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595자)
기부 약정
사십 년 만의 동창회 · 석담율
수요일 아침 아홉 시, 단톡방에 꽃 사진이 올라오기 전에 공지가 먼저 올라왔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탁산건설 대외협력팀」 누가 초대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남고 동창 하나의 조카가 대외협력팀에 다닌다는 말이 나중에 돌았다.
「안녕하십니까. 탁산건설입니다. 저희 회사는 무심 합동 동창회 정기총회에서 느릅실 쉼터 안이 통과될 경우, 동창회 장학회에 십억 원을 기부하겠습니다. 쉼터와 장학금, 두 가지를 함께 이루고자 합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탁산건설이 되겠습니다.」
글 아래에는 회사 로고가 찍힌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하얀 건물 스무 채와 건물 앞에서 웃는 노인들, 그리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 그림 안에 있었다. 노인들도 학생들도 같은 치아 미백 광고처럼 웃고 있었다.
단톡방은 오 분 동안 조용했다. 다들 숫자를 읽느라 바빴다.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손가락으로 세는 사람도 있었다. 그다음 터졌다.
「십억???」 「장학금 이억이 십억으로」 「그럼 싸울 게 없네」 「둘 다 하면 되잖아」 「선옥이 공약 접어야겠네」 「회사 돈은 회사 돈이고 기금은 기금이지」 「십억이면 몇 명이야」 「이백 명」 「한 명에 오백만 원 주면 스무 명」 「계산하지 마 머리 아파」
선옥은 레슨 중이었다. 체르니 삼십 번을 치던 중학생이 선옥의 휴대전화가 피아노 위에서 계속 떨자 손을 멈췄다.
“원장님, 전화 터졌어요.”
“단톡방이야. 계속 쳐.”
“단톡방이 원래 이렇게 울려요?”
“어른들 단톡방은 원래 이래. 계속 쳐.”
중학생은 다시 쳤다. 선옥은 한쪽 귀로 체르니를 듣고 한쪽 귀로 진동을 들었다. 진동은 체르니보다 빨랐다.
*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단톡방 인원이 늘었다. 「삼백열두 명」이 「삼백이십 명」이 되었다가 「삼백삼십일 명」이 되었다. 회비를 안 내던 동창들이 투표하겠다고 회비를 냈다. 십억 소식이 동창들의 동창들에게까지 퍼졌다. 들어올 때마다 알림이 떴다. 「○○○님이 들어왔습니다」 들어온 사람들은 첫인사로 꽃 사진을 올렸다. 단톡방이 꽃밭이 되었다.
목요일 오후, 총무의 음성 메시지가 올라왔다. 숨이 찼다.
“아아, 총무입니다! 회비 십만 원인데 백만 원 보내신 분! 김씨 성 가지신 분! 남고 김씨가 여섯 명이에요! 누구세요? 돌려드려야 돼요! 그리고 선관위원장 업무 때문에 제가 현수막을 아직도 못 뽑았어요! 총회 현수막은 그냥 그거 씁니다! 사십 주년! 이의 없으시죠?”
이의가 서른 개 올라왔다. 다 웃는 이모티콘이었다. 남고 김씨 여섯 명이 차례로 「저 아님」을 올렸다. 일곱 번째로 여고 김씨가 「저예요. 영이 하나 더 붙었네요. 그냥 기금에 넣으세요. 장학금으로.」라고 올렸다. 선옥은 여고 김씨의 글에 박수 이모티콘을 달았다가, 상대 후보 지지자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고 지웠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가 남았다. 지운 흔적이 박수보다 눈에 띄었다.
시청 홈페이지에는 공지가 하나 떴다. 갑분이 단톡방에 퍼 올렸다. 「도시계획위원회 개최 안내 — 7월 5일(월) — 안건: 상당구 느릅실 일원 시니어 복합 휴양단지 조성 계획」 갑분은 공지 아래에 「쉼터 꼭 됩니다!」라고 썼다. 총회는 7월 3일 토요일이었다. 이틀 차이였다. 선옥은 두 날짜를 나란히 놓고 오래 보았다. 의건이 왜 동창회 선거에 십억을 거는지, 날짜가 설명했다.
*
목요일 밤 아홉 시, 나빈이 내려왔다. 초인종도 안 누르고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왔다. 손에 서울 빵집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원장님, 혈압약 드셨어요?”
“먹었어.”
나빈은 인사 대신 냉장고부터 열었다. 반찬통 뚜껑을 하나씩 열고 냄새를 맡았다.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두 개를 꺼내 싱크대에 비웠다. 우유는 날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우유가 지난주 거야. 엄마, 이거 마셨어?”
