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24자)

십 년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26년 3월 9일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오십 분⁠, 나는 철판 앞에 서서 계단 소리를 기다렸다⁠. 어제로 갱신요구권 십 년이 끝났다⁠. 첫 생에서 오늘 아홉 시⁠, 명옥 여사는 새 계약서를 들고 내려와 월세 칸에 세 배를 적었다⁠. 나는 세 배라는 숫자를 이번 생의 열 해 동안 하루도 잊지 않았다⁠.

유리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서른아홉 살⁠, 단단한 팔⁠, 짧은 커트 머리에 빨간 두건⁠. 빨간 줄무늬 앞치마는 다시 분홍에 가까워졌다⁠. 오른손에 쥔 국자 손잡이 아래로 엄지 굳은살이 첫 생의 마지막 날과 같은 두께로 박혀 있었다⁠. 몸이 열 해를 다시 따라잡았다⁠.

“⁠사장님⁠, 아직 안 내려오셨어요⁠?⁠” 규성이 튀김기 앞에서 목을 뺐다⁠. 서른셋이 된 규성은 머리를 짧게 깎았고⁠, 실장 명함은 열한 통째였다⁠. “⁠오늘 세 배 부르시는 날이죠⁠?⁠”

“⁠첫 생에서는⁠.⁠”

“⁠이번 생에는요⁠?⁠”

“⁠몰라⁠.⁠”

규성이 집게를 내려놓고 두 손을 모았다⁠. 다섯 해 전 법원 복도에서 처음 들은 「⁠첫 생⁠」이라는 말을 규성은 다섯 해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몰라⁠」라고 할 때마다 두 손을 모았다⁠.

아홉 시⁠, 계단에서 지팡이 소리가 내려왔다⁠. 한 칸에 한 번이 아니라 한 칸에 두 번씩 났다⁠. 지팡이를 짚고⁠, 난간을 잡고⁠, 쉬고⁠. 여든한 살의 명옥 여사가 유리문을 열었다⁠. 털모자 아래 얼굴이 작아졌다⁠. 손에 계약서는 없었다⁠.

“⁠한 해만 더 하자⁠.⁠”

“⁠네⁠?⁠”

“⁠월세는 그대로⁠. 한 해 계약⁠. 그 뒤는 12월에 정한다⁠.⁠” 명옥 여사가 홀 창가 의자에 앉았다⁠. 앉는 데 숨이 두 번 들었다⁠. “⁠창훈이가 갚을 돈이 아직 이억 오천 남았다⁠. 네 빚 갚는 날도 아직 남았고⁠.⁠”

나는 국자를 쥔 채 한참 서 있었다⁠. 세 배가 오지 않았다⁠. 첫 생과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계단으로 내려온 명옥 여사가 다른 말을 했다⁠. 내가 손댄 열 해가 오늘 아침 아홉 시까지 번져 있었다⁠.

“⁠여사님⁠, 12월 언제요⁠?⁠”

“⁠그건 오늘 저녁에 정한다⁠. 저녁 일곱 시에 3층으로 올라와라⁠. 마정철이도 온다⁠.⁠”

*

다섯 해 동안 골목이 바뀌었다⁠. 시장 뒷길 마흔 가게 가운데 열넷이 홍떡과 다른 프랜차이즈 간판을 달았다⁠. 영복 사장은 시장 안 반 평 철물점을 2024년에 닫고 아들네로 갔다⁠. 마지막 날 상인 연합 단톡방에 「⁠골목 일은 골목에서⁠」 한 줄을 남기고 나갔다⁠. 단톡방 이름은 아직 「⁠망원동 상인 연합⁠」이었고⁠, 회원은 스물아홉이었다⁠.

봉희꽃방은 아직 옆 칸에 있었다⁠. 첫 생에서 봉희 사장은 2024년에 골목을 떠났다⁠. 이번 생의 2024년에 봉희 사장은 2020년에 밀린 월세 넉 달 치를 다 갚고 꽃집 간판을 새로 칠했다⁠. 새 간판에 「⁠봉희꽃방 · 망원 골목 열 해째⁠」라고 썼다⁠.

