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17자)

몸이 한 일

주말마다 빌리는 몸 · 여오령

성동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 사무실은 에어컨이 약했다⁠. 반필구 경위는 책상에 조서를 펼쳐 놓고 은박지에 싼 김밥을 한 줄 벗기는 중이었다⁠. 쉰둘쯤 되어 보였고⁠, 셔츠 단추 하나가 배에 밀려 힘들어하고 있었다⁠. 필구는 김밥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래 씹은 다음에야 병곤을 봤다⁠.

“⁠아침을 못 먹어서요⁠. 드실래요⁠?⁠”

“⁠괜찮습니다⁠.⁠”

“⁠「⁠여벌⁠」 변호사님은 아까 다녀가셨어요⁠.⁠” 필구는 서류 한 묶음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보관실 기록 사본과 회사 확인서였다⁠. 「⁠당사 고객 길병곤의 신체는 7월 8일 22시 04분부터 7월 10일 21시 58분까지 당사 보관실 B1-14 침대에 보관되었으며⁠, 외부로 이동한 기록이 없음을 확인합니다⁠.⁠」 맨 아래 금세창의 도장이 빨갛게 찍혀 있었다⁠. “⁠변호사님 말로는 회사는 피해자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으시대요⁠. 선생님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고⁠.⁠”

병곤은 처음부터 말했다⁠. 금요일 밤 열 시 접속⁠, 스물다섯 살 옥찬율의 몸⁠, 양양⁠, 토요일 하루 종일 넘어진 이야기⁠, 일요일 새벽 다섯 시 첫 파도⁠, 일요일 밤 열 시 귀환⁠, 입안의 담배 맛과 무릎의 멍⁠, 뒤로 밀린 운전석⁠, 비어 있는 블랙박스 카드 칸⁠. 필구는 듣는 동안 김밥을 세 알 먹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필구가 은박지를 접었다⁠. “⁠선생님 몸이 했는데⁠, 선생님은 안 했다⁠.⁠”

“⁠제 몸은 저 없이 운전 못 합니다⁠.⁠”

“⁠선생님 차도 선생님 없이 운전 못 하는데요⁠. 운전됐어요⁠.⁠” 필구는 한 박자 쉬었다⁠. “⁠서핑 숍 번호 있으세요⁠?⁠”

필구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길게 가다가 파도 소리와 함께 사장 목소리가 들어왔다⁠.

“⁠병곤이요⁠? 스물다섯 살 걔⁠? 알지요⁠. 일요일 새벽에 처음으로 일어났어요⁠. 내가 동영상도 찍었는데⁠.⁠”

“⁠그 병곤이가 지금 제 앞에 계신 마흔여섯 살 길병곤 씨라고 하시는데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파도 소리만 두 번 밀려왔다 빠졌다⁠.

“⁠아이고⁠.⁠” 사장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이라더니⁠, 할아버지가 본인이었네⁠.⁠”

필구가 처음으로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필구는 웃음을 정리하고 다시 느리게 말했다⁠.

“⁠사장님이 본 건 옥찬율 씨 몸이에요⁠. 그 몸 안에 누가 있었는지는 회사 기록밖에 없어요⁠. 그런데 회사 기록은 선생님 몸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해요⁠. 회사 기록 하나를 믿으면 선생님이 양양에 있었고⁠, 같은 회사 기록 하나를 또 믿으면 영상 속 남자는 아무도 아니에요⁠. 그런데 영상은 있죠⁠.⁠”

“⁠빈 몸에 누가 들어갔습니다⁠. 화면 속 밴드가 초록이었어요⁠.⁠”

