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51자)

위약금

영끌 전날로 회귀했다 · 문채겸

10월 12일 오전 열 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퍼센트에서 3퍼센트로 올렸다⁠. 한 번에 0⁠.5퍼센트포인트⁠, 올해 두 번째 빅 스텝이었다⁠. 객장 텔레비전 아래 자막에는 원 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소식이 같이 흘렀다⁠. 형우는 창구에 앉아 시계를 보았다⁠. 숫자는 여름 그대로 플러스 일억 구천만 원이었다⁠.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2027년의 숫자 안에 이미 들어 있었다⁠.

휘담 리버파크 단톡방은 10월 12일에 처음으로 폭죽 대신 다른 것으로 열렸다⁠. 누군가 수원의 다른 신축 단지 분양권 매물 화면을 캡처해 올렸다⁠. 「⁠분양가 대비 −5천⁠」 밑으로 글이 이어졌다⁠. 「⁠우리 단지는 괜찮겠죠⁠?⁠」「⁠잔금 대출 금리 지금 몇이에요⁠?⁠」「⁠6 넘는다던데⁠」 십 분쯤 지나 고정 공지가 다시 올라왔다⁠. 「⁠부정적인 글 자제 부탁드립니다 — 협의회⁠」 공지 아래로 부회장이 글을 하나 더 달았다⁠. 「⁠단지 이름에 ‘⁠더⁠’를 붙이면 시세가 오른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휘담 더 리버파크 개명 투표 진행할까요⁠?⁠」 엄지 이모티콘이 이백 개 달렸다⁠.

형우는 지난 7월 감사실에 소명서를 냈다⁠. 고객 서류를 본 것은 업무였고⁠, 고객에게 다른 고객의 정보를 말한 적이 없다고 썼다⁠. 감사실은 답이 없었다⁠. 「⁠검토 중⁠」이라는 한 줄짜리 회신이 와 있었다⁠. 덕규는 7월 이후로 형우에게 단지 서류를 맡기지 않았다⁠. 형우 책상 밑의 상자들은 상칠 책상 밑으로 옮겨 갔다⁠.

점심시간에 상칠이 김밥 두 줄을 들고 비상계단으로 형우를 따라 나왔다⁠. 계단참 창문 밖으로 지점 건물 뒤편 주차장이 보였다⁠. 덕규의 차 트렁크가 열려 있었고⁠, 골프 가방이 반쯤 나와 있었다⁠.

“⁠형⁠, 이번 달에 또 여섯 건이야⁠.⁠” 상칠이 김밥 은박지를 벗기며 말했다⁠. “⁠예외 승인⁠. 주소는 병점이 아니라 오산이고⁠. 원룸 건물을 바꿨나 봐⁠. 근데 연락처 끝자리가 또 같아⁠.⁠” 상칠이 김밥을 하나 집어 형우 손에 쥐여 주었다⁠. “⁠나 그 서류 넘기면서 손이 떨려⁠. 내 도장이 중간에 찍히거든⁠. 담당자 확인⁠. 나중에 일 터지면 내 도장도 거기 있어⁠.⁠”

“⁠상칠아⁠, 그럼 찍지 마⁠.⁠”

“⁠안 찍으면 지점장님이 다른 사람 시켜⁠. 그럼 나는 통폐합 지점으로 가⁠.⁠” 상칠이 김밥을 씹지 않고 삼켰다⁠. “⁠형⁠, 형 진짜 뭐 낼 거야⁠? 감사실 말고 위에⁠?⁠”

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칠이 형우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남은 김밥을 은박지째 형우에게 넘겼다⁠. “⁠형 먹어⁠. 나 입맛 없어⁠. 벼리셀 때문이야⁠. 다른 거 때문 아니야⁠.⁠”

*

서흔은 9월 마지막 토요일에 1203호 매수인을 만났다⁠. 협의회 에코백과 수건 세트를 들고 병점역 뒤 원룸 건물을 찾아갔고⁠, 201호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사람은 스물네 살 남자였다⁠. 반바지 차림으로 컵라면을 들고 있었다⁠.

