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87자)

개업 첫날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26년 12월 14일 월요일 아침 여덟 시⁠, 망원동 골목 어귀의 문가네 떡볶이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철판을 닦았다⁠. 불을 끈 지 사흘이 지난 철판은 손바닥을 대자 쇠 냄새를 올렸다⁠. 열 해 동안 고춧가루 기름이 배어 검게 길이 든 자리를 행주로 문지르는데⁠, 행주에 묻어 나오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닦을 것도 없는 철판을 나는 십오 분 동안 닦았다⁠.

유리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서른아홉 살⁠, 보통 키에 단단한 팔⁠, 짧은 커트 머리에 빨간 두건⁠, 동그란 눈⁠. 빨간 줄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오른손에는 큰 국자를 쥐고 있었다⁠. 가게를 닫는 날에도 국자를 쥐고 있는 손을 보고 나는 조금 웃었다⁠. 열 해 동안 손이 먼저 국자를 찾았다⁠.

유리문 바깥에서 사다리 두 개가 올라갔다⁠. 작업복 입은 남자 둘이 간판 위에 현수막을 폈다⁠. 빨간 바탕에 흰 글씨였다⁠.

「⁠홍떡 망원 직영점 오픈 예정⁠」

“⁠사장님⁠, 열쇠는 이쪽으로 주시면 됩니다⁠.⁠”

남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문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홍떡에프앤비 점포개발 상무 마정철⁠. 명함은 석 달 전에 받았고⁠, 석 달 동안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마정철 뒤로 지팡이를 짚은 탁명옥 여사가 서 있었다⁠. 3층에 사는 건물주⁠, 올해 여든하나⁠. 털모자를 눌러쓴 얼굴이 아침 햇빛에 하얗게 떴다⁠.

봄에 갱신요구권 십 년이 끝났다⁠. 끝난 다음 날 명옥 여사는 월세를 세 배로 불렀고⁠, 나는 대출로 아홉 달을 냈다⁠. 아홉 달 동안 손님은 늘었는데 통장은 줄었다⁠.

“⁠철판은 저희가 처분해 드릴까요⁠?⁠” 마정철이 물었다⁠.

“⁠제가 가져가요⁠.⁠”

“⁠무거우실 텐데요⁠.⁠”

“⁠열 해 들었어요⁠.⁠”

나는 열쇠를 마정철 손바닥에 올려놓고 명옥 여사를 보았다⁠. 열 해 동안 이 가게에서 떡볶이를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이었다⁠.

“⁠여사님⁠, 마지막으로 한 그릇 드릴까요⁠? 불은 다시 켜면 돼요⁠.⁠”

“⁠떡볶이는 애들이나 먹는 거다⁠.⁠” 명옥 여사가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쳤다⁠. “⁠시계는 떼 가라⁠. 내가 준 거니까⁠.⁠”

벽에 동그란 흰 벽시계가 붙어 있었다⁠. 개업 첫날 명옥 여사가 3층에서 들고 내려온 시계였다⁠. 나는 시계를 떼어 앞치마 품에 안았다⁠. 시계 뒤 벽지만 열 해 전 색 그대로 하얬다⁠.

*

열한 시⁠, 세무서 민원실 창구 직원이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폐업 사유요⁠.⁠”

“⁠월세요⁠.⁠”

“⁠사업 부진⁠, 임대료⁠, 기타 중에 고르셔야 하는데요⁠.⁠”

“⁠임대료랑 기타 둘 다는 안 돼요⁠?⁠”

“⁠하나만요⁠.⁠”

나는 임대료를 골랐다⁠. 직원은 도장을 쾅 찍고 폐업 사실 증명원을 출력해 주었다⁠. 열 해가 종이 한 장으로 나오는 데 사 분이면 됐다⁠.

민원실 문을 밀고 나오자 계단에 밤새 언 물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앞치마도 못 벗고 나온 몸에 바람이 칼처럼 들어왔다⁠. 시계를 품에 안은 채 한 발을 내디뎠는데⁠, 운동화 밑창이 얼음을 타고 그대로 미끄러졌다⁠.