“⁠그 말은 회사가 부인해요⁠. 그런 기술은 없다고⁠.⁠” 필구는 펜 뚜껑을 닫았다⁠. “⁠작년에 제 집사람이 스물다섯 살 몸을 빌려서 마라톤을 뛰었어요⁠. 풀코스요⁠. 완주했어요⁠. 메달은 몸 주인이 가져갔어요⁠. 대회 기록에 몸 주인 이름이 올라갔거든요⁠. 집사람은 사흘 동안 그 얘기만 했어요⁠. 이 나라에서 몸이 한 일은 몸 주인이 한 일이에요⁠. 법이 그렇게 정한 게 아니라⁠, 법이 아무것도 안 정해서 그래요⁠. 몸 빌린 손님이 사고를 내면 누가 책임지는지 법에 한 줄도 없어요⁠. 판례도 없고요⁠. 검사들은 얼굴로 갑니다⁠. 얼굴은 증거니까⁠.⁠”

책상 위 모니터에서 국회 방송이 소리 없이 흘렀다⁠. 신체대여법 소위원장 위도범 의원이 무언가를 힘주어 말하고 있었고⁠, 자막이 따라갔다⁠. 「⁠몸이 한 일은 몸 주인이 책임져야 시장이 섭니다⁠」 필구는 화면을 힐끗 보고 김밥 은박지를 휴지통에 던졌다⁠. 들어가지 않았다⁠.

“⁠피해자분 성함은 나양례 씨예요⁠. 예순셋⁠, 병원 조리실에서 일하세요⁠. 새벽 여섯 시까지 출근이라 매일 뚝섬역 첫차를 타셨대요⁠. 골반하고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고⁠, 머리를 다쳐서 아직 못 깨어나셨어요⁠.⁠” 필구는 병곤의 얼굴을 오래 봤다⁠. “⁠오늘은 돌려보내 드릴게요⁠. 출국은 못 하세요⁠. 다시 부르면 오셔야 하고요⁠.⁠”

*

복도로 나오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대기 의자에 스물두어 살쯤 된 남자가 수갑을 찬 채 앉아 있었다⁠. 셔츠에 술 냄새가 배어 있었고⁠, 오른쪽 눈두덩이 부어 있었다⁠.

“⁠저 잤는데요⁠. 금요일 밤에 센터 침대에 누워서 잤는데요⁠. 눈 떠 보니까 여기예요⁠. 수갑 차고요⁠.⁠”

남자 옆에 서 있던 경찰관이 지친 얼굴로 손목시계를 봤다⁠. “⁠대여 시간 끝났네⁠. 손님은 자기 몸으로 빠져나갔고⁠, 몸 주인만 남았어⁠. 술집에서 사람 친 건 손님인데⁠, 깨어난 건 학생이야⁠.⁠”

“⁠그럼 저 나가요⁠?⁠”

“⁠얼굴이 학생이잖아⁠.⁠”

남자는 수갑 찬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졌다⁠. 부은 눈두덩을 손끝으로 확인하더니 다시 울었다⁠. 손목의 흰 밴드는 불이 꺼져 있었다⁠. 이제 주인이 들어 있는 몸이었다⁠.

필구가 병곤 옆으로 와서 낮게 말했다⁠. “⁠이번 달에만 세 번째예요⁠. 손님은 마흔여덟 시간 꽉 채워 놀고⁠, 시간 다 되면 사라지고⁠, 몸 빌려준 학생은 유치장에서 일어나요⁠. 저 학생 등록금 벌려고 몸 빌려줬대요⁠.⁠”

병곤은 대기 의자의 남자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찬율도 스물다섯이었다⁠. 일요일 밤마다 찬율이 어떤 얼굴로 눈을 떴는지 병곤은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물류센터 조끼를 입은 여자가 서류 봉투를 든 채 병곤 앞에서 멈췄다⁠. 삼십 대 중반⁠, 짧게 묶은 머리⁠, 손등에 테이프 자국⁠. 여자는 병곤의 얼굴을 한 번 보고⁠, 휴대전화 화면을 한 번 보고⁠, 다시 병곤을 봤다⁠. 그러고는 봉투를 떨어뜨리고 두 손으로 병곤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이지⁠. 편의점⁠.⁠”

“⁠탁주란 씨⁠.⁠” 필구가 다가왔다⁠. “⁠놓으세요⁠. 조사 중이에요⁠.⁠”

탁주란은 놓지 않았다⁠. 셔츠 단추 하나가 튀어 바닥을 굴렀다⁠.