“⁠휘담 리버파크 1203호 분양권 사신 분 맞으시죠⁠? 입주예정자 협의회장 맹서흔입니다⁠.⁠”

남자는 에코백을 받아 들고 한참 서흔을 보다가 말했다⁠. “⁠아⁠, 그거요⁠. 저는 명의만 빌려드린 거라서요⁠. 그 단지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실장님한테 물어보세요⁠.⁠” 남자는 말을 다 하고 나서야 입을 막았다⁠. 너무 늦게 막았다⁠.

서흔은 이 이야기를 나흘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닷새째 되던 날⁠, 서흔은 동탄역 앞 법무법인의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상담 요금표가 벽에 붙어 있었다⁠. 「⁠30분 330⁠,000원⁠」 변호사는 서흔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시계를 두 번 보았다⁠.

“⁠사기로 계약을 취소하는 소송은 가능하세요⁠. 다만 대행사 직원들끼리 사고판 것이 회장님 계약의 사기가 되는지는 따로 다퉈야 하고⁠, 몇 년 걸리고⁠, 이길지 모릅니다⁠.⁠” 변호사가 서류를 넘겼다⁠. “⁠그 전에 해지를 하시면 원칙적으로 계약금은 위약금으로 몰수됩니다⁠. 분양가의 10퍼센트⁠. 회장님 댁은 팔천구백만 원이고요⁠.⁠”

“⁠마흔 가구면요⁠?⁠”

“⁠마흔 가구 합치면 삼십오억 육천⁠.⁠” 변호사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말했다⁠. “⁠회장님⁠, 이십팔 분 지났습니다⁠.⁠”

*

목요일 저녁 일곱 시⁠, 서흔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홍삼 상자를 든 경렬의 얼굴이 떠 있었다⁠. 서흔의 남편은 야간 근무를 갔고⁠, 아이들은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서흔은 문을 열었다⁠.

경렬은 신발을 벗고 들어와 거실 소파 끝에 앉았다⁠. 홍삼 상자를 탁자 위에 올리고⁠, 서흔이 내온 보리차를 두 손으로 받았다⁠.

“⁠회장님⁠, 법무법인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동탄이 좁아요⁠.⁠” 경렬이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해지 알아보신다고⁠.⁠”

“⁠병점 201호 다녀왔어요⁠.⁠” 서흔이 말했다⁠. “⁠1203호 사신 분이 단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던데요⁠.⁠”

경렬은 놀라지 않았다⁠.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친구 말이 좀 많죠⁠. 명의는 빌려도 돈은 진짜예요⁠. 웃돈 일억 진짜로 들어갔어요⁠. 회장님⁠, 그 일억이 회장님 집값을 받치고 있어요⁠. 그 일억이 빠지면 1203호부터 무너지고⁠, 1203호가 무너지면 회장님 107동도 무너져요⁠.⁠” 경렬이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선을 그었다⁠. “⁠회장님이 해지하시면 위약금 다 받습니다⁠. 원칙대로요⁠. 회장님만 받는 게 아니라 회장님 따라서 해지하는 집 전부⁠. 회장님이 데려오신 마흔 가구⁠, 팔천구백씩 삼십오억⁠.⁠”

“⁠협박이세요⁠?⁠”

“⁠계산이에요⁠.⁠” 경렬이 웃었다⁠. “⁠그리고 회장님이 버티시면⁠, 회장님 댁 발코니 확장이랑 시스템 에어컨은 회사가 무상으로 해 드릴게요⁠. 협의회장님 수고비로⁠. 그리고 하나 더⁠.⁠” 경렬이 목소리를 낮췄다⁠. “⁠해지 소문 나면 휘담디앤씨 그날로 반토막 나요⁠. 회장님 운영진 열한 분⁠, 회장님 말 듣고 사셨잖아요⁠. 그분들 돈도 회장님 손에 있는 거예요⁠.⁠”

방에서 아이들이 게임에 이겼는지 환호성을 질렀다⁠. 서흔은 방문을 보았다가 경렬을 보았다⁠. 방문에는 작년 협의회 첫 모임 날 아이들이 붙여 놓은 스티커가 있었다⁠. 「⁠우리 새집 107동⁠」