넘어지면서 시계 유리를 보았다⁠. 초바늘이 거꾸로 돌고 있었다⁠. 분침도⁠, 시침도⁠. 열한 시 십사 분에서 바늘 셋이 한꺼번에 왼쪽으로 감기더니 점점 빨라졌다⁠. 하늘이 보이고⁠, 계단 모서리가 보이고⁠, 그다음에는 고춧가루 볶는 냄새가 났다⁠.

*

철판이 지글거렸다⁠.

나는 철판 앞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 국자를 쥐고⁠, 철판 위에서 고추기름이 끓었다⁠. 기름이 튀어 손등에 닿았다⁠. 따가웠다⁠. 꿈은 따갑지 않았다⁠.

벽에 동그란 흰 벽시계가 있었다⁠. 바늘이 거꾸로 돌다가 일곱 시 삼십 분에서 멈추더니⁠, 째깍⁠, 하고 앞으로 한 칸 갔다⁠. 시계 옆 달력은 「⁠2016년 3월⁠」 장이었다⁠. 9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고⁠, 동그라미 안에 내 글씨로 「⁠개업⁠!⁠!⁠」이라고 쓰여 있었다⁠. 느낌표가 두 개였다⁠. 스물아홉 살의 내가 그렸다⁠.

유리문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개업 첫날 — 오늘은 떡볶이 한 접시에 어묵 한 개 덤⁠」⁠. 바깥에서 보면 거꾸로 읽히게 붙여 놓은 종이였다⁠. 열 해 전 아침⁠, 나는 저 종이를 붙이고 혼자 박수를 쳤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이 작았다⁠. 잠금 화면에 「⁠2016⁠. 3⁠. 9⁠. 수요일⁠」이 떴다⁠. 열 해 동안 세 번 바꾼 휴대전화의 맨 처음 것이었다⁠.

주방 거울 앞으로 갔다⁠. 짧은 커트 머리⁠, 빨간 두건⁠, 동그란 눈⁠, 빨간 줄무늬 앞치마⁠. 앞치마는 빨간 줄이 선명했다⁠. 열 해 동안 빨아서 분홍이 된 앞치마가 처음 산 날 빛깔로 돌아와 있었다⁠. 소매를 걷어 보았다⁠. 팔이 가늘었다⁠. 국자를 쥔 오른손을 펴 보니 손바닥이 매끈했다⁠. 엄지 아래 박혀 있던 굳은살이 없었다⁠.

“⁠이 팔로 열 해를 어떻게 볶았지⁠.⁠”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떡볶이 2⁠,500원 · 순대 3⁠,000원 · 튀김 다섯 개 2⁠,000원⁠」⁠. 나는 메뉴판 앞에서 입을 막았다⁠.

“⁠이 가격에 팔았다고⁠? 미쳤네⁠, 스물아홉 살 문가윤⁠.⁠”

*

여덟 시 반⁠, 유리문이 열리고 키 큰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들어왔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았고⁠, 겁 많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가게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알바하는⁠…⁠…⁠.⁠”

“⁠안규성 씨⁠.⁠”

남자가 이어폰을 뺐다⁠. “⁠제 이름 말씀드렸어요⁠?⁠”

“⁠전화 면접 때요⁠.⁠”

“⁠전화 면접 때 사장님이 제 이름 못 알아들으셔서 안규선 씨라고 하셨는데요⁠.⁠”

열 해 전에 그랬다⁠. 나는 기억도 못 하는 일을 규성은 기억하고 있었다⁠. 첫 생의 규성은 석 달 일하고 그만두었다⁠. 시급 육천삼십 원에 하루 아홉 시간 서서 튀김을 건지다가⁠, 손님이 몰린 날 튀김 기름에 손목을 데고 다음 날부터 안 나왔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하고 보냈다⁠.

“⁠요즘 애들은 이름 틀리면 바로 정 떨어지잖아요⁠. 역시 MZ는 다르네⁠.⁠”

“⁠엠지요⁠?⁠” 규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 이니셜은 에이케이에스인데요⁠.⁠”

“⁠아⁠, 그게⁠…⁠… 마포 지역 청년이라는 뜻이에요⁠.⁠”

“⁠그런 말도 있어요⁠?⁠”

“⁠곧 생겨요⁠.⁠”

규성은 대답 대신 앞치마를 받아 들었다⁠. 끈을 두 번 잘못 묶었다⁠.