“⁠잘들 한다⁠.⁠” 봉희 사장이 꽃 양동이를 내놓다가 내 가게를 들여다보았다⁠. “⁠세 배 안 불렀다며⁠? 3층에서 소리가 안 나서 이상하더라⁠.⁠”

“⁠저녁에 부른대요⁠. 상무님이랑 같이⁠.⁠”

“⁠마정철이 상무 됐어⁠?⁠”

“⁠작년에요⁠.⁠”

“⁠그 사람은 우리가 망할 때마다 한 계단씩 올라가네⁠.⁠”

창훈 씨는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 왔다⁠. 회사를 접은 뒤로 남의 인테리어 현장에서 소장으로 일했고⁠, 다달이 삼백만 원씩 내 계좌에 넣었다⁠. 그리고 떡볶이 한 그릇을 먹었다⁠. 이자였다⁠.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그릇을 비우고 말했다⁠.

“⁠사장님⁠, 엄마가 요즘 계단을 못 내려와요⁠. 무릎이요⁠. 엘리베이터 있는 데로 가자고 해도 안 간대요⁠.⁠”

“⁠왜요⁠?⁠”

“⁠3층 창문에서 골목이 보여야 한대요⁠.⁠”

*

오후 세 시⁠, 손님이 빠진 홀에서 상인 연합 단톡방이 쉬지 않고 울렸다⁠. 봉희 사장이 아침 일을 올린 것이었다⁠.

「⁠떡볶이집 세 배 안 맞았음⁠. 저녁에 3층에서 홍떡 상무랑 담판⁠」

「⁠담판이 뭐예요 판사님 와요⁠?⁠」 세탁소 아주머니였다⁠.

「⁠판사 아니고 상무⁠」

「⁠상무가 판사보다 세요⁠?⁠」

「⁠돈으로는 세지⁠」

콩자반 할머니의 손자가 단톡방에 들어와 있었다⁠. 할머니 대신 반찬가게를 맡은 서른 살 손자였다⁠. 손자가 한 줄을 올렸다⁠.

「⁠우리가 돈 모아서 그 건물 사면 안 돼요⁠? 골목 어귀 건물이잖아요⁠」

단톡방이 삼 분 동안 조용했다⁠. 그다음에 웃음 표시가 줄줄이 올라왔다⁠. 봉희 사장이 숫자를 올렸다⁠. 「⁠홍떡이 삼십억 넘게 부른다더라⁠. 우리 스물아홉이 일억씩 내도 모자람⁠」⁠. 세탁소 아주머니가 「⁠일억 있으면 세탁기 바꾸지⁠」를 올렸다⁠. 손자가 마지막으로 한 줄을 더 올렸다⁠.

「⁠일억 말고 천만 원씩이요⁠. 대출 받고요⁠. 우리 할머니가 반찬가게 하면서 계 붓던 것처럼요⁠」

나는 휴대전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규성이 튀김기 앞에서 화면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 이건 아세요⁠? 이렇게 되는 거요⁠.⁠”

“⁠아니⁠.⁠”

“⁠사장님이 모르시는 일이 점점 많아지네요⁠.⁠” 규성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좋은 건지 무서운 건지 모르겠어요⁠.⁠”

*

저녁 일곱 시⁠, 3층 부엌 식탁에 의자 세 개가 놓였다⁠. 명옥 여사가 가운데⁠, 마정철이 왼편⁠, 내가 오른편에 앉았다⁠. 창훈 씨는 냉장고에 등을 대고 서 있었고⁠, 규성은 계단 꼭대기에서 고개만 내밀었다⁠. 무서워서 안 들어오겠다고 했는데 집에 가지도 않았다⁠.

식탁 한가운데 귤 다섯 개를 담은 접시가 있었다⁠. 명옥 여사는 손님이 오면 귤을 내놓았다⁠. 다섯 해 동안 월세 날마다 내가 3층에 올라오면 귤은 늘 다섯 개였고⁠, 아무도 까지 않았다⁠. 부엌 창으로 저녁 골목이 내려다보였다⁠. 봉희꽃방 차양⁠, 오십 미터 아래 홍떡 간판 둘⁠, 시장 뒷길 끝 큰길의 버스 정류장⁠. 명옥 여사는 창을 등지고 앉지 않았다⁠. 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마정철은 쉰을 넘겼다⁠. 머리에 흰 줄이 섞였고⁠, 손목에는 여전히 은색 시계가 있었다⁠. 마정철이 서류 봉투에서 종이 다섯 장을 꺼내 식탁에 나란히 놓았다⁠. 펜으로 짚어 가며 설명하지 않았다⁠. 종이를 놓고 손을 무릎에 얹었다⁠.

