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96자)

열한 시 십사 분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26년 12월 14일 월요일 아침 여덟 시⁠, 문가네 떡볶이의 철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고추기름이 돌기 시작했고⁠, 고춧가루 볶는 냄새가 셔터 밑으로 골목에 흘러 나갔다⁠. 첫 생에서 나는 이 시각에 불 꺼진 지 사흘 된 철판을 닦았다⁠. 닦을 것도 없는 철판을 십오 분 동안 닦았다⁠.

유리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서른아홉 살⁠, 보통 키에 단단한 팔⁠, 짧은 커트 머리에 빨간 두건⁠, 동그란 눈⁠. 분홍에 가까워진 빨간 줄무늬 앞치마⁠, 오른손에 큰 국자⁠. 첫 생의 마지막 아침과 한 군데도 다르지 않았다⁠. 유리문 바깥만 달랐다⁠. 간판 위에 사다리가 없었다⁠. 빨간 현수막도 없었다⁠.

“⁠사장님⁠, 떡 몇 상자 불려요⁠?⁠”

규성이 앞치마를 묶으며 물었다⁠. 오늘은 끈을 한 번에 묶었다⁠.

“⁠다섯⁠.⁠”

“⁠오늘 같은 날도 다섯이에요⁠?⁠”

“⁠오늘 같은 날이니까 다섯이야⁠.⁠”

규성이 떡 상자를 꺼내다 말고 벽을 보았다⁠. 벽에 시계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여덟 시 칠 분⁠.

“⁠사장님⁠, 열한 시 십사 분에 저 사장님 앞치마 끈 잡고 있을게요⁠.⁠”

“⁠왜⁠?⁠”

“⁠사장님 2016년으로 가시면 저도 같이 가게요⁠. 저 2016년에 시급 육천오백이었잖아요⁠. 그때 가서 사장님한테 처음부터 칠천 달라고 하려고요⁠.⁠”

*

아홉 시⁠, 나는 떡볶이 한 그릇을 비닐로 덮어 3층으로 올라갔다⁠. 명옥 여사는 식탁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지난달 상인 연합이 돈을 모아 계단에 달아 준 의자형 계단 승강기의 레일이 현관 앞에서 반짝였다⁠. 명옥 여사는 아직 한 번도 그것을 타고 내려오지 않았다⁠.

“⁠열 시라고 했는데 왜 벌써 올라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나는 식탁에 떡볶이 그릇을 내려놓고 명옥 여사 맞은편에 앉았다⁠. 귤 다섯 개가 그대로 있었다⁠.

“⁠여사님⁠, 저 이 날을 한 번 살았어요⁠.⁠”

명옥 여사가 창에서 눈을 떼고 나를 보았다⁠.

“⁠첫 생에서 오늘 아침 여덟 시에 저는 열쇠를 넘겼어요⁠. 봄에 갱신요구권이 끝난 다음 날 여사님이 월세를 세 배로 부르셨고⁠, 저는 대출로 아홉 달을 냈어요⁠. 오늘 아침에 홍떡이 간판 위에 현수막을 달았어요⁠. 「⁠홍떡 망원 직영점 오픈 예정⁠」⁠. 마정철 상무가 열쇠를 받으면서 내년 봄에 이 건물을 헌다고 했어요⁠. 여사님은 지팡이를 짚고 문 앞에 서 계셨고요⁠.⁠”

명옥 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한 시에 세무서에서 폐업 신고를 하고 나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졌어요⁠. 열한 시 십사 분이었어요⁠. 눈을 뜨니까 2016년 3월 9일⁠, 개업 첫날 아침이었어요⁠. 그래서 바둑을 맞혔고⁠, 법 바뀌는 날을 알았고⁠, 할아버지가 가을에 쓰러지실 걸 알았어요⁠. 막지는 못했지만요⁠.⁠”

명옥 여사가 돋보기를 벗어 식탁에 놓았다⁠. 한참 있다가 물었다⁠.

