접 하는 데⁠.⁠”

“⁠그럼 저기서도 야근 귤 팔아요⁠?⁠”

“⁠아니⁠. 저기는 뒷면이 없어⁠.⁠”

개발자는 잔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이 길었다⁠. 그러고는 영수증을 받으며 말했다⁠.

“⁠콘센트는 여기가 두 개 적어요⁠. 그건 알고 계세요⁠.⁠”

뒤이어 반찬가게 할머니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일흔셋⁠, 손등에 참기름이 번들거렸다⁠. 할머니는 봉지를 계산대에 올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시금치 남아서 가져왔어⁠. 근데 사장⁠, 저 길 건너 거기 사장네 큰집이야⁠?⁠”

“⁠큰집은 아니고⁠, 본사요⁠.⁠”

“⁠본사면 큰집이지 뭐야⁠. 큰집이 작은집 앞에 밥상을 더 크게 차리는 법이 어딨어⁠?⁠”

할머니는 시금치 봉지를 두드려 주고 나갔다⁠. 도석은 봉지에서 올라오는 참깨 냄새를 오래 맡았다⁠. 고소한 냄새 밑에 덜 볶은 깨의 풀내가 조금 남아 있었다⁠. 할머니가 직접 볶은 깨였다⁠.

*

열한 시 칠 분⁠, 검은 승용차가 공사장 앞에 멈췄다⁠. 먼저 내린 사람은 서른 초반의 남자였다⁠. 민트색 니트에 흰 운동화⁠, 머리에는 무언가를 바른 반짝임이 있었다⁠. 뒤이어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내렸다⁠. 여자는 가림막을 올려다보지 않고 휴대전화를 보며 걸었다⁠.

도석이 다가가자 남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직영점 점장 육채홍입니다⁠. 아⁠, 너울마을점 사장님이시죠⁠? 체크남방 보고 바로 알았어요⁠. 판교 개발자 코어 느낌 좋으시네요⁠.⁠”

“⁠개발자 아닙니다⁠.⁠”

“⁠그러니까 코어죠⁠. 요즘 영포티 분들 그 룩 많이 하세요⁠.⁠”

여자가 휴대전화를 내렸다⁠. 마흔 중반⁠, 머리를 낮게 묶었고⁠, 코트 깃에서 서늘한 시더우드 향이 났다⁠. 비싼 향수는 처음 맡을 때 차갑고 뒤로 갈수록 나무 냄새가 남는다⁠. 도석은 사람보다 향을 먼저 기억했다⁠.

“⁠달그락에프앤비 사업전략 상무 엄혜지입니다⁠. 마도석 사장님⁠, 향료연구소 계셨던 분 맞으시죠⁠? 가맹 상담 기록에서 봤어요⁠.⁠”

“⁠같은 간판을 길 건너에 내시면서 연락 한 통 없으셨습니다⁠.⁠”

“⁠오늘 드리려고 왔어요⁠.⁠”

혜지는 도석의 가게를 손으로 가리켰다⁠.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요⁠? 커피 한 잔 사겠습니다⁠. 제 돈으로요⁠.⁠”

*

창가 두 번째 자리에 혜지가 앉았다⁠. 채홍은 가게 안을 휴대전화로 찍다가 단미의 눈과 마주치고 화면을 내렸다⁠. 도석은 혜지 앞에 아메리카노를 놓았다⁠. 혜지는 잔을 들기 전에 냄새를 먼저 맡았다⁠. 도석은 이 사람을 조금 다르게 보기로 했다⁠.

“⁠추출이 좋네요⁠. 본사 원두로 이 맛이면 사장님 손이에요⁠.⁠”

혜지가 태블릿을 돌려 놓았다⁠. 막대그래프 두 개가 있었다⁠. 「⁠대전 둔산 · 부산 서면 — 직영점 개점 후 1년⁠, 반경 1km 가맹점 평균 매출⁠」 막대는 둘 다 위로 자라 있었다⁠.

“⁠직영점은 상권을 키웁니다⁠. 사람들은 큰 매장을 보러 왔다가 다음 날 가까운 데서 같은 커피를 사요⁠. 대전도 부산도 근처 가맹점 매출이 한 해 사이 십 퍼센트 넘게 올랐어요⁠. 사장님 가게도 같이 올라갑니다⁠.⁠”

“⁠둔산하고 서면은 역 앞입니다⁠. 여기는 아파트 상가예요⁠. 손님이 정해져 있습니다⁠. 칠천 세대가 길 건너로 가면 저는 무엇을 팝니까⁠?⁠”

“⁠같은 커피요⁠. 더 가까운 데서⁠.⁠”

“⁠팔십 미터입니다⁠. 신호등 하나 건너면 됩니다⁠.⁠”

“⁠영업지역은 지켰습니다⁠.⁠”

혜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받침에 닿는 소리가 작았다⁠.