“냄새 맡고 마셨어.”
“냄새로 마시지 마. 엄마 코는 피아노만 들어.”
“귀겠지.”
“그러니까. 귀로 우유를 마시니까 이러지.” 나빈이 우유를 개수대에 쏟았다. 하얀 줄기가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나빈은 식탁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서른여덟 살 딸이 회사에서 회의를 시작할 때 짓는 얼굴이었다. “토론회 다시 보기 봤어. 세 번.”
“그 채널 조회수 네가 올린 거구나.”
“엄마 땅 얘기 나왔잖아. 리조트 얘기도. 엄마 그거 알면서 나한테는 쑥떡 먹으러 간다고 했어?”
선옥은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식탁 가운데 등기 우편 봉투가 놓여 있었다. 이틀 전에 온 봉투였다. 법무법인 이름이 찍혀 있었다. 나빈이 봉투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이거 열어 봤어?”
“봤어. 땅 사겠대. 값은 만나서 정하재.”
“엄마.” 나빈이 두 손을 식탁에 올렸다. “나 팔월에 전세 만기야. 집주인이 보증금 일억 오천 올려 달래. 못 올리면 나가야 돼. 애들 학교가 거기야. 큰애 이제 겨우 친구 생겼어.”
선옥은 딸의 손을 보았다. 손톱이 짧게 깎여 있었다. 회의 때마다 손톱을 뜯어서 아예 짧게 깎는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 땅 팔아서 보증금 내 달라고?”
“달라는 거 아니야. 빌려 달라는 거야. 아니, 그것도 아니고.” 나빈이 말을 고쳤다. 고칠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 혼자 학원 위층에서 늙으면 어떡해. 학원생도 줄잖아. 이번 달 몇 명이야? 열한 명? 땅 팔면 엄마 노후가 해결돼. 나도 안심이 되고. 그리고 장학금도 회사가 십억 낸다며. 엄마가 원하는 거 다 되잖아. 엄마가 왜 버텨?”
“그 십억에 우리 땅하고 동창회 이름이 붙어 있어.”
“이름이 붙으면 뭐 어때서?”
“이름 붙은 돈은 이름값을 하라고 해.” 선옥은 일어나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가스 불이 파랗게 붙었다. 물이 데워지기 시작하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정미소 자리야. 아빠가 엄마 이름으로 돌려놓은 땅이고.”
“아빠는 땅 팔지 말라고 했어?”
선옥은 대답하지 못했다. 주전자가 낮게 울기 시작했다. 정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기 서류를 내밀며 당신 이름으로 하라고만 했다. 팔라는 말도 팔지 말라는 말도 없었다. 정묵은 늘 그랬다.
“아빠 얘기는 하지 마.”
“왜? 아빠 땅이잖아.”
“할아버지 땅이야.” 선옥이 불을 껐다. 주전자 소리가 꺾였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 땅이야.”
나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위에게서 나빈 휴대전화로 메시지가 왔다. 나빈이 화면을 보고 웃음을 참았다. 선옥에게 화면을 돌려 보여 주었다. 「장모님 이기세요. 집은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 근데 어떻게 하지」 선옥이 웃었다. 나빈도 웃었다. 웃음 끝에 나빈이 말했다.
“엄마, 나 내일 아침 첫차로 올라가. 주말 전에 대답해 줘.”
*
금요일 점심때 영상 통화가 왔다. 요양원 번호였다. 받자 화면 가득 콧구멍이 나왔다. 한봉녀가 휴대전화를 턱 밑에 들고 있었다. 뒤에서 요양보호사가 “어머님, 조금만 멀리요, 멀리!” 하고 외쳤다. 화면이 흔들리며 멀어지자 어머니 얼굴 전체와 휴게실 천장 형광등이 들어왔다.
“십억이 뭐여? 저 집 딸이 그러는디 상렬이 아들이 십억 낸다며.”
“장학금으로 낸대. 쉼터 안 통과되면 안 내고.”
“그럼 통과시키면 되겄네. 십억 받고 쉼터 짓고. 니는 왜 얼굴이 그려?”
“엄마, 그 돈 받으면 느릅실 골짜기에 하얀 건물 스무 채 들어서. 엄마 쉼터는 그 입구에 붙는 열 자리고.”
화면 속 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휴게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고, 누가 화투 패를 내리쳤다.
“열 자리면 나 들어가냐?”
“도장 찍은 집 할머니들이 먼저래. 우리 집은 느릅실에 집이 없잖아.”