“⁠그 생에서 나는 어땠니⁠?⁠”

“⁠몰라요⁠.⁠”

“⁠열 해를 봤다며⁠.⁠”

“⁠열 해 동안 여사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월세 날 계단에서 숫자만 들었어요⁠. 여사님이 왜 올리시는지 한 번도 안 물어봤어요⁠. 창훈 씨 빚도⁠, 할아버지 병원비도⁠, 홍떡 근저당도 몰랐어요⁠. 떡볶이는 애들이나 먹는 거라고 하셔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나는 식탁 밑에서 국자 굳은살을 엄지로 눌렀다⁠. “⁠그리고 시계요⁠. 개업 첫날 주신 시계요⁠. 첫 생에서 저는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했어요⁠. 마지막 날 떼어 들고 나가면서도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여사님⁠. 시계요⁠.⁠”

명옥 여사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골목에서 봉희 사장이 꽃 양동이를 내놓는 소리가 올라왔다⁠. 명옥 여사는 창을 본 채로 말했다⁠.

“⁠거짓말이면 너는 미친 거고⁠, 참말이면 너는 열 해를 두 번 산 거다⁠.⁠”

“⁠네⁠.⁠”

“⁠둘 다 고생했다⁠.⁠”

명옥 여사가 비닐 덮은 떡볶이 그릇을 식탁 가운데로 조금 밀었다⁠. 먹지는 않았다⁠. 비닐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릇이 아직 따뜻했다⁠.

“⁠열 시에 내려간다⁠. 계단은 내 다리로 내려간다⁠.⁠”

*

아홉 시 사십 분⁠, 가게 유리문이 쉬지 않고 열렸다⁠. 콩자반 할머니 손자가 계산대 끝에 노트북을 펴 놓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이름을 확인했다⁠. 정장 차림의 남자 하나가 흰 봉투를 내밀었다⁠. 2016년 봄⁠, 노량진에서 넘어와 날마다 떡볶이 한 접시로 저녁을 먹던 공시생이었다⁠. 지금은 구청 주무관이었다⁠.

“⁠사장님⁠, 저 합격하던 날도 여기서 먹었어요⁠. 백만 원이요⁠. 합격 기념이 열 해 늦었네요⁠.⁠”

“⁠공무원이 출자해도 돼요⁠?⁠”

“⁠알아봤어요⁠. 돼요⁠.⁠” 주무관이 웃었다⁠. “⁠그런데 사장님⁠, 그때 저한테 내년엔 붙는다고 하셨잖아요⁠. 진짜 붙었어요⁠. 아직도 무서워요⁠.⁠”

규성이 튀김을 건지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도요⁠. 우리 같이 무서워해요⁠.⁠”

휴대전화가 울렸다⁠. 영상통화 화면에 영복 사장의 얼굴이 떴다⁠. 아들네 거실이었고⁠, 등 뒤 벽에 「⁠영복철⁠」 간판 조각이 액자에 들어 있었다⁠. 영복 사장은 화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문 사장⁠! 내 천만 원 들어갔지⁠?⁠”

“⁠들어갔어요⁠.⁠”

“⁠골목 일은 골목에서 하는 거여⁠. 나는 이제 골목에 없지만 돈은 골목에 있어⁠.⁠” 영복 사장이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그 골목 사십 년이야⁠. 쉰 해 채우는 건 그 돈이 할 거여⁠.⁠”

봉희 사장이 휴대전화를 빼앗아 들었다⁠. “⁠회장님⁠, 목소리 줄여요⁠. 잘들 한다⁠, 진짜⁠.⁠”

*

열 시⁠, 가게 홀이 꽉 찼다⁠. 봉희 사장⁠, 콩자반 할머니의 손자⁠, 세탁소 부부⁠, 배달 기사를 하는 옛 커피 가게 사장⁠, 상인 연합 단톡방 사람들 열여덟⁠, 그리고 다섯 해 동안 매주 오던 단골들⁠. 의자가 모자라 사람들이 벽을 따라 서 있었다⁠. 창훈 씨는 계단 밑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명옥 여사는 지팡이와 난간과 아들 팔을 번갈아 짚고 한 칸에 두 번씩 내려와 창가 의자에 앉았다⁠. 승강기 레일은 그대로 비어 있었다⁠.

