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763자)
무서워요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16년 3월 13일 일요일 오후 네 시, 문가네 떡볶이의 손님 열한 명이 떡볶이를 앞에 두고 아무도 먹지 않았다. 다들 계산대 위 텔레비전을 보았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두는 네 번째 대국이었다. 앞의 세 판을 내리 진 날 밤에 뉴스는 「인류의 패배」라는 말을 썼고, 망원시장 반찬가게 할머니는 콩자반을 담다가 혀를 찼다고 했다.
규성은 텔레비전을 등지고 냉장고 옆에 붙어 서서 어묵 꼬치만 끼웠다. 대국을 안 보는 게 아니었다. 나를 안 보는 것이었다.
“규성 씨, 국물 좀.”
“사장님 쪽으로 안 갈래요.”
“왜?”
“사장님이 이긴다고 하셨잖아요. 네 번째 판은 이긴다고. 이기면 저 진짜 그만둘 거예요.”
“시급 육천오백 받고?”
규성이 꼬치를 끼우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육천오백 원은 올해 최저임금보다 사백칠십 원 많았다. 사흘 전에 내가 올렸고, 사흘 동안 규성은 아홉 번 무섭다고 했다.
다섯 시 반쯤, 해설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이세돌의 일흔여덟 번째 수였다. 화면 속 바둑판 가운데 흰 돌 하나가 끼어들었고, 해설자 둘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나는 이 수를 열 해 동안 몇 번이고 들었다. 연말 방송마다, 바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의 한 수」라고 불렀다.
여섯 시가 넘어 알파고가 돌을 던졌다.
손님 열한 명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등산복 아저씨가 떡볶이 접시를 들고 일어섰고, 학원 강사 둘이 하이파이브를 하다가 어묵 국물을 엎었다. 콩자반 할머니가 계산대를 두드렸다.
“이겼다! 사람이 이겼어!”
그리고 다들 나를 돌아보았다. 사흘 전 저녁, 이 가게에서 「네 번째 판은 이긴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셋 있었다. 셋이 소문을 내는 데 사흘이면 됐다.
“사장님.” 콩자반 할머니가 내 앞치마 끈을 잡았다. “로또 번호 좀 불러 줘.”
“번호는 몰라요.”
“바둑은 알고 로또는 몰라?”
“바둑은 뉴스에 나왔잖아요. 로또 번호는 뉴스에 안 나와요. 1등이 마포에서 한 번 나온 건 알아요.”
“언제?”
“몇 년 뒤요.”
“몇 년 뒤 로또 번호를 알아서 뭐 해! 이번 주 거를 불러!”
할머니들이 웃었다. 규성만 안 웃었다. 냉장고에 등을 붙인 채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나중에 화면을 보니 검색창에 「사장님이 미래를 맞힘 퇴사」라고 쓰여 있었다.
*
3월 마지막 날 밤 열한 시, 셔터를 반쯤 내린 가게에서 나는 노트북을 켰다. 계산대 서랍 맨 밑에 통장이 있었다. 개업하고 남은 돈 육백만 원. 첫 생의 나는 여름에 이 돈으로 업소용 에어컨과 튀김기를 샀다. 튀김기는 세 해를 썼고 에어컨은 열 해를 썼다.
화면에 코인 거래소 첫 화면이 떴다. 「비트코인 474,000원」.
“사장님, 아직 안 가셨어요?”
셔터 밑으로 규성의 운동화가 먼저 들어왔다. 휴대전화 충전기를 두고 갔다고 했다. 규성은 충전기를 찾다 말고 내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았다.
“그거 뭐예요?”
“비트코인.”
“그거 다단계예요.”
“아니야.”
“제 고등학교 친구 형이 그거 하다가 군대 갔어요.”
“군대는 원래 가는 거야.”
“사장님 무서워요.” 규성이 충전기를 가슴에 안았다. “바둑 맞히시고, 제 이름 맞히시고, 이제 인터넷 돈까지 사세요?”
나는 화면을 보며 따져 보았다. 열 해를 다시 살면서 사흘 동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손대지 않은 일은 그대로 왔다. 바둑판 일흔여덟 번째 수는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같은 자리에 놓였다. 대신 내가 손댄 일은 달라졌다. 명옥 여사의 특약 종이는 도장 없이 조끼 주머니로 들어갔고, 석 달 만에 그만두었어야 할 규성은 시급 사백칠십 원 때문에 아직 여기 있었다.
육백만 원은 손대는 일이었다. 다만 서울 망원동 떡볶이집 사장이 육백만 원을 넣는다고 세계의 비트코인 가격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물결은 손이 닿은 자리에서 가장 크고, 멀어질수록 잦아든다. 첫 생에서 2017년 겨울에 골목 사람들이 너도나도 코인 이야기를 하던 저녁들을 나는 기억했다. 이천만 원이 넘었다고 소리 지르던 세탁소 아저씨도, 1월에 반 토막이 났다고 술 마시던 학원 원장도.