*

아홉 시⁠, 바깥 계단으로 지팡이 소리가 내려왔다⁠. 지팡이가 아니었다⁠. 2016년의 명옥 여사는 지팡이를 짚지 않았다⁠. 계단 난간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내려오는 소리였다⁠. 일흔한 살의 명옥 여사가 유리문을 열었다⁠. 꼿꼿한 허리에 꽃무늬 누빔 조끼⁠, 파마머리는 아직 검은 기가 남아 있었다⁠. 한 손에 상자⁠, 다른 손에 종이 한 장⁠.

“⁠시계 하나 사 왔다⁠. 가게엔 시계가 있어야지⁠. 월세 날 잊지 말라고⁠.⁠”

나는 벽을 보았다⁠. 벽에는 벌써 시계가 있었다⁠. 명옥 여사도 벽을 보았다⁠. 상자를 뜯어 꺼낸 시계가 벽의 시계와 똑같았다⁠. 동그란 흰 판⁠, 검은 바늘⁠, 망원시장 시계방 스티커⁠.

“⁠너 이거 벌써 샀니⁠?⁠”

“⁠…⁠…선물로 받았어요⁠.⁠”

“⁠누가⁠?⁠”

“⁠여사님이요⁠.⁠”

명옥 여사가 나를 한참 보다가 상자를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개업하는 날 정신이 없구나⁠. 두 개 달아⁠. 하나는 월세 날 보고⁠, 하나는 월급날 봐⁠.⁠”

그리고 종이를 내밀었다⁠. 열 해 전 아침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도장을 찍은 종이였다⁠.

「⁠특약 추가 — 임차인은 계약 종료 시 권리금을 주장하지 않으며⁠, 점포를 원상복구하여 명도한다⁠」

“⁠계약서에 깜박하고 안 넣었다⁠. 도장 하나만 찍어라⁠. 형식이다⁠.⁠”

첫 생에서 나는 형식인 줄 알았다⁠. 2026년 봄⁠, 다음 세입자를 데려와 권리금이라도 받겠다고 했을 때 명옥 여사는 이 종이를 꺼내 흔들었다⁠. 법으로는 효력이 없다는 말을 변호사에게 들은 건 가게를 정리하고 난 뒤였다⁠.

“⁠안 찍을게요⁠.⁠”

규성이 튀김 바구니를 들다가 멈췄다⁠. 명옥 여사의 눈썹이 한쪽만 올라갔다⁠.

“⁠뭐⁠?⁠”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임차인한테 불리한 약정은 효력이 없다고 나와 있어요⁠. 작년 5월부터 권리금도 법으로 보호되고요⁠. 효력 없는 종이에 도장 찍으면 나중에 서로 얼굴만 붉혀요⁠.⁠”

“⁠개업 첫날부터 법 얘기 하는 세입자는 처음 본다⁠.⁠”

“⁠저도 첫날부터 특약 들고 오시는 건물주는 처음⁠…⁠… 아니⁠, 두 번째 봐요⁠.⁠”

“⁠두 번째⁠?⁠”

“⁠말이 그렇다고요⁠.⁠”

명옥 여사가 종이를 접었다⁠.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안 찍으면 다음 계약은 없다⁠.⁠”

“⁠처음 5년은 제가 원하면 계약이 갱신돼요⁠. 여사님이 막으실 수 없어요⁠. 그것도 법에 있어요⁠.⁠”

“⁠5년 뒤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5년 뒤가 아니라 십 년 뒤였다⁠. 2018년 10월에 법이 바뀌어 5년이 십 년이 된다는 것을⁠, 이 가게에서 나 혼자 알았다⁠.

명옥 여사의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명옥 여사는 화면을 보고 한숨을 쉰 뒤 받았다⁠. 수화기 너머 남자 목소리가 가게까지 새어 나왔다⁠. “⁠엄마⁠, 이번엔 진짜야⁠. 삼천만 원만 돌려 줘⁠.⁠” 명옥 여사는 “⁠나중에⁠” 하고 끊었다⁠. 3층에서 남편 소덕만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명옥 여사가 유리문을 열다 말고 돌아보았다⁠.