마정철이 들어왔다⁠. 남색 코트⁠, 은색 시계⁠, 서류 봉투⁠. 사람들 사이를 지나 계산대 앞까지 와서 고개를 숙였다⁠.

“⁠여사님⁠, 오늘이 기한입니다⁠. 지난 3월의 다섯 장은 그대로입니다⁠. 한 장을 더 가져왔습니다⁠.⁠” 마정철이 종이 한 장을 창가 탁자에 놓았다⁠. “⁠문 사장님을 홍떡 메뉴 개발 이사로 모시겠습니다⁠. 새 건물 1층 간판에 문가네 이름을 홍떡과 나란히 올리겠습니다⁠. 문 사장님 철판도⁠, 문 사장님 이름도 이 골목 어귀에 남습니다⁠. 저는 이것이 문 사장님께도⁠, 여사님께도⁠, 이 골목에도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홀이 술렁였다⁠. 봉희 사장이 “⁠잘들 한다⁠”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틀린 데가 없는 제안이었다⁠.

“⁠문 사장님 차례입니다⁠.⁠” 마정철이 한 발 물러났다⁠.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콩자반 할머니 손자를 보았다⁠. 서른 살 손자가 휴대전화 화면을 들고 일어났다⁠. 화면에 단톡방 공지가 떠 있었다⁠.

「⁠망원골목 협동조합 출자 마감 — 조합원 이백열네 명⁠」

“⁠아홉 달 동안 모았어요⁠.⁠” 손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골목 상인 스물아홉이 천만 원씩⁠, 단골 백팔십오 명이 백만 원부터 오백만 원까지요⁠. 우리 할머니가 반찬가게 하면서 계 붓던 거 생각나서요⁠. 은행 대출 반 받고요⁠.⁠”

내가 이어받았다⁠.

“⁠여사님⁠, 저희는 이십육억이에요⁠. 감정가 그대로요⁠. 홍떡보다 육억 적어요⁠. 이십억은 지금 드리고⁠, 나머지는 여사님 사시는 동안 다달이 드려요⁠. 3층은 평생 여사님 집이고요⁠. 계단 승강기는 벌써 달았어요⁠. 무릎이 아프시면 그거 타고 내려오세요⁠. 요양병원 가실 때는 창훈 씨가 모시고⁠, 창훈 씨가 현장에 있는 날은 규성 씨가 모셔요⁠.⁠”

“⁠제가요⁠?⁠” 규성이 튀김 집게를 들었다⁠.

“⁠운전면허 있잖아⁠.⁠”

“⁠무서운데요⁠.⁠”

“⁠시급 올려 줄게⁠.⁠”

홀에서 웃음이 났다⁠. 마정철도 웃었다⁠. 그러고는 공손하게 물었다⁠.

“⁠여사님⁠, 육억입니다⁠. 손해 보시는 겁니다⁠.⁠”

명옥 여사가 조끼 주머니에서 통장 하나를 꺼냈다⁠. 낡은 통장이었다⁠. 표지에 볼펜으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문가윤 빚⁠」⁠. 명옥 여사가 통장을 탁자에 펼쳤다⁠. 2021년 4월부터 다달이 같은 날 같은 금액이 들어와 있었다⁠. 내 월세에서 5퍼센트씩 올린 몫이었다⁠.

“⁠한 푼도 안 썼다⁠. 빚 갚는다고 받아서 여기 넣기만 했다⁠.⁠” 명옥 여사가 통장을 손자 쪽으로 밀었다⁠. “⁠이것도 넣어라⁠. 나도 조합원 하련다⁠. 내 건물 한 귀퉁이를 내가 다시 사는 거다⁠.⁠”

홀이 조용해졌다⁠. 봉희 사장이 꽃가위를 떨어뜨렸다⁠. 창훈 씨가 계단 밑에서 입을 막았다⁠.

