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99자)

망리단길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16년 10월 14일 금요일 저녁 여섯 시⁠, 문가네 떡볶이 앞에 줄이 생겼다⁠. 방송은 안 나갔다⁠. 신문에도 안 났다⁠. 그런데 유리문 밖으로 스물 남짓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들고 서 있었다⁠. 다들 이 골목 사람이 아니었다⁠. 연남동에서 경의선숲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는 대학생들⁠, 합정에서 홍떡 줄이 길어서 넘어왔다는 회사원들이었다⁠.

“⁠사장님⁠, 여기 바둑 맞힌 집 맞죠⁠?⁠”

맨 앞의 여자 손님이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사진 속에 내 철판이 있었다⁠. 빨간 양념 위로 김이 오르고⁠, 국자를 쥔 내 오른손이 귀퉁이에 걸쳐 있었다⁠. 사진 아래 글이 붙어 있었다⁠.

「⁠망리단길 숨은 철판 떡볶이 · 사장님이 알파고 대국을 다 맞히셨다는 그 집 · 오늘도 사장님 무서움 #망리단길 #망원동맛집 #예언떡볶이⁠」

올린 사람 이름은 「⁠문가네떡볶이_망원⁠」이었다⁠. 나는 그런 계정을 만든 적이 없었다⁠.

“⁠규성 씨⁠.⁠”

튀김기 앞에서 규성의 등이 굳었다⁠. 돌아보지도 않고 튀김을 건졌다⁠.

“⁠규성 씨⁠, 이 계정 누가 만들었어⁠?⁠”

“⁠사장님 가게가 망할까 봐요⁠.⁠”

“⁠누가 만들었냐고⁠.⁠”

“⁠제가요⁠. 그런데 사장님⁠, 저 사진만 올렸어요⁠. 글은 손님들이 퍼 가면서 붙인 거예요⁠. 예언떡볶이는 제가 붙였고요⁠.⁠”

“⁠망리단길은⁠?⁠”

“⁠그건 원래 있던 말이에요⁠. 경리단길처럼 망원동도 뭐뭐단길이라고 부른대요⁠.⁠”

나는 줄을 보았다⁠. 첫 생에서 「⁠망리단길⁠」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방송이 나가고 석 달 뒤였다⁠. 이번엔 방송 없이 같은 말이 같은 철에 왔다⁠. 숲길은 내가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연남동에 길이 열리면 사람은 걸어서 넘어온다⁠.

“⁠규성 씨⁠, 이 사진 내려⁠.⁠”

“⁠왜요⁠? 좋아요가 삼천 개예요⁠.⁠”

“⁠동영상은 찍지 마⁠. 짧은 동영상 올리면 끝이야⁠. 릴스는 절대 안 돼⁠.⁠”

“⁠릴스가 뭐예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2016년에는 아직 없는 말이었다⁠. 규성이 국자를 든 나를 오래 보다가 튀김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사장님⁠, 혹시 외계인이세요⁠?⁠”

“⁠떡 뒤집어⁠.⁠”

*

10월 16일 일요일 오전⁠, 골목에 처음 보는 남자 둘이 들어왔다⁠. 둘 다 등산 조끼 차림이었는데 등산객은 아니었다⁠. 한 사람은 건물마다 사진을 찍었고⁠, 한 사람은 수첩에 무언가를 적으며 전봇대 번지수를 읽었다⁠. 시장 앞 부동산 사무소 사장과 서울 어딘가에서 온 투자자였다⁠.

철물점 앞에서 오영복 사장이 연탄집게를 정리하다가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예순여덟의 영복 사장은 마흔 해 동안 같은 자리에서 못과 경첩을 팔았고⁠, 골목 사람 누구에게나 반말을 했다⁠.