“⁠하나만 알아 둬라⁠. 장사 잘되면 월세 올리는 게 내 노후다⁠.⁠”

“⁠알아요⁠. 그 말 십 년 들었어요⁠.⁠”

“⁠오늘 처음 봤는데⁠?⁠”

“⁠…⁠…얼굴에 쓰여 있어서요⁠.⁠”

유리문이 닫혔다⁠. 계단을 올라가는 손바닥 소리가 아까보다 세게 났다⁠. 규성이 튀김 바구니를 끌어안고 나를 보았다⁠.

“⁠사장님⁠, 건물주랑 원래 아시는 사이예요⁠?⁠”

“⁠오늘 처음 봤어⁠.⁠”

*

옆 칸 봉희꽃방 하봉희 사장이 열한 시에 축하 화분을 들고 왔다⁠. 리본에 「⁠대박 나세요 — 봉희꽃방⁠」⁠. 봉희 사장은 화분을 내려놓고 메뉴판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이천오백 원⁠? 잘들 한다⁠. 이 골목에서 그 가격이면 석 달이다⁠.⁠”

첫 생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첫 생의 봉희 사장은 여덟 해를 버티고 떠났다⁠.

점심때 손님이 몰렸다⁠. 망원시장에서 장 보고 나온 할머니들⁠, 근처 학원 강사⁠, 등산복 입은 아저씨들⁠. 나는 철판 앞에서 떡을 뒤집었다⁠. 머리는 열 해치를 알고 있었다⁠. 떡이 언제 양념을 먹는지⁠, 어묵을 언제 넣어야 국물이 안 탁해지는지⁠, 불은 몇 시에 줄여야 하는지⁠. 손이 못 따라왔다⁠. 국자가 무거웠다⁠. 두 시가 되자 오른팔이 덜덜 떨렸다⁠. 굳은살 없는 손바닥에 국자 손잡이 자국이 빨갛게 박혔다⁠.

“⁠사장님⁠, 팔 떨리시는데요⁠.⁠”

“⁠열 해치 일을 하루에 하려니까 그래⁠.⁠”

“⁠네⁠?⁠”

“⁠떡 뒤집어⁠.⁠”

*

저녁 일곱 시⁠, 계산대 위 작은 텔레비전에서 바둑 중계가 나왔다⁠. 서울 한 호텔에서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다섯 판을 두는 첫날이었다⁠. 손님 셋이 떡볶이를 먹다 말고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인간이 이기죠⁠.⁠” 규성이 어묵 국물을 저으며 말했다⁠. “⁠컴퓨터가 바둑을 어떻게 둬요⁠. 바둑은 감이잖아요⁠.⁠”

“⁠오늘 져⁠. 불계로⁠.⁠”

“⁠에이⁠.⁠”

“⁠내일도 지고⁠, 모레도 져⁠. 네 번째 판은 이겨⁠.⁠”

규성이 국자를 멈추고 나를 보았다⁠. 손님 하나가 웃었다⁠. “⁠사장님 바둑 두세요⁠?⁠”

“⁠아뇨⁠. 떡볶이 볶아요⁠.⁠”

여덟 시 반⁠,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이세돌 9단⁠, 알파고에 불계패⁠」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손님 셋이 동시에 나를 보았다⁠. 규성은 국자를 쥔 채 한 발 물러나 냉장고에 등을 붙였다⁠.

“⁠사장님⁠.⁠”

“⁠응⁠.⁠”

“⁠사장님 무서워요⁠.⁠”

나는 철판 불을 줄였다⁠. 벽에 시계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하나는 열 해를 거꾸로 돌아온 시계⁠, 하나는 오늘 아침 상자에서 나온 시계⁠. 두 시계의 초바늘이 한 박자도 어긋나지 않고 같이 갔다⁠. 2026년 12월 14일 열한 시 십사 분까지⁠, 바늘이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지 나는 따져 보지 않았다⁠.

유리문 위에 열 해 뒤 올라갈 현수막의 빨간 빛깔이 떠올랐다⁠. 나는 국자를 고쳐 쥐었다⁠. 손바닥 빨간 자국 위로 손잡이가 꼭 맞게 들어왔다⁠.

“⁠규성 씨⁠, 내일도 나와요⁠.⁠”

“⁠무서운데요⁠.⁠”

“⁠시급 올려 줄게⁠. 육천오백⁠.⁠”

규성이 냉장고에서 등을 뗐다⁠. “⁠내일 몇 시까지 오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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