명옥 여사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마정철을 보았다⁠.

“⁠마정철이⁠. 자네 숫자는 다 맞다⁠. 배관도 맞고⁠, 내 무릎도 맞고⁠, 요양병원까지 십 분도 맞다⁠. 손해 보는 것도 안다⁠. 내가 손해 보는 거 내가 골랐다⁠.⁠” 명옥 여사가 나를 돌아보았다⁠. “⁠가윤이 너는 들어라⁠. 매달 주는 돈⁠, 장사 잘되면 더 내라⁠.⁠”

“⁠네⁠?⁠”

“⁠장사 잘되면 더 내라⁠. 그게 내 노후다⁠.⁠”

마정철이 한참 서 있다가 탁자 위 종이 여섯 장을 모아 봉투에 넣었다⁠. 봉투를 겨드랑이에 끼고 명옥 여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유리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문 사장님⁠, 떡볶이 하나 포장해 주시겠습니까⁠? 로제로요⁠.⁠”

“⁠이천오백 원이요⁠.⁠”

“⁠메뉴판엔 칠천 원인데요⁠.⁠”

“⁠첫날 값이에요⁠.⁠”

마정철이 웃으며 이천오백 원을 계산대에 놓았다⁠. 규성이 포장 봉투에 볼펜으로 한 줄을 적어 건넸다⁠. 「⁠예언은 안 합니다 — 실장⁠」⁠.

*

열한 시 십이 분⁠, 홀이 비어 갔다⁠. 조합원들은 단톡방에 박수를 올리며 골목으로 흩어졌다⁠. 봉희 사장은 꽃집 간판 아래 「⁠망원골목 협동조합 · 사무실은 떡볶이집⁠」 종이를 붙였다⁠. 콩자반 할머니 손자의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합정 뒷골목과 연남동 상인회에서 어떻게 했냐고 묻는 전화였다⁠.

명옥 여사는 창가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창훈 씨는 영상통화를 걸어 요양병원 병실 창문을 어머니 앞에 세워 주었다⁠. 화면 속 할아버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명옥아⁠.

열한 시 십삼 분⁠, 규성이 내 앞치마 끈을 잡았다⁠. 진짜로 잡았다⁠. 나는 국자를 쥐고 철판 앞으로 갔다⁠. 벽에 시계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초바늘 둘이 한 박자도 어긋나지 않고 같이 갔다⁠.

열한 시 십사 분⁠.

철판이 지글거렸다⁠. 고추기름이 튀어 손등에 닿았다⁠. 따가웠다⁠. 초바늘이 열두 시 자리를 지나 한 칸⁠, 두 칸⁠, 앞으로 갔다⁠. 거꾸로 돌지 않았다⁠. 규성이 앞치마 끈을 잡은 채 숨을 길게 뱉었다⁠.

“⁠사장님⁠.⁠”

“⁠응⁠.⁠”

“⁠지났어요⁠.⁠”

“⁠응⁠.⁠”

“⁠이제 사장님도 모르는 거죠⁠? 다음 일⁠.⁠”

“⁠응⁠. 하나도 몰라⁠.⁠”

규성이 앞치마 끈을 놓았다⁠. 무섭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떡 상자를 하나 더 꺼냈다⁠.

창가에서 명옥 여사가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쳤다⁠.

“⁠한 그릇 줘라⁠.⁠”

나는 국자로 떡볶이를 떴다⁠. 열 해 하고도 열 해 동안 한 번도 담아 본 적 없는 그릇이었다⁠. 떡을 열한 개 담고 어묵을 하나 덤으로 얹었다⁠. 개업 첫날 유리문에 붙였던 종이대로였다⁠.

명옥 여사가 젓가락으로 떡 하나를 집었다⁠.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김이 돋보기에 서렸다⁠. 명옥 여사는 돋보기를 벗지 않고 두 번째 떡을 집었다⁠. 창밖 골목 어귀에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벽의 두 시계는 열한 시 십육 분을 지나 나란히 앞으로 갔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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