“⁠우리 엄마 첫차 타러 가던 길이었어⁠. 조리실에 여섯 시까지 가야 돼서 서른 해 동안 매일 첫차 탔어⁠. 그 새벽에 횡단보도 건너는 사람이 우리 엄마 하나밖에 없었어⁠. 당신 차밖에 없었고⁠. 근데 그냥 갔어⁠?⁠”

“⁠제가 아닙니다⁠.⁠”

말이 나오는 순간 병곤은 제 말이 얼마나 나쁘게 들리는지 알았다⁠. 스무 해 동안 사고 조사실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운전자들은 모두 처음에 그렇게 말했다⁠.

“⁠얼굴이 당신인데 당신이 아니면 누군데⁠?⁠”

몸을 빌려 바다에 있었다고 말하려다 병곤은 입을 닫았다⁠. 주말마다 이백만 원을 내고 젊은 몸으로 서핑을 했다는 이야기는⁠, 새벽 다섯 시에 첫차를 타는 사람의 딸 앞에서 변명보다 나빴다⁠. 병곤은 고개를 숙였다⁠. 주란의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이 멱살을 한 번 더 비틀었다가 풀었다⁠.

“⁠엄마 아직 못 깨어났어⁠.⁠” 주란은 바닥의 봉투를 주웠다⁠. “⁠깨어나면 엄마가 당신 얼굴 볼 거야⁠. 그때 다시 말해 봐⁠. 당신 아니라고⁠.⁠”

주란은 팀 사무실로 들어갔다⁠. 병곤은 바닥에 떨어진 셔츠 단추를 주웠다⁠. 단추에 제 얼굴이 작게 비쳤다⁠.

*

오후 세 시⁠, 여의도 온새손해보험 15층 상무실⁠. 상무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길 부장⁠, 한동안 쉬어⁠. 대기발령이야⁠. 인사팀에는 건강상 이유로 해 뒀어⁠.⁠”

“⁠제 몸이 한 일이지⁠,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그 말 그대로 기자들한테 할 거야⁠?⁠” 상무가 의자를 돌렸다⁠. 병곤과 같은 해에 입사한 사람이었다⁠. “⁠우리 회사가 「⁠여벌⁠」하고 단체보험 이야기하는 중인 거 알지⁠? 몸 빌려주는 사람 전부한테 책임보험을 붙이는 거야⁠. 이천 명이야⁠. 법 하나 통과되면 이만 명이고⁠. 그 회사 대표가 지난주에 여기 와서 커피 마시고 갔어⁠. 근데 우리 사고조사부 부장이 그 회사 탓을 하는 뺑소니범이면⁠, 내가 다음 커피를 어떻게 마시냐⁠?⁠”

병곤은 대답하지 못했다⁠. 상무실 텔레비전에서도 위도범 의원이 같은 자막을 달고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자 서휴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잔잔한 음악과 여러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오후 수업 중이었다⁠.

“⁠숨 들이마시고⁠.⁠” 서휴가 회원들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같은 목소리로 병곤에게 말했다⁠. “⁠당신 지금 어디야⁠? 내쉬고⁠.⁠”

“⁠회사⁠. 대기발령 받았어⁠.⁠”

“⁠골반 바로 세우시고요⁠. 산악회 회장 번호는⁠?⁠”

“⁠그건 저녁에 얘기하자⁠.⁠”

“⁠꼬리뼈 말아 올리시고⁠. 저녁 아홉 시⁠. 이솜 학원 끝나기 전에⁠. 거실⁠.⁠” 서휴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낮게 덧붙였다⁠. “⁠당신 오늘 경찰서 갔지⁠. 엄마들 단톡방에 벌써 올라왔어⁠. 누구 아빠냐고⁠. 아무도 이솜이 이름은 안 썼어⁠. 다들 알면서 안 썼어⁠.⁠”

“⁠미안해⁠.⁠”