“규성 씨. 이 돈 날리면 나 에어컨 없이 여름 나는 거야.”
“그럼 사지 마세요.”
“안 날려.”
나는 매수 단추를 눌렀다. 화면에 「체결 12.6 BTC」가 떴다. 규성은 충전기를 안은 채 셔터 밑으로 기어 나갔다. 나가면서 한 번 더 말했다.
“사장님, 내일 에어컨 있어요?”
“없어.”
*
5월 둘째 주 토요일 점심, 금목걸이를 한 남자가 들어와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마흔 중반, 배가 나온 몸에 골프 셔츠, 허리에 차 열쇠 두 개를 매달았다. 명옥 여사의 아들 소창훈이었다. 첫 생에서 나는 창훈 씨를 열 해 동안 다섯 번쯤 보았다. 볼 때마다 사업이 「이번엔 진짜」였다.
“떡볶이 하나. 엄마 건물에서 장사하시는 분이구나.” 창훈 씨가 의자에 앉으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벽이 왜 이렇게 허전해? 시계만 두 개네.”
“여사님이 주셨어요. 하나는 제가 먼저…….”
“엄마가 시계를 두 개나 사 줬다고? 나는 돌잔치 때 반지 하나 받았는데.” 창훈 씨가 떡을 하나 집어 먹고 눈을 크게 떴다. “맛있네. 사장님, 인테리어 안 하실래? 내가 인테리어 회사 해. 이 벽 나무로 싹 덮고 조명 달면 손님이 두 배야. 엄마 세입자니까 반값에 해 줄게.”
“반값이면 얼마예요?”
“천오백.”
“그럼 원래 삼천이에요?”
“원래는 이천인데 내가 좀 남겨야지.”
규성이 튀김을 건지다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창훈 씨는 개의치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보여 주었다. 합정의 어느 가게 공사 사진이었다.
“요즘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골목마다 매장을 내. 그 인테리어를 다 누가 하냐, 나 같은 사람이 하지. 엄마 건물도 나중에 내가 받으면 1층은 통으로 카페 낼 거야.”
“제가 1층에 있는데요.”
“그러니까 나중에.” 창훈 씨가 웃으며 떡볶이 접시를 비웠다. “계산은 엄마 앞으로 달아 줘.”
계단 위에서 명옥 여사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창훈아! 남의 가게에서 외상 하지 마라!” 창훈 씨는 이천오백 원을 계산대에 놓고 차 열쇠를 짤랑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중간쯤에서 목소리가 낮아졌다. “엄마, 삼천만 원만. 이번엔 진짜야.”
*
6월 10일 금요일 오후 세 시, 가게 안은 찜통이었다. 선풍기 두 대가 철판 열기를 손님 얼굴로 그대로 날랐다. 손님들은 땀을 닦으며 떡볶이를 먹었고, 나는 땀이 철판에 떨어질까 봐 두건을 두 번 고쳐 묶었다.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 목에 카메라를 걸었고, 명함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외주 제작사 PD였다. 맛집 소개 방송의 「골목 맛집」 코너를 맡는다고 했다.
열 해 전 오늘, 나는 이 명함을 받고 계산대 뒤에서 혼자 울었다. 7월에 방송이 나가자 다음 날부터 골목에 줄이 생겼다. 줄은 열 해 동안 한 번도 안 끊겼고, 줄이 길어질 때마다 3층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사장님 철판 떡볶이가 동네에서 소문이 났더라고요. 바둑 맞힌 집이라고도 하고요.” PD가 웃었다. “다음 주 화요일 촬영 어떠세요? 촬영은 한 시간이면 끝납니다.”
“안 나갈게요.”
PD의 웃음이 그대로 굳었다. 규성이 튀김을 건지다가 집게를 떨어뜨렸다.
“네?”
“저희 안 나가요. 가게가 좁아서요.”
“사장님, 다들 못 나가서 난리인데요.”
“다들 나가시라고 하세요.”
규성이 집게를 주워 들고 다가왔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다 들렸다. “사장님, 저 방송 나가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뒤에서 튀김만 건져도 돼요.”
“규성 씨 얼굴 나가면 다음 날 손님이 백 명 와. 백 명 오면 규성 씨 튀김 기름에 손목 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데어 봤어.”
“제가요?”
“응.”
“저 아직 안 데었는데요.”
PD는 명함을 계산대에 두고 나갔다. 나가면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유리문이 닫히기 전에 PD의 말이 들렸다. “여기 안 된대. 그럼 합정 홍떡으로 가자. 거기 본사가 협찬도 한다잖아.”