“⁠어이⁠, 남의 가게 간판은 왜 찍어⁠?⁠”

“⁠아⁠, 어르신⁠. 요즘 여기가 망리단길이라고 뜨잖아요⁠. 시세 좀 보느라고요⁠.⁠”

“⁠망리 단길⁠?⁠” 영복 사장이 집게를 내려놓았다⁠. “⁠망한 길이라는 거여⁠, 뭐여⁠?⁠”

“⁠뜨는 길이요⁠, 어르신⁠.⁠”

“⁠뜨는 길에 왜 망 자를 붙여⁠. 내가 이 골목 사십 년이야⁠. 이 골목 이름은 그냥 시장 뒷길이야⁠.⁠”

투자자가 웃으며 철물점 건물을 한 장 더 찍었다⁠. 영복 사장은 철물점 건물의 주인이 아니었다⁠. 첫 생에서 영복 사장의 건물은 2018년에 팔렸고⁠, 새 주인이 들어온 지 넉 달 만에 철물점 자리에 커피 가게가 생겼다⁠. 영복 사장이 마지막 날 경첩 상자를 리어카에 싣고 골목을 내려가던 모습을 나는 떡을 뒤집으며 보았다⁠. 손님이 밀려서 인사도 못 했다⁠.

“⁠영복 사장님⁠, 사진 찍지 말라고 하세요⁠. 앞으로 계속 와요⁠.⁠”

“⁠문 사장이 그걸 어떻게 알어⁠?⁠”

“⁠저 바둑도 맞혔잖아요⁠.⁠”

“⁠바둑하고 부동산이 같어⁠?⁠”

“⁠둘 다 사람이 몰리는 데로 가요⁠.⁠”

옆 칸에서 봉희 사장이 꽃 양동이를 내놓다가 끼어들었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명옥 여사가 아침에 꽃집 문틈에 끼워 놓았다는 쪽지였다⁠. 「⁠내년 재계약 때 월세 조정합니다 — 3층⁠」⁠.

“⁠잘들 한다⁠. 한 사람은 사진 찍고⁠, 한 사람은 쪽지 쓰고⁠.⁠” 봉희 사장이 쪽지를 앞치마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문 사장⁠, 너도 받았니⁠?⁠”

“⁠저는 말로 들었어요⁠.⁠”

“⁠말로 들으면 더 무섭다⁠.⁠”

*

10월 18일 화요일 오후 세 시⁠, 손님이 빠진 가게에 남색 양복이 들어왔다⁠. 방송에서 본 하늘색 셔츠 대신 짙은 정장이었고⁠, 손목에는 같은 은색 시계가 있었다⁠. 마정철은 메뉴판을 사진으로 찍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떡볶이 하나⁠, 순대 하나 주세요⁠. 사장님 철판 소문 듣고 왔습니다⁠.⁠”

나는 떡볶이를 담아 내밀었다⁠. 열 해 뒤에 이 사람 손바닥에 열쇠를 올려놓았다⁠. 열쇠를 받던 손이 지금 내 접시를 받았다⁠. 마정철은 떡을 하나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머금었다⁠. 삼키고 나서 수첩을 꺼냈다⁠.

“⁠멸치 육수에 고춧가루를 기름에 먼저 볶으시네요⁠. 고추장은 조금만⁠. 설탕 대신 물엿이고⁠, 떡은 쌀떡을 하루 냉장했다가 쓰시고요⁠.⁠”

규성이 튀김을 건지다 말고 나를 보았다⁠. 내가 열 해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순서였다⁠.

“⁠입맛이 좋으시네요⁠.⁠”

“⁠직업이 입맛입니다⁠.⁠” 마정철이 명함을 계산대에 올렸다⁠. 「⁠홍떡에프앤비 점포개발팀장 마정철⁠」⁠. “⁠사장님⁠, 철판 떡볶이 조리법을 저희가 사겠습니다⁠. 사장님 이름도 같이 쓰겠습니다⁠. 문가네 철판⁠, 홍떡이 만든⁠. 사장님은 이 가게를 계속하셔도 되고⁠, 저희 매장 메뉴 개발 고문을 하셔도 됩니다⁠.⁠”

“⁠안 팔아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팔면 홍떡이 골목마다 들어오잖아요⁠.⁠”

“⁠사장님⁠, 저희가 안 들어가도 골목은 바뀝니다⁠.⁠” 마정철이 공손하게 웃었다⁠. “⁠골목 가게는 대부분 몇 해를 못 버팁니다⁠. 저는 문 닫는 가게를 날마다 봅니다⁠. 손님은 줄을 서는데 월세가 따라잡고⁠, 사장님은 철판 앞에서 늙고요⁠. 저희는 사장님 같은 분이 문을 안 닫게 하려는 겁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첫 생의 나는 문을 닫았다⁠. 열 해를 볶고⁠, 월세가 따라잡았다⁠.