“⁠미안한 건 아홉 시에⁠. 지금은 운전해⁠. 당신 얼굴 들고 운전하는 거 사람들이 다 보고 있어⁠.⁠” 서휴는 다시 회원들에게 돌아갔다⁠. “⁠자⁠, 천천히 내려오세요⁠. 허리 다치지 않게⁠.⁠”

전화가 끊기고도 병곤은 한동안 시동을 건 채 앉아 있었다⁠. 앞 유리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남자가 희미하게 비쳤다⁠. 아홉 시까지는 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여섯 시간 안에 병곤은 산악회 회장을 만들어 내거나⁠, 일 년 치 주말을 털어놓아야 했다⁠. 둘 다 할 자신이 없어서 병곤은 「⁠여벌⁠」 회원 앱을 열었다⁠. 「⁠보관 침대 확인 서비스 · 지하 1층 데스크 · 24시간⁠」 일 년 동안 한 번도 눌러 보지 않은 단추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사고조사부(⁠7⁠)⁠」 막내가 올린 글이었다⁠. 「⁠부장님 숏폼 조회수 삼십만 넘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보고 버릇이⁠」 바로 밑에 과장이 썼다⁠. 「⁠부장님 저희는 부장님 믿습니다⁠. 근데 일요일에 진짜 산 가셨어요⁠?⁠」 병곤은 답을 쓰다가 지웠다⁠. 이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빠 숏폼 신고 스무 개 했음⁠. 신고 사유에 사람 얼굴 도용이라고 씀⁠. 맞지⁠?⁠」 병곤은 엘리베이터 거울을 봤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반백의 남자가 휴대전화를 들고 서 있었다⁠. 편의점 화면 속 남자와 똑같은 차림이었다⁠. 병곤은 넥타이를 끝까지 조였다⁠. 숨이 막혔다⁠. 도로 풀었다⁠.

*

저녁 여덟 시 오십 분⁠, 병곤은 목동 집 대신 성수로 가는 다리 위에 있었다⁠. 신호에 걸린 사이 서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서에서 다시 불렀어⁠. 늦어⁠.⁠」 보내기 단추를 누르고 나서 병곤은 휴대전화를 오래 내려다봤다⁠. 일 년 동안 쌓인 거짓말 위에 하나가 더 얹혔다⁠. 답은 오지 않았다⁠. 읽음 표시만 떴다⁠.

밤 열한 시⁠, 「⁠여벌⁠」 성수 센터⁠. 회원 카드는 아직 막히지 않았다⁠. 손님은 지하 1층 보관실 데스크까지 내려가서 제 침대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서비스였다⁠.

지하 1층은 공기가 서늘했고 소독약 냄새가 났다⁠. 데스크 너머 유리문 안으로 침대들이 줄지어 있었다⁠. 줄마다 손목에서 파란 불이 느리게 깜박였다⁠. 데스크에는 남자 직원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한여름인데 긴소매 셔츠를 손등까지 내려 입었다⁠.

“⁠보관 침대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14번이요⁠.⁠”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짙은 눈썹⁠, 각진 턱⁠, 햇볕에 그을린 목⁠. 병곤이 주말마다 서핑 숍 화장실 거울에서 보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어깨가 안으로 말려 있었고⁠, 눈 밑이 검었고⁠, 입꼬리는 어느 쪽으로도 올라가지 않았다⁠. 같은 얼굴에 다른 사람이 들어 있으면 이렇게 보였다⁠.

직원의 가슴에 명찰이 달려 있었다⁠. 「⁠보관실 야간 관리 옥찬율⁠」

찬율은 병곤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알아봤다⁠. 알아본 다음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긴소매를 손목까지 끌어내렸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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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면은세개2026.11.01· 2화

    김밥 한 알을 오래 씹고 나서야 쳐다보는 형사님 너무 좋아요. 셔츠 단추가 힘들어한다는 표현에 빵 터졌어요.

    • 여오령작가2026.11.01

      필구 경위는 그 김밥으로 상대가 얼마나 급한지 봐요. 병곤 씨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리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