국자를 쥔 손이 멈췄다. 첫 생에서 홍떡은 2018년에야 합정에 첫 매장을 냈다. 그런데 2016년 6월의 PD가 합정 홍떡을 알고 있었다. 내가 사흘 동안 이 골목에서 무언가를 건드리는 동안, 바깥에서 무엇인가가 벌써 달라져 있었다.
*
다섯 시, 봉희 사장이 꽃집 앞에 물을 뿌리다가 3층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여사님! 떡볶이집이 방송 찼어요!”
삼 분 뒤 명옥 여사가 골목에 나와 있었다. 슬리퍼에 앞치마 차림이었고, 손에는 파 한 단을 쥐고 있었다. 파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방송 들어온 걸 왜 차?”
“좁아서요.”
“좁으면 넓혀. 2층 피아노 학원 내보내 줄게.”
“여사님, 방송 나가면 손님 와요. 손님 오면 골목 떠요. 골목 뜨면 여사님 월세 올리실 거잖아요.”
“그래, 올릴 거다.” 명옥 여사가 파를 고쳐 쥐었다. “장사 잘되면 월세 올리는 게…….”
“내 노후다.”
내가 끝을 받자 명옥 여사의 입이 그대로 멈췄다. 골목에 서 있던 봉희 사장이 물 호스를 든 채 웃음을 참았고, 철물점 앞에서 연탄집게를 정리하던 오영복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너 내 말 끝 따라 하지 마라.”
“죄송해요. 입에 붙어서요.”
“석 달 된 애 입에 내 말이 왜 붙어?”
명옥 여사가 한 발 다가왔다. 파 냄새와 땀 냄새가 같이 왔다.
“이 골목에 사람이 와야 내 건물이 산다. 너 하나 좁다고 골목을 굶기니? 시장 앞 건물들 봐라. 홍대 쪽에서 사람이 넘어오는데 우리 골목만 깜깜하다. 우리 영감 약값이 한 달에 얼만지 아니?”
“할아버지 혈압 약은 꼭 챙겨 드리세요. 가을에…….”
나는 말을 삼켰다. 첫 생의 10월, 소덕만 할아버지는 3층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명옥 여사는 구급차 뒤에 앉아 맨발이었다고 했다.
“가을에 뭐?”
“가을엔 일교차가 커서요.”
“남의 영감 걱정 말고 네 철판이나 걱정해.” 명옥 여사가 파로 내 가게 유리문을 툭 쳤다. “내년 3월이 계약 1년이다. 그때 보자. 9퍼센트까지 올릴 수 있는 거 나도 안다.”
명옥 여사가 3층으로 올라갔다. 봉희 사장이 호스를 잠그며 말했다.
“잘들 한다. 방송 차고 건물주한테 대들고. 너 진짜 석 달 간다.”
“여덟 해 가실 분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죠.”
“뭐?”
“꽃이 예쁘다고요.”
*
7월 5일 화요일 저녁 일곱 시 반, 텔레비전에서 「골목 맛집」 코너가 나왔다. 손님은 둘뿐이었다. 규성은 걸레질을 하다 말고 화면 앞에 쪼그려 앉았다.
화면에 합정역 뒷골목이 나왔다. 빨간 간판에 흰 글씨, 「홍떡」. 줄이 가게 앞에서 모퉁이까지 이어져 있었다. 리포터가 떡을 집어 들고 눈을 감았다. 그다음 화면에 남자 하나가 나왔다. 마흔 초반의 깔끔한 얼굴, 하늘색 셔츠에 남색 넥타이, 손목에 은색 시계. 화면 아래 자막이 떴다.
「홍떡에프앤비 점포개발팀장 마정철」
“저희는 골목이 뜨기 전에 먼저 들어갑니다.” 마정철이 웃었다. 열 해 뒤 문 앞에서 내 열쇠를 받던 웃음과 같은 웃음이었다. “다음 매장은 망원동을 보고 있습니다. 시장 뒤 골목 어귀가 좋더라고요.”
국자가 철판에 떨어졌다. 땡, 하는 소리에 손님 둘이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 아는 사람이에요?”
“열쇠 준 사람.”
“언제요?”
“2026년에.”
규성이 걸레를 든 채 일어서지도 못하고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쳤다. 냉장고에 등이 닿자 거기서 멈췄다.
“사장님 무서워요. 진짜로요.”
나는 국자를 주워 들었다. 화면 속 마정철이 말한 골목 어귀는 이 건물이었다. 망원시장 뒷길에서 한강 쪽으로 꺾이는 모퉁이, 1985년에 지은 붉은 벽돌 3층. 3층 창문에서 명옥 여사가 텔레비전 소리를 키우는지, 같은 방송 소리가 계단을 타고 두 겹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