“⁠대표님⁠. 제가 해지 안 하면⁠, 내년 여름에 우리 단지 어떻게 돼요⁠?⁠”

“⁠올라요⁠.⁠” 경렬이 일어났다⁠. “⁠제가 두 해 동안 틀린 적 있어요⁠?⁠”

경렬이 나간 뒤⁠, 서흔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 연락처를 맨 위부터 내렸다⁠. 보험 고객 폴더에 마흔 가구가 있었다⁠. 이름 옆에 서흔이 적어 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첫째 돌 — 6월⁠」「⁠아버님 투석 중⁠」「⁠쌍둥이⁠, 남편 지방 근무⁠」「⁠107동 같은 라인 원함⁠」 서흔은 화면을 끝까지 내렸다가 다시 맨 위로 올렸다⁠. 마흔 개의 메모 가운데 「⁠휘담⁠」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서흔은 휴대전화를 엎어 놓고 해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부도 같이 와⁠, 하고 말했다⁠.

*

밤 열 시⁠, 서흔의 거실에 세 사람이 앉았다⁠. 탁자 위에 경렬이 두고 간 홍삼 상자가 뜯기지 않은 채 있었다⁠. 서흔이 병점 이야기를 했고⁠, 법무법인 이야기를 했고⁠, 경렬 이야기를 했다⁠. 말을 마치고 서흔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형부 말이 맞았어요⁠.⁠” 서흔이 말했다⁠. “⁠1203호는 가짜예요⁠. 그럼 우리 웃돈도 가짜고⁠, 형부 말대로면 내년 여름부터 떨어지고⁠, 2027년에는 다들 삼억씩 빚이 남는 거죠⁠.⁠”

“⁠처형⁠, 지금 해지하면 팔천구백 잃어요⁠. 버티면 2027년에 삼억 넘게 잃어요⁠.⁠” 형우가 말했다⁠. “⁠처형네 숫자⁠, 제가 알아요⁠. 지금 깨는 게 덜 잃어요⁠.⁠”

“⁠언니⁠.⁠” 해린이 형우의 말을 끊었다⁠. 해린은 소파에서 몸을 앞으로 당겼다⁠. “⁠지금 언니가 단톡방에 해지 얘기 꺼내면⁠, 내일 아침에 휘담디앤씨 하한가야⁠. 나 거기 일억 들어가 있어⁠. 언니 운영진 열한 명도 들어가 있고⁠. 그리고 마흔 가구가 언니 따라서 해지하면⁠, 언니가 그 사람들 손으로 구천만 원씩 버리게 하는 거야⁠. 지금⁠. 이번 달에⁠. 2027년 말고⁠.⁠”

“⁠해린아⁠, 내년 여름에 떨어진다니까⁠.⁠”

“⁠그러니까 봄에 팔면 돼⁠.⁠” 해린이 형우를 보지 않고 서흔만 보았다⁠. “⁠언니⁠, 형우 씨가 날짜를 알아⁠. 2023년 여름⁠. 그 전까지는 올라⁠. 언니도 나도 운영진도 봄에 다 정리하면 돼⁠. 집은 웃돈 붙여서 팔고⁠, 주식은 꼭대기에서 팔고⁠. 마흔 가구한테도 언니가 봄에 팔라고 하면 돼⁠. 다 같이 빠져나오면 돼⁠.⁠”

“⁠다 같이는 못 빠져나와⁠.⁠” 형우가 말했다⁠. “⁠이천 가구가 다 팔면 누가 사⁠.⁠”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지금 웃돈이 붙어 있는 거잖아⁠.⁠”

“⁠그 사는 사람이 병점 원룸이야⁠.⁠”

해린이 입을 다물었다⁠. 서흔은 두 사람 사이에서 홍삼 상자를 보고 있었다⁠. 상자 포장지에 금색으로 「⁠건강한 내일⁠」이라고 찍혀 있었다⁠. 서흔은 손톱으로 금색 글자를 긁었다⁠. 금박이 조금 벗겨졌다⁠.