어머니가 한참 말이 없었다. 화면이 다시 기울어 천장만 보였다. 천장 너머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는 개울집 할망구 다음이구먼. 그 할망구는 나보다 다섯 살 어려. 나 먼저 죽어.” 요양보호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도 웃었다. 전화가 끊겼다. 끊긴 화면에 선옥의 얼굴이 비쳤다. 웃고 있었는데 입꼬리만 웃고 있었다.
*
토요일 오후, 무심천 둑길에는 장미가 한창이었다. 빨강, 분홍, 노랑이 둑 경사면을 덮었다. 자전거가 따르릉 지나갔고, 둑 아래 천변에서는 아이들이 물수제비를 떴다. 돌이 수면을 세 번 튀는 소리가 났다. 퐁, 퐁, 퐁.
상렬이 먼저 와 있었다. 둑 벤치에 앉아 장미를 보고 있었다. 선옥이 옆에 앉지 않고 앞에 서자 상렬이 일어났다.
“니 아들이 내 공약을 샀더라. 십억에.”
“나도 몰랐어. 수요일 아침에 단톡방 보고 알았어.”
“그럼 거절한다고 써. 단톡방에.”
상렬은 장미 덤불을 보았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둑길에 굴렀다.
“선옥아, 십억이면 애들 이백 명이야. 니가 원하는 거잖아.”
“나는 애들 이백 명을 원해. 회사 허가증에 애들 이백 명을 붙이는 건 원하지 않아.” 선옥의 목소리가 높았다. 채롬이 말대로 높게 했다. 높게 하니 화가 더 잘 들렸다. “십억 받으면 쉼터 안이 통과돼. 쉼터 안이 통과되면 동창회가 리조트에 도장 찍은 거야. 칠월 오일 시청에 그 도장이 들어가. 이틀 뒤에.”
“알아.”
“알면 써.”
“내가 쓰면 쉼터도 같이 흔들려.” 상렬이 선옥을 보았다. 웃음기가 없었다. 눈가 주름이 웃지 않을 때도 깊었다. “의건이 회사 안에서 쉼터를 붙잡고 있는 건 동창회 표 때문이야. 내가 십억을 거절하면, 회사는 동창회가 필요 없어져. 그럼 쉼터를 계획에서 뺄 거야. 그 애는 그렇게 계산해.”
“그럼 니 쉼터는 니 아들 계산 안에서만 사는 거네.”
상렬이 대답하지 않았다. 둑 아래에서 아이 하나가 물수제비를 다섯 번 튀겼다. 다른 아이들이 환호했다. 상렬이 환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선옥을 보았다.
“편지 읽었어?”
“읽었어.”
“그럼 알겠네. 6월 15일.”
“알아.” 선옥이 핸드백 끈을 고쳐 멨다. 핸드백 안에 봉투가 있었다. 들고 다닌 지 일주일째였다. “올해는 화요일이더라.”
상렬이 웃었다. 오늘 처음 웃었다. 웃음 끝이 살짝 올라갔다.
“화요일이면 레슨 있지?”
“다섯 시 반에 끝나.”
“여섯 시면 되겠네.”
“간다고 안 했어.” 선옥은 몸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거절한다고 써, 상렬아. 니 쉼터가 니 아들 계산 밖에서도 살 수 있는지 보여 줘. 그래야 내가 니 공약을 믿어. 사십이 년 전 편지도 믿고.”
선옥은 둑길을 걸어 내려갔다. 장미 꽃잎이 발에 밟혔다. 뒤에서 상렬이 따라오지 않았다. 발소리가 없었다. 선옥은 돌아보지 않았다.
*
토요일 밤 열한 시 사 분, 단톡방에 상렬의 글이 올라왔다.
「후보 탁상렬입니다. 탁산건설의 장학회 기부 제안은 후보 탁상렬과 상관없습니다. 저는 받지 않겠습니다. 쉼터는 동창회 기금과 제 돈으로만 짓겠습니다. 동창회 선거는 동창들의 일입니다. 회사가 끼어들 자리가 아닙니다.」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이번에는 소나기가 아니라 우박이었다. 띵동 소리 사이사이에 「???」 「반장 미쳤나」 「십억을 걷어차」 「멋있다」 「멋있는데 손해」 「부자지간에 싸우나」가 박혔다. 갑분의 음성 메시지가 올라왔다가 삼 초 만에 지워졌다. 갑분이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십 분 뒤, 단톡방 맨 아래에 회색 글씨가 떴다.
「탁산건설 대외협력팀님이 나갔습니다.」
선옥은 회색 글씨를 보았다. 알림음이 끊겼다. 사람들도 회색 글씨를 보는 모양이었다. 거실에 냉장고 모터 소리만 남았다. 선옥은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노란 고무줄이 봉투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화요일까지 사흘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