“⁠여사님⁠,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것을 다 적었습니다⁠. 매입가 삼십이억⁠. 감정가보다 육억 높습니다⁠. 소창훈 사장님이 문 사장님께 갚으실 남은 이억 오천은 저희가 매입가에서 먼저 갚아 드립니다⁠. 여사님은 빚 없이 이 건물을 넘기십니다⁠.⁠”

명옥 여사가 돋보기를 쓰고 첫 장을 들었다⁠.

“⁠둘째 장은 거주입니다⁠. 여사님은 평생 3층에 사시거나⁠, 원하시면 같은 동네 엘리베이터 있는 집으로 옮기십니다⁠. 이사 비용과 관리비는 저희가 냅니다⁠. 셋째 장은 문 사장님입니다⁠.⁠” 마정철이 나를 보았다⁠. “⁠문 사장님 갱신요구권은 어제 끝났습니다만⁠, 법원은 십 년이 지나도 권리금 회수기회는 지켜야 한다고 봤습니다⁠. 저희가 1층 새 세입자로 들어가면서 문 사장님께 권리금을 드리겠습니다⁠. 시세대로입니다⁠. 법을 피해 가지 않겠습니다⁠.⁠”

규성이 계단 꼭대기에서 숨을 삼켰다⁠. 창훈 씨가 냉장고에서 등을 뗐다⁠.

마정철의 다섯 장에는 빠진 사람이 없었다⁠. 명옥 여사의 빚⁠, 명옥 여사의 집⁠, 창훈 씨의 빚⁠, 나의 권리금⁠. 첫 생의 2026년 12월 14일⁠, 나는 권리금 한 푼 없이 열쇠를 넘겼다⁠. 첫 생의 마정철은 명옥 여사의 세 배 뒤에 숨어 있었다⁠. 이번 생의 마정철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다섯 해 전 법원 복도에서 한 말대로였다⁠. 근저당도 경매도 없이⁠, 좋은 값만 들고 왔다⁠.

“⁠문 사장님⁠, 제 제안에 틀린 데가 있습니까⁠?⁠”

“⁠없어요⁠.⁠”

“⁠그럼⁠…⁠…⁠.⁠”

“⁠둘째 장이요⁠.⁠” 나는 둘째 장을 집어 들었다⁠. 「⁠평생 3층 거주를 보장한다⁠. 또는 이에 준하는 주택을 제공한다⁠」⁠. 나는 「⁠또는⁠」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내년 봄에 허무실 거잖아요⁠. 이 건물⁠.⁠”

부엌이 조용해졌다⁠. 냉장고만 웅 하고 돌았다⁠.

첫 생의 12월 14일 아침⁠, 열쇠를 받으며 마정철이 지나가듯 말했다⁠. 「⁠내년 봄에 헐고 5층으로 올립니다⁠. 1층은 홍떡 브랜드관이에요⁠」⁠. 나는 열 해 동안 들은 말 가운데 헌다는 말을 가장 늦게 들었다⁠.

마정철이 나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헙니다⁠.⁠”

명옥 여사의 돋보기가 마정철 쪽으로 돌아갔다⁠.

“⁠서른세 해에 C등급이던 건물이 이제 마흔한 해입니다⁠. 배관과 전기는 1985년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또는⁠」이라고 썼습니다⁠. 숨기려던 게 아니라⁠, 여사님께 직접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마정철이 명옥 여사를 보았다⁠. 목소리가 공손했다⁠. “⁠여사님⁠, 무릎에 3층 계단이 맞으십니까⁠? 오늘 내려오시는 데 몇 분 걸리셨습니까⁠? 저희가 드리는 집은 엘리베이터가 있고 요양병원까지 차로 십 분입니다⁠. 이 집 계단에서 넘어지시면⁠, 문 사장님이 아무리 빨리 올라와도 늦습니다⁠.⁠”

명옥 여사의 손이 무릎 위로 갔다⁠. 손바닥이 무릎을 덮었다⁠.