“⁠열 해 뒤에 제 문 닫게 하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네요⁠.⁠”

마정철의 눈이 처음으로 가늘어졌다⁠. “⁠저를 아세요⁠?⁠”

“⁠방송에서 봤어요⁠.⁠”

“⁠열 해 뒤라는 말씀은요⁠?⁠”

“⁠장사하는 사람 감이에요⁠.⁠”

마정철은 수첩을 덮었다⁠. “⁠오늘은 사실 위층에 왔습니다⁠. 탁명옥 여사님 건물이 골목 어귀라서요⁠. 이 골목에 들어오는 사람이 처음 보는 자리가 이 건물입니다⁠.⁠”

“⁠여사님 건물 안 파세요⁠.⁠”

“⁠지금 안 파셔도 됩니다⁠.⁠” 마정철이 떡볶이 값 이천오백 원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저희는 기다리는 걸 잘합니다⁠. 사장님 떡볶이⁠,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서 더 아깝습니다⁠.⁠”

마정철이 계단을 올라갔다⁠. 3층 문이 열리고⁠, 명옥 여사의 목소리가 아주 잠깐 높아졌다가 문과 함께 닫혔다⁠.

규성이 내 옆으로 왔다⁠. “⁠사장님⁠, 저분이 열쇠 받아 간 사람이에요⁠?⁠”

“⁠응⁠.⁠”

“⁠좋은 사람 같은데요⁠.⁠”

“⁠그러니까 무서운 거야⁠.⁠”

*

10월 21일 금요일 밤 열한 시⁠, 셔터를 반쯤 내렸을 때 천장에서 쿵 소리가 났다⁠.

나는 날짜를 몰랐다⁠. 첫 생에서 소덕만 할아버지가 쓰러진 것은 「⁠10월 어느 밤⁠」이었다⁠. 명옥 여사가 그렇게만 말했고⁠,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생의 10월 내내 셔터를 내리면 3층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밤 소리는 가구가 넘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3층 현관이 열려 있었고 화장실 문 앞에 명옥 여사가 주저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화장실 바닥에 모로 누워 있었다⁠. 입가가 한쪽으로 처졌다⁠.

“⁠119 불렀어요⁠?⁠”

명옥 여사가 고개를 저었다⁠. 손에 쥔 휴대전화가 떨렸다⁠. 나는 내 휴대전화로 119를 눌렀고⁠, 주소를 두 번 불렀다⁠. 망원동 골목 어귀 붉은 벽돌집 3층⁠. 구급대원이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나는 명옥 여사 앞에 현관의 털신을 놓았다⁠.

첫 생에서 명옥 여사는 구급차 뒤에 맨발로 앉아 있었다고 했다⁠. 털신 한 켤레가 이번 생에 내가 바꾼 것의 전부였다⁠.

*

새벽 두 시⁠, 병원 응급실 앞 복도에서 명옥 여사는 털신을 신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사는 뇌졸중이라고 했다⁠. 한쪽 몸이 오래 불편할 것이고⁠, 집중 치료가 끝나면 요양병원을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의사가 가자 명옥 여사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았다⁠.

“⁠네가 가을이 어쩌고 하더니⁠.⁠”

“⁠여사님⁠.⁠”

“⁠재수 없는 소리를 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냐⁠?⁠”

“⁠혈압 약 챙기시라고 했잖아요⁠.⁠”

“⁠챙겼다⁠! 아침마다 챙겼어⁠!⁠” 명옥 여사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간호사 하나가 돌아보았다⁠. 명옥 여사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약을 챙겨도 쓰러질 거면⁠,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는 알았고⁠, 막지 못했다⁠. 털신은 신겼지만 할아버지는 쓰러졌다⁠. 말로만 건드린 일은 그대로 왔다⁠.