“⁠형부⁠.⁠” 서흔이 말했다⁠. “⁠형부 말이 맞아도요⁠.⁠”

서흔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빨갰다⁠.

“⁠지금 깨면⁠, 내 손으로 마흔 집에 구천씩 물리는 거예요⁠. 내 고객들이에요⁠. 보험 들어 준 사람들⁠. 애 돌잔치 가고⁠, 아버지 장례식 가고⁠, 같이 운 사람들이에요⁠. 내가 그 사람들한테 이 단지 좋다고 했어요⁠. 내가 이번 달에 그 사람들한테 구천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어요⁠. 2027년은 내가 모르는 날이에요⁠. 이번 달은 내가 아는 날이고요⁠.⁠”

“⁠처형⁠.⁠”

“⁠해린이 말대로 할게요⁠. 봄에 정리하라고 할게요⁠. 하나씩⁠, 조용히⁠.⁠” 서흔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단톡방을 열었다⁠. 엄지가 한참 화면 위에 머물렀다⁠. 서흔은 글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

「⁠최근 해지 관련 문의가 많습니다⁠. 협의회는 해지 논의 없습니다⁠. 끝까지 갑니다⁠. — 협의회장 맹서흔⁠」

전송 버튼이 눌렸다⁠. 몇 초 만에 엄지 이모티콘이 수십 개 올라왔다⁠. 「⁠회장님 믿습니다⁠」「⁠역시 우리 회장님⁠」「⁠휘담 더 리버파크 가즈아⁠」 해린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해린의 휴대전화에서 증권 앱 알림이 울렸다⁠. 해린은 화면을 보지 않고 뒤집어 놓았다⁠.

*

현관에서 형우가 신발을 신을 때⁠, 서흔이 따라 나왔다⁠. 해린은 먼저 엘리베이터 앞에 가 있었다⁠. 서흔이 형우의 손을 잡았다⁠. 왼손이었다⁠. 사과하려는 손이었는지⁠, 고맙다고 하려는 손이었는지 형우는 알 수 없었다⁠. 서흔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형부⁠, 미안해요⁠. 에코백은 안 사도 돼요⁠.⁠”

시계 위로 숫자가 바뀌었다⁠.

「⁠−360⁠,000⁠,000⁠」

지난가을 스터디카페 계단에서 본 서흔네 숫자는 마이너스 삼억 천팔백만 원이었다⁠. 오늘 밤 서흔이 단톡방에 올린 한 줄이 2027년의 서흔네 집에 사천이백만 원을 더 얹었다⁠. 서흔이 손을 놓았다⁠. 숫자가 형우의 검은 일억 구천만 원으로 돌아왔다⁠.

“⁠처형⁠. 삼억 육천이에요⁠.⁠”

“⁠네⁠? 뭐가요⁠?⁠”

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해린이 안에서 형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1층까지 말이 없었다⁠.

주차장 차 안에서 해린이 시동을 걸기 전에 형우는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 밝기를 가장 낮췄다⁠. 은행 내부 제보 양식이었다⁠. 준법감시인⁠, 은행 안에서 법과 규정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자리에 직접 들어가는 서류였다⁠. 제목 칸에 형우는 한 줄을 썼다⁠.

「⁠동탄중앙지점장 예외 승인 대출 14건 — 동일 주소 매수인 관련⁠」

해린이 화면을 보았다⁠. 시동을 걸던 손이 멈췄다⁠.

“⁠그거 내면 휘담디앤씨 어떻게 돼⁠?⁠”

“⁠모르겠어⁠.⁠” 형우가 말했다⁠. “⁠처음 살 때는 이런 걸 안 냈으니까⁠.⁠”

해린은 시동을 걸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다⁠. 형우는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저는 고객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본 것을 보고드립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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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가랑2026.11.01· 9화

    금리 올리는 날 아침을 이렇게 숨 막히게 쓰시다니요. 형우는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 문채겸작가2026.11.01

      한 번 살아 본 날이라 숫자는 알았어요. 그런데 아는 것과 옆 사람을 말리는 건 다른 일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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