나는 할 말을 찾았다⁠. 마정철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배관도⁠, 무릎도⁠, 계단도⁠, 요양병원까지 십 분도⁠. 첫 생의 기억은 내가 손대지 않은 일만 맞혔고⁠, 마정철의 숫자는 내 기억보다 오늘을 더 잘 알았다⁠.

“⁠여사님⁠.⁠” 내가 말했다⁠. “⁠저는 삼십이억이 없어요⁠. 창훈 씨한테 받을 돈 빼면 제가 모은 건 삼억이에요⁠. 대출을 받아도 반이 안 돼요⁠.⁠”

“⁠알아⁠.⁠”

“⁠그래도 여사님 3층에 계시게 하고 싶어요⁠.⁠”

“⁠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는 많았다⁠. 골목 어귀⁠, 홍떡 간판⁠, 봉희 사장의 열 해째 간판⁠, 시장 안으로 떠난 철물점⁠. 명옥 여사 앞에 꺼내 놓으면 이유들은 하나같이 내 이유였다⁠. 명옥 여사의 이유가 아니었다⁠.

명옥 여사가 돋보기를 벗어 식탁에 놓았다⁠. 다섯 장을 가지런히 모아 마정철 앞으로 밀었다⁠. 받지 않겠다는 손짓이 아니었다⁠. 아직이라는 손짓이었다⁠.

“⁠마정철이⁠, 이 종이는 언제까지냐⁠?⁠”

“⁠올해 12월 14일까지입니다⁠. 그날 저희 이사회가 올해 마지막 매입 건을 정합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창훈 씨가 나를 보았고⁠, 계단 꼭대기의 규성이 두 손을 모았다⁠.

“⁠그럼 그날 정한다⁠.⁠” 명옥 여사가 말했다⁠. “⁠12월 14일⁠. 가윤이 너도 그날까지 한 해 계약으로 있어라⁠. 그날 둘 다 다시 와⁠.⁠”

마정철이 종이를 봉투에 넣고 일어났다⁠. 의자를 식탁 밑으로 가지런히 밀어 넣었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문 사장님은 늘 저보다 조금씩 빠르셨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조금 빠른 것 같습니다⁠.⁠”

마정철이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꼭대기에 있던 규성이 몸을 비켜 주었다⁠.

*

밤 열한 시⁠, 나는 셔터를 내리고 계산대 앞에 앉았다⁠. 규성이 앞치마도 안 벗고 옆에 앉았다⁠. 벽에 시계 두 개가 같은 시각을 가리켰다⁠.

“⁠사장님⁠, 12월 14일이 그날이죠⁠? 첫 생 끝난 날⁠.⁠”

“⁠응⁠. 열한 시 십사 분⁠.⁠”

“⁠그날 지나면요⁠?⁠”

“⁠몰라⁠.⁠”

“⁠그 시간 지나면 사장님 또 돌아가요⁠? 2016년으로⁠?⁠”

“⁠몰라⁠.⁠”

규성이 앞치마 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열 해 전 첫날처럼 두 번 잘못 묶었다⁠.

“⁠사장님이 모르신다니까 이제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규성이 말했다⁠. “⁠그날 하루만 무서워요⁠.⁠”

나는 오른손을 펴 보았다⁠. 엄지 아래 굳은살이 형광등 아래 노랗게 빛났다⁠. 첫 생의 마지막 날 이 손으로 마정철에게 열쇠를 넘겼다⁠. 이번 생의 12월 14일까지 이백팔십 일이 남아 있었다⁠. 12월 14일 열한 시 십사 분 다음의 일은⁠, 철판 앞에 선 나도 3층 식탁의 마정철도 아무도 몰랐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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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가자리2026.11.06· 9화

    첫 생과 달리 월세를 그대로 두자는 명옥 여사 말에 가슴이 철렁했어요. 마정철 상무가 창훈 빚에 가윤 권리금까지 얹어서 3층 식탁에 올리는데, 이 제안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 남이랑작가2026.11.06

      마정철은 나쁜 제안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어렵죠. 명옥 여사가 12월 14일을 고른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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