명옥 여사가 털신 앞코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있다가 목소리가 갈라졌다⁠.

“⁠요양병원이 한 달에 얼만지 아니⁠?⁠”

“⁠…⁠…알아요⁠.⁠”

“⁠모르는 게 없구나⁠.⁠” 명옥 여사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창훈이 사업은 또 망했고⁠, 영감은 누웠고⁠, 나한테 남은 건 건물 하나다⁠. 내년 3월에 월세 9퍼센트 올린다⁠. 섭섭해도 할 수 없다⁠.⁠”

“⁠섭섭하지 않아요⁠. 법에서 되는 거니까요⁠.⁠”

“⁠법 얘기 또 하네⁠.⁠”

“⁠그리고 여사님⁠, 홍떡 팀장 그분이 건물 얘기 하러 왔죠⁠.⁠”

명옥 여사가 대답 대신 털신을 벗어 의자 밑에 가지런히 놓았다⁠. 다시 신으려다 말고 맨발을 털신 위에 올려놓기만 했다⁠.

“⁠그 사람은 시세보다 더 쳐준대⁠. 영감 병원비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팔지 마세요⁠.⁠”

“⁠네가 무슨 상관인데⁠.⁠”

“⁠제가 1층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나가면 더 쳐준대⁠.⁠”

복도 형광등이 지잉 울었다⁠. 명옥 여사가 일어나 중환자실 쪽으로 걸어갔다⁠. 털신을 신고 갔다⁠.

*

새벽 다섯 시⁠, 택시에서 내려 가게 셔터를 올렸다⁠. 철판은 식어 있었고⁠, 벽에 시계 두 개가 같은 시각을 가리켰다⁠.

나는 철판 앞에 서서 지난 일곱 달을 처음부터 다시 따져 보았다⁠. 방송을 거절하면 골목이 덜 뜰 줄 알았다⁠. 골목이 덜 뜨면 월세가 덜 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방송은 홍떡을 띄웠고⁠, 홍떡은 두 해 일찍 이 골목에 왔다⁠. 숲길로 사람은 그대로 넘어왔다⁠. 할아버지는 그대로 쓰러졌다⁠. 내가 가게를 작게 붙들고 있으면 명옥 여사는 병원비를 막으려고 건물을 더 빨리 판다⁠. 사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작게 버티는 것은 길이 아니었다⁠. 나는 이번 생에서도 같은 자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계산대 서랍을 열었다⁠. 통장 밑에 코인 거래소 비밀번호를 적은 쪽지가 있었다⁠. 휴대전화로 화면을 열자 「⁠비트코인 726⁠,000원⁠」이 떴다⁠. 3월보다 오십 퍼센트 넘게 올라 있었다⁠. 첫 생의 기억으로는 아직 한참 남은 숫자였다⁠.

여섯 시 반⁠, 셔터 밑으로 규성의 운동화가 들어왔다⁠. 아침 장 보는 날이었다⁠. 규성은 철판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놀라서 들고 온 떡 상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사장님⁠, 집에 안 가셨어요⁠?⁠”

“⁠규성 씨⁠, 나 건물 살 거야⁠.⁠”

“⁠이 건물요⁠?⁠”

“⁠응⁠.⁠”

“⁠떡볶이 팔아서요⁠?⁠”

“⁠떡볶이 팔고⁠, 다단계 해서⁠.⁠”

규성이 떡 상자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러고는 앞치마를 꺼내 묶었다⁠. 이번에는 끈을 한 번에 묶었다⁠.

“⁠사장님 무서워요⁠.⁠” 규성이 철판 불을 켰다⁠. “⁠그런데 오늘 떡은 몇 상자 불려요⁠?⁠”

“⁠다섯⁠.⁠”

“⁠어제 셋이었는데요⁠.⁠”

“⁠오늘부터 다섯이야⁠.⁠”

철판에 고추기름이 돌기 시작했다⁠. 고춧가루 볶는 냄새가 셔터 밖 골목으로 흘러 나갔고⁠, 골목 끝 철물점의 셔터가 덜컹 올라갔다⁠. 3층 창문만 불이 꺼져 있었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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