“⁠계약서 영업지역 칸⁠, 다시 한번 보세요⁠. 「⁠너울마을 7단지 상가 1층⁠」 상가 건물이에요⁠. 찻길 건너는 영업지역 밖입니다⁠.⁠”

도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계약하던 날이 떠올랐다⁠. 인테리어 도면을 넘기며 조명 색과 의자 높이를 한 시간 동안 따졌고⁠, 영업지역이 적힌 장은 서명란만 찾아 넘겼다⁠. 연구소에서는 시약 병의 작은 글씨까지 읽던 사람이었다⁠.

계산대에서 단미가 우유 거품을 내는 소리가 났다⁠. 일부러 길게 내는 소리였다⁠.

“⁠제가 퇴직금 이억을 넣었습니다⁠. 석 달 됐습니다⁠.⁠”

“⁠알아요⁠. 사장님 같은 분이 많아요⁠. 그래서 본사가 커져야 해요⁠.⁠”

혜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혜지는 화면을 보고 일어나 문 쪽으로 몇 걸음 가서 영어로 받았다⁠. “⁠Yes⁠. Thursday⁠. Singapore team will join⁠.⁠” 짧게 끊은 혜지가 돌아와 다시 앉았다⁠. 표정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혜지의 눈이 계산대 옆 칠판으로 갔다⁠. 칠판은 앞면을 보이고 있었다⁠.

“⁠뒷면에는 뭐가 있어요⁠? 너울마을점 포스 매출에서 「⁠기타⁠」 버튼이 열에 셋이더라고요⁠. 전국에서 이런 가게가 없어요⁠. 메뉴에 없는 걸 무엇으로 만들어 파시는지⁠, 다음 주에 슈퍼바이저가 와서 볼 거예요⁠.⁠”

도석은 칠판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것이 더 티가 났다⁠.

혜지는 커피값을 동전까지 맞춰 계산대에 놓았다⁠. 채홍이 문을 열어 주며 단미에게 윙크를 했고⁠, 단미는 행주로 단말기를 한 번 더 닦았다⁠.

“⁠사장님⁠, 저 사람 니트에서 섬유유연제 세 종류 냄새가 섞였어요⁠.⁠”

“⁠두 종류야⁠. 하나는 머리에 바른 거고⁠.⁠”

단미가 처음으로 웃었다⁠. 도석은 따라 웃지 못했다⁠.

*

밤 아홉 시 오십 분⁠, 마감한 가게에는 식은 원두 기름 냄새만 남았다⁠. 도석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가맹계약서 사본을 넘겼다⁠. 영업지역은 네 번째 장 아래에 있었다⁠. 혜지가 말한 글자 그대로였다⁠.

유리문을 누가 두드렸다⁠. 아들 강재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서 있었다⁠. 2층 수학학원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아빠⁠, 학원 창문에서 공사장 다 보여⁠. 크레인도 민트색이야⁠.⁠”

“⁠크레인은 원래 노란색이야⁠.⁠”

“⁠그러니까⁠. 민트색이라고⁠.⁠”

강재는 진열장에서 남은 스콘 하나를 꺼내 계산대에 오천 원을 놓았다⁠. 도석이 돈을 밀어 주자 강재가 다시 밀어 놓았다⁠.

“⁠엄마가 가게 매출 걱정된다고 사 먹으래⁠.⁠”

강재가 아파트 쪽으로 사라지자 윤옥의 메시지가 왔다⁠.

「⁠저녁에 얘기한다며⁠. 저녁 지났어⁠. 지금 밤이야⁠」

「⁠단톡방에서 그러는데 플래그십 생기면 우리 가게는 분점 되는 거래⁠. 분점이면 좋은 거 아냐⁠?⁠」

도석은 「⁠분점 아니야⁠. 그냥 옆집이야⁠. 큰 옆집⁠」이라고 보냈다⁠. 답이 바로 왔다⁠. 「⁠큰 옆집이면 큰집이네⁠」 오늘 하루 같은 말을 두 번 들었다⁠. 도석은 점주 앱을 열었다⁠. 알림을 꺼 둔 방이 하나 있었다⁠. 「⁠달그락 점주 소통방 · 412⁠」 본사 공지와 원두 입고 날짜와 고장 난 제빙기 사진이 섞여 흐르는 방이었다⁠. 도석은 한 글자씩 쳤다⁠.

「⁠너울마을점입니다⁠. 길 건너 팔십 미터에 본사 직영점이 들어옵니다⁠. 같은 일을 겪으신 점주님 계십니까⁠?⁠」

보내기를 누르자 방이 조용해졌다⁠. 십 분 동안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도석이 앞치마를 벗어 걸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프로필 사진이 없는 계정이었다⁠. 이름 옆에 「⁠정자점⁠」이라고 붙어 있었고⁠, 마지막으로 말한 날짜가 두 해 전이었다⁠.

「⁠있었지⁠. 나⁠. 아홉 해 전에⁠.⁠」

곧이어 한 줄이 더 왔다⁠.

「⁠영업지역 상가 한 동이지⁠? 그럼 이미 끝났어⁠.⁠」

도석은 피처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고 답을 썼다⁠.

「⁠안 끝났습니다⁠. 내일 밤 찾아뵙겠습니다